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회귀백서 155화
56장 도광귀와 십이용천공(十二龍天功)(2)
진백천은 도광귀의 모습을 유심히 살폈다.
‘거기 적혀 있던 대로라면 초반부 6초식은 십이지괴가 가져갔다고 들었어. 그렇다면 도광귀는 십이지괴의 후손일까?’
호랑이를 닮은 도광귀의 모습은 그에게 점점 확신을 주었다.
특히나 도광귀는 호랑이 가죽을 옷처럼 둘러 입은 채였다.
무덤에 죽어 있던 자들이 원숭이와 토끼, 양, 말, 소, 닭이었으니 살아남은 호랑이의 후손이라고 충분히 의심되었다.
도광귀는 남은 술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리고 술병을 바닥에 내리치며 호쾌하게 말했다.
“이야기는 이쯤이면 되겠지! 진짜 내기를 시작해 보자! 각자 원하는 것을 말하라! 그에 맞는 내기를 정할 테니!”
가장 먼저 대답을 한 것은 위향아였다.
“나는 소원을 들어주세요!”
“그러지! 내가 들어줄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지 들어주마!”
도광귀의 시선이 위향아를 지나 이한소와 황대원을 향했다.
이한소는 황금을 말했고, 황대원은 위향아와 마찬가지로 소원을 바랐다.
“좋다좋아! 마지막으로 진소가의 손자! 기생오라비의 차례다!”
“저는 무공을 원합니다.”
“어떤 무공인지 말해라!”
진백천은 도광귀를 올려다봤다.
그 모습이 왠지 젊은 진소가를 보는 것 같아서 도광귀의 얼굴에 미소가 묻어났다.
하지만 그것도 곧 진백천의 말에 산산이 부서졌다.
“십이용천공(十二龍天功).”
진백천은 변하는 도광귀의 표정을 묵묵히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제가 내기에서 이기면 당신의 독문무공인 십이용천공의 전부를 주십시오.”
“……당돌하군! 마치 자기 할아버지처럼!”
“할아버지는 실제로 본 적도 없어서 그런 건 잘 모르겠네요.”
“좋다! 주겠다! 하지만 내 무공은 다른 대가와 달리 그 무게가 무겁다! 너는 다른 이들과 다르게 나와 3개의 내기를 해서 전부 이겨야 한다!”
“상관없습니다!”
그 자신감 넘치는 태도에 도광귀가 웃음을 터뜨렸다.
“오늘 진소가의 손자를 죽여 그때 못 이룬 내기의 끝을 맺겠구나! 크하하하하하!”
어두워지는 황대원과 당소예의 표정과 다르게 정작 진백천은 여유로웠다.
도광귀의 내기의 형태를 보아하니 어느 정도 억지가 통하는 듯했다.
차라리 무력을 쓰는 것이라면 이렇게까지 자신을 갖지 못했을 터였다.
하지만 잔머리라면 그 누구에게라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도광귀가 무공은 뛰어나도 머리는 아둔해 보이니 충분히 이길 수 있어.’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 보니 어느새 해가 넘어가고 저녁노을마저 사라졌다.
강 위는 어느새 어둠으로 가득 찼다.
“불 좀 피우겠습니다.”
진백천은 배의 있는 나무 갑판을 뜯어서 화롯불을 만들어 주변을 밝혔다.
훈기가 주변을 감싸니 제법 몸이 따듯해졌다.
그 사이 주변을 둘러보던 도광귀는 뭔가를 발견하고 눈을 반짝였다.
“어떤 내기를 할지 결정했다!”
그리고 그자가 들고 온 것은 반파된 배에서 어찌할 줄 모르고 돌아다니던 쥐 한 마리였다.
찌이익-
꼬리가 잡힌 채로 발버둥 치는 쥐를 보고 위향아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걸 가지고 어떻게 하려고요? 설마 먹거나 그런 건 아니죠?”
“여장부는 나를 뭘로 보고 그런 말을 하느냐!”
도광귀는 쥐를 바닥에 내려놓고 통으로 쥐를 덮어놓았다.
“나는 쥐새끼를 아주 싫어한다. 동물 중에 쥐를 제일 싫어하지.”
“당신의 호불호와 내기가 무슨 상관입니까?”
“있다. 있고말고.”
도광귀는 풍속에서 육포를 꺼내 각자의 자리 앞에 하나씩 두었다.
쥐는 육포 냄새를 맡고 코를 킁킁거렸다.
“이 배고픈 쥐새끼는 통을 치우는 순간 우리 중 하나의 육포를 먹으러 가겠지. 그자가 내기에서 지는 것이다. 어떠냐?”
만약 도광귀에게 간다면 그의 패배로 모두에게 내기의 대가를 줘야 했다.
하지만 다른 이에게 쥐가 다가간다면 그자는 내기에서 진 것은 물론이고 배제 후에 다시 진행한다.
“한마디로 당신이 걸릴 때까지 내기는 지속되는 겁니까?”
“물론이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쥐새끼의 선택에 영향을 줄 내력이나 외부의 힘은 절대 사용할 수 없다!”
겉으로 보기에는 무척이나 공정해 보이는 내기였다.
하지만 설명을 듣는 순간 진백천은 이미 그의 의도를 눈치챈 후였다.
‘공정하기는 무슨!’
진백천은 속마음을 감춘 채 고개를 끄덕였다.
* * *
찍찍-
통 안의 쥐는 불안한지 계속해서 몸을 움직였다.
다른 쥐들에 비해 제법 큰 녀석이었지만 청서생을 꽤나 봐 왔던 진백천에게는 새끼처럼 보였다.
‘아마 저놈은 뚜껑이 열리자마자 우리 중 한 명에게 달려오겠지.’
“그렇다면 진짜로 해보기 전에 연습 삼아 한번 해보지!”
도광귀는 손을 뻗어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지금까지 어쩔 줄 몰라 하던 쥐가 바싹 몸이 굳은 듯 멈춰섰다.
공포와 배고픔이 공존한 상태에서 주변에서 맛있는 냄새가 풍겨왔다.
쥐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심보다 배고프다는 본능이 더 뇌를 지배했다.
결국 주춤거리면서도 육포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왔다.
처음에는 도광귀의 육포가 있는 방향이었다.
하지만 웬일인지 방향을 바꾸더니 반대편으로 뛰어갔다.
“……아아!”
바로 이소한의 육포를 향해서였다.
“봤지? 쥐가 선택하는 것은 무작위다. 다음에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는 자리를 바꿔도 좋다!”
이소한은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하는 듯 크게 안도했다.
하지만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이대로라면 무조건 내기에 지겠지.’
쥐는 결코 무작위로 움직이지 않았다.
처음 쥐를 집어 들었을 때 쥐는 도광귀에게 두려움을 느꼈다.
그것은 시각적인 것보다는 후각이 더 컸다.
‘도광귀가 걸치고 있는 호랑이 가죽.’
가뜩이나 쥐가 무서워하는 짐승의 냄새에다 두려움까지 쌓였으니 절대 그쪽으로는 이동할 리 없었다.
만약 실수로라도 그쪽을 향한다 해도 결국 방향을 틀 게 분명했다.
진백천은 황대원을 비롯해 다른 이들에게 슬쩍 눈짓했다.
-황대원. 내가 하자는 대로 해.
-네. 회주님.
‘중요한 건 우리의 위치가 아니야. 도광귀의 위치지.’
진백천은 일부로 일행을 전부 화롯불 앞쪽에 세웠다.
완전히 밤이 된 풍경에 유일한 광원은 달빛과 화롯불뿐이었다.
도광귀는 귀를 파며 자리를 바꾸는 이들을 지켜봤다.
“서둘러라! 어차피 앞으로 4번은 더 해야 할 테니까! 크하하하!”
자신에게는 절대 오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는 말투였다.
자리를 다 정하자 진백천은 도광귀를 쳐다봤다.
“크흠. 그럼 바로 뚜껑을 열겠다! 첫 번째 탈락자가 누가 될지 몰라도 아주 재밌겠구나!”
터억!
뚜껑을 열자 쥐는 전과 마찬가지로 몸이 굳어서 주변을 살펴봤다.
사전에 해봤던 것과 다르게 이번에는 곧바로 진백천 쪽의 육포로 몸을 틀었다.
하지만 왜인지 몸을 움찔하더니 자리에 멈춰섰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틀어 도광귀쪽으로 향했다.
“어어? 이 쥐새끼가 약을 처먹었나? 갑자기 왜 이래!”
그의 거친 말에도 쥐는 점점 빠르게 걷더니 육포를 물고 도망쳤다.
도광귀는 잠시 황망하게 그 모습을 지켜보다 진백천을 홱 하고 쳐다봤다.
“……어떻게 한 것이냐?! 지금껏 수천 번 내기를 했지만 이랬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거야 우리의 운이 좋으니 그런 거 아니겠어요?”
위향아는 득의만면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진백천의 전음을 들으며 혹시나 했는데 그의 말대로 되었다.
기뻐하는 것은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끄으으응. 알았다. 각자 내기의 대가는 들어줄 테니. 어떻게 한 건지 말해라!”
궁금해하는 그를 보며 진백천이 피식 웃었다.
“그냥은 말할 순 없고 왜 쥐를 싫어하는지만 알려주시면 말씀드리죠.”
“그거야 어려울 것 없지. 나는 쥐처럼 지하에 파고 들어가 몸이나 숨기며 사는 것들을 제일 싫어한다. 놈들은 가진바 힘보다 다른 것에 더 의존하는 것들이지! 이제 말해 봐라!”
‘십이지괴(十二支怪) 중 쥐와 사이가 좋지 않은가 보군.’
“별거 없습니다. 그저 쥐의 습성을 이용했을 뿐이죠.”
쥐는 본능적으로 어두운 곳으로 이동했다.
밝은 곳에 있으면 천적에게 모습이 띄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구석에 몸을 붙이고 이동하거나 밝은 곳이 있으면 어두운 곳으로 뛰어갔다.
“그것이 지금과 무슨 상관……!”
말을 하던 도광귀는 곧 아래를 내려다보며 입을 다물었다.
다섯 곳의 육포가 놓인 곳 중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쪽에만 어둠이 처져 있었다.
진백천이 자리를 바꾸면서 자신들 쪽은 화롯불에 바로 빛이 보이게끔 한 것이다.
“허허. 머리가 좋구나!”
“쥐를 그쪽으로 보낸 건 이것뿐만이 아니에요.”
후각이 뛰어난 쥐가 호랑이 가죽의 냄새를 맡고 괜찮을 리 없었다.
그렇기에 일부로 바람이 부는 방향을 도광귀쪽으로 세웠다.
아무리 짐승의 누린내가 난다고 해도 바람이 부는 동안에는 쥐가 알아채지 못할 테니까 말이다.
그 설명까지 들은 도광귀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짓다 광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하하! 역시 내기에 지고도 나를 이긴 진소가의 손자답구나! 참으로 재밌어!”
도광귀는 거칠게 웃으면서 각자에게 약속한 내기의 대가를 건넸다.
지금 당장 줄 수 있는 것은 이한소의 황금뿐이었다.
“자! 이것이 내기의 대가로 주는 황금이다!”
도광귀는 제대로 금액도 확인해 보지 않고 황금과 전표를 뭉텅이로 던져주었다.
장강수로채 18채주인 이한소조차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금액이었다.
그는 재빨리 전표와 돈을 챙기고 뒤로 물러났다.
“이제 남은 둘은 소원을 말해라!”
“으음. 아직은 딱히 생각이 나지 않는데요? 남은 내기를 지켜보고 말해도 되죠?”
“물론이다.”
소원을 유예한 것은 황대원도 마찬가지였다.
“그럼 다음 내기를 바로 진행하겠다. 문제없겠지?”
진백천은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도광귀는 미리 다음 내기를 생각해놨는지 품속에서 작은 구슬을 꺼냈다.
“이번에는 구슬 개수 맞추기다! 손에 쥐고 상대의 손에 구슬이 몇 개 있는지 먼저 맞추는 자가 이기는 거지.”
“간단하고 좋네요. 바로 하죠.”
“연습 따위는 없어도 되겠지? 처음이니 네가 먼저 맞출 수 있게 해주겠다!”
도광귀는 양손에 구슬을 나뉘어 쥐었다.
그리고 오른손을 내밀었다.
“몇 개인지 맞춰봐라!”
혹시나 하는 마음에 상단전을 열고 집중했지만, 도광귀의 속마음은 들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손을 꿰뚫어 볼 수도 없으니 운으로 맞추는 수밖에 없었다.
“3개.”
“확실하냐?”
“그거야 저도 모르죠.”
심드렁한 반응에 도광귀가 손을 펼쳐 보였다.
안에 있는 구슬은 1개뿐이었다.
“다음은 너 차례다.”
진백천도 마찬가지로 손에 구슬을 쥐고 앞으로 내밀었다.
구슬은 작아 보이는 것과 달리 무척이나 묵직하고 단단했다.
‘평범한 구슬이 아니야.’
금강석(金剛石)을 제련해서 만든 것인지 겉에는 흠집 하나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구슬에 무슨 짓을 해놓은 게 아닌가 싶었지만 그런 것은 아닌 듯 보였다.
하지만 이것도 곧 도광귀에 억지 같은 내기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굳이 금강석의 구슬을 사용하는 것도 이해가 가지.’
진백천이 구슬 몇 개를 손에 쥐고 앞으로 내밀자 도광귀가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아무렇게나 숫자를 말했다.
딱히 맞출 생각이 없어 보이는 말투였다.
“내 차례다. 똑똑히 보거라”
도광귀는 어쩐지 짓궂은 표정으로 구슬 5개 중 4개를 쥐더니 앞으로 내밀었다.
하오문의 야바위꾼들이 사용하는 손놀림 따위도 없었다.
그저 보이는 그대로 쥐어서 내밀었을 뿐이었다.
“맞춰봐라.”
순간 일부러 져주는 건가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4개.”
“틀렸다.”
도광귀의 웃음이 짙어진다 싶더니 그의 손에서 스멀거리며 연기가 피어올랐다.
까드드드득-
그리고 다시 손을 폈을 때에는 가루만이 바람에 흩날렸다.
“답은 0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