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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회귀백서-158화 (158/346)

무림회귀백서 158화

56장 도광귀와 십이용천공(十二龍天功)(5)

공청석유(空淸石乳)는 동굴 깊숙한 곳에서만 발견되었다.

우윳빛의 이 액체는 특정 기운이 모이는 곳에서만 생성되는데, 한 방울이 만들어지는 데 백 년이 걸릴 만큼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

“공청석유라고? 그럴 리 없다! 내가 봤을 때는 분명히 평범한 단약이었거늘……!”

도광귀가 눈살을 찌푸리며 도자기병을 쳐다봤다.

끈적이는 액체는 공청석유가 맞았다.

하지만 진백천이 알고 있는 평범한 것과는 어딘가 기운이 달랐다.

“아무래도 이건 집성의가(輯成醫家)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공청석유인가 보군.”

“공청석유라면 희대의 영약인데 그럴 수 있습니까?”

집성의가는 자신의 의술을 모두에게 공개할 만큼 진취적이고 새로운 것을 실험하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그러한 새로운 실험 중에는 진백천이 관심을 가질 만한 특이한 것들이 많았다.

평범한 약재를 모아 상성을 이용해 영단을 만들거나 평범한 동물을 영물로 만들어내는 등 그 궤를 달리하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바로 인위적으로 자연적인 영약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자연적인 영약을 만들어낸다니? 그게 가능하기나 한 건가?”

도광귀가 말이 안 된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지금 공청석유가 눈앞에 있는 것을 보면 충분히 성공한 듯 보였다.

“공청석유는 원래 자연적인 지기가 모이는 곳에서 오랜 시간이 지나야 만들어지는 것이지.”

“맞다! 그 도자기병 안에는 집성의가의 가주가 아무렇지 않게 넘길 정도로 평범한 요상단만 들어 있었다!”

“먹어봤습니까?”

“……그렇지는 않지.”

아마도 그 요상단도 분명 평범한 물건은 아니었을 터였다.

‘공청석유의 원료가 되는 공청이거나 특별한 물건이겠지.’

“내 예상이기는 하지만 아주 오랜 시간 품속에서 자연스레 내력을 흡수하면서 인위적인 공청석유가 되었을 거야.”

한마디로 도광귀의 내력을 먹고 자란 공청석유였다.

원래의 공청석유는 천고의 영약이었지만 인위적인 것은 어떤 효과를 나타낼지 몰랐다.

진백천은 우선 간직하고 있다가 약왕당주에게라도 맡겨서 이상이 없으면 섭취하기로 했다.

황대원은 뜻밖의 행운에 얼굴이 활짝 펴졌다.

‘그나저나 집성의가도 대단하군.’

지금은 그 자취를 감춰 버렸지만 남긴 잔해만으로도 충분히 관심이 가는 자들이었다.

도광귀는 잠시 황대원의 품속을 아까운 눈으로 쳐다보다 고개를 돌렸다.

이미 자신의 품을 떠나 버린 물건이었다.

“남은 것은 이제 기생오라비. 너뿐이다. 내기대로 십이용천공(十二龍天功)을 알려주마.”

그는 품속에서 어제 쉬면서 쓴 책자를 꺼냈다.

그리고 여전히 마땅찮은 기색으로 진백천에게 건넸다.

책자에는 ‘호무살(虎武殺)’이라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막상 받은 진백천은 그것을 들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생각보다 너무 얇은데?’

십이용천공의 후반부 6초식을 이미 가지고 있던 진백천이었다.

그것에 비하면 반의반도 안 되는 두께였다.

“이게 전부예요?”

“왜? 내가 숨기기라도 할 것 같으냐?”

지금까지 봐온 도광귀의 성격상 일부를 빼놓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것이 전부라는 뜻이었다.

‘초반부가 이렇게 얇다고?’

“크흠. 마음 같아선 책자만 주고 떠나고 싶지만 나는 그렇게 무정(無情)한 사람이 아니다. 내 무공에 대해서 간략하게라도 설명해 주지.”

도광귀는 배를 잠시 멈추고 뭍으로 내려갔다.

배 위에서 펼칠 만한 무공이 아니었을뿐더러 다른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기 위해서였다.

때마침 황강을 따라 길게 대나무 숲이 늘어져 있었다.

“저기가 좋겠군.”

도광기는 대나무 숲으로 들어가고 나서도 주변을 샅샅이 살폈다.

“크흠. 내가 유난스럽다고 생각 말아라.”

“그렇게 생각 안 합니다. 독문무공인데 당연한 거죠.”

“그런 것도 있지만 내 독문무공은 조금 특이하다. 이제야 말하지만 완성되지 못한 것이지.”

“그래서 책자가 이렇게 얇은 겁니까?”

진백천은 짐짓 아무것도 모르는 척 물었다.

그러자 도광귀가 고개를 끄덕이며 무공의 연원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설명했다.

“기생오라비. 너는 혹시 십이지괴(十二支怪)에 대해 아느냐?”

“12마리 동물을 흉내 낸 괴이한 자들 아닙니까? 지금은 거의 활동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맞다. 지금은 단지 과거의 영광만 기억하는 망령들이지.”

도광귀는 씁쓸하게 말하며 자신의 호랑이 가죽을 쓰다듬었다.

“나는 십이지괴 중 호랑이를 맡고 있다. 너에게 준 책자도 십이용천공 중 호랑이에 해당하는 부분만 적힌 것이지.”

그제야 책자가 왜 그렇게 얇았는지 이해가 되었다.

12마리 동물의 무공 중 하나일 뿐이었다.

“사실 호무살 그 자체만 두고 보면 일반적인 무공이라고 하기 어렵다. 호랑이의 기세를 싣는 상단전의 무공이기 때문이다.”

도광귀의 말에 따르면 십이용천공은 각각 12마리의 동물들의 무공으로 이뤄진 것이라 했다.

동물마다 그 기운과 쓰임새가 달랐다.

“백번 말하는 것보다 직접 보여주는 것이 좋겠지.”

도광귀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천천히 기세를 끌어올렸다.

다만 겉으로는 알 수 없는 기세였다.

‘흐음. 이게 상단전에 집중한 모습인가?’

진백천은 그동안 자신을 제외한 상단전을 이용한 무공을 본 적이 없었다.

피부가 간질간질하면서 소름이 곤두서는 느낌이 스멀스멀 퍼졌다.

단순히 내력을 끌어올리는 모습과는 분명히 다른 모습이었다.

도광귀는 눈을 번쩍 뜨며 대나무 사이로 지나가는 노루 한 마리를 포착했다.

“기개 높은 영웅의 태도는 용양호시(龍驤虎視)라고 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용처럼 날뛰고 범처럼 노려본다는 뜻이었다.

그의 시선에 잡힌 노루는 도망가는 것도 잊고 바싹 굳어서 멈춰섰다.

호무살(虎武殺).

도광귀에게서 퍼져 나간 기파가 일렁이며 노루에게 쏟아져 나갔다.

그러자 노루의 동공이 순간 힘이 풀리며 옆으로 풀썩 쓰러졌다.

손끝 하나 대지 않았음에도 노루는 즉사한 상태였다.

“이게 바로 호랑이의 살기를 내뿜는 호무살이다! 어떠냐?!”

으스대는 말과 다르게 도광귀는 단 한 번의 호무살의 시전으로도 전신에 땀이 범벅이었다.

“왜? 너무 놀라서 말이 안 나오느냐?”

진백천이 아무 말 없이 그를 쳐다보자 도광귀가 물었다.

인정하긴 싫지만, 그 말이 정확했다.

상단전을 그 누구보다 활짝 연 진백천은 호무살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알아차렸다.

단지 기세만으로도 내력을 뿜어내지도 않고 멀리 떨어진 노루를 죽였다.

‘지금은 비록 노루였지만, 그 대상이 전투 중인 무인이었다면 더 효과적이겠지.’

그리고 도광귀보다 상단전이 더욱 활짝 열린 진백천이라면 그보다 더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의 침묵을 오해한 도광귀가 대나무 숲 사이로 들어가 노루를 집어 들었다.

“이것만 보고 너무 낙심하지 말아라. 십이용천공은 원래 십이지괴의 무공을 전부 익혀야 진면목이 나오니까. 그럴 리 없지만 네놈이 혹시라도 그것을 전부 익히게 될지 또 누가 아느냐? 크하하하하!”

도광귀는 그 말을 끝으로 반대쪽으로 걸어갔다.

이제 모든 대가를 청산했으니 남은 것은 헤어짐뿐이었다.

“어디로 가십니까?”

“남만 야수궁으로 돌아간다. 오랫동안 놀았으니 잠시 쉬어야지. 네놈에게 연달아 내기를 진 것을 보면 일진이 꼬인 게 분명하니. 아참. 그리고 말이다.”

도광귀는 잠시 뒤돌아서서 진백천을 쳐다봤다.

“혹시라도 내 무공이 너에게 흘러간 것이 알려지게 된다면 다른 동물 새끼들이 너를 노릴지도 모른다.”

“저를요?”

“그래. 같은 십이지괴는 서로를 공격하지 않지만, 네놈은 아니지 않느냐. 그러니 조심해라. 다들 십이용천공에 미친 놈들이니.”

도광귀는 진백천이 뭐라 할거라 생각했는지 발걸음을 더욱 빨리해서 사라졌다.

-만약 궁금한 게 생기면 남만 야수궁에 들리거라! 혹시 아느냐? 다른 동물 놈들을 때려잡고 네놈이 십이용천공을 완성시킬지! 크하하하하!

그의 전음이 진백천의 뇌리를 울렸다.

하지만 도광귀는 끝까지 사라지면서 진백천의 표정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찾아와준다면 나야말로 고맙지. 굳이 찾아갈 필요가 없어지니까.’

진백천은 방금 도광귀가 했던 호무살의 기세를 떠올리며 배로 돌아갔다.

‘상단전을 사용하는 무공이라. 마음에 들어.’

그를 태운 장강수로채의 배는 빠르게 황강의 물살을 타고 내려갔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목적지인 숭산(嵩山)에 가까워졌다.

* * *

사천의 관현. 청성파(靑城派)

사천성의 성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청성파는 구파일방 중 하나로 도가계통의 무가였다.

현대 장문인인 막여해는 검왕이 되지는 못했지만 그 못지않은 실력을 가졌다고 전해졌고, 수많은 검수가 존재했다.

하지만 이러한 청성파는 바로 얼마 전부터 분위기가 다소 급변했다.

바로 막여해를 비롯해 장로들과 일대제자들이 도검회(道劍會)에 다녀오고 나서부터였다.

“종남파 따위가 감히 어디라고 얼굴을 들이밀다니!”

가주전에는 화가 난 막여해를 필두로 도검회에 다녀왔던 일대제자들이 줄지어 무릎 꿇고 있었다.

“분명 우리 청성파의 자리를 노리고 있음이야!”

“……겨우 종남 따위가 그럴 수 있겠습니까?”

“닥쳐라! 못난 놈들!”

단순히 세력을 알리기 위해 찾아왔으면 모를까 그들은 매우 친근하게 화산파를 비롯해 무당파와 인사를 나누었다.

청성파의 무인들은 그 모습을 보고 종남이 자신들 모르게 뒤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실상은 전부 진백천과의 교차점이 있기에 인사를 나눈 것뿐이었지만 말이다.

덩그러니 남겨진 청성파는 종남을 못마땅해했다.

하지만 단순히 이것뿐이라면 청성파도 그저 콧방귀를 끼고 넘어갔을 터였다.

문제는 비무대회였다.

도검회는 도가계열의 검문이 5년마다 개최하는 모임이었다.

서로의 친목과 사상을 돈독히 하자는 목적이었지만 실상은 장차 도가제일검가를 점찍는 무대였다.

각 문파에서는 일대제자 4명이 나와 비무를 했다.

“어처구니가 없군!”

비무대회의 결과를 생각한 막여해가 들이킨 술잔을 강하게 내려놓았다.

무려 전패(全敗).

단 한 명도 1승을 올리지 못하고 전부 져버린 것이다.

“화산신검의 사사를 받는 검군(劍君)이나 무당팔검(武當八劍)에게 이기는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그동안 오르지 못할 산이었으니 말이야! 그런데 종남에게까지 지다니!”

막여해는 종남의 어린 제자를 떠올렸다.

이제 겨우 15세를 갓 넘었을 만한 놈은 제 몸만 한 중검을 들고 청성파의 일대제자를 몰아붙였다.

“광소산이라고 했던가?”

청성파 일대제자의 항복을 이겨내고 환하게 웃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 종남의 아이가 장차 그대로만 크다면 청성파가 구대문파 안에 설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곧 있을 정도회의 무림대회에서 어떻게든 떨어진 위상을 회복해야 한다. 무슨 말인지 아느냐?”

막여해의 호통에 무릎 꿇고 앉아 있던 일대제자들이 고개를 숙였다.

“……노력하겠습니다.”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그가 보기에도 일대제자들의 근골을 훌륭하지 못했다.

다들 자신이 만들어놓은 청성의 높은 자리에 만족하고 더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진즉에 그들에게 먼 길을 보는 시야를 길러주고 힘을 키우게 했어야 하건만 현실에 만족하는 법만 알려준 자신의 탓이었다.

‘질 수 없다. 질 수 없어!’

그때 막여해의 머릿속에 뭔가가 번뜩하고 스치고 지나갔다.

얼마 전 누군가에게 선물로 받았던 명검이 떠올랐다.

선물했던 자는 단지 잡는 것만으로도 내력이 증진되고 실력이 느는 검이라 말했지만 말도 안 되는 소리라 여기고 넘어갔었다.

갑자기 떠오른 것이지만 막여해는 그것이 현재의 돌파구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금고를 뒤져 선물 받았던 검을 찾아냈다.

검신에는 은은하게 복마검(伏魔劍)이라 새겨져 있었다.

‘흐음.’

그때 들었던 말 때문일까.

단지 쥐고 있을 뿐인데도 서서히 내력이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평범한 검은 아니군.’

“호일아. 이 검을 들어보거라.”

막여해는 일대제자인 벽호일에게 복마검을 건넸다.

검을 움켜쥔 벽호일은 순간 움찔했지만 이내 휘둥그레진 눈으로 막여해를 쳐다봤다.

“……기분이…… 이상합니다. 내력이 스스로 움직이며 증가하는 느낌입니다.”

언뜻 눈동자로 살기가 스쳐 지나갔지만 막여해는 그저 공동파에 진 분노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이 검이 있으면 놈들을 전부 이길 수 있겠느냐?”

“……네. 지금이라면…… 종남파 그자들을 전부 베어 넘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좋다! 앞으로 그 검을 손에서 떼놓지 말고 수련하거라! 정도회의 무림대회에서는 망신을 당하면 안 될 것이야!”

벽호일은 멍하니 복마검을 내려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호일이 혼자로는 부족하다. 가능하면 대회에 참가하는 모든 청산의 제자들이 눈에 띄어야 해.’

막여해는 일대제자들을 물리자마자 총관을 불러 복마검을 선물했던 상인을 불러들였다.

“전에 주었던 복마검이 더 필요하다. 얼마면 되겠는가?”

“……그것이 아주 귀한 것이라 몇 자루를 더 구할 수 있을지…….”

“돈이라면 아낌없이 주겠다!”

“흐음. 그렇다면 제가 특별히 더 알아보겠습니다. 돈만 있다면 3자루 정도는 더 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상인은 고개를 푹 숙이며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하지만 숙인 그의 입술은 한없이 위로 솟은 상태였다.

청성파를 벗어난 상인은 곧 서신을 작성해 전서구를 날렸다.

“멍청한 놈들이 미끼를 물기 시작했구나!”

[청성파(靑城派) 복마검(伏魔劍)3자루.

장문인인 막여해가 천금을 들여 직접 구매. 일대제자들이 사용할 것으로 보임. 사용장소는 정도회의 무림대회. 때에 맞춰서 마인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적절해 보임.]

전서구는 빠르게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그 목적지는 다름 아닌 황금마전(黃金魔殿)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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