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회귀백서 162화
57장 속가제자 방덕(4)
“소림도 계파가 나눠져요?”
“제가 알기로는 소림사는 이곳에서 창시되어서 쭉 이어졌습니다. 딱히 계파라고 생길 이유도 없지 않습니까?”
진백천은 고개를 흔들었다.
남소림사와 북소림사는 말 그대로 소림의 비사로 흘러나오는 이야기 중 하나였지만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소림사가 한번 불타 없어질 뻔한 적이 있었어.”
때는 원나라 말기였다.
홍건적들은 나라를 위협할 만큼 커다란 도적떼였고, 소림사라고 해서 그 위협대상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소림사의 승려들은 놈들이 오는 것을 알고 크게 두 파로 나뉘었다.
“목숨을 걸고서라도 소림을 지켜야 하는 쪽과 우선을 몸을 피하고 보전하자는 쪽이었지.”
웃긴 것은 몸을 피하자고 주장한 것이 당대의 장문인과 장로들이었다.
그들은 결국 합의가 되지 못하고 떠나는 자들과 남는 자들로 나뉘었다.
홍건적은 소림사에 쳐들어와 불상의 금박을 벗겨내고 값이 될 만한 것들은 전부 약탈했다.
그리고 떠나면서 큰 산불을 내서 소림을 불태우려 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소림의 승려들이 죽고 말았다.
“남소림이란 말이 생겨난 것도 그때일 거야.”
소림을 떠났던 장문인은 새로운 장소에 자리 잡고 남소림이라는 이름으로 새로 계파를 했다.
문제는 불타 없어진 줄 알았던 소림이 다시 일어서고 나서부터였다
“전화위복인 건지 홍건적에 맞서 싸웠던 자들 중에서 큰 깨달음을 얻고 큰스님이 되었어. 그들이 지금의 소림이 되는데 기틀이 되었지.”
숭산의 북소림이 무너지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남소림은 자신들이 원조라고 주장했다.
장문인과 장로들이 존재했으니까.
하지만 동료를 버려두고 소림을 도망친 이들을 장문인으로 인정할 리 없었다.
“북소림은 장문인의 신물을 새로 만들면서까지 그들을 축출하려 했어. 그만큼 그들이 느낀 배신감이 컸던 거야.”
그 신물이 지금의 소림사 장문인을 상징하는 녹옥불장(綠玉佛杖)이었다.
그 외에도 소림의 무공을 생각하면 떠올리는 역근경과 세수경, 36방 전부가 이때 만들어졌다.
“완전히 다른 문파가 되어버린 거네요? 그래도 남소림은 인정하지 않았을 텐데.”
“물론이지. 그들은 다 함께 숭산에 다시 올랐어. 버리고 떠날 때와 다르게, 아니 더 번창한 소림을 보니 욕심이 생긴 거지.”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가르치던 제자들에게 두들겨 맞으며 쫓겨났다.
그 후로 그들은 역사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아마 남소림이 다시 등장한다면 그 배분에 대해 말이 많아질 거야. 특히나 현 장문인이 갑자기 사라진 지금이라면 말이야.”
진백천의 시선이 마교의 간자로 향했다.
그제서야 그들이 어떤 것을 바라는지 알 것 같았다.
“장문인을 바꾸고, 소림의 머리를 집어삼키겠다는 작전이군.”
-……지금 안다고 해도 늦었다. 어차피 많은 것은 계획대로 흘러갔고 남은 것은 장문인의 제거뿐이야.
아마도 놈들은 장문인을 죽이려 여러 차례 시도했을 터였다.
‘팔대호원놈들 중에도 마교의 간자가 숨어 있었으니 드러나지 않은 놈들이 더 있겠지.’
숨어든 장문인에게 찾아가서까지 죽이려 하는 것을 보면 꼭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어 보였다.
“장문인이 너희들에 대한 증거라도 가지고 있나?”
-네놈은 저승에 가서도 알아내지 못할 거다.
놈의 눈동자는 흔들림조차 없었지만, 속마음은 아니었다.
“아니면 남소림이 가짜라는 증거?”
-…….
“그거였군.”
차차 머릿속에서 정리를 하자 대략적인 그림이 나왔다.
장문인은 마교놈들이 주장하려는 현재의 남소림이라는 것을 부정할 만한 증거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마교놈들은 어떻게든 그를 죽이려 드는 것이었다.
“네놈들 생각대로는 안 될 거야.”
마교의 간자는 입매를 비틀며 진백천을 비웃었다.
“오래 걸리지 않을 테니까. 나인 척 이곳에서 조용히 있어라.”
진백천은 재차 놈의 마혈을 짚어 기절시켰다.
“회주님. 혼자 움직이셔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오히려 그편이 나아. 소예와 내 호위무사인 네가 여기 있어야 놈들도 내가 여기 있다고 믿을 테니까.”
그날부터 진백천은 대외적으로 갑자기 몸이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 고된 여정의 여파가 지금 나타난 것으로 말이다.
하지만 진짜 진백천은 방덕의 얼굴로 원진 장로와 대화 중이었다.
* * *
“허허. 그놈 진짜 감쪽같구나. 그 부모가 와도 몰라보겠어.”
“신기해할 일만이 아니에요. 이자와 같은 마교의 간자가 얼마나 더 숨어 있을지 모르니까요.”
“그건 너무 걱정 마라. 계율원의 승려들을 시켜서 남소림이니 뭐니 떠들어대는 놈들에 대해 조사하라고 일렀으니까 말이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그런 소문을 퍼드리는 자들의 중심에는 마교가 있을 게 분명했다.
“그러면 회주 자네는 어떻게 하려고?”
“그 금지에 들어가는 인원에 포함되려면 나한이 되어야 한다면서요.”
“물론 그렇지.”
“그러면 나한이 되어야죠.”
원진은 순간 이해하기 어려운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네, 아니, 그러니까 방덕 그자는 27방에 머무는 속가제자야. 그자가 나한이 되려면 36방을 통과해야 할뿐더러, 나한전에 들어가야 돼. 보통은 몇 년이 걸려도 힘든 일이야. 그건 알고 있는 거지?”
더구나 나한전은 실력이 좋다고 해서 무작정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적어도 장로급 이상의 스승이 있어야 하고 18 나한들에게조차 인정을 받아야 했다.
“장로급 이상의 스승은 원진 장로님이 있으니 문제없고. 나한들의 인정이라면 더 쉽죠. 같은 간자가 들어온다는데 놈들이 마다할까요?”
원진은 그제야 진백천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탄성이 절로 나왔다.
그는 애초부터 마교의 같은 간자마저 이용해서 지금의 계획을 짜낸 것이다.
“무섭군. 회주의 심모원려(深謀遠慮)함은 가히 강호제일일 거다!”
진백천은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선 빠르게 36방부터 통과하겠습니다.”
“그래. 목인항(木人巷)도 통과해. 완전히 박살 내면 더 좋고.”
화려하면 화려할수록 원진이 그를 제자로 삼는 데 도움이 되었다.
진백천은 속가제자들이 머무는 숙소로 향했다.
방덕의 얼굴로 돌아다니는 게 어색했지만, 표정에서 딱히 드러나지는 않았다.
“어어. 방덕. 얼굴은 괜찮아?”
“응. 문제없어.”
“다행이네. 아무것도 안 먹었지? 내가 이거 챙겨놨어.”
방덕과 함께 다니는 단짝으로 보이는 녀석이 커다란 주먹밥을 건넸다.
‘오이서라고 했던가?’
원래의 방덕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무가의 자제였다.
“고마워.”
“고맙긴. 그나저나 정도회 회주라는 그자는 왜 그렇게 세게 던진 거야? 분명 일부러 그런 거 맞지?”
진백천은 주먹밥을 씹으면서 대충 어깨를 으쓱였다.
“아무리 그래도 소림의 제자인데 말이야. 속가제자라고 무시하는 건가? 기생오라비같이 생겨서는.”
“크흠. 뭐. 이유가 있었겠지.”
진백천은 주먹을 씹어먹다가 물컹 씹히는 것을 발견했다.
주먹밥 안에는 삶은 계란이 숨겨져 있었다.
“내가 특별히 말해서 넣은 거니까 먹고 힘내라고.”
“……고맙다.”
이 고마움은 진심이었다.
오이서는 고맙다고 말하는 방덕을 어딘지 모르게 뿌듯하게 쳐다봤다.
“다행이야.”
“뭐가?”
“아니, 요즘 들어서 네가 갑자기 이상하게 변한 거 같았거든. 유난히 날카롭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오늘 보니까 전처럼 돌아와서 다행이다.”
오이서는 어깨를 툭툭치고는 자신의 침상으로 올라갔다.
“아참. 회주 때문에 그런지 내일부터는 더 힘들게 수련할 거니까 각오하래. 그러니까 오늘은 푹 자.”
“그래.”
진백천은 주먹밥을 남김없이 먹고 침상에 누웠다.
겨우 몸 하나 뉠 수 있는 작은 침상이었다.
오이서의 말대로 잠깐 눈을 붙이려고 하는데 어디선가 날카로운 기척이 전해졌다.
-13호. 밖으로 나와라. 조장의 호출이다.
전음을 전한 자는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어디론가 빠르게 이동했다.
진백천은 재빨리 그 뒤를 따라 움직였다.
몇 개의 전각을 뛰어넘어 도착한 곳은 의외의 장소였다.
‘참회동(懺悔洞)?’
참회동은 소림사 북쪽 절벽에 있는 수많은 암굴을 통틀어 지칭하는 말이었다.
지하 깊숙한 햇빛이 들지 않는 곳은 천하를 어지럽히는 마두나 계율을 어긴 승려들을 가두었고, 지상은 전혀 다른 용도로 사용되었다.
소림의 은퇴한 원로들이 불법을 되새기며 참선을 통해 입적을 준비했다.
원로들은 또 다른 참회동의 간수이자 수련자인 셈이었다.
‘이런 곳에 쥐굴을 파놨다 이거지?’
마교의 간자들은 곳곳에서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검은 천으로 얼굴을 가린 상태였다.
-멍청한! 13. 얼굴 가려라.
진백천은 앞서던 자의 말을 듣고 얼굴을 가렸다.
그들은 같은 간자들 사이에서도 신원을 속였다.
마인들은 별다른 말없이 참회동 가장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촛불 여러 개만이 비추는 장소에 도달하자 가부좌를 틀고 있는 자가 보였다.
그가 바로 조장이라고 불린 자였다.
“모두 모였군. 빠르게 시작하지.”
간자의 수는 조장이라 불린 자까지 해서 전부 13명이었다.
진백천은 이곳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상단전을 열어 그들의 속마음에 집중했다.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진백천을 이곳까지 안내한 자였다.
“나한전에서 슬슬 가닥을 잡고 있습니다. 곧 있으면 본격적으로 금지에 들어가자는 주장이 터져 나올 것입니다.”
“계율원과 원진은?”
조장의 질문에 다른 자가 대답했다.
“분위기가 오묘합니다. 간자를 찾는 것에 집중하다 현재는 남소림과 북소림에 대해 떠드는 자들을 조사하라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지금 대답하는 자는 아무래도 계율원에 속한 자인 듯싶었다.
‘흐음. 대충 짐작하기는 했지만 역시나 그곳에도 간자는 있었군.’
“아마도 진백천이 냄새를 맡은 게 분명하다. 그를 만나본 느낌은 어떻지?”
조장의 시선이 진백천에게로 향했다.
“어린 만큼 괜한 치기가 넘쳐 보였습니다.”
“또?”
“……기생오라비 같이 생겨서 그런지 날카롭게 살피는 듯했습니다.”
스스로를 기생오라비라 부르니 기분이 오묘했다.
하지만 그 말 덕분에 다른 마교의 간자들이 피식거리며 진백천을 비웃었다.
“계율원에 흘러 넣었으니 13을 살피려 드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증거는 없으니 당당하게 움직여라. 남은 이들은 전부 진백천에게서 눈을 떼지 말고.”
“존명(尊命)”
보고는 빠르게 이어졌다.
채 1각이 지나기 전에 모두가 할 말을 끝마쳤다.
대부분 진백천이 짐작하고 특별한 것이 없는 이야기뿐이었다.
“이제 곧 소림이 뒤집힐 것이다. 참회동에 있는 죄수들과 남소림을 믿는 자들이 우리를 따르기로 했으니 장문인만 제거하면 된다. 여기에 의견이 있는 자가 있는가?”
‘참회동의 죄수들이 따른다?’
그 말에 진백천은 조장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참회동을 관리하는 원로거나 그에 준하는 위치에 있는 자일 터였다.
“현재 나한전에 속한 이들이 부족합니다. 몇 명 더 회유가 필요합니다.”
“금지에 들어가게 될 이들은 나한 30명이 될 것이다. 실력으로 뽑힐 것이기에 그들의 목록은 대동소이하겠지.”
정체를 극도로 감추는 이들이기에 나서서 나한들을 포섭하기는 어려웠다.
조금의 욕심을 부리다 집이 통째로 불탈지도 몰랐다.
“나한들 중 하나를 죽여서 위장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불가(不可). 상대는 다름 아닌 나한이다. 죽이는 게 힘든 것은 물론이고 위장하는 것 또한 힘들다.”
거기에 모두 특별한 대안이 없는 듯 침묵이 이어졌다.
그때 진백천이 침묵을 깨고 말했다.
“제가 나한전에 들어가겠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