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회귀백서 165화
59장 108 목인항(1)
소림사 자운당(慈雲堂).
역대 장문인들이 직위와 모든 업무에서 벗어나 기거하는 곳이었다.
원래는 고요함과 평화로움으로 가득해야 할 이곳이 오늘따라 유난히 시끌벅적했다.
“이제 결단을 내려야 할 때입니다! 벌써 장문인이 금지로 들어가신` 지 1년 가까이 되어갑니다!”
“가지고 계시던 벽곡단도 이쯤이면 이미 떨어졌을 때입니다!”
이들 대부분은 서둘러 금지에 나한을 보내 장문인을 찾아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말은 하나도 틀린 말이 없었다.
다만, 이들이 장문인의 무사귀환이 아닌 다른 목적을 꿈꾸고 있다면 그것이 문제였다.
‘어떻게 해야 할까.’
자운당에 유일한 거주인이자 전 장문인 운암(雲巖)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현 배분으로 가장 높은 그의 결정에 따라 소림은 방향을 잡을 터였다.
‘이제 더는 막을 명분도 없지.’
원진의 말에 따르면 이들 중에서도 마교의 간자가 섞여 있었다.
그들이 소림의 전복을 원한다면 장문인을 결코 살려둘 리 없었다.
“나한들은 어떠한가?”
무거운 운암의 물음에 나한전의 장로가 고개를 숙였다.
“언제라도 나설 수 있습니다.”
“장문인이 들어선 그곳은 금강동인이 봉인된 곳이다. 나한들로만은 힘들 수도 있다.”
“주의의 주의를 더 하라 이르겠습니다.”
둘러 표현했지만 나한만으로 충분하다는 말이었다.
“금지에 금강동인(金鋼動人)이 있음을 모르는가?”
“오래된 전설일 뿐입니다.”
운암은 순간 기가 찼다.
금강십팔나한(金鋼十八羅漢)은 실제로 존재했다.
자신 또한 어린 시절이었지만 먼발치에서 금지에 서 있는 그들을 똑똑히 봤다.
‘시간이 지나 오래된 기억은 퇴색되고 전설로 남아 흩어지는구나!’
이들이 자신의 앞에서도 이렇게 당당하게 말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운암은 더는 자신이 다그친다 해도 이들이 듣지 않으리란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을 그저 지켜볼 수만은 없지.’
“금지(禁地)는 두 명이 같이 서서 지나가지 못할 정도로 입구가 좁고, 구조도 복잡하다.”
“나한들은 충분히 주의하며 나아갈 것입니다.”
또한 항상 물이 고여 있기에 미끄럽고 오래 걷기 힘들었다.
그런 곳에 괜히 사람이 많으면 더 인명피해가 많아질 터였다.
“금지에 들어서는데 단지 주의한다고 해결이 될까!”
일부로 불편한 기색으로 말을 꺼냈으나 이미 이곳에 모인 자들 대부분은 그를 신경 쓰지 않았다.
금분세수(金盆洗手)하여 강호를 떠난 운암은 그저 문파의 연장자일 뿐이었다.
씁쓸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원진. 미안하구나.’
하지만 정작 원진은 그다지 개의치 않는 표정이었다.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이 나한들의 금지 돌입을 찬성했다.
“무작정 들어가면 위험할 수 있으니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합니다. 3일 정도면 준비하는데 충분할 것 같습니다.”
“그런가?”
가장 큰 반대자였던 원진이 찬성으로 돌아서자 분위기는 급물살을 탔다.
운조 대사는 뒤편에 앉아서 그런 원진을 유심히 살폈다.
딱히 함정을 파거나 계획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그들의 입장에서는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의견은 결정이 된 셈이로군. 더 할 말이 있나?”
그들이 슬슬 결정사항을 정리하고 일어날 때쯤 36방의 관리자가 입을 열었다.
“36방의 통과자가 나타났습니다.”
“흐음. 누구지?”
원진이 모른 척 묻자 관리자가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속가제자 방덕입니다. 평소 수련을 열심히 하던 자이온데 이번에 단 하루 만에 9방을 전부 완료했습니다.”
“방덕이라. 들어본 것 같군. 진백천 회주에게 혼쭐이 났던 자 아닌가?”
“……혼쭐이라기보다는 실수였습니다.”
보통의 경우 본산 제자로 입적하고 새로운 스승을 맞이하는 게 관례였다.
하지만 이번 경우에는 조금 달랐다.
108 목인항의 새롭게 가동되었기도 하고, 그에 따라 원진 장로가 자신의 제자로 맞이하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바로 차질없이 준비하라. 내 제자로 맞이함과 동시에 그날 실력을 봐서 어디로 보낼지 판단하겠다.”
“네. 알겠습니다.”
원진의 긍정적인 대답에 마인들이 눈동자를 날카롭게 빛냈다.
자신의 제자가 될 자가 마교의 간자임을 알게 되면 얼마나 분해할지 속으로 고소해 했다.
하지만 그들은 몰랐다.
원진 또한 방덕이 진백천임이 알려졌을 때 그들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을 기대 중이라는 것을 말이다.
참으로 서로가 기대하는 것이 많은 회의였다.
* * *
진백천은 아침 일찍부터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풀었다.
오늘은 목인항(木人巷)에 도전하는 날이었다.
원진의 말대로라면 다른 제자들뿐만 아니라 장로들까지 온다고 했으니 제법 화려하게 통과해야 했다.
하지만 진백천은 딱히 걱정하지 않았다.
‘나한들이 통과했다면 그건 나한테도 어렵지 않을 테니까.’
문제는 적당히 티 나지 않게 통과하는 것이었다.
“방덕. 일어났어? 이제 가보려고?”
오이서는 몸이 아픈지 여기저기 두드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백천에게 자극을 받았는지 어제 늦게까지 수련을 하다 들어왔다.
“응. 너는 피곤하면 더 자.”
“아니야. 우리도 네가 목인항을 통과하는 걸 응원하기로 했어.”
파죽지세의 방덕.
그는 자신도 알게 모르게 속가제자들 사이에서 유명인사였다.
특이한 것은 그의 실력이 급증한 이유였다.
원래도 나쁘지 않았지만 지금처럼 폭발적인 이유를 진백천때문이라고 봤다.
‘처절한 패배에 이를 갈았다는 뜻이었나?’
그런 이유 때문인지 전부 정신력이면 방덕처럼 잘해낼 수 있다- 라는 말이 유행처럼 떠돈다고 했다.
“어찌 되었든 고맙다.”
“응. 오늘 잘해.”
진백천은 그와 인사를 마치고 곧바로 36방으로 향했다.
목인항이 있는 기관진식은 가장 마지막 방에 설치되어 있었다.
밖에서 지켜볼 수 있게 천장이 없었고 천막으로 가려놓은 상태였다.
안에서 진행되는 상황을 보기 위해서인지 벽 높이의 계단이 존재했다.
“방덕. 왔군!”
36방의 교간들이 그에게 다가왔다.
그들의 옆에는 이마에 붉은 점을 찍은 나한들도 함께였다.
그중에는 3호의 얼굴도 보였다.
“자네가 방덕이군! 거는 기대가 많으니 최선을 다하라!”
“네. 알겠습니다!”
고개 숙인 그에게 3호의 전음이 들려왔다.
-조장께서 최대한 빠르게 목인항을 통과하라 일렀습니다.
-알았다.
진백천은 눈짓으로 대답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소림의 장로들부터 속가제자들까지 제법 모이는 인원이 많았다.
아마도 방덕에 대한 궁금증뿐만 아니라 새로운 목인항을 보기 위해서였다.
“속가제자 방덕!”
“네!”
“36방을 뚫고 목인항에 도전하는 게 맞는가?”
“네. 맞습니다.”
“그렇다면 안으로 들어가라!”
누군지 모를 자의 명령에 따라 기관진식에 들어섰다.
그러자 뒤쪽으로 열려 있던 문이 닫히며 주변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곧 천장을 덮은 천막이 치워지면서 안의 전경이 훤히 드러났다.
‘흐음. 이런 식인 거군.’
방은 겉에서 보는 것처럼 길게 일직선이었다.
그 중간에는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모를 나무 인형들이 잔뜩 놓여 있었다.
그 마지막에는 진백천의 키보다 더 큰 향로가 보였다.
화르르르륵-
특이한 것은 향로 바로 밑에서 장작이 활활 타올랐다.
향로는 이미 붉게 닳아 오른 상태였다.
그 겉에 새겨진 용과 호랑이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구경꾼들은 벽 위로 서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향로 옆에 향이 보일 것이다. 저 향이 다 사그라지기 전에 마지막까지 이동해라. 그리고 향로를 들어 안쪽으로 밀어 넣으면 된다.”
규칙은 간단했다.
빠르게 이 목인항들을 통과하기만 하면 되었으니까.
하지만 진백천은 바로 통로 안으로 뛰어들지 않았다.
우선은 겉에서 보이는 인형들을 자세히 살폈다.
‘각 관절마다 쇠사슬이 이어져 있다. 내 움직임에 따라 무공을 펼치는 거겠지.’
그가 인형을 살펴보고만 있자 조장에게서 전음이 들려왔다.
-13 서둘러라! 나한들은 향의 3분지 1이 남기 전에 통과했다!
적어도 나한전에 들려면 그만큼은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향은 그 짧은 사이에 끝부분이 하얗게 재로 변해 떨어졌다.
‘새끼. 서두르기는.’
진백천은 가볍게 숨을 들이쉬고 한 걸음 나아갔다.
끄르르륵-
그러자 바닥이 밟히며 기관진식이 발동했다.
정적으로 감싸져 있던 공간이 순식간에 격동적으로 변했다.
진백천은 곧바로 고개를 숙이며 넘어지듯 앞으로 나아갔다.
방금까지 그가 있던 자리에 목인항들의 쇠주먹이 스치고 지나갔다.
후우우우욱-
묵직한 파공성이 맞으면 단순히 멍이 드는 걸로 끝나지 않을 것을 알려줬다.
목인항은 한 자세만 반복하지 않았다.
철저히 진입자의 움직임에 맞춰서 공격을 해왔다.
쿠우웅!
사각에서 뻗어오는 철구를 막자 온몸이 충격으로 울렸다.
한차례 공격을 허용하자 사방에서 진백천의 몸을 두드렸다.
“위험하군!”
“목인항의 주먹은 제법 매섭지!”
걱정에 찬 이들의 시선과 달리 진백천은 그다지 위험하지 않았다.
쇠주먹은 진백천에게 그다지 충격을 주지 못했다.
그는 그저 목인항이 움직임을 보며 기관진식을 관찰할 뿐이었다.
‘흐음. 그랬군. 어딘가 익숙하다 싶더니 목인항의 움직임은 전부 소림5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소림5권은 달마대사가 용, 호랑이, 표범, 뱀, 학의 동작을 본떠 만든 권법이었다.
이것은 나한들이 익히는 나한18수의 근원이기도 했다.
인형의 동작은 소박하고 화려함은 없으나 묵직했다.
또한 사람이 내지르는 것이 아님에도 공격에는 은은히 내력이 실려 있었다.
그 내력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강해졌다.
‘그것이 이 기관의 무서움이군.’
소림5권을 이용한 기관진식과 목인항.
진백천을 이것을 직접 몸으로 겪으면서 은은한 흥분감으로 차올랐다.
‘언제 이런 걸 겪어 보겠어.’
그는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보이며 날아오는 쇠주먹을 튕겨냈다.
카아앙!
인형의 몸이 흔들렸지만 금세 자세를 잡으며 재차 주먹을 뻗었다.
‘강직하니 네놈은 용이로구나!’
강직함에는 강직함.
진백천은 오히려 더 가까이 다가가며 주먹을 뻗었다.
콰아아앙!
방금보다 더 강한 충격음이 울려 퍼졌다.
목인항의 쇠주먹이 일그러지며 벽에 처박혔다.
쇠사슬이 당겨졌지만 망가진 인형은 일어서지 못했다.
‘우선 1개.’
그 바로 옆에서 두 개의 목인항이 비슷한 자세로 주먹을 뻗어왔다.
마치 나뭇가지를 타고 넘어가는 뱀과 같은 모습이었다.
‘이번에는 뱀이냐?’
바닥을 박차며 몸을 빙그르 돌았다.
진백천은 그 주먹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양발을 뻗어 가슴팍을 후려 찼다.
역시나 벽에 처박히며 인형 2개가 망가졌다.
“흐음. 저 방덕이라는 속가제자. 역시 평범하지 않군. 목인항을 확실히 파악해서 부수고 있어!”
“나한들도 그저 지나가는 게 전부였는데 말이지!”
단순히 버티며 지나가는 것과 하나하나 깨부수는 것.
무엇이 더 어려운지는 말하지 않아도 잘 알았다.
진백천이 목인항을 깨부수는 모습을 내려다보는 나한들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108 목인항을 직접 겪은 그들은 진백천이 얼마나 대단한지 몸소 느끼고 있었다.
“언규 사형이 볼 때는 어떠십니까?”
나한들의 수장이자 4대 금강 중 하나인 언규였다.
그 또한 목인항이 만들어지고 직접 몸으로 체험해 봤다.
그는 무뚝뚝한 생김새처럼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다른 나한들이 궁금함이 가득한 얼굴로 언규를 쳐다봤다.
“부수는 것은 어렵지 않지. 다만 시간이 갈수록 강해지는 목인형에 실리는 내력이 강해지더군. 아마 저 상태로는…….”
언규의 시선에 진백천이 실렸다.
그는 여전히 기관진식의 초입부였다.
“……끝까지 도달하지는 못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