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회귀백서 154화
56장 도광귀와 십이용천공(十二龍天功)(1)
도광귀는 위향아를 보며 기꺼워했다.
“좋다좋아! 여장부가 나에게 도전하는 것은 오랜만이군!”
반면에 장강수로채와 녹림의 무인들은 기겁하며 그녀를 말리려 했다.
“아가씨 안 됩니다! 그자는 위험합니다!”
“괜찮아. 그까짓 내기 따위 이겨 버리면 그만이야!”
“그건 도광귀에 대해서 잘 몰라서 하시는 말씀이십니다!”
하지만 오히려 위향아는 겨우 한 명 때문에 이러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곳에 있던 수적놈들이야 원래 약해빠진 놈들이니 그렇다 쳐도 자신은 아니었다.
‘이길 자신도 있다고.’
평소 녹림채주나 거구의 무인들만 보다 보니 도광귀도 그다지 대단해 보이지 않는 것도 한몫했다.
도광귀는 자신의 앞에서 쫑알거리는 자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기에 참여하지도 않으면서 말만 하는 겁쟁이 놈들이구나! 네놈들 따위는 나 도광귀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다!”
도광귀는 배의 난간 위에 올라서며 거칠게 소리쳤다.
단 한마디라도 더 하는 자는 금방이라도 머리통을 부숴 버릴 듯한 모습이었다.
위향아는 정말 괜찮다는 듯이 이소한과 무인들에게 손을 휘저었다.
오히려 재미있는 놀잇감이라도 발견한 아이처럼 즐거워했다.
진백천은 안절부절못하는 이소한에게 은근슬쩍 물었다.
“위 소저가 원래 조금 무모한가?”
“……조금이 아닙니다. 무공도 또래에 비해 높고 어릴 때부터 천방지축으로 자라서 자기 멋대로인 경우가 많습니다.”
“고생이 많았겠군.”
이번에도 떼를 쓰면 모두가 자신을 따라줄 것이라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전형적인 철부지야.’
도광귀는 남은 이들을 둘러보며 자신과 더 내기를 하고 싶은 자를 기다렸다.
내기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재미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하지만 위향아 이후로 아무도 나서지 않자 호랑이 같은 눈매가 불만으로 일그러졌다.
“이 여장부뿐이냐? 정말 더 없느냐?”
팽지약은 다급하게 진백천에게 다가왔다.
십대악인 중 무려 둘을 죽인 그라면 도광귀도 상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회주. 부디 저 철없는 것 좀 살펴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어차피 위향아가 눈앞에서 죽게 만들 생각은 없었다.
‘이대로 두면 위향아는 결국 죽겠지.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도광귀의 내기는 결국 그의 마음대로 이루어졌다.
방금의 가위, 바위, 보를 봐도 자신의 주장대로 결과를 이끌어 냈다.
간혹가다 마음에 드는 자에게만 자신의 상금이라 하며 주는 게 전부였다.
‘단지 살인을 즐겨 하는 미친놈일 뿐이야.’
진백천은 가볍게 바닥을 차며 반대편 배로 건너갔다.
“나도 같이하지.”
“좋다! 더! 더 없느냐?!”
진백천이 나서자 그림자처럼 서 있던 황대원이 뒤따랐다.
그리고 망설이던 이소한도 마찬가지였다.
“왜 따라왔어?”
“회주님이 가신다면 저도 당연히 따르겠습니다.”
도광귀는 회주라는 말에도 신경 쓰지 않았다.
단지 4명이 모이자 진득한 웃음을 보이며 기뻐했다.
“크하하하! 또다시 4명이로구나! 나는 참으로 4라는 숫자를 좋아한다. 왜 그런지 아느냐?”
“글쎄요?”
“바로 죽을 사(死)와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이지! 4명으로 나에게 도전해서 살아남은 이는 지금까지 없었다!”
그 말에 이소한이 움찔하며 표정을 굳혔다.
하지만 정작 진백천을 비롯해 위향아는 어깨를 으쓱일 뿐 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만큼 자신의 무공에 자신이 있었다.
‘헛된 자신감이지만.’
진백천은 입을 다물고 조용히 도광귀를 살폈다.
거친 행동만큼이나 모든 것은 자신의 기분에 따라 판단하고 결정했다.
그는 한 명 한 명을 살피더니 어떤 내기를 할까 고민했다.
하지만 그가 내기를 정하기 전에 진백천이 손을 번쩍 들었다.
“그래! 기생오라비같이 생긴 놈! 무엇이냐?”
“내기를 하기 전에 그쪽이 줄 무공이 무엇인지 알고 시작하고 싶은데요?”
“내가 줄 무공? 무엇을 갖고 싶으냐? 힘이라면 힘. 속도라면 속도. 화려함이라면 화려함! 어떤 무공도 다 줄 수 있다!”
도광기는 그동안 내기를 하면서 죽이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에게 지고 죽은 이들의 무공비급이나 돈은 부차적인 수확물이었다.
그중에는 제법 쓸 만한 것들이 많았다.
“말로만 해서는 알 수 없죠. 한번 확인해 봐도 괜찮죠?”
“뭐라? 나에게 확인을 해보겠다고?”
“아니, 그렇잖아요. 내기라고 하면 그 대가가 높을수록 재밌는 법인데 나중에 쓰레기 같은 무공을 주면 어떻게 해요?”
쓰레기라는 말에 도광귀가 벌떡 뛸 듯이 반응했다.
하지만 곧 진백천의 심드렁한 표정에 할 말을 잃었다.
“오냐! 그렇다면 힘으로 해보자! 내 주먹을 한번 막아볼 테냐?”
“내기입니까?”
“그래. 내기다! 내 전력을 다한 주먹을 버틴다면 내 무공을 주겠다!”
도광귀는 진백천이 거절할 새도 없이 양손을 모으며 내력을 끌어모았다.
서서히 그의 몸이 들썩이며 점점 기골이 장대해졌다.
‘이건 또 무슨 무공이지?’
단순히 몸이 커지는 것만이 아니었다.
근육은 한없이 부풀어서 갑옷을 여러 겹 겹쳐 입은 듯 보였고, 전신에서 가공할 내력이 솟구쳤다.
마치 불교에서 말하는 지옥의 나찰이 현신한 듯한 모습이었다.
쿠웅!
가볍게 걸음을 옮겼을 뿐이지만 배가 흔들리며 바닥이 부서졌다.
도광귀는 놀라는 이들을 만족스러운 얼굴로 내려다봤다.
“이것은 20년 전 나와 내기를 하다 죽은 철첩탑마(鐵疊塔魔)라는 자의 무공이다! 세맥에 심어둔 내력을 폭발시켜 순간적이나마 신과 같은 힘을 얻을 수 있다!”
‘철첩탑마!’
진백천도 들어본 이름이었다.
지금은 생소하지만 과거에 악인이라고 하면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었다.
사람을 죽일 때마다 철탑 아래 파묻었는데 그 사체만 무려 수백 구가 나왔다.
그렇기에 마인이 아님에도 별호에 마가 들어갔다.
‘그런 철첩탑마도 이자에게 죽었군.’
진백천이 별말이 없자 도광귀는 그가 놀라 말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품속에서 철첩탑마의 무공 비급서를 꺼내 들며 이죽였다.
“어떠냐? 이런 무공들이 수없이 많다. 만약 나의 한 수를 버티면 이 비급서를 주마! 아니면 지금이라도 잘못했다고 말한다면 내기를 물러주마! 어떻게 할 테냐?”
진백천은 필요 없다고 말하려다가 문득 감탄하는 황대원의 표정을 봤다.
그는 이미 철첩탑마의 무공에 빠져든 모습이었다.
‘흐음. 그러고 보니 황보세가의 무인치고 왜소한 황대원이 익히기에는 괜찮은 무공인데?’
당장 그의 할아버지인 황충과 비교해도 황대원은 작은 편이었다.
특유의 거력으로 펼치는 그의 무공을 생각하면 이것을 익히면 한층 더 강해질 수 있을 터였다.
“어떻게 버티면 됩니까?”
“크하하하! 탐이 나나 보는군! 방법은 간단하다! 내가 이 무공으로만 너를 공격하겠다! 그러면 너는 피하지 말고 버티기만 하면 된다!”
말 그대로 못 버티고 죽으면 도광귀의 승리, 버티고 산다면 진백천의 승리였다.
‘이건 나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거 아닌가?’
조금이라도 진백천의 소문을 들었다면 이런 식의 내기를 걸지는 않았을 터였다.
“좋아요. 해보죠.”
도광귀가 때리기 좋게 중앙에 서서 기마 자세를 취했다.
“기생오라비 같이 생겨서 제법 각오가 있구나!”
‘각오는 무슨.’
진백천이 이렇게 자신이 있는 것은 품속에 껴입은 호연보의(護燃保衣) 탓이었다.
바람에 흩날릴 정도 가볍지만 금강석을 먹은 누에의 실로 만들어서 절대 뚫리지 않았다.
이런 호연보의는 내력을 흡수하면 흡수할수록 그 강도가 질겨지고 강해졌다.
그것뿐만 아니라 공격하는 이의 내력을 튕겨내기까지 했으니 그만큼 자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도광귀의 강하다 해도 내력만큼은 나도 지지 않으니까.’
진백천은 전신의 내력을 끌어올리며 호연보의에 불어넣었다.
점점 딱딱하게 변하며 그 강도가 질겨졌다.
“크하하하하! 버텨 보거라!”
도광귀는 거대한 주먹을 망치처럼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쿠구궁!
내력이 세맥에서 폭발하는 소리가 마치 작은 벽력처럼 들렸다.
주먹은 말 그대로 번쩍하는가 싶더니 허공을 가르며 진백천의 가슴을 후려쳤다.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배가 강하게 휘청였다.
하지만 그 여파로 밀려난 것은 놀랍게도 도광귀였다.
“허어억!”
진백천은 여전히 기마 자세로 서서 조금의 밀림도 없었다.
내력을 흡수한 호연보의가 도광귀의 주먹을 튕겨낸 것이다.
물론 호연보의는 조금의 흠집도 생기지 않았다.
진백천은 맞은 부위를 툭툭 털었다.
“어후. 물 근육인가? 운동 좀 하셔야겠는데요?”
“뭐, 뭐라?”
그 말에 당황한 도광귀가 배의 선미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주먹이 닿은 주변이 산산조각 나며 파편이 허공에 흩날렸다.
도광귀는 신기한 눈으로 진백천을 살피더니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제법 특이한 놈이구나! 좋다! 이 도광귀가 내기에서 졌다! 네놈에게 비급을 주겠다!”
그리고 아주 흔쾌히 낡은 비급을 그에게 건넸다.
책자는 오래되었지만 읽기에는 충분했다.
환력신공(煥力神功).
‘이름 한 번 특이하네. 나중에 먼저 살펴보고 이상한 구석이 없으면 황대원에게 줘야겠어.’
진백천은 비급을 품속에 집어넣었다.
“그러고 보니 네놈들에 대해 듣지 못했군! 어린놈이 이 정도 실력을 가졌다면 분명 평범하지는 않을 것이다! 맞지?”
도광귀는 진백천이 자신의 공격을 막아내자 눈을 빛내며 물었다.
기존에 있던 멍청한 수적놈들과는 그 토대가 다른 듯하고 강호의 사정에 눈이 어두우니 이렇게 묻는 수밖에 없었다.
“진백천이라고 합니다.”
“흐음. 진씨라. 진씨 중에 정말 강한 자를 만난 적이 있었지. 혹시 너는 진소가라고 아느냐?”
진백천은 생각지도 못한 그의 말에 화들짝 놀랐다.
진소가는 진씨무가와 정도회를 처음으로 만든 자이자, 진백천의 할아버지였다.
“저희 할아버지를 아십니까?”
“알다마다! 그자는 나와의 내기에서 지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자다! 기회가 된다면 지금이라도 꼭 죽이고 싶은데 그 후로는 다시 만나지 못했지.”
“저승으로 가서 다시 한번 내기한다면 모를까 현생에서는 어려울 겁니다.”
진소가가 죽었다는 말에 도광귀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그토록 강한 무인의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 이상하긴 했지. 죽었다니. 막상 들으니 씁쓸하군.”
“저희 할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진백천은 진소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은근슬쩍 물었다.
위향아가 가지고 있던 소흥주(紹興酒)를 건네는 것은 덤이었다.
“크흠. 눈치가 빠른 아이구나. 마침 목이 말랐다!”
도광귀는 술을 물처럼 들이키더니 진소가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진소가와의 만남은 무려 50년 전이었다.
둘 다 이제 후기지수의 나이를 막 지날 때이나 도광귀는 자신의 무공에 자신이 있었다.
“내가 있던 곳에서는 나를 이길 자가 없었지! 그렇기에 독문무공만으로도 강호를 주유하고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중원에 들어서자마자 진소가 그자를 만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참으로 운이 좋지 못했다.
진소가는 악의선사에게서 배운 구촉비전(口燭非典)을 대성하고 정도회를 막 일군 상태였다.
그런 진소가를 강호 초출인 도광귀가 이긴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나는 그자에게 내기를 제안했지. 서로의 무공 중 누구의 것이 더 뛰어난가 하는 것이었다.”
방법은 간단했다.
둘이 서로의 무공의 초반부를 보이면 상대는 그것을 보고 따라 하면 되었다.
먼저 무공을 익히는 자가 승리하는 것이었다.
내기의 대가는 자신의 독문무공이었다.
“진소가 그자는 무척이나 자신 있어 했지. 자신의 무공이 최고라고 믿었으니까.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내기에 미친 도광귀는 단 한 번도 두 눈을 꿈뻑이지도 않고 진소가의 모습을 머릿속에 담았다.
그리고 밥 먹는 것도, 쉬는 것도 잊은 채 이주야를 익혀 진소가보다 빨리 초반부를 익힌 것이다.
“혹시 그 무공의 이름이 뭡니까?”
“구촉비전(口燭非典)이라 했다. 진씨무가의 무공이라 했으니 기생오라비 네놈도 익혔을 것 아니냐?”
진백천은 그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혹시 구촉비전을 익혔습니까?”
“아니. 진소가 그자는 자신의 무공은 타인에게 전해질 수 없으니 대신 다른 것을 준다고 했다.”
‘그러니까 아직 살아 있을 수 있었군. 만약 구촉비전을 익혔으면 부작용으로 미치거나 죽었을 테니까.’
하지만 그런 것을 모르는 도광귀는 격하게 분노했다.
진소가를 용납할 수 없다며 무공을 줄 수 없으면 대신 목숨을 달라 했다.
하지만 진소가는 강했고 도광귀는 패배했다.
내기에서 진 대가로 목숨을 살려주겠다는 말과 함께 떠나 버렸다.
“나도 강했지만 내 독문무공인 십이용천공(十二龍天功)은 미완성이었기에 이길 수 없었다!”
그때부터 도광귀는 내기를 하면서 다른 이들의 무공을 모으기 시작하고 끊임없이 대련하며 점점 더 강해졌다.
지금의 도광귀는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그딴 것과 상관없이 진백천의 뇌리에 틀어박히는 단어가 있었다.
‘십이용천공?’
분명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이름에 진백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이내 정 황조의 무덤에서 발견한 무공과 같은 이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