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회귀백서 164화
58장 파죽지세 방덕?
속가제자들의 일과는 평범했다.
수련과 휴식.
단 이 두 단어로만 표현이 가능할 정도로 말이다.
“이놈들 똑바로 버텨라!”
오이서와 방덕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소림칠십이예(少林七十二藝)를 수련 중이었다.
석주공(石柱功)이라는 수련법으로 나무 기둥을 바닥에 심고 그 위에 올라가 마보자세로 버티는 것이었다.
물론 그냥 버티면 너무 쉬우니 항아리에 물을 가득 담고 양팔에 올린 상태로였다.
“으으윽! 다, 다리가 떨어져 나갈 것 같아.”
“갑자기 왜 이렇게 빡세진 거야!”
그들은 소림의 정식 제자가 아니었지만 그렇기에 있는 동안은 더욱 열심히 굴렸다.
정식 제자들이 일 년 내내 배울 것을 억지로 3달 만에 소화해야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오늘만큼은 아니었다.
불과 하루 만에 갑자기 독사로 변한 교관들을 보며 속가제자들이 이를 갈았다.
“억울하면 올라서라! 다음 방으로 넘어가면 된다! 버티고 통과해!”
교관들이 항상 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 석주공만 해도 쉬운 것이 아니었다.
통나무 위에서 균형을 잡아야 했고, 조금만 흔들려도 출렁이는 항아리의 물은 더더욱 어려웠다.
더구나 조금이라도 내공을 사용하면 교과들이 귀신같이 알아채고 기둥을 걷어찼다.
“내공은 쓰지 말라고 했다!”
“허억!”
겨우 버티던 이들은 기둥에서 떨어지며 항아리가 박살 났다.
온몸이 물로 젖은 이들은 제대로 쉴 틈도 없이 다시 항아리를 지고 기둥으로 올라섰다.
이곳에서 무려 2시진을 버텨야만 다음 방으로 나아갈 수 있는 자격이 생겼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고통 섞인 신음이 들려올 때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으로 버티는 자가 있었다.
“……저거 방덕 아니야? 지금까지 한 번도 안 떨어졌지?”
“맞아. 벌써 1시진 훌쩍 넘었어.”
“방덕이 저렇게 외공이 뛰어났나?”
방덕이 남들보다 조금 잘나긴 했어도 이렇게 특출나지 않았기에 시선이 더 집중되었다.
교관들은 그가 내공을 쓰나 유심히 살폈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후읍. 이 정도쯤이야. 별거 아니지!’
진백천은 양다리에 힘을 바짝 주고 버텼다.
마보자세는 평소에도 시간이 날 때마다 하던 것이었다.
그는 금세 2시진을 버티고 기둥에서 내려왔다.
“방덕! 훌륭하다! 통과다! 다음으로 넘어가라!”
“감사합니다.”
진백천은 바로 다음 방으로 넘어갔다.
그곳에서는 여러 겹 겹친 화강암 재질의 벽을 두드리는 암파권(巖破拳)을 훈련하는 곳이었다.
“흐음. 오랜만에 새로운 제자군. 잘 보고 따라 해라. 괜히 어중간하게 하다가는 손이 부러질 수도 있으니까!”
교관은 진백천에게 경고하며 화강암 벽을 향해 권을 뻗었다.
쿠웅!
제법 힘이 실린 주먹이었지만 벽은 크게 흔들릴 뿐 부서지거나 흠집이 생기지 않았다.
“이렇게 하면 언젠가는 주먹이 이 화강암 벽보다 더 단단해지게 된다!”
“그렇군요. 28방의 통과 기준은 어떻게 됩니까?”
“벌써부터 통과 기준을 논하다니. 제법 건방지군. 한 번만 말해줄 테니 잘 들어라. 저 화강암 벽의 1장이라도 금이 가게 만들면 통과다.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적어도 두 달은 주먹을 단련해야……!”
진백천은 교관의 말이 다 끝나기 전에 앞으로 화강암 벽 앞에 섰다.
28방에 있는 모든 이의 시선이 저절로 그에게 향했다.
딱히 그가 벽을 부술 거라 기대하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곧 주먹을 움켜쥐고 고통스러워할 모습을 떠올리며 이죽였다.
“흐읍.”
진백천은 주먹을 당기며 숨을 들이쉬었다.
두 번의 환골탈태(換骨奪胎)를 거치면서 그의 전신은 이미 철골(鐵骨)에 짐승의 가죽처럼 질겼다.
‘단숨에 힘을 집중해서 부순다.’
일점타(一点打).
내력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의 무기 같은 몸에 적당한 요령이 함께한다면 이런 벽쯤이야.
콰아아아앙!
간단했다.
화강암의 벽은 단숨에 박살이 나며 파편이 날렸다.
“후우.”
진백천은 들이쉬었던 숨을 내뱉으며 몸에 붙은 돌조각을 털어냈다.
“다음으로 가보겠습니다.”
* * *
“미리 말하지. 29방은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고통이 따른다. 바닥에 꽂힌 쇠기둥을 손가락의 힘만으로 들어 올려…….”
“통과 기준은 어떻게 됩니까?”
“건방지군. 통과 기준은 쇠기둥을 단 손가락의 힘만으로 구부리면…….”
끼이이익-
“이렇게 말입니까?”
“…….”
“다음으로 가보겠습니다.”
진백천의 연방 행진은 파죽지세로 이뤄졌다.
나중에는 소문이 퍼졌는지 올라가면 통과 기준부터 설명해 주었다.
전부 다 백천의 능력으로는 충분히 통과 가능한 것들이었다.
“……저 커다란 절구의 물을 내공을 사용해 전부 밖으로 밀어내면 된다. 단, 절구를 부수거나 하는 것은…….”
촤아아아아악!
진백천의 손이 닿자 물이 용솟음치며 사방에 비처럼 내렸다.
절구에는 조금의 물도 남아 있지 않았다.
“…….”
“다음으로…….”
그렇게 진백천은 하루 종일 해가 지기 전까지 36방을 완전히 통과해 버리는 기염을 토했다.
마지막에는 본산 제자들도 내려와 그를 구경할 정도였다.
“후우. 그래도 어찌어찌 오늘 안에 다 끝낼 수 있었네.”
진백천은 제법 피곤한 어깨를 두드리며 숙소로 돌아갔다.
그러자 평소에는 본척만척하는 것들이 주변을 서성였다.
오늘의 기행 탓에 그는 속가제자 중에 유명인사가 되어버린 탓이었다.
하지만 진백천 특유의 분위기 탓에 함부로 다가오지 못했다.
원래 그와 친하게 지내던 오이서만이 눈을 둥글게 뜨고 다가왔다.
“방덕! 어떻게 된 거야?”
“어떻게 된 거냐니?”
“36방 말이야! 오늘 전부 통과해 버렸다며?”
“아아. 별거 아니야.”
진백천은 식사로 나온 이름 모를 나물을 들어 보이며 인상을 썼다.
하도 풀만 먹어댔더니 이제 입에서 잡초 냄새가 날 것만 같았다.
“그러지 말고 대답해 봐. 대체 무슨 수를 부린 거야? 응?”
“무슨 수라니. 그냥 평소랑 똑같이 열심히 한 거지.”
“전에는 열심히 할 생각 없다고 매번 그러더니 왜 갑자기 바뀐 거야?”
진백천은 오이서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나물을 입에 넣었다.
하지만 곧 혀 전체로 퍼지는 씁쓸함에 얼굴을 찡그리며 전부 뱉었다.
“퉷. 도저히 못 먹겠네. 나는 그만 일어난다.”
“잠깐! 가지 말고 이야기해달라고!”
오이서는 평소와 다르게 끈질겼다.
방까지 쫓아와서도 어떻게 한 건지 물어봤다.
그저 무시하려던 진백천은 그가 내미는 삶은 달걀을 보고 입을 열었다.
“그냥 해보려고.”
“뭐를?”
진백천은 한입에 계란을 쏙 넣고 우물거렸다.
삶은 달걀 특유의 비린내도 무척이나 구수하게 느껴졌다.
“나한.”
“……나한?”
오이서는 자신에게 꿈 같은 이야기를 하는 진백천을 보며 눈을 꿈뻑였다.
“나한이라니. 대단해.”
“대단하긴. 너도 할 수 있어.”
“나, 나도?”
진백천은 오이서의 어깨를 토닥였다.
“너도 27방이잖아? 9개만 더 통과해. 그러면 본산제자가 될 수 있고 더 노력하면 나한전에 드는 것도 꿈만은 아닐걸?”
‘보아하니 근골도 좋아 보이고.’
흠이라면 무슨 말을 할 때마다 얼굴을 붉힐 정도로 자신감이 없는 태도였다.
그런 것만 고친다면 충분히 후기지수 대열에 들만한 무재였다.
“내가 될 수 있다면 너도 될 수 있어.”
“…….”
오이서는 잠시 방덕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맞는 말이지. 방덕보다는 내가 조금 더 뛰어나니까?”
자신감을 가져서 보기는 좋지만 왜인지 돌려 까는 느낌이었다.
“알았어. 방덕. 나도 나한에 도전해 보겠어! 나한이 된다면 매일같이 돌아오라는 부모님들도 더는 뭐라 하지 않겠지!”
“그래. 열심히 해봐.”
오이서는 굳세게 고개를 끄덕이며 밖으로 나갔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지금부터 열심히 수련을 하려는 모습이었다.
“흐음. 그러면 나도 밖에 나갔다 와볼까?”
진백천은 창문을 넘어 지객당으로 향했다.
자신의 대역으로 데려다 놓은 마교의 간자를 다시 한번 살펴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방 가까이 다가갈수록 들려오는 소리에 표정이 굳어졌다.
“으윽!”
묵직한 파공성에 간간이 섞인 신음은 덤이었다.
‘설마 놈이 풀려났나?’
진백천은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창문을 박살 내며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러자 바로 눈앞에 보인 것은 서로 대련 중인 황대원과 당소예였다.
마교의 간자는 여전히 의자에 꽁꽁 묶여 있었다.
“회, 회주님?”
당소예와 황대원은 화들짝 놀란 얼굴로 진백천과 창문을 번갈아 봤다.
“애꿎은 문을 두고 왜 창문을 박살 내세요?!”
“…….”
진백천은 곧 자신이 오해했음을 시인했다.
“그나저나 웬 대련?”
“계속 둘이서 저자만 지켜보고 있자니 심심해서요. 몸도 찌뿌둥하고요.”
더구나 소림사에 있다 보니 매일같이 들리는 것이 제자들의 기합 소리였다.
황대원은 그것에 자극을 받아서 계속해서 몸을 움직였다.
또한 진백천이 얼마 전 도광귀에게서 얻은 환력신공(煥力神功)은 현재 황대원의 품속에 있었다.
진백천처럼 단숨에 이해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럴 때라도 쉬지 않고 읽고 단련 중이었다.
“열심히 하니까 보기 좋네. 혹시라도 막히는 구석이 있으면 말해.”
“네. 회주님.”
진백천이 있었다면 대련이라도 하겠지만 없다 보니 당소예가 대신했다.
‘소예도 무공을 배웠으니 나쁘진 않겠지.’
하지만 막상 대련을 해보니 더 좋아한 것은 당소예였다.
지금은 먹고 쉬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둘이 대련을 하면서 보낸다고 했다.
“별다른 일은 없었지?”
“네. 찾아오는 사람들도 별로 없었어요.”
마교의 간자는 여전히 마혈이 집힌 채였다.
그는 아까 전부터 날 선 눈으로 진백천을 노려봤다.
진백천은 잠깐 몸을 두드려서 마혈을 풀어주었다.
“……네놈. 결국 정체가 들통나서…… 죽게 될…… 것이다.”
오래 마비가 되어 있어서 그런지 말하는 게 어딘가 어눌했다.
“글쎄. 3호나 다른 마교의 간자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하던데.”
놈은 진백천의 입에서 3호란 소리가 나올지 몰랐는지 흠칫 놀랐다.
“걱정 마라. 네놈이 여기 묶여 있는 것도 오래 걸리지 않을 테니까. 곧 참회동 깊숙한 곳에 처박히게 해줄게.”
“……네놈을…… 꼭…….”
투둑-
진백천은 굳이 뒷말을 듣지도 않고 바로 다시 마혈을 짚었다.
살짝 입을 벌린 채로 굳어 있는 꼴이 퍽이나 보기 흉했다.
“무슨 일 있으면 곧바로 원진 장로에게 말해.”
진백천이 떠나려 하자 당소예는 다급히 미리 준비해놨던 꾸러미를 건넸다.
“이게 뭐야?”
“회주님 고기 없으면 밥도 굶으시잖아요.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것들로 몰래 준비했어요.”
꾸러미를 풀어보니 각종 전병과 육포 같은 것들이 한가득이었다.
스윽 보아하니 원래 그녀가 가지고 있다가 진백천에게 짬처리하는 듯한 느낌이었지만 상관없었다.
“나 굶는 거 걱정하는 건 역시 소예 밖에 없네. 최고야.”
“그렇죠? 저밖에 없죠?”
“응. 조만간 끝날 테니까 조금만 더 고생해.”
진백천은 왔던 대로 다시 창문을 넘었다.
부서진 틀은 억지로 끼워 맞추니 다시 그럴듯해졌다.
갈 때와 다르게 먹을거리가 넘치니 마음이 든든했다.
‘술이라도 있었으면 더 좋을 텐데.’
이번에 얻은 모타주(茅台酒)가 있지만 이런 곳에서 함부로 마시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운 술이었다.
방으로 돌아온 진백천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다시 꾸러미를 열었다.
그러자 구석에 작은 호리병이 보였다.
뽀옹-
뚜껑을 열고 냄새를 맡는 진백천의 얼굴이 순간 환해졌다.
시큼달달한 향은 위향아가 가지고 다니던 소흥주였다.
‘역시 소예라니까. 눈치가 있어. 이번에 소림사에서 나가면 성과금이라도 거하게 줘야겠어.’
진백천은 모처럼 달달하고 씹는 맛이 있는 음식을 먹으며 술로 입가심을 했다.
“카아. 죽이네.”
소림사에 와서 뼈저리게 느끼는 거지만 먹는 게 남는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