무림회귀백서 174화
61장 잔당 제거(2)
마기에 집어 삼켜진 마인들은 반항이랄 것도 할 수 없었다.
으드드드득-
잠깐 눈 깜짝할 사이에 놈들은 전부 살점이 뜯기고 뼈가 박살이 났다.
거친 분쇄에 얼핏 피 안개가 옅게 피어올랐다 사라졌다.
‘…….’
진백천은 가볍게 미간을 찌푸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지극히 패도적이고 강렬한 무공.
그나마 다행이라면 전에는 통제조차 되지 않던 천마신공의 마기가 그의 의도에 따르기 시작했다.
이것도 전부 태허무극진결이 천마신공보다 더 강해졌기에나 가능한 일이었다.
“조금이라도 통제에서 벗어나면 다음은 없어.”
짙은 마기가 마치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크게 출렁였다.
그리고 그에게 애교라도 떨듯 눈앞에서 이리저리 움직였다.
전부터 느꼈지만 천마신공의 마기는 다른 기운들과 조금은 다른 구석이 존재했다.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그의 말을 알아듣는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마음대로 상대를 집어삼키기도 하고 말이지.’
처음 천마신공의 마기를 사용할 때만 해도 갑자기 은형살수를 집어삼켜서 당황했었다.
진백천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마기에게 명령했다.
“마기가 느껴지는 곳으로 안내해.”
그러자 놀랍게도 주변에 일렁이던 마기의 안개가 뭉치며 복잡하게 뚫린 굴의 한쪽을 가리켰다.
“……정말 내 말을 알아듣는 거냐?”
하지만 이번에는 딱히 반응이 없었다.
“후우. 그래. 놈들만 찾아내면 된다.”
진백천은 마기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향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인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방금 처치했던 놈들과 마찬가지로 운조 대사와 함께 있던 마교의 간자들이었다.
놈들은 주변에 넘실대는 마기를 느끼며 몸을 움츠렸다.
“……본교에서 오신 분이십니까?”
공손한 말과 다르게 두 눈은 경계심으로 가득했다.
이미 바깥쪽에서 들려온 비명을 들었다.
진백천은 품속에서 지살대의 패를 꺼내 들었다.
마기는 의도하지 않아도 스스로 패가 잘 보이게 옆으로 흩어졌다.
“……지, 지살대!”
“교주의 검을 뵙습니다!”
마인들은 제 자리에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운조와 갈마기마(渴魔飢魔)는 어디 있지?”
진백천의 물음에 마인 중 하나가 오른쪽 통로를 가리켰다.
“이쪽입니다!”
-……조장의 말대로 우선은 시간을 끈다. 정말 본교의 인물이라고 해도 착각했다고 하면 한 번쯤은…….
속마음을 듣고 있던 진백천은 그대로 마기를 뻗어 그자를 집어삼켰다.
우드드득-
“제, 젠장! 어서 굴을 무너뜨려!”
마인들은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곧바로 천장을 향해 장력을 내뿜었다.
진백천이 깔려 죽으면 좋고 그렇지 않더라도 복잡한 미로 같은 이곳에서 시간을 끌 수 있었다.
콰아아앙!
천장이 부서지며 잔해가 아래로 떨어졌다.
마인들은 뿌옇게 가려지는 시야에도 눈을 감지 않았다.
“깔렸나?”
“……그 정도 되는 자가 그렇게 쉽게 죽었을까?”
“재수 없는 소리 마라! 어서 조장께 보고……!”
마인은 하던 말을 끝까지 뱉지 못했다.
날카로운 통증이 목가를 스쳐 지나가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동시에 깔려 있던 잔해가 갈라지며 짙은 어둠이 나타났다.
“마교놈들이 의심만 많아 가지고. 쯧.”
짙은 어둠 속에서 얼핏 독고구검의 모습이 보였다.
마인들은 더는 상대가 되지 못할 걸 알면서도 먼저 공격을 했다.
하지만 그들이 무기를 제대로 휘두르기도 전에 진백천은 그들을 지나쳐 걸어가는 중이었다.
‘우리를 무시하고 그냥 지나간다고?’
마인 중 하나가 기회라 생각하며 진백천의 뒤를 노리려 했다.
하지만 움직여야 할 손이 돌에 묶인 듯 꼼작도 안 했다.
그뿐만 아니라 입에서도 목소리가 터져 나오지 않았다.
‘……마혈이라도 짚힌…….’
하지만 곧 그의 시선이 천천히 옆으로 넘어갔다.
기이하게도 천장이 보이고 시야가 어지럽게 흔들렸다.
털썩-
마지막으로 짙은 어둠 속에서 언뜻 보인 것은 자신과 똑같이 진백천의 뒤를 노리던 마인들이었다.
그들은 전부 머리가 잘린 채 핏발선 눈으로 자신을 쳐다봤다.
‘그렇다면…… 나도?’
마인은 그대로 절명했다.
하나같이 목이 잘린 채였다.
진백천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 * *
“후우. 이쪽인가?”
통로에는 마인들이 계속해서 나타났다.
그렇다고 겨우 몇 명 정도로 진백천을 막을 수는 없었다.
특이한 것은 간자가 아닌 자들도 섞여 나오기 시작했다.
“여기 있던 죄인인가?”
“…….”
피골이 상접한 마인은 손을 부르르 떨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고개를 끄덕거릴 뿐이었다.
“뭐 때문에 여기 갇혀 있었지?”
“그…… 그게…….”
남자의 눈이 바닥에 있는 마인의 사체로 향했다.
자신과 같은 죄인을 꺼내주고 소림에 복수하게 도와주겠다던 자였다.
그런 이가 목이 반쯤 잘리고 숨을 헐떡였다.
꿀꺽-
“잠, 잠시만…… 이면 되니까…….”
남자는 진백천의 눈치를 살피며 쓰러진 마인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이미 그의 속마음을 들은 진백천의 미간은 잔뜩 찌푸려진 상태였다.
그가 쓰러진 마인의 목을 물어뜯으려 할 때 재차 검이 번뜩이며 목을 베어냈다.
“……미친놈이네. 잡혀들어온 이유가 식인이라 이거지?”
피에 대한 맛을 잊지 못했는지 죽어가는 순간에도 마인의 목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참회동의 지하에는 이런 죄인들이 대부분이었다.
대충 이야기를 듣기는 했는지 얼마 들어가지도 않은 곳에서 벌써부터 이런 놈들이 나오니 당황스러웠다.
‘안쪽에는 얼마나 더 미친놈들이 있길래 이래.’
진백천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앞으로 걸어나갔다.
중심부 쪽에서 느껴지는 마기가 점점 더 강하게 느껴졌다.
아마도 갈마기마(渴魔飢魔)와 운조 대사일 가능성이 높았다.
‘이쯤이면 저 안쪽에서도 나의 존재를 알아차렸겠지.’
지금까지 들어오면서 마인들을 족족 죽여 버렸다.
어느 순간부터는 단체로 기습을 하거나 심지어 통로를 무너뜨리기도 했다.
너무나 거침없이 길을 막아버리다 보니 밖으로 향하는 또 다른 길이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래 봤자 마기가 있는 이상 놓칠 리는 없지만.’
진백천은 빛 한점 없는 어두운 통로에서도 환하게 보이는 것처럼 움직였다.
주변에 흩뿌려진 마기가 마치 육감처럼 주변을 파악해 전달해 줬다.
진백천이 아래쪽으로 뚫린 통로 앞에 섰다.
‘이곳만 내려가면 바로 마기가 느껴지는 곳이다.’
운조 대사를 비롯해 마인들이 그곳에 몰려 있는 것은 확실했다.
진백천이 내려보고 있는 통로의 곳곳에 숨어 있는 자들이 느껴졌다.
순간 죄다 으깨 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천마신공은 이래서 싫다니까.’
하지만 전과 달리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뜬 것만으로 살의를 전부 날려 버렸다.
이제 전과 달리 천마신공이라고 하더라도 진백천의 정신에 쉽게 간섭하기 어려웠다.
태허무극진결의 내력이 강해졌을 뿐만 아니라 상단전 또한 단단해졌기 때문이었다.
투욱-
진백천은 아래쪽에서 느껴지는 날카로운 살기에도 거침없이 통로로 뛰어들었다.
“크하아아아! 죽어라아아!”
어둠 속에 숨어 있던 마인들이 튀어나오며 진백천을 향해 수강을 뻗었다.
하나같이 두 눈이 기이할 정도로 붉게 물든 상태였다.
역천단(逆天丹)을 먹은 흔적이었다.
‘운조가 이들에게도 먹였나 보군.’
진백천은 마인들의 손을 피하며 몸통을 후려쳤다.
바싹 마른 몸뚱이에는 엄지손가락 두께만 한 구멍이 여기저기 뚫려 있었다.
참회동의 갇힌 마인들을 포섭하고 그들을 묶은 구금쇄(拘禁鎖)의 흔적이었다.
전신의 요혈을 뚫는 것이었기에 역천단을 먹었다고 해서 이렇게 곧바로 무공을 사용해서는 안 되었다.
단지 고통을 못 느끼는 것뿐이지 놈들의 혈도가 비틀리며 망가져 갔다.
‘약에 취해서 죽어가는지도 모르는군.’
“겨우 그것뿐이냐아!”
“온몸을 물어뜯어주마!”
마인들은 튕겨나는 것보다 더 빠르게 튀어 올랐다.
곧 진백천의 주변은 마인들로 가득 찼다.
지독한 악취가 풍겨왔다.
“쯧. 죽을 자리도 모르고 달려드는 꼴이라니.”
“입만 살았구나아!”
입가에 피를 흘리며 마인이 소리쳤다.
진백천은 떨어지는 모습 그대로 발을 들어 올리며 진각을 강하게 밟았다.
쿠우우웅!
이렇게 좁은 통로에서 많은 적을 상대하는 가장 효과적인 무공은 단 하나였다.
혈홍각출 시산육혼(血紅脚出 尸山肉魂).
강한 진각에 통로가 잠시 흔들리며 마인들이 휘청였다.
하지만 그 뒤에 벌어진 일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촤아아아악!
통로를 따라 검붉은 강기가 치솟았다.
강기로 만들어진 수십 개의 가시는 진백천의 뜻대로 마인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꿰뚫었다.
“크허억!”
“아아악!”
통로에 울리는 것이라곤 온몸이 짓이겨지는 마인들의 신음뿐이었다.
일순간 마기가 붉게 물들 정도로 피의 꽃이 피어올랐다가 사라졌다.
투두둑-
진백천의 주변으로 전신이 꿰뚫린 마인들의 시체가 수북히 쌓였다.
통로 바깥쪽에서 대기 중이던 마인들이 달려들던 자세로 우뚝 멈춰섰다.
정신을 흐리게 만들고 광인으로 만드는 역천단(逆天丹)이라고 해도 살육의 현장 앞에선 효과가 없었다.
“다,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전부 죽였어?”
“대체 무슨 무공이지?”
진백천이 몸을 툭툭 털며 그들 앞에 섰다.
오랜만에 사용한 혈강옥불상의 무공은 강해진 진백천만큼이나 위력이 한층 뛰어올랐다.
여운처럼 남은 붉은 기운을 억지로 흩어낼 동안 통로에는 지독할 정도의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런 침묵을 깨뜨린 것은 마인들 중 하나였다.
“우, 우리를 살려 보내주면 평생을 따르겠…… 커헉!”
진백천은 더 들을 것도 없이 목을 베어냈다.
“나 부하 많아.”
“그렇다면 돈, 돈을 드리겠습니다!”
“얼마나 있는데? 10만 냥은 있냐?”
“……있습니다!”
“금자로?”
금자냐는 질문에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그 짧은 침묵은 검을 휘두르기에 충분했다.
“다른 놈들은? 줄 거 없어?”
“무, 무공을……!”
스걱!
마인들은 각자 자신이 가진 최고의 보물을 제시했다.
하지만 놈들이 가진 바로는 진백천을 만족시킬 수 없었다.
마지막 남은 마인은 사색이 되어 진백천을 올려다봤다.
이미 다리에 힘이 풀려서 주저앉은 지 오래였다.
“네놈은 뭘 줄래?”
“…….”
마인은 어둠 속 진백천의 눈과 마주쳤다.
그러자 그의 눈동자에 어린 절망이 더더욱 짙어졌다.
“……네놈은 결국 전부 죽이려고 했군.”
“맞아. 네놈들을 살려두면 분명 밖에서 패악을 저지를 거잖아?”
“……네놈이 뭐라고 우리를 판단하느냐? 결국 네놈도 똑같은…….”
진백천은 그 말을 다 듣지 않고 목을 베며 안쪽으로 향했다.
이제 잔챙이들은 대부분 처리했고 남은 것은 대가리뿐이었다.
가장 안쪽의 공간으로 들어가자 수없이 늘어선 마인들이 보였다.
그중에는 운조 대사와 양옆에 선 마인이 가장 눈에 띄었다.
“준비됐냐?”
대뜸 하는 진백천의 물음에 운조 대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뭘 말이냐?”
“뭐긴. 뒈질 준비지.”
“입이 거친 놈이군.”
“지금 와서 고리타분한 척이야? 혹시 자신이 진짜 소림사의 장로라 생각하는 건 아니지?”
운조 대사의 목덜미에 힘이 들어갔다.
지금껏 진백천처럼 자신에게 말을 함부로 하는 자는 없었다.
그는 지금 분노를 넘어 새로움마저 느끼는 중이었다.
“네놈은 마교의 간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오늘 이 자리에서 그렇게 죽는 거라고.”
“멍청한 놈. 네놈이 어떻게 알고 여기까지 쳐들어왔는지 몰라도 이미 기세는 기울었다.”
-비밀통로를 통해 미리 마인들을 보내 놓길 잘했군. 저놈만 처리하고 나가면 대충 정리가 되어 있을 거다.
진백천의 생각대로 이곳에는 미리 파놓은 개구멍이 있었다.
운조는 이곳에서 나한들이 나왔음을 알아채고 마인들을 보내 놓은 상태였다.
“소림사가 그렇게 쉽게 무너질 것 같냐?”
“무너지지 않아도 상관없다.”
운조는 마인들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놈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품에서 역천단을 꺼내 입에 털어 넣었다.
한 개가 아닌 여러 개였다.
“나는 소림에 잊지 못할 상처를 내면 된다. 바로 천년마교를 위해서!”
잔뜩 일그러지듯 웃는 얼굴은 역시나 마인이었다.
진백천은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그 뒤에 들리는 운조의 속마음에는 차마 코웃음 치지 못했다.
-그게 아니라면 정도회 회주를 죽이는 것만으로도 마교는 크나큰 이득이지!
‘나를 죽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