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회귀백서 153화
55장 황하에 뜬 장강수로채와 위향아(3)
콰지지직!
침몰하는 배를 지켜보는 황강수로채 수적들은 하나같이 눈을 부릅떴다.
아무리 기동성을 위해 가볍게 만든 배라고 해도 단 한 번에 이리 박살 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졸지에 배를 잃은 수적들은 황망한 표정을 지었다.
“이, 이 미친년! 가만두지 않겠다!”
“가만두지 않으면? 또 배를 가져다가 바치려고? 그러면 나는 또 부수고 좋지!”
위향아는 갑판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장을 내뿜었다.
퍼엉!
가장 앞쪽에 있던 수적의 머리통이 깨져나가며 그대로 물속에 수장되었다.
그러자 남은 자들은 서둘러 공격을 피해 물속에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했다.
위향아는 놀이라도 하듯 큰소리로 웃어댔다.
“꺄하하하! 죽고 싶지 않으면 머리를 당장 집어넣어라!”
수적들은 한참이나 멀어져서야 주먹을 휘두르며 소리를 질러댔다.
“네놈들을 채주님이 가만두지 않으실 것이다!”
“그래. 또 기다리고 있으마!”
위향아가 금방이라도 그들에게 장을 뻗으려 하자 다시 물속으로 잠수하며 모습을 감췄다.
“쯧! 한 주먹도 안되는 게 말만 많아.”
손바닥을 탁탁 터는 모습이 무척이나 후련해 보였다.
‘여장부야.’
저렇게 괄괄하니 그녀의 어머니인 팽지약이 결혼을 서두르려는 이유도 알 것 같았다.
장강수로채 무인들은 배를 뭍으로 끌고 가서 여분의 나무로 배를 수리하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깔끔하게 구멍이 뚫려서 막은 부위만 맞춰서 끼워 맞추고 방수(防水)처리만 하면 되었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역시 소한 오라버니가 최고예요.”
이소한은 헤벌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수적들을 통솔할 때와는 천지 차이의 모습이었다.
놀랍게도 그 짧은 사이에 배의 파편은 전부 황하에 쓸려 사라진 후였다.
“그나저나 황강수로채는 뭐 하는 자들이지?”
“말만 수적이지 하는 짓은 동네 산적이나 다른 없는 놈들입니다. 오다가다 상단의 돈이나 받아먹으며 사는 놈들이죠. 그나마 그들의 채주가 제법 실력이 있던 자인데 외부로는 활동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진백천의 귀까지 들어오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아무리 그라고 해도 지엽적으로 활동하는 자들까지 알 수 없었으니까 말이다.
“원래라면 감히 저희에게 대들지도 못했겠지만, 이 근처에 본거지도 있고 18채라는 것을 확인하고 공격한 듯 보입니다.”
황강수로채는 외부에서 자신들에 대한 평가를 잘 알았다.
그렇기에 이번 기회를 틈타 자신들보다 항상 높은 자리에 두는 장강수로채를 공격한 것이다.
하지만 놈들은 상대 파악을 잘못했고 강바닥에 가라앉은 건 놈들이 되었다.
배는 해가 지기 전에 빠르게 수리가 되었다.
평생을 배 위에서 살아왔던 자들답게 무척이나 능숙했다.
일행은 다시 배를 타고 이동했다.
위향아는 시간이 지나자 술이 깨는지 점점 더 냉철해졌다.
“흐음. 아무래도 제가 너무 어리석었어요.”
‘그래도 어리다고 철없이 날뛰지만은…….’
“한번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 했는데 어리숙했어요.”
……날뛰었다.
문제는 그런 그녀의 옆에서 부추기는 팽지약이었다.
그녀는 말리기는커녕 위향아의 단호한 성미를 오히려 칭찬했다.
“맞아. 너의 아버지들도 전부 단호한 면이 멋있었지. 칼을 한번 뽑았으면 확실히 끝까지 베어내야 후환이 없는 법이야.”
“그렇죠? 그럼 지금 당장 황강수로채인지 뭔지 하는 놈들의 본거지로 가죠!”
이한소가 순간 이게 맞는 건가 싶은 얼굴로 진백천을 쳐다봤지만 그는 아무런 힘이 없었다.
여기서는 단지 손님이었기에 아무 말 없이 뒤로 물러났다.
‘그래도 재밌긴 하겠네.’
그러자 당소예가 어쩐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진백천을 쳐다봤다.
“어쩐지 닮았죠?”
“누구랑?”
“회주님이랑요.”
“무슨 소리야. 내가 저렇게 막무가내로 움직일 리…….”
움직였다.
생각해 보니 더하면 더했지 부족하지는 않았었다.
그제서야 그동안 당소예와 황대원이 자신을 보며 어떤 느낌이었을지 공감이 되었다.
‘크흠. 그래도 나는 적어도 미래가 어떻게 될지 정도는 알고 있었으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저 여자하고는 엄연히 다르지.’
“회주님. 술 한잔 더 드시겠어요?”
언제 또 술병을 챙겨 든 위향아가 그에게 손을 휘적이며 말했다.
진백천은 무심결에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뻗다가 당소예와 황대원을 쳐다봤다.
역시나 하는 표정이었다.
* * *
배는 위향아의 주장대로 황강수로채가 있는 곳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장강과 달리 강폭이 넓지 않아 딱히 한곳에 머물지는 않았다.
그저 일정 구역을 빙글빙글 돈다고 하니 운이 나쁘면 지나가며 마주치지 못할 가능성도 있었다.
‘이제 슬슬 해도 져가고 말이지.’
뜨거웠던 늦가을의 태양은 붉은 여운을 남기며 뉘엿거리며 넘어가는 중이었다.
벌판이 붉게 보이고 덩달아 황강마저 붉게…….
“응? 저거 피 아니야?”
역한 비린내는 피가 맞았다.
이곳에서 먼 곳이 아닌 듯 황하의 빠른 물살에도 피는 채 사라지지 않고 이곳까지 밀려왔다.
“저 피를 따라가!”
“네. 채주님!”
피가 흘러드는 곳은 황하의 강줄기 중 하나였다.
그들은 빠르게 배를 몰아서 그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서 반파된 배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위향아가 찾던 황강수로채의 배였다.
“어떻게 된 걸까요?”
“모르지. 전투…… 라기보다는 일방적인 학살이 있었던 모양인데. 일단 옆에 붙여봐.”
이소한은 침을 꿀꺽 삼키며 진백천의 말을 들었다.
가까워지자 참혹한 광경이 적나라하게 눈에 들어왔다.
완전히 박살 난 배 주변에는 신체의 일부가 손상된 사체들이 두둥실 떠 있었다.
그중에는 위향아의 배를 공격했던 돌아갔던 이들의 모습도 보였다.
“전부 죽었어요.”
“아니야. 살아 있는 자들도 있어.”
진백천의 말대로였다.
배의 갑판 위에서 대화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완전히 배가 옆으로 붙자 그제야 그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인원은 총 5명이었다.
그들은 가운데를 두고 둥글게 서서 뭔가를 하는 중이었다.
“……저게 뭐 하는 거지?”
마침내 목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까워지자 진백천과 일행은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가위!”
“……바위!”
“……보!”
놀랍게도 갑판에 나온 이들은 모두 가위, 바위, 보를 하는 중이었다.
그들은 진백천 일행이 나타났음에도 한번 일견하는 것만으로 관심을 끊었다.
그만큼 지금 하는 가위, 바위, 보가 그들에게 중요했다.
그들의 목숨만큼이나.
* * *
가위, 바위, 보는 누구나 다 아는 놀이였다.
하지만 그 어디서도 이렇게 진지하게 그것도 어른들이 하는 모습을 보기는 어려웠다.
둥글게 선 5명의 사람은 매 한 번 한 번 손을 내밀 때마다 서로의 주먹을 확인했다.
비기거나 누구 한 명이 이기지 않는 이상 가위바위보는 계속되었다.
“대, 대체 언제까지 해야…….”
“시끄럽다! 승부가 날 때까지 하는 거다! 그게 도박의 규칙이다!”
자세히 보니 5명 중 유일하게 한 명의 옷차림만이 달랐다.
다른 이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크고 호랑이 가죽으로 만든 겉옷을 둘러 입은 자였다.
단지 겉모습뿐만이 아닌 듯 말할 때마다 호랑이가 으르렁거리는 듯한 목소리였다.
‘엄청난 내력이야. 평범하게 볼 자가 아니다.’
진백천은 한눈에 이 모든 사체를 저자가 만들었음을 알아차렸다.
“가, 가위 바위 보!”
그리고 방금 말이 끝나기 무섭게 승부는 끝이 났다.
웃기게도 호랑이 가죽의 거한이 주먹이었고 나머지는 전부 보자기였다.
“크하하하하! 내가 이번에도 이겼구나!”
“우, 웃기지 마! 우리가 보자기잖아! 당신이 진 거라고!”
“가위, 바위, 보의 규칙도 모르나?”
거한은 나머지 4명의 남자를 노려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굵직한 눈썹이 꿈틀거리며 불편한 기색을 역력히 드러냈다.
“뭐라? 내가 있던 곳에서는 주먹이 보자기를 이기는 법이다!”
남자는 성인 남자 머리통만 한 주먹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거야 당신이 있던 곳이고 이곳은 달라!”
“어린아이들도 보자기가 주먹을 이긴다는 것쯤은 다 안다고! 그러니 어서 내기의 대가를 내놔!”
‘내기?’
진백천은 내기란 말을 듣자마자 거한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실제로 본 적이 없었기에 알아차리는데 제법 시간이 걸렸다.
“도광귀(賭狂鬼)”
별호를 봐도 알 수 있다시피 말 그대로 도박에 미친 귀신이었다.
십대악인(十大惡人)에 속한 자였지만 다른 악인들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다른 악인들은 무섭다고 회피하지만 도광귀는 일부러 찾아다니는 자들도 있으니까.’
사람들이 그를 찾는 이유는 바로 그와의 내기 때문이었다.
도광귀는 사람들에게 항상 내기를 걸었는데 그것의 대가로 거는 것들이 상상을 초월했다.
‘자신이 항상 가지고 다니는 황금, 혹은 자신의 능력 내에서 들어줄 수 있는 소원, 마지막으로 도광귀 자신이 익힌 무공.’
처음에는 도광귀의 말을 믿지 않았다.
내기에서 지더라도 말을 바꾸고 상대를 다 죽일 거라 생각했다.
십대악인 중 한 명이니 사람들의 의심은 당연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실제로 이긴 자들이 대가를 받아내자 그 인식이 조금씩 달라졌다.
‘자신의 목숨을 대가로 찾는 보물창고.’
잃을 것이 없고 낭떠러지에 몰린 자들이 일확천금(一攫千金)의 기회를 노리고 도광귀를 찾았다.
일정한 거처 없이 돌아다니는 도광귀였기에 그자를 봤다고 하는 소문이 들리면 그곳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그런 도광귀를 여기서 마주치다니.’
진백천은 그제서야 황강수로채가 왜 진백천의 귀에 들려오지 않았는지를 알았다.
아마도 이들은 이곳에서 전부 도광귀에게 죽임을 당했을 터였다.
“네놈들의 보자기가 나의 주먹을 이긴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지금 그런 문제가 아니라! 보자기가 주먹을 이긴다는 게 규칙이라고!”
“시끄럽다! 그렇다면 누구 말이 맞는지 지금 당장 실험을 해보자! 네놈들 말이 맞다면 내 황금과 무공을 전부 주지!”
도광귀는 자신의 주먹을 붕붕 돌리며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잠, 잠깐! 그건 말이 안 돼!”
“된다!”
도광귀는 가장 가까이 있는 자의 손바닥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콰아아악!
수적의 손은 기이하게 꺾이며 우그라 들었다.
“끄아아아악!”
“크하하하! 봐라! 내 주먹이 역시 더 강하다!”
다른 이들은 검게 변한 얼굴로 고통스러워하는 수적을 내려다봤다.
마치 포탄에라도 맞은 듯 손은 엉망진창이었다.
“내가 내기에서 이겼으니 이제 대가를 치를 차례다! 다들 이리 와라!”
“……나는 인정 못 한다! 왜 네놈 멋대로 규칙을 바꾸느냐!”
황강수로채의 채주가 도를 뽑아 들며 소리쳤다.
“시끄럽다! 내기는 내기야!”
도광귀는 살짝 떠오르는가 싶더니 어느샌가 그들 앞까지 다가갔다.
거한인 것 치고는 엄청난 움직임이었다.
“모두 공격해라!”
채주가 다급히 소리쳤지만 아무도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이미 도광귀의 주먹에 맞아 목이 꺾이며 강에 떨어져 나갔다.
“젠장! 내기 따위 하지 말걸 그랬…….”
“이미 늦었다. 크하하하하!”
도광귀는 채주의 목을 단숨에 부러뜨렸다.
이제 배에 살아남은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그제서야 진백천의 일행을 향해 돌아섰다.
호랑이의 것같이 부리부리한 눈이 사람들을 훑었다.
그는 뭔가 재밌는 장난감을 발견한 것처럼 눈을 빛냈다.
“크하하하하! 네놈들도 나를 찾아온 도박꾼들이겠지? 내기의 대가로 무엇을 원하느냐?”
도광귀는 빙그르르 돌며 주먹을 내질렀다.
그의 거친 동작에 따라 마치 주변의 공간이 일렁이는 듯했다.
“내 무공?”
그 후에는 품속에 손을 넣어 금원보를 꺼내 들었다.
“아니면 내 황금?”
아무도 반응이 없자 도광귀의 웃음이 더욱 진해졌다.
“그것이 아니래도 좋다! 소원을 들어주마! 자 나와 내기할 자들은 이곳으로 넘어 오거라!”
광오한 그의 외침에도 넘어가는 자들은 한 사람도 없었다.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봤는데 도광귀와 내기를 할 미친 자가 있을 리가…….
“저요! 저랑 해요! 내기 종목이 뭐예요?”
……있었다.
생각 없이 앞으로 나선 것은 위향아였다.
‘돌았나?’
진백천은 진심으로 그녀의 정신 상태가 걱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