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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회귀백서-160화 (160/346)

무림회귀백서 160화

57장 속가제자 방덕(2)

원진은 지객당 중 사람이 없는 곳으로 진백천을 불렀다.

조용히 단둘이 대화를 할 수 있을 만한 공간이었다.

“생각보다 상황이 좋지 않은가 봐요?”

굳은 원진의 표정을 보며 진백천이 떠보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황궁의 일이 있고 나서 계율원의 승려들과 함께 간자 색출에 힘을 썼다. 그러자 놀랍게도 일대제자와 나한들을 포함해서 5명의 간자들이 발견되었어.”

원진의 입장에서 놀라운 것이지 진백천의 입장에서는 생각보다 적은 수였다.

지금의 마교는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여기저기 간자를 뿌려놓은 상태였다.

“심문은 해보셨고요?”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어서 못 하는 중이다. 하나같이 이곳에서 한솥밥 먹던 이들이고 괜히 나섰다가는 나한들 사이에서 분열이 될지도 모르니까.”

원진의 생각은 정확했다.

마교의 간자들은 발각 이후의 일도 전부 미리 준비해 놓았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역으로 간자로 몰거나 서로를 이간질해서 분열시키는 것이었다.

‘위계가 엄격한 소림에서 눈에 띄는 분열은 어렵겠지만 한동안 시끄럽겠지.’

“그래서 말인데 회주가 나를, 아니 소림을 도와줄 수 없겠나?”

“어떻게요?”

“황궁에서 보여줬던 회주의 활약처럼 소림에서 이 마교의 간자놈들을 밝혀내고 박멸해 주게.”

진백천은 잠시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잠깐 들린 만큼 황궁에서처럼 시간을 소비할 수 없었다.

정도회로 돌아갈 시간을 생각하면 기껏해 봐야 일주야가 한계였다.

“황궁에서와 다르게 놈들은 저를 경계할 거예요. 그 틈을 파고드는 데 시간도 오래 걸릴 테고요.”

완곡한 거절표현에 원진의 얼굴이 실망으로 물들었다.

“그나저나 장문인의 일은 어떻게 되셨어요? 아직까지 모습을 보이지 않으시던데.”

“아직 금지(禁地)에 계시지. 그 흔한 종소리 한번 내지 않으시니 소림 내에서도 슬슬 들어가 봐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분위기다.”

아무리 금지라고 해도 안에서 소식을 전할 수 있는 끈이 있었다.

그곳의 끈을 잡아당기면 위쪽에 연결된 종이 울렸다.

워낙 폐관수련을 많이 하는 소림사였기에 이런 것들이 많이 존재했다.

“문제는 금지에 들어가기로 거론되는 자 중에 마교의 간자들이 포함되었어. 그들이 혹시라도 그 안에서 흉계라도 꾸민다면 더 큰 위험이 생길지도 모르지.”

금지 안에는 금강동인(金鋼動人)으로 만든 금강십팔나한진(金鋼十八羅漢陣)이 존재했다.

그들을 뚫기 위해서는 소림 내에서도 최강이라 불리는 나한들이 나서야 했다.

그런 이들을 막아섰다가는 원진의 의도와 다르게 장문인을 구하지 않으려는 것처럼 내비칠 수도 있었다.

진백천은 원진이 왜 이렇게까지 부탁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흐음. 이래저래 복잡한 상황이군.’

“황궁에서처럼 그들을 완전히 축출하지 못해도 좋아. 그냥 꼬리만 잡아주면 돼. 꼬리만!”

그렇게까지 말하는 원진의 얼굴이 붉어졌다.

외부인인 진백천에게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는 것은 곧 소림의 계율원이 부족함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혹시 금지로 들어가는 일행에 외부인도 참여 가능해요?”

원진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곳은 소림의 역사나 다름없었다.

진백천이 아무리 정도회의 회주라고 하나 외부인인 그에게 그곳을 공개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떠나 버리면 찜찜하겠지. 금강동인이 궁금하기도 하고.’

“우선 간자로 의심되는 자들의 명단부터 주세요. 제가 살펴볼게요.”

“회주! 역시 도와줄 줄 알았다! 황궁에서 쌓은 우리의 우정을 잊지 않았음이야!”

딱히 우정이라고 할 것도 없지만 진백천은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곧 그는 자신이 간자라고 생각되는 인원을 적은 명단을 그에게 건넸다.

장로 1명, 나한 3명. 속가제자 1명이었다.

“장로도 껴 있어요?”

“호법원의 장로다. 평소 존재감은 없지만 팔대호원(八大護院) 중 하나인 일연과 관계가 있던 자이지. 이 자도 틈틈이 마교와 연락하는 것 같지만 물증은 없다.”

황궁의 일이 터지기 직전이었다면 쉽게 증거를 찾아낼 테지만 지금은 전부 몸을 움츠린 상태였다.

‘이 중에서 가장 보기 쉬운 건 속가제자인가?’

[속가제자 방덕.]

[지방 무관의 관장 아들이며 아버지를 따라 소림사의 속가제자가 되었음. 속가제자 중에서는 제법 실력을 드러내는 중이며 주변의 인물들도 그를 잘 따름. 현재 36방 중 27방에서 수련 중.]

“27방이면 꽤나 실력이 있네요?”

“그렇지. 아무래도 눈치를 보면서 서서히 올라가는 중인 것 같다.”

“흐음. 이자를 가장 먼저 살펴볼게요.”

“그러면 오후에 36방을 견학시켜주마.”

진백천은 원진과의 짧은 대화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갔다.

아무래도 소림에 있는 동안 바쁘게 움직일 것 같았다.

‘그래도 나쁘지 않아. 살면서 소림을 언제 이렇게 둘러보겠어.’

하지만 그런 생각도 곧 식사시간이 되자 반대로 바뀌었다.

지객당의 식당은 소림사에 맞게 무척이나 정갈하고 깨끗했다.

문제는 음식마저도 깨끗했다.

“이게…… 다 뭡니까?”

“하하. 회주께서 오신다고 해서 특별히 준비한 것입니다.”

‘특별히’란 말에 진백천이 자신의 그릇을 내려다봤다.

둥근 사발에는 쌀밥 한 덩이에 이름 모를 야채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고 그 옆에 말린 두부채가 전부였다.

‘술 정도는 바라지도 않아. 적어도 고기 정도는…….’

그때 진백천의 마음을 읽은 것처럼 옆에서 위향아가 지객당의 승려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고기는요?”

“시주께서 농담도 잘하시는군요. 살생을 금하는 소림에 고기가 왜 있겠습니까.”

“닭이나 돼지가 없으면 새라도…….”

“쓰으읍.”

지객당의 승려는 말 같지도 말은 하지 말라는 듯 가볍게 혓소리를 내며 돌아섰다.

“고기는 없어도 대신 맛있는 두부는 많으니 사양치 말고 드셔도 됩니다.”

진백천의 일행은 나무 숟가락으로 조금씩 밥을 덜어 먹었다.

간이라도 제대로 되어 있으면 모르겠으나, 소금도 최소한으로 사용했다.

당소예는 씁쓸한 엉겅퀴를 으적거리며 씹다가 몰래 뱉어냈다.

“으윽. 퉤퉤!”

그리고 조심스레 진백천에게 물었다.

“회주님 이게 맞는 거예요? 혹시 저희가 기부금을 적게 내서 이러는 거 아닐까요?”

“아니야. 이게 맞을 거야. 적어도 지객당에서는 더 육식을 금할걸?”

무예를 익히는 무승들은 간혹가다 고기를 먹기도 한다고 했지만 전부 계율원의 시선을 피해서였다.

외부인이 머무는 지객당 같은 경우는 철저히 채식을 지켰다.

진백천은 결국 먹던 그릇을 내려놓았다.

“소예야. 혹시 전에 먹던 육포 있어?”

“아. 맞다! 있어요!”

당소예는 품속에서 커다란 육포 두 덩이를 꺼냈다.

그리고 마치 보물이라도 되는 듯이 잘게 찢어서 진백천과 황대원에게 나눠줬다.

짭짤한 소금 맛이 혀에 퍼지자 죽어 있던 미각이 되살아나는 기분이었다.

오죽하면 평소에는 질겨서 잘 먹지 않던 육포가 최고의 음식처럼 느껴졌다.

“소림에서의 생활이 왠지 고달플 것 같아요.”

“당 소저. 살 빼고 간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나쁘지만도…… 으윽!”

당소예는 황대원의 입에 찢은 육포를 쑤셔 넣었다.

황대원은 눈치도 없이 고맙다며 육포를 씹어먹었다.

탐탁지 않은 식사를 마치고 일행은 원진 장로의 안내를 받아 소림사를 둘러보았다.

가장 먼저 들린 곳은 방문객들이 꼭 찾는다는 자벌당(自罰堂)이었다.

그곳은 둥근 원형의 공간이었는데 다양한 모습의 여래가 벽면에 새겨져 있었다.

식사를 마친 오후라 그런지 그곳을 찾은 방문객들로 무척이나 북적였다.

“이름이 자벌당이라니 신기하네요. 스스로 벌을 준다는 뜻이잖아요?”

“맞아. 이들은 전부 스스로를 벌주기 위해 모인 거야.”

진백천의 말에 당소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스스로 칭찬을 해주지는 못할망정 벌을 준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벌보다는 참회랄까? 이곳에서 기도하면 밖에서 저지른 모든 죄를 용서받을 거라 생각하는 거지. 저들의 옷차림을 봐.”

무릎을 꿇고 참회하고 있지만 옷차림은 하나같이 고급비단에 장신구들도 무척이나 값비싼 것들이었다.

이곳을 찾는 이들은 대부분 돈으로 마음의 죄를 내려놓을 값을 치를 수 있는 자들이었다.

“저들은 마음에 안식을 얻고 소림사에서는 돈을 벌 수 있으니 일석이조지.”

진백천의 적나라한 말에 안내를 하던 원진이 헛기침을 했다.

“크흠. 소림도 결국 사람 사는 곳이니까.”

불법으로는 머리를 채워도 배를 채우지는 못하는 법이었다.

자벌당은 나서고 다음으로 들린 곳은 36방이었다.

그곳에서 들려오는 기합 소리만으로도 바닥에 깔린 돌이 잘게 울렸다.

“세상에. 이곳이 전부 수련장소에요?”

“과연 명불허전이군!”

위향아와 이소한이 경악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각방의 크기는 웬만한 연무장 정도 되었다.

아쉬운 것은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게 되어 있어서 정확한 훈련 모습을 알 수 없었다.

원진 장로는 미리 말해둔 듯 진백천에게 눈짓을 보내며 27(二七)이라고 적힌 곳으로 들어섰다.

그곳에는 대략 20명 정도의 속가제자들이 소림칠십이예(少林七十二藝) 중 철대공(鐵袋功)을 수련 중이었다.

철대공이란 말 그대로 두 사람이 마주 서서 철 가루를 가득 채운 포대를 주고받는 것이었다.

27방까지 온 이들은 이미 상당수 몸을 단련한 자들이기 때문에 별 어려움을 있어 보이지 않았다.

“오늘은 특별히 정도회의 회주님께서 소림사의 36방을 찾아주셨다. 모두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수련을 하도록 하라.”

“네. 장로님!”

힘찬 대답과 달리 속가제자들은 힐끔거리는 눈으로 진백천을 살폈다.

그중에는 시기심을 비롯해 경애감, 그리고 적대감도 흘러넘쳤다.

진백천은 상단전을 열며 적대감이 느껴지는 자에게 귀를 기울였다.

-……저자가 왜 소림에 온 거지? 설마 방주와 관련된 일 때문인가?

진백천이 원진을 쳐다보자 그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크흠. 이렇게까지 왔는데 그냥 지나칠 순 없지. 회주도 소림의 철대공 수련에 관심이 많은 듯 보이니 한번 해보는 것도 좋을 거야. 속가제자 방덕. 한번 나와서 시범을 보여 보거라.”

“……네. 장로님!”

대답을 하고 나오는 것은 역시나 진백천에게 적의를 비치던 자였다.

코 옆에 커다란 점이 있어서 방덕이라는 이름이 잘 어울렸다.

-……사사건건 우리의 일을 망치는 놈에게 망신을 주는 것도 좋겠지.

그는 속마음과 다르게 공손히 포권을 하며 철 주머니를 들어 올렸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그는 일부로 보이듯이 철 주머니를 살살 던졌다.

그렇다고 해도 20근(12kg) 가까이 되는 무게에 힘이 실리자 제법 묵직했다.

진백천이 받고 조금 더 힘을 줘서 도로 던졌다.

능숙하게 받은 방덕이 원진과 진백천을 향해 물었다.

“조금 더 세게 해도 괜찮겠습니까?”

“그래.”

진백천이 대답하기 전에 방덕은 이미 철 주머니에 내력을 쏟아붓는 중이었다.

-한번 당해봐라!

그리고 온 힘을 다해 진백천에게 내던졌다.

후우우욱-

만약 모르고 받았다면 뒤로 밀려나거나 심하면 뼈가 부러질지도 모를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미 눈치를 채고 있던 진백천은 부드럽게 내력을 흩뜨리며 철 주머니를 받아냈다.

-……받아냈어?

“이번에는 내 차례군.”

방덕이 의아함을 느낄 새도 없이 다시 철 주머니를 던졌다.

진백천은 인상을 찌푸리며 손을 뻗는 그를 향해 씨익 웃어주었다.

호무살(虎武殺).

진백천의 심상에서 만들어진 뭉툭한 망치가 방덕을 향해 뻗어갔다.

“허억!”

방덕은 순간 몸이 굳으며 움직이지 못했다.

퍼억!

철 주머니는 그대로 그의 얼굴을 가격하고 떨어졌다.

“방덕! 뭐하는 거냐!”

“……그, 그게…….”

방덕은 뭐라 말하려다가 축축한 느낌에 얼굴을 더듬거렸다.

손가락에 묻어난 것은 진득한 코피였다.

“……죄송합니다!”

방덕은 자신을 비웃는 시선을 느끼며 그대로 연무장에서 벗어났다.

원진은 그 뒷모습을 보며 혀를 차며 진백천을 쳐다봤다.

“회주. 미안하군. 못난 모습을 보였어.”

-간자가 맞느냐?

그와 동시에 전음으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백천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쯧. 내가 틀리길 바랐는데.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냐?

-글쎄요.

의뭉스러운 전음과 달리 진백천은 가볍게 웃으며 재밌는 생각을 떠올렸다.

잘 만하면 소림사의 금지에 들어가 볼 수 있으면서 마교의 간자를 전부 축출해 낼 수도 있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이 방법을 쓰려면 원진 장로의 허락이 있어야 했다.

진백천은 자신의 생각을 원진에게 말했다.

그러자 원진은 잠시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곧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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