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회귀백서 168화
60장 금강동인(金鋼動人)과 생불(1)
그 날 밤.
전의 비밀스러운 회동과 마찬가지로 3호 이추산이 진백천을 찾아왔다.
다른 점이라면 그를 일금영으로 알고 있는 탓에 그 태도가 극진했다.
“일금영. 모시겠습니다.”
“그래.”
진백천은 얼굴에 천을 두르고 참회동 안으로 들어갔다.
전과 달리 11명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조장의 얼굴은 무척이나 밝았다.
“이제 드디어 내일이면 금지에 들어선다. 그럴 가능성은 드물겠지만 장문인이 살아 있다면 죽이고 그렇지 않다면 장문인이 가지고 있던 것만 챙겨서 나와라.”
“존명(尊命)!”
조장의 명령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드디어 모든 것을 끝낼 때가 되었다고 말하며 각 분야에 있는 자들에게 세세히 명령을 내렸다.
“나한들이 금지를 빠져나오는 순간 우리도 움직일 것이다.”
남소림을 따르는 자들을 포섭한 지는 오래였다.
참회동을 관리하는 운조 대사라면 충분히 장문인의 직위를 차지할 만한 자격이 있었다.
-만약 나한들이 실패하거나 장문인이 살아나와도 상관없다.
운조 대사는 말은 하지 않았어도 실패했을 때를 이미 준비 중이었다.
참회동의 갇힌 마인들을 포섭하고 그들을 묶은 구금쇄(拘禁鎖)를 미리 갈아두었다.
전신의 요혈을 꿰뚫는 구금쇄를 오랜 기간 착용했기에 정상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소림의 혼란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정도회 회주가 크게 다쳤으니 그를 죽이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이득이다. 만약 하늘의 마(魔)가 나를 크게 따라준다면 소림의 머리를 전부 죽이고 독차지하는 것도 꿈만은 아니겠지.
운조 대사가 이렇게까지 자신 있어 하는 것은 전부 참회동 밑에 갇힌 몇 명의 마인들 덕분이었다.
참회동 가장 깊은 지하에는 근골이 모두 박살 난 뒤 밥도 주지 않는 마인들이 존재했다.
그곳에서 빛도 보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하다 죽으라는 의미에서였다.
-……갈마기마(渴魔飢魔)가 아직 멀쩡히 살아 있는 것을 알면 놈들도 기겁하겠지. 그들이라면 내 손을 쓰지 않아도 충분히 원진을 포함해 장로들을 죽일 수 있다.
진백천은 운조 대사의 속마음에 제법 놀랐다.
갈마기마라면 족히 50년 전에나 활동하던 오래된 마인들이었다.
별호 그대로 항상 목마름을 느끼고 배고픔을 느끼는 두 명의 마인을 뜻했다.
‘무림 공적으로 찍히고 나한들에게 추포된 뒤에 죽었다고 알고 있었는데 참회동에 갇혀 있었던 건가?’
만약 운조 대사가 아니었다면 그들은 진즉에 죽었을 것이다.
근골이 전부 찢기고 밥도 먹지 않고 살아남을 인간은 없었다.
하지만 운조 대사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 그들을 참회동 깊은 곳에 숨겨두고 먹이를 제공했다.
먹이라고 해봤자 똑같이 붙잡힌 마인이었으나, 그들의 목마름과 배고픔을 채우는 데는 충분했다.
그리고 50년이란 세월은 긴 시간이었다.
부서졌던 단전과 근골을 마공(魔功)으로 대체할 만큼 말이다.
-갈마기마(渴魔飢魔)의 정신 상태가 온전치는 못해도 부려먹기에는 충분하다.
진백천은 그 밖에도 다른 마인들을 운조 대사가 은밀하게 보살펴 왔음을 알고 기가 찼다.
‘소림에서 알면 기가 막힐 노릇이군.’
그는 어이없는 속내를 감추며 운조 대사의 말에 집중했다.
“8호. 진백천의 상태는 어떻지?”
“듣기로는 자리에서도 일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싸우는 동안에도 침상에서 제대로 몸을 일으키지도 못했습니다.”
‘저놈이 오늘 살아나갔던 놈인가 보군.’
진백천의 심각한 부상 소식에 기뻐했지만 모두가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그동안의 소문으로 듣던 진백천이 너무 쉽게 무너진 것 같습니다.”
“그자가 함정이라도 파놓고 우리를 기망하는 것이라면…….”
“그런 걱정은 할 필요 없다! 진백천의 부상은 사실이다.”
운조 대사는 다른 이들의 의심을 불식시키며 단호하게 말했다.
오죽하면 이 자리에 있는 진백천 마저 고개를 갸웃거렸다.
운조 대사는 기분이 좋으니 특별한 비밀을 말한다는 듯이 자신이 알고 있는 바를 말했다.
“진백천은 이곳에 오기 전에 본교의 지살대 무인과 격돌했다. 아무리 놈이 제 나이에 비해 강하다고 해도 그래 봤자 후기지수 정도뿐이다. 교주님의 검인 지살대 무인을 상대로 멀쩡할 리 없지!”
운조 대사의 말에 이추산이 가볍게 눈을 빛내며 진백천을 힐끔거렸다.
지금 말하는 지살대 무인이 진백천을 말한다는 것을 알아챈 것이다.
-그래서 저자가 소림에 들어온 거군. 진백천을 마무리하기 위해서!
의도치 않게 진백천에 대한 이추산의 믿음이 더욱 굳어졌다.
“그러니 진백천 따위는 신경 쓰지 말고 모두 때를 기억해라. 나한들이 금지에서 빠져나오는 날. 소림은 새롭게 뒤집힐 것이다. 각자 자리에서 만반의 준비를 해라!”
“존명(尊命)”
그 말을 끝으로 간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나한전으로 향하던 진백천은 발길을 돌려 원진 대사에게로 향했다.
“나는 잠깐 확인해 볼 것이 있으니 먼저 들어가라.”
그를 따라오던 이추산은 조금의 의심도 없이 고개를 숙이며 말을 따랐다.
진백천의 말을 들은 원진은 피곤해 보이던 기색도 잊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갈마기마(渴魔飢魔)가 살아 있다고?”
그것뿐만 아니라 운조대사의 계획은 그의 뒤통수가 쭈뼛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나한들이 금지에서 나오는 때라고 하니까 소림에서도 준비하세요.”
“그렇군. 애초에 이놈들은 장문인의 생존과 관련 없이 일을 벌일 생각이었어.”
하지만 놀람도 잠시 원진은 두 눈을 날카롭게 빛냈다.
“놈들이 소림의 저력을 우습게 보는구나. 마인 몇으로 태산북두 소림사를 무너뜨리려 해? 나한들이 없어도 우리 장로들이 없어도 소림은 소림이다. 운조 대사는 너무 늙어서 그런 기본적인 것도 생각하지 못하는 모양이군!”
원진은 한참을 그렇게 놈들의 멍청함을 토로했다.
“하여튼 금지 안에서는 제가 알아서 할 테니 바깥일은 원진 장로님이 신경 좀 써주세요.”
“그러마. 아 참. 금지에 같이 들어가는 나한 중 믿을 만한 자에게 너에 대해 은근슬쩍 이야기를 해놨다.”
“뭐라고요?”
“혹시라도 마교의 간자가 있을 수도 있으니 내가 심어둔 자를 따르라고.”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들어요?”
“하하하. 당연히 안 듣지! 그래서 너를 장문인을 지키는 팔대호원(八大護院) 중 하나라고 말해놨다. 어차피 장문인이 사라지면서 없어지기도 했고!”
하필이면 그 자리 또한 황궁에서 진백천이 처리한 일연의 살계승(殺戒僧) 자리였다.
앞으로 마교의 간자들을 수없이 죽여야 될 그가 살계승이라니 오묘했다.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그럼…….”
원진은 자리에서 일어난 진백천의 손을 꽉 잡았다.
“……소림을 잘 부탁하마.”
“걱정 마세요.”
그리고 다음 날 나한들은 금지(禁地)에 진입했다.
* * *
소림사의 금지로 향하는 길은 복잡했다.
겉으로 드러난 길만 여러 차례 틀어야 했고 통과해야 하는 기관진식도 여러 가지였다.
진백천은 그곳을 지나가면서 점점 금지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다.
‘뭐가 있길래 이렇게 꽁꽁 숨겨놓은 거지?’
보통 금지(禁地)라 하면 해당 문파의 비밀이나 보물이 담긴 곳이 많았다.
진백천이 전에 들렸던 사천당가만 해도 5대 금지가 있었고, 전부다 다른 종류의 독물을 기르고 보관하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소림사는 딱히 그런 것이 없었다.
‘독물이랄 것도 없고, 소림이 자랑하는 무서들은 전부 장경각에 있지.’
그렇다면 금지로 정하는 또 다른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외부로 공개하면 안 되는 것들이 있을 때.’
그의 그러한 의심은 금지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서 깊어졌다.
“기관진식을 해체하고 들어가겠습니다.”
나한들은 정해진 대로 기관진식을 해체했다.
문제는 그 기관진식이 밖에서 들어오지 못하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도 똑같이 작용한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안에 있는 뭔가가 나가지 못하게 하는 봉인장소라는 뜻이었다.
‘이런 곳에 봉인해 둘 게 뭐가 있지? 영물?’
철퍽-
진백천은 점점 더 습해지는 바닥을 밟으며 아래로 내려갔다.
마인들이야 참회동에 봉인했고 따로 생각나는 건 그 정도였다.
혹시나 해서 이추산에게 금지에 대해 물었지만 그도 딱히 아는 것은 없었다.
그저 장문인을 발견하면 최대한 빨리 죽이라는 말뿐이었다.
-장문인을 왜지?
-그건 저도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원진도 이 안에 무엇이 있는지 정확히 모르고 있었으니 결국에는 그 끝에 도달할 때까지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왠지 불길하단 말이지.’
또옥-
지나가는 통로에서 천장에 맺힌 물방울이 규칙적으로 떨어졌다.
통로는 무척이나 좁아서 한 번에 한 사람씩만 지나갈 수 있었다.
나한들은 말없이 긴장한 기색으로 앞으로 빠르게 나아갔다.
“흐음. 장문인께서는 왜 이런 곳에 들어오셨지?”
“팔대호원과 함께 오셨다고 했으니 무슨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뭐가 있는지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금지야. 그런 금지에 들어간다면 평범한 이유는 아닐 터.”
나한 중에서도 진백천과 같이 생각하는 자들이 있었다.
4대 금강 중 하나이자 나한들의 수장인 언규였다.
그는 한 손에 횃불을 쥐고 주변을 날카롭게 살폈다.
후우우우우-
그때였다.
나한들은 다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제 자리에 멈춰섰다.
동시에 모든 횃불이 거칠게 흔들렸다.
무섭도록 뜨겁고 건조한 바람이 안쪽에서부터 불어왔다.
“이런 곳에서 바람이 불어온다고? 이해가 안 되는군.”
“금지로 진입해서 지하로 내려온 지만 벌써 세 시진이 지났습니다.”
나한들이 의문을 갖는 것은 당연했다.
지하에서 바람이 분다는 것은 곧 외부와의 연결된 곳이 있다는 뜻이었다.
‘이렇게까지 내려왔는데 통로가 있는 게 말이 안 되지.’
하지만 곧 통로를 지나자 진백천은 바람이 불어온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바로 엄청난 크기의 공동이었다.
이 정도 크기의 공동이라면 상층부와 하층부의 온도 차이로도 바람이 불기도 했다.
“……이게 대체 뭐지?”
공동은 족히 수백 명이 모여 있을 수 있을 정도로 거대했다.
바닥은 한눈에 봐도 단단한 청석이 가지런히 깔렸고 곳곳에 화롯불이 넘실거렸다.
덕분에 더 끝까지 시야가 가리지 않고 보였다.
“흐음. 마치 연무장 같군.”
“맞습니다.”
공동에 올라선 나한들은 천천히 주변을 살폈다.
화롯불이 타오르는 것을 보면 분명 누군가 이곳에 있었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장문인과 팔대호원일 가능성이 높았다.
“혹시 모르니까 조심해.”
진백천은 멀찍이 서서 천장과 벽을 살폈다.
그곳에는 아주 오래전 새긴 것으로 보이는 벽화가 보였다.
소림 무승들이 무공을 펼치는 동작들이었다.
‘소림5권부터 나한권까지 전부 새겨져 있군.’
이런 것만 봐도 이곳이 얼마나 중요한 곳인지 알 수 있었다.
“응? 저 끝에 통로가 있습니다.”
통로는 나한들이 들어선 가장 반대편에 위치했다.
그리고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은 바로 그곳에서 불어오는 것이었다.
후우우우우-
“후우. 엄청나게 차가운 바람이군. 저곳에 물이라도 고인 걸까?”
단순히 물이 고였다고 이만한 찬 바람이 불어올 리 없었지만 지금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그 정도뿐이었다.
“그럼 저 안으로 이동하자.”
“네.”
나한들은 주변을 경계하며 천천히 통로로 나아갔다.
하지만 그들이 이 거대한 공동 가운데쯤 왔을 때 진백천은 몸을 흠칫하며 멈춰섰다.
‘……온다!’
날카로운 바람과 함께 전해지는 기운은 명백한 살의였다.
진백천은 본능적으로 호무살(虎武殺)을 사용하며 자신의 몸에 막을 씌었다.
‘이 느낌은 분명……!’
금강인형이 내뱉는 것과 똑같았으니까.
그리고 하늘에서 떨어져 내린 것은 다름 아닌 금빛으로 빛나는 금강동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