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회귀백서 167화
59장 108 목인항(3)
진백천의 복잡한 속내와 다르게 일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원진의 제자가 되면서 그의 거처는 자연스레 나한전으로 정해졌다.
물론 나한전을 비롯해 다른 곳에서는 전부 마교의 간자들이 작업을 해놨던 탓에 다른 반대가 없었다.
“방덕. 장로님의 부름이다. 어서 가봐.”
“다녀오겠습니다.”
소림에서의 움직임 또한 속가제자일 때보다는 훨씬 편해졌다.
나한이 되어 장로를 스승으로 모시게 되면 한동안 그에게 무공을 사사받았다.
딱히 사사받을 게 없는 진백천은 그런 이유로 꽤나 여유롭게 지냈다.
“회주. 마교놈들의 움직임은 어떻냐?”
“본격적으로 금지에 들어가기 전에 오늘 밤에 모일 거예요. 그때 이야기가 나오겠죠.”
“그렇겠지. 요즘 들어 운조대사의 발언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남소림에 대한 문제를 정면으로 꺼냈어.”
소문이 많아지는 만큼 지금이라도 그들을 인정하고 소림의 일원으로 받아들이자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 마교는 미리 만들어놓은 남소림의 간자들을 소림에 침투시킬 게 분명했다.
“장로님은요?”
“지금은 다들 꺼림칙해 하고 있지만 본격적인 증거가 나오면 다들 어떻게 될지 모르지.”
더구나 직접 그 말을 꺼낸 이가 운조대사였다.
그의 배분과 영향력을 생각하면 쉽게 묵과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금지에 들어가서 장문인을 모시고 나오면 모든 게 달라지겠죠.”
“그렇지. 꼭 그래야만 한다.”
“아 참. 그건 그렇고 제가 전에 부탁드렸던 건요?”
진백천의 말에 원진이 어쩐지 꺼림칙한 표정이 되었다.
목인항을 통과한 날 그는 원진을 만나 따로 부탁을 했다.
금강인형을 다시 한번 상대해 보고 싶다고 말이다.
물론 남들의 시선이 없는 비밀스러운 공간에서였다.
“크흠. 기관진식을 가동하기 위해서는 꽤나 복잡한 과정이 들어간다. 일반적인 나무 인형이면 몰라도 금강동인을 따로 구동하려면…….”
“호오.”
“……10명의 장인이 붙어서 새로운 인형을 만들고 거기에 따로 강화제를 발라서 만들어야…….”
“흐으음.”
“……다른 장로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그나마 덜 망가진 인형을 수리했다. 이게 다 회주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서…….”
원진은 꽤나 오랜 시간 자신의 노력과 고생에 대해 떠들었다.
진백천은 한 귀로 흘리면서도 감명받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마침내.
“……지하 연무실에 금강인형을 준비해놨다.”
“고생하셨어요.”
하소연이 끝나자 진백천도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지하로 내려가자 원진이 말한 금강인형이 보였다.
목인항에서처럼 활발하게는 움직이지 않아도 진백천에게 반응했다.
하지만 멀리 떨어져 있어서인지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디.
“움직이지는 못해요?”
“움직인다. 다만 지금 서 있는 반경에서 3장(10m) 정도가 한계다.”
“그 정도면 충분해요.”
진백천은 옆에 서 있는 원진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왜? 설마 나도 나가라고?”
“중요한 거라서요.”
“그러면 위에 있을 테니까 볼일 다 보면 말해라. 목인항 때처럼 인형 박살 내지 말고!”
원진은 아쉬운 듯 몇 번이나 힐끔거리더니 연무장을 벗어났다.
진백천은 그제서야 금강인형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쿠웅-
금강동인은 뿜어나오는 살의를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이대로라면 전처럼 사정거리에 다가오자마자 곧바로 공격을 해댈 게 분명했다.
‘내 안에 있는 천마신공의 마기를 감지하지 못하게 숨겨야 돼.’
진백천은 태허무극진결의 기운을 강하게 내뿜어보기도 하고 아예 기운을 갈무리하기도 했지만 변하는 것은 없었다.
그에게 마기의 냄새가 나기라도 하는 것처럼 살의를 놓지 않았다.
“답답하네. 이런 상태로 금지에 들어갈 수는 없어.”
만약 마기의 냄새가 있다면 막으로 꽁꽁 가리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게 가능할 리는 없지만 말이야.”
하지만 문득 그게 꼭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내력으로 펼친 기막도 있었고, 도홍경이 펼치는 술법으로도 가능했다.
진백천은 내력을 내뿜어서 자신의 전신을 갑옷처럼 둘렀다.
온몸을 꽁꽁 둘러쌓았지만 그런데도 금강인형의 살의를 사라지지 않았다.
‘젠장. 내가 잘못 생각했나?’
진백천은 오른손에 자신의 내력을 모아서 피어 올렸다.
검녹색의 내력은 이제 회색빛에 가까웠다.
‘태허무극진결이 마기와 혈강옥불상의 기운도 흡수한 탓인가? 그래서 저놈들이 알아차리는 거고?’
그렇다면 이런 식의 방식은 소용없었다.
“……이번에도 실패하면 진짜 끝이야. 금지고 뭐고 안 들어갈 테니까.”
진백천은 내력을 전부 거둬들이고 상단전을 활짝 열었다.
금강인형에게서 들려오는 목소리 따위는 없었지만 그런 것을 원한 것도 아니었다.
심상에서 커다란 막을 떠올리며 금강인형의 주변에 호무살(虎武殺)을 펼쳤다.
이것이 가능한가란 의문 따위는 버려두고 일단 해보자는 심산이었다.
호무살(虎武殺).
‘돼라돼라돼라돼라!’
주문 같은 중얼거림으로 의지를 더 했다.
그리고 그의 의념은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관자놀이가 뻐근하며 새로운 시도에 대한 과부하가 걸려왔지만 상관없었다.
“으음?”
곧 금강인형의 살의가 사라지며 몸을 낮췄기 때문이었다.
“됐다!”
하지만 호무살이 흔들리는 순간 금강동인은 무기를 들어 올리며 다시 살의를 내비쳤다.
막이 흔들리지 않도록 유지하는 게 관건이었다.
진백천은 막을 유지하며 천천히 다가갔다.
사정거리에 다가오자 공격을 뻗어왔지만 그렇다고 살의를 내뿜진 않았다.
‘좋았어. 이 정도면 충분하다.’
진백천은 멀찍이 떨어져서 막을 없앴다.
다시금 살의를 내뿜어왔지만, 그것마저도 반갑게 느껴졌다.
‘그나저나 호무살을 이렇게 사용할 수 있다니 새로운 발견이야.’
그는 기분 좋게 지하 연무실을 빠져나갔다.
원진은 말한 대로 위에서 기다리는 중이었다.
“설마 또 부쉈냐?”
“멀쩡해요.”
그는 눈에 띄게 안도했다.
값이 많이 든다는 말이 사실인 듯했다.
진백천은 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마치고 마교의 간자를 확인할 겸 지객당으로 향했다.
붉게 물드는 하늘이 늦은 저녁 시간을 알려주었다.
자신의 방에 다 와 가자 전처럼 묵직한 파공성이 들려왔다.
‘둘이 대련 중인가 보군.’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미세하게 들려오는 금속음은 그런 생각을 버리게 만들었다.
진백천은 재빨리 창문을 부수며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황대원과 당소예는 흑의를 입은 자들과 대치 중이었다.
* * *
흑의를 입은 자들은 총 3명이었다.
얼굴을 가리고 있지만 그들의 겉모습만 보고서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마교!’
진득한 마기는 둘째 치고 속마음으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그들이 맞았다.
황대원이 둘을 상대 중이었고 당소예가 가짜 진백천 앞에 서서 그를 보호하는 중이었다.
-누군가 나타났다. 서둘러서 목표를 처치해!
급해진 마인들과 마찬가지로 당소예와 황대원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한 상황이었다.
소림사의 무인들을 부르기에는 가짜 진백천이 들킬까 걱정이었고, 이대로 버티기만 하기에는 그들이 위험했다.
당소예는 어떻게든 마인의 공격을 막으며 가짜 진백천을 지키는 중이었다.
카앙!
단검끼리 맞부딪치며 불똥이 튀었다.
-멍, 멍청한 놈들!
침상에 누운 마교의 간자는 입을 살짝 벌린 채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떻게든 자신이 진백천이 아님을 말하려 했지만 마비는 풀리지 않았다.
빠르게 상황을 파악한 진백천은 마인들을 확인하자마자 옷을 찢어 얼굴을 가렸다.
하지만 황대원과 대치 중이던 두 놈은 이미 그의 얼굴을 확인한 후였다.
-속가제자 방덕? 설마 우리 중에서도 미꾸라지가 있던 건가?
-조장에게 어떻게든 알려야 한다!
둘은 황대원을 상대하는 것도 멈추고 곧바로 이곳을 빠져나가려 했다.
“어림없다!”
황대원은 그때가 기회임을 깨닫고 도끼를 있는 힘껏 휘둘렀다.
반월부일격(班月斧一擊).
맹렬한 기세는 마인 중 하나의 등을 가르고 지나갔다.
남은 한 놈이 그자의 몸을 방패 삼아 지나가려 했지만, 그 앞을 막은 것은 진백천이었다.
“13호! 너……!”
“시끄러워. 아직 다른 놈은 모른다고.”
진백천은 번개 같은 몸놀림으로 놈에게 다가가며 독고구검을 뻗었다.
단검으로 막으려 했지만 독고구검은 검날을 통째로 잘라내며 가슴을 파고들었다.
“커헉!”
심장이 꿰뚫린 마인은 곧 절명했다.
진백천은 서둘러 당소예에게 전음을 보냈다.
-소예야. 놈에게서 비켜서.
전음을 들은 당소예가 마인의 공격을 피하며 옆으로 물러섰다.
그러자 마인은 기회라 생각했는지 밖으로 빠져나가면서 누워 있는 가짜 진백천을 향해 단검을 내던졌다.
단검은 아슬아슬하게 가슴을 지나 어깨에 꽂혔다.
푸욱!
“크윽! 잠, 잠깐……!”
마혈이 풀리며 가짜 진백천이 신음을 터뜨렸지만 마인은 이미 창문 밖으로 사라진 뒤였다.
단검에는 독이 묻어 있었는지 놈의 얼굴이 곧 검게 물들었다.
“황대원. 아무도 모르게 창문 가려.”
“네. 회주님.”
진백천은 곧바로 주변부터 살폈다.
다행히도 그들이 다투는 소리는 아무도 듣지 못한 듯했다.
뒤늦게 위향아를 비롯한 이소한이 찾아왔지만 당소예가 나서서 상대했다.
“당 소저. 방금 무슨 소리 들리지 않았어요?”
“네? 아아. 저희 대련하는 소리였을 거예요. 시끄러웠죠?”
진백천은 그사이 누워 있는 놈의 혈도를 짚어서 독이 더는 퍼져나가지 못하게 막았다.
이 정도 독이야 흡수하는 일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를 직접적으로 노리다니. 몸이 아프다고 하니까 기회로 여긴 건가?”
전에 모였을 때 진백천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기 때문에 딱히 신경 쓰지 않았었다.
위향아와 이소한을 돌려보낸 당소예가 침대 곁으로 다가왔다.
“회주님. 죄송해요. 제가 막지 못해서…….”
“아니야. 일부로 그렇게 시킨 거니까 신경 쓰지 마.”
“일부로요?”
현재 진백천은 몸이 아파서 요양 중인 것으로 되어 있었다.
지난 전투에서의 부상이 그 이유였지만 아직까지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었다.
마교의 간자들은 그런 진백천을 죽이기에 최고의 기회로 본 것이다.
‘소림사의 전복이야 눈앞에 보이는 결과물이고 나를 죽일 수 있다면 금상첨화라고 생각한 거겠지.’
가짜 진백천의 몸에 단검을 꽂는 데 성공했으니 놈들은 무척이나 기뻐할 게 분명했다.
“나쁘지 않아. 오히려 이걸로 함정을 세우면 되니까.”
“함정 말입니까?”
진백천을 죽이려는 자들.
그것만큼 마교의 간자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증거는 없었다.
금지에 들어가는 것과 별개로 놈들을 잡아넣을 수 있는 중요한 기회였다.
“우선은 이놈이 죽지 않을 정도로만 관리해.”
“그러면 회주님께서는?”
“나는 계속 방덕으로 있어야지. 적어도 금지에 다녀올 때까지라도.”
“네. 알겠습니다.”
돌아가려던 진백천은 황대원과 당소예의 몸에서 상처가 있는 것을 확인했다.
놈들을 막으면서 몸 여기저기에 난 상처들이었다.
벌써부터 피부가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둘이 잠깐 앉아봐.”
“괜찮아요.”
“그거 지금은 괜찮아 보여도 금세 악화될 거야. 전에 봤던 십인사(十人蛇)의 독이니까.”
당소예가 히끅 하고 놀라며 상처를 살폈다.
놈들의 독이 얼마나 지독한지는 그때 이미 확인했었다.
“그러니까 잔말 말고 앉아봐.”
진백천은 상처의 있는 독을 전부 독정으로 흡수했다.
“아마 나한테, 아니 가짜한테 칼 꼽는 데 성공했으니 또 오지는 않을 거야. 휴식하고 있어.”
“네. 회주님.”
보이지 않는 상처가 없음을 확인하고 나서야 방에서 빠져나갔다.
우선은 오늘 마교의 간자들의 모임에서 놈들이 어떻게 나오는지 살펴볼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