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회귀백서 159화
57장 속가제자 방덕(1)
그 시간 진백천은 배 위에서 호무살을 연습 중이었다.
평소 상단전을 밥 먹듯이 열었더니 살을 날리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만약 도광귀가 봤다면 말도 안 된다고 탄식을 내뱉을 모습이었다.
‘대충 어떤 느낌인지는 알겠어. 화산신검 어르신의 심검과 비슷하면서 달라.’
진백천은 상상으로 비수를 떠올렸다.
그 어떤 것도 뚫어버릴 만큼 날카로운 것이었다.
그리고 목표는 바로 숲속에서 날아오르는 비둘기였다.
호무살(虎武殺).
진백천의 날카로운 눈짓에 맞춰 비둘기는 뚝- 하고 세찬 날갯짓을 멈추고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낚아챈 비둘기는 더는 심장이 뛰지 않았다.
‘이제 비둘기 정도는 쉽게 죽일 수 있어.’
특이한 것은 죽은 비둘기의 사체에는 상처하나 남지 않았다는 점.
내력을 사용해 비둘기를 죽이는 것은 무척이나 간단했지만 정신력만으로 이렇게 목숨을 끊는 건 쉽지 않았다.
‘실전에서 잘만 사용하면 비장의 한 수가 될 수도 있겠어.’
호무살은 평범한 공격과 다르게 강한 외공과 내력으로는 막을 수 없었다.
상대가 똑같이 상단전을 훈련하는 자거나 심력이 강한 자가 아니면 그 어떤 공격보다 치명적일 터였다.
진백천은 전서구 다리에 묶인 끈을 풀어 쪽지를 열었다.
[정도회 회주 진백천 숭산으로 이동 중.]
계속해서 진백천을 쫓아오는 자들의 보고 내용이었다.
대부분은 그의 이동 경로에 관한 것들이었지만 나중에는 전서구 좀 그만 좀 죽이라는 쪽지도 적혀 있었다.
전서구 한 마리를 훈련시키는 데 꽤나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이었다.
‘흐음. 그렇다면 죽이지 않고 기절시켜볼까?’
도광귀는 노루를 죽이는 모습만 보여줬지만 진백천은 거기서 멈추고 싶지 않았다.
호무살의 위력을 조절할 수 있으면 훨씬 효과적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백천은 그 이후부터 물고기와 전서구들을 향해 호무살을 연습했다.
그리고 숭산에 도착할 때쯤에는 자유자재로 죽이고 기절시키기를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마음가짐에 따라 달라져.’
그가 죽이겠다는 마음을 먹는 것과 기절시키겠다는 마음에 달려 있었다.
더 심력을 쏟아붓거나 하는 것과는 상관없었다.
이것을 쉽게 구분하기 위해서 진백천은 심상 속의 무기를 다르게 상상했다.
‘한없이 날카로운 비수와 뭉툭한 망치.’
비수는 상대를 죽이기 위한 것이고 망치는 단지 기절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진백천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동시에 두 마리에게 사용해 볼까?’
그때 물가에서 떠오르는 물고기 두 마리가 뛰어올랐다.
진백천은 심상에서 만들어낸 비수 하나와 망치 하나를 동시에 두 마리에게 쏘아냈다.
호무살(虎武殺).
“허억!”
하지만 진백천은 그 결과를 확인하기도 전에 풀썩하고 자리에 쓰러졌다.
하루 종일 소모한 심력의 여파가 한순간에 몰려온 것이다.
“……회주님!”
갑자기 기절한 그로 인해 배는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진백천은 꼬박 하루를 자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회주님 괜찮으십니까?”
“괜찮아. 그동안 조금 무리를 했나 봐.”
황대원과 당소예는 걱정스러운 눈치로 진백천 옆에 꼭 붙어 있었다.
“지금이라도 정도회로 돌아가심이 어떠십니까?”
“정말 괜찮다니까. 단지 심력이 조금 소모되어서 그래.”
호무살을 사용할 때 소모되는 심력은 눈으로 직접 보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한번 한계에 다다를 때까지는 그 총량을 알 수 없었다.
진백천은 이번에 자신의 심력의 총량을 짐작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이곳이 숭산입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배는 숭산에 도착했다.
일행을 가장 먼저 맞이한 것은 저 멀리까지 보이는 굽이굽이 친 산맥이었다.
하나같이 혀를 내두르며 감탄했다.
무려 72개의 봉우리가 이어진 산맥은 오랜 지각변동으로 생성된 자연환경이었다.
소림사(少林寺)는 이러한 산맥 중 소실봉(少室峰)에 위치했다.
소림사라는 이름도 ‘소실봉 숲에 있는 절’이라는 뜻에서 지어진 것이었다.
당소예는 그 굽이친 산맥을 보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불길한 얼굴로 진백천을 쳐다봤다.
“설마 여기서 또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건 아니죠?”
“맞아. 그래도 화산파보다는 완만할 거야.”
“으윽.”
황대원은 눈치 없이 살 뺀다고 생각하라고 한마디 했다가 당소예의 날카로운 눈길을 온종일 받아야 했다.
소림사에 오르는 것은 진백천의 일행과 더불어 위향아와 팽지약, 이소한뿐이었다.
다른 녹림이나 장강의 무인들은 배에 남아 있기로 했다.
‘산적과 수적인 그들이 괜히 소림에 방문했다가 무슨 소리를 들을지 모르니까.’
그리고 그런 결정에는 진백천도 한몫했다.
도광귀를 상대로 보인 그의 모습은 위향아와 팽지약의 안전을 확신할 만큼 압도적이었다.
“그러면 올라가시죠.”
이소한은 며칠 전보다 훨씬 밝아진 얼굴로 걸어나갔다.
도광귀의 정혼자를 찍어주는 그 말 이후로 팽지약과 위향아의 태도가 달라졌다.
이소한을 그녀의 짝으로 충분히 인정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자연스레 둘은 부쩍 친해졌다.
“곧 장강수로채에서 좋은 소식이 들려오겠는데요?”
“그러게.”
일행은 소실봉 가장 가까운 곳까지는 마차를 타고 이동했다.
그 후부터는 마차로 올라갈 수 없기에 천천히 걸어 올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팽지약이 있어서 걱정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어려움 없이 산을 올랐다.
“가파르지 않아서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데요?”
“절을 찾는 사람들 때문에 소림사에서 길을 잘 만들어둬서 그래.”
진백천의 말대로 첫 번째 소실봉 중턱까지는 가볍게 운동하는 느낌이었다.
그때까지는 진백천의 일행을 제외하고도 괘나 많은 방문객이 보였다.
그들이 일차적으로 찾는 곳은 본산이 아닌 중턱에 있는 참불당(讒佛堂)이었다.
원래는 없던 장소였지만 본산을 찾기 어려운 자들을 배려해 특별히 만든 곳이었다.
‘말이 배려지. 결국 이곳에 시주하고 이름 남기라는 뜻이겠지.’
어마어마한 규모만큼이나 소림사는 속가제자들이 많았다.
그들은 정기적으로 시주라는 형태로 기부금을 납입해 왔다.
그러한 돈들이 바로 소림사를 유지하는 기둥 중 하나였다.
진백천이 참불당을 들어서자 그곳에 있던 늙은 중이 그를 맞이했다.
“회주. 이렇게 뵈니 참으로 반갑습니다. 원진 장로가 말하던 것과 똑같이 헌양하십니다. 저는 참불당을 관리하는 원상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보름달 같은 얼굴에는 순수해 보이는 미소가 걸쳐 있었다.
보고 있으면 절로 부처님이 떠오르는 인상이었다.
하지만 그의 속마음을 듣고 있는 진백천은 딱히 그에게 호감이 가지 않았다.
-크흠! 정도회 회주 정도가 되면 얼마나 기부하는지 볼까?
그는 알게 모르게 복전함 앞에 서서 그들이 기부하기를 기다렸다.
진백천은 왠지 억지로 기부하는 듯한 느낌이지만 금자 하나를 꺼내 안으로 집어넣었다.
누런빛을 확인한 원상의 얼굴에 맺힌 미소가 더욱 환해졌다.
“회주의 앞길에 부처님의 미소가 함께할 겁니다.”
‘부처의 미소는 무슨.’
진백천은 속마음을 숨긴 채 마주 합장하며 참불당을 지나쳐갔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산행의 시작이었다.
* * *
산행은 애초에 생각했던 것보다 나쁘지 않았다.
우선 화산파와 다르게 급하게 움직이지도 않았고, 가는 중간중간 충분히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올라가는 내내 전서구를 붙잡는 재미도 있었다.
태산북두 소림사답게 이곳에 눈을 둔 자들은 한둘이 아니었다.
모두 방문객이거나 약초꾼들처럼 위장했지만, 모습을 감추면서 몰래 전서구들을 날려댔다.
진백천은 전서구가 보일 때마다 호무살을 이용해 모두 기절시켜 버렸다.
투욱-
‘이건 또 뭐라고 적혀 있나 볼까?’
비둘기 다리에 묵혀 있던 서신을 펴자 전의 것과 비슷한 것이 적혀 있었다.
[진백천 소림사 방문, 그 일행으로는 황대원, 당소예와 이외의 인물인 위향아, 팽지약이 함께임.]
밑에 적힌 문양을 보니 의외로 사패천의 전서구였다.
‘나한테 참으로 관심이 많네.’
진백천은 서신을 찢어버리고 비둘기만 날려 보냈다.
몇 번 이런 식으로 비둘기를 잡아 서신만 쏙 빼내니 날아오르는 전서구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그렇게 소일거리를 하며 올라가다 보니 숨이 가빠지기 전에 또 다른 기둥이 보였다.
마침내 소림의 정문에 도달한 것이다.
정문에는 이미 소식이 전해졌는지 진백천을 마중하는 자들이 나와 있었다.
황궁에서 봤던 원진 장로였다.
“하하하하! 회주! 잘 지냈는가?! 듣기로는 그 이후에도 제법 사건을 일으키고 다닌 모양이더만!”
“저야 항상 똑같죠, 뭐. 원진 장로님은 잘 지내셨죠? 그때보다는 훨씬 얼굴이 펴지신 것 같아요.”
원진은 장문인을 지키던 팔대호원(八大護院) 중 하나였던 일연이 마교의 간자였음을 알고 꽤나 충격을 입었었다.
소림에 돌아오고 나서도 한동안 그것에 대해 잊기 위해 노력해야 했을 정도였다.
“소림의 품으로 돌아오니 굳은살처럼 베겨 있던 마음이 풀어지더군! 그나저나 이분들은?”
“위향아 소저와 그녀의 어머니이십니다.”
진백천은 최대한 조심스럽게 그녀를 소개했다.
혹시라도 소림에서 수적과 녹림과 연관이 있는 이들을 싫어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미 이들에 대한 소식을 전해 들었는지 원진은 가볍게 합장하며 그들을 반겼다.
“소림에 오신 것을 환영하네. 그럼 안으로 들어가지!”
진백천은 원진과 함께 정문을 통과했다.
소림이 가지는 이름에 비해 다소 작은 기둥과 정문이라는 생각도 잠시 그곳을 지나자마자 확 트인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마치 좁은 입구를 지나자 대궐이 나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놀랐나? 하하하! 소림사 안에서는 혼자 돌아다니지 말게. 길을 잃을 수도 있으니까!”
원진은 장난처럼 이야기했지만, 그것이 농담만은 아니라고 느껴졌다.
소림은 다른 문파와 다르게 그 제자들의 규모부터가 달랐다.
속가의 제자들을 다 합치면 만 명 가까이 될 정도니 자연스레 소림사 크기도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위계를 유난히 강조하는 탓에 가장 위쪽에 있는 장문인실부터 승려들의 기강을 다스리는 계율원, 수많은 손님을 맞는 지객당만 해도 이미 웬만한 문파만 했다.
거기에 수천 권의 경서와 비급을 모아두는 장격각, 계율을 어긴 승려를 가두는 참회동도 있으니 가히 작은 성이라 불려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보다도 소림이 유명한 건 따로 있지.’
진백천 뿐만 아니라 일행들의 시선이 묵직한 기합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향했다.
바로 소림의 무예를 익히는 36방이었다.
모두가 관심을 보이자 원진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36방이 궁금한가? 그러면 나중에 한번 훈련에 참가해 보게.”
“외부인도 참여할 수 있어요?”
“물론이지. 나한들이 수련을 하는 나한전과 달마원을 제외한 36방은 원래 속가제자들을 위해 만든 곳이야.”
처음에는 지금과 다르게 말 그대로 36개의 방이 줄지어 세워진 장소였다.
각 방마다 익혀야 할 무공이 있었고 그것을 익히지 못하면 다음 방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36방까지 전부 통과하면 정식으로 소림사의 제자가 될 수 있지. 2대 제자들은 의무적으로 통과해야 해.”
보통의 속가제자들은 36방 중 18방에서 멈춘다고 했다.
“회주 정도라면 36방 정도는 쉽게 통과할 수 있겠지?”
“글쎄요. 저는 장경각이 더 궁금한데요?”
“크흠! 고리타분은 책 따위가 뭐가 보고 싶다고. 거긴 볼 것도 없네!”
원진 장로의 말에 함께 안내하던 승려들이 힐끔거렸다.
만약 장경각을 관리하는 무승(文僧)들이 들었다면 한동안 귀찮게 굴 말이었다.
“36방의 마지막에는 목인항(木人巷)이라는 것이 있지.”
목인항은 36방의 모든 무예를 익힌 자만이 통과할 수 있는 자격시험이었다.
그 안에는 108개의 나무 인형이 있는데 사람이 들어서면 기관진식이 가동되며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목인항이라면 폐쇄되었다고 들었는데요?”
“회주는 소림사의 내부 사정에 대해서도 잘 아나 보군!”
진백천의 말대로 목인항은 나무로 만들어졌기에 그 내구성이 오래가지 못했다.
기관진식을 유지하기 위한 단단한 나무를 구하는 것도 꽤나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리고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기에 도전한 이들이 뼈가 부러지거나 반병신이 되어 나오는 것이 허다했다.
그런 이유로 한동안 폐쇄되었지만 이번에 새로 가동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특별히 자격이 있는 자들만 도전할 수 있도록 기준을 바꿨지. 나한들에게는 이미 시험 운영을 해봤지만 딱히 문제는 없었어. 자네도 시간이 나면 한번 해보는 게 어떤가? 많은 도움이 될 거야.”
“네. 시간 봐서 해볼게요.”
“흐흐. 나무 인형이라고 우습게 보지 말게. 나한들도 뼈가 부러진 자가 수두룩하니까.”
진백천은 어깨를 으쓱이는 것으로 대답했다.
그들은 곧 손님이 머무는 지객당에 도착했다.
잠시 여독을 풀 동안 진백천은 원진 장로를 따로 만났다.
그는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아도 서둘러 장문인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함이 느껴졌다.
‘바로 장문인실로 가지 않는 것을 보면 해결되지 않은 모양이야.’
그런 진백천의 예상은 정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