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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회귀백서-152화 (152/346)

무림회귀백서 152화

55장 황하에 뜬 장강수로채와 위향아(2)

진백천은 위향아를 스치듯 한번 본 게 전부였다.

은형살수의 독에 중독되어 쓰러져 있던 것을 구하고 그 후에는 폭풍처럼 녹림에서 사라져 버렸다.

임백서와 위정자에게 호통을 치며 사라지는 모습이 기억에 강하게 남았다.

“……오랜만입니다. 위 소저.”

“네. 그때는 너무 빨리 헤어져서 제대로 인사도 못 나눴었죠?”

위향아는 배의 간판을 밟고 훌쩍 뛰어내렸다.

순간 커다란 배가 휘청일 정도로 힘 있는 움직임이었다.

진백천의 바로 앞에 내려선 그녀는 호탕하게 손을 내밀었다.

“…….”

하지만 진백천은 잠시 멍하니 그녀를 쳐다봤다.

당소예가 헛기침을 하면서 어깨를 치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손을 맞잡았다.

“하하. 제가 조금 컸죠? 요즘 성장기라 그런지 더 부쩍 컸어요.”

성장기라 그저 컸다고 하기에는 이미 눈높이가 진백천과 비슷했다.

그 행동도 남자답고 거칠었지만, 근골조차도 대단했다.

전에 봤을 때도 작은 키는 아니었지만 지금은 확연히 눈에 띄었다.

‘과연…… 임백서가 키우고 위정자가 낳은 딸인가?’

그나마 둘의 외모를 닮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나저나 회주님이 여기는 무슨 일이세요? 진주언가에 있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소림으로 향하는 중입니다.”

“아 정말요? 그거 잘됐네요! 저도 소림으로 가는 중이거든요!”

그녀는 녹림에서 내려와 바로 자신의 어머니와 만났다.

그리고 지금은 강호를 유람하며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태산북두인 소림사도 그녀의 목적지 중 하나였다.

“그렇다면 같이 가도 되겠군요.”

“정말요? 저희 어머니도 좋아하실 거예요!”

덩치는 컸지만 행동은 아직 어린 티가 났다.

진백천이 함께 간다는 것만으로도 기뻐하며 배로 뛰어들어갔다.

그리고 곧 그녀의 어머니인 팽지야도 모습을 드러냈다.

특이한 것은 팽지야의 주변에 호위를 선 이들이 녹림의 무인들이란 것이다.

‘장강과 녹림이 함께 호위를 서다니. 꽤나 재밌는 광경이네.’

“반가워요. 진백천 회주님.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요. 앞으로 잘 부탁해요.”

팽지야는 살짝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다시피 그녀는 팽가의 먼 방계에 속한 이였다.

팽가 특유의 큰 키와 장대한 기골은 그대로 위향아에게까지 물러 내려갔다.

‘어쩐지 다 큰 이유가 있었군.’

진백천은 말을 아끼며 배에 올라탔다.

“자아. 출발한다아! 목적지는 숭산이다!”

장강수로채의 무인들이 호쾌하게 외치며 뱃머리에 술병을 깨뜨렸다.

혹시 모를 사고와 사건을 피하게 해달라는 그들만의 의식이었다.

배는 곧 물살을 타고 빠르게 움직였다.

“와아. 회주님. 저것 좀 보세요.”

“멋지네.”

당소예는 간헐적으로 뛰어오르는 물고기를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장강에 비해 물이 혼탁했지만 오히려 더 생명력이 넘쳐났다.

그것뿐만 아니라 멀리 보이는 추수가 끝난 들판과 대비되며 황톳빛 바다에 있는 기분이었다.

진백천과 일행은 오랜만에 감성에 빠져서 주변 풍경을 멍하니 지켜봤다.

“처음 정도회에서 빠져나왔을 때만 해도 벼가 익어갈 무렵이었는데 참 시간 빨라. 그렇지?”

“맞습니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고 말입니다.”

“네. 저는 살도 찌고요?”

마지막에 꼬아내기식 함정이 있었지만 진백천과 황대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위향아가 그들을 식사에 초대했다.

만찬은 배의 선상 내 있는 탁자에 준비되었다.

장강수로채답게 음식은 다채롭고 화려했다.

“회주님. 출출하시죠?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드세요.”

처음 보는 물고기 요리뿐만 아니라 각종 해산물이 가득했다.

내륙에서는 쉽게 먹어 볼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녹림의 무인들이 있어서 육고기들도 제법 섞여 있었다.

하지만 그것 중에서도 진백천의 눈길을 가장 끈 것은 역시나 술이었다.

“호오. 이건 소흥주(紹興酒)?”

“네. 알아보시네요. 절강성에 갔다가 잔뜩 구한 것들이에요.”

위향아는 호탕하게 한 병을 통째로 진백천에게 건넸다.

산적들과 함께 자라와서 행동하는 게 무척이나 호쾌했다.

그런 모습을 보고 팽지야가 인상을 찌푸렸지만, 딱히 뭐라 하지는 않았다.

그녀의 앞에도 똑같이 술병이 하나 놓여 있었다.

위향아는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족족 명주를 쟁여놨기에 부족함이란 없었다.

“저번처럼 술만 마시지 말고 안주도 같이 먹어.”

“네. 어머니.”

‘역시 모전여전인건가?’

짙은 갈색의 소흥주는 살짝 따듯하게 중탕을 해놓은 상태였다.

“소흥주를 먹을 줄 아시는군요!”

“겨울에는 약간 따듯하게 먹는 게 풍미가 좋다고 해서요.”

진백천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술병을 입가에 가져갔다.

짭쪼름하면서 부드러운 끝 맛이 무척이나 감미로웠다.

‘왜 명주인지 알 것 같군!’

진백천이 병째 마시는 모습을 보고 위향아가 크게 기뻐했다.

“역시 회주님은 영웅이시네요! 그동안 술 상대가 없어서 적적했거든요!”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 회주님 이제 말도 편히 하세요!”

둘은 병을 부딪치며 입가에 가져갔다.

비싼 술이다 보니 음식과도 잘 어울리고 뒤끝도 없었다.

“그럴까?”

빈 병이 한 병이 되고 여러 병이 되자 위향아는 서서히 편하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진백천이 녹림과 장강과 친하기도 하고 친화력이 좋은 탓도 있었다.

“아참. 그러고 보니 회주님이 진주언가의 아가씨도 정혼자도 찾아주셨다면서요?”

“찾아줬다기보다는 서로의 짝을 찾은 것뿐이지.”

위향아는 술을 벌컥벌컥 들이켜더니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그렇다면 저도 정혼자 좀 찾아주세요!”

“향아야! 쓸데없는 소리!”

갑작스러운 그녀의 말에 놀란 것은 팽지야였다.

평소 호쾌한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이렇게까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위향아는 진심인 듯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진백천을 쳐다봤다.

“왜요. 어머니도 항상 그러셨잖아요. 좋은 남자 찾으면 바로 시집가라면서요! 언제까지 이렇게 떠돌아다닐 수만은 없다고요.”

사실 그녀의 입장이 애매한 것은 사실이었다.

녹림에 자리 잡기에는 친아버지인 위정자가 걸렸고, 장강으로 가기에는 평생을 산에서 살아왔기에 자신이 없었다.

이럴 때 마음만 맞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어떤 방식으로도 잘 살 자신이 있었다.

“흐음. 그래? 그럼 어떤 남자를 원하는지 들어볼까?”

“정말요? 저는 정말 까다롭지 않거든요.”

그녀는 자신의 이상형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말이 이상형이지, 사실은 술주정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우선은 저만큼 컸으면 좋겠고요. 무공은 잘하지 못해도 저와 항상 붙어 있으면 돼요. 아! 그리고 눈치도 빨라서 제 마음도 미리 알아주고요! 그리고 아버지들처럼 늠름하면 더욱 좋고요!”

‘거의 비서에 가까운 조건인데?’

그때였다.

묵묵히 듣기만 하던 진백천의 시선에 장강수로십팔채의 채주인 이한소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는 심각한 얼굴로 그녀의 말을 경청 중이었다.

위향아가 키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허리를 쭉 펴기도 하고 늠름한 표정을 지었다.

‘멀리 찾을 것도 없겠어.’

문제라면 이한소는 그녀가 말하는 것처럼 늠름하지 못했다.

장강수로채 무인들답게 호리호리하고 날렵했다.

위향아와 함께 서 있으면 오히려 왜소해 보일 정도였다.

“꼭 풍채가 좋아야 하나?”

“그런 건 아닌데요. 이왕이면 큰 게 좋죠.”

이한소의 표정이 순식간에 시무룩해졌다.

당소예와 황대원도 눈치챘는지 서로 눈을 마주치며 눈을 깜박였다.

‘안타까운 짝사랑이네. 그러니까 장강 수적이 황하까지 와서 이러고 있겠지.’

진백천은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술을 들이켰다.

“회주님 주변에는 그런 분 없어요? 하아. 외로워라.”

붉어진 얼굴로 한숨을 내쉬던 위향아의 시선이 문득 황대원을 향했다.

그러고 보니 황대원은 정확히 그녀의 기준에 적합했다.

늠름하기로는 둘째라 그러면 서럽고, 황보세가라는 가문도 위명이 높았다.

그녀는 고개를 비스듬히 틀고 황대원을 쳐다봤다.

살짝 취한 눈동자가 술기운이 그득했다.

“황 무사님. 결혼 안 하셨죠? 저는 어떠세요?”

딱딱하게 굳은 황대원과 달리 격렬한 반응은 그 바로 옆에서 나왔다.

당소예는 마시던 물을 그대로 바닥에 내뿜었다.

“황, 황 무사님은 안 돼요!”

“으응? 만나시는 분이 계셨구나. 아쉬워라.”

당소예는 붉어진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것은 황대원도 마찬가지였다.

“두 분 되게 잘 어울리시네요! 응원할게요.”

위향아는 술이 다 빈 것을 보고 선내 안쪽으로 향했다.

팽지약도 피곤하다고 들어가 버리자 남은 것은 진백천의 일행뿐이었다.

진백천은 황대원과 당소예를 번갈아 봤다.

“호오. 그렇단 말이지? 어쩐지 나 말고 황대원한테만 전병을 챙겨준다 싶더니만.”

“에이. 그거야. 황 무사님이 고생하시니깐 그런 거죠.”

“크흠. 오해십니다. 회주님.”

둘은 아니라 발뺌했지만 진백천은 피식 웃기만 하고 말았다.

‘둘이 잘 어울리긴 하지.’

잠시 후 위향아는 양손에 술을 잔뜩 들고 나타났다.

“이렇게 된 거 끊기지 않게 마셔요 우리! 황하에서 바라보는 노을이 정말 이쁘거든요.”

하지만 노을을 보며 술을 더 마실 그녀의 기대는 철저히 부서졌다.

콰아앙!

어디선가 나타난 배 한 척이 그대로 장강수로채의 배를 들이받은 것이다.

위향아가 휘청이며 들고 있던 술병들이 전부 바닥에 떨어지며 깨져 버렸다.

명주 중에서도 특히 그녀가 아끼던 것이었다.

“……뭐, 뭐야!”

그녀는 도끼눈을 뜨고 문제의 원흉을 노려봤다.

장강수로채의 배와 비슷한 크기의 배였다.

다른 점이라면 선미가 조금 더 날카롭고 뾰족한 뿔이 달려 있었다.

누가 봐도 의도적으로 그 뿔로 배를 들이받은 게 분명했다.

‘흐음. 저 문양은 뭐지?’

상대 배에는 물결표시의 황톳빛 깃발이 달려 있었다.

“아가씨. 괜찮으십니까?”

“어느 놈들이 감히!”

“네놈들이야말로 감히 우리 영역에서 돌아다니다니 죽고 싶으냐?!”

배에 올라온 이들은 전부 황색 두건을 두른 자들이었다.

그들은 도를 빼 들고 날카롭게 주변을 훑었다.

“저놈들은 또 누구지?”

“회주님도 모르세요?”

몇 번의 회귀를 겪은 진백천조차 처음 보는 이들이었다.

모두의 의문 섞인 시선을 눈치챘는지 가장 앞에선 황토색 두건의 남자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우리는 황강수로채다!”

“황강수로채? 장강수로채 따라 한 가짜인가?”

“아마도 그런 것 같습니다.”

진백천과 황대원의 대화를 들은 자들은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 얼굴을 구겼다.

“가짜는 무슨! 우리가 먼저였다! 저들이 따라 한 것이다!”

사실 누가 먼저든 상관은 없었다.

이런 좁은 강폭에서 수적질을 한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으니까.

그들이 잘 알려지지 않은 것도 크게 해 먹는 것 없이 잔잔하게 살아온 탓으로 보였다.

‘기껏해 봤자 통행세를 받아먹는 게 전부겠지.’

이 배에 있는 자들 중에는 황강수로채인지 뭔지 따위 무서워할 이들은 없었다.

오히려 기세를 끌어올리며 무기를 뽑아 들었다.

생각과 다른 분위기에 놈들은 제법 당황한 눈치였다.

“한소 오라버니. 배 상태는 어때요?”

위향아의 질문에 이한소가 재빨리 배를 살폈다.

배의 옆쪽은 완전히 구멍이 뚫린 상태였다.

“아무래도 뭍으로 가서 배를 수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놈들이 아주 제대로 박았습니다.”

“하아. 빡치게.”

술까지 마신 위향아는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놀랍게도 그대로 바닥을 박차며 놈들에게 달려들었다.

그 움직임이 제법 쾌속했다.

‘배에서 뛰어내릴 때 눈치챘었지만 제법이야.’

녹림의 채주만 익힐 수 있는 거령패천력(巨靈覇天力)의 내력에 보법인 거령보(巨靈步)였다.

‘내력도 평범치 않다.’

임백서가 어릴 때부터 그녀에게 영약을 쏟아부은 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녀가 장을 내뻗자 황강수로채의 무인 여러 명이 동시에 튕겨 나갔다.

“커헉!”

“고, 고수다!”

그들은 위향아의 단 일수도 버티지 못했다.

남은 이들은 겁에 질려서 스스로 바다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위향아의 분노를 달래지 못했다.

포풍거령장(暴風巨靈掌).

거력의 장기가 그대로 황강수로채의 배에 쏟아졌다.

밑창이 과자처럼 부서지며 서서히 침몰했다.

진백천은 그 위력을 보고 제법 놀랐다.

“다음 대의 녹림채주라고 해도 믿겠는데? 아니, 녹림여제인가?”

그런 놀람은 당소예와 황대원도 마찬가지였다.

둘은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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