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회귀백서 151화
55장 황하에 뜬 장강수로채와 위향아(1)
마뇌가 새로운 작전으로 한창 바쁠 때.
진백천은 일행과 함께 하남으로 넘어간 뒤였다.
팽가칠도는 반병신이 된 채로 감옥에 갇혔고, 팽가는 그 일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봉문을 반년으로 늘렸다.
이제 사람들이 모이면 하북팽가에 대한 욕으로 대화를 시작할 정도였다.
“회주님. 그거 들으셨어요? 오대세가에서 이제 하북팽가를 빼버리고 진주언가를 대신한다고 하더라고요.”
“흐음. 충분히 그럴 만도 하지.”
기우는 달이 하북팽가라면 진주언가는 차오르는 해였다.
하지만 그런 당소예의 말도 진백천의 귓가에는 잘 들려오지 않았다.
일금영이 죽기 전에 했던 말이 자꾸 귓가에 맴돌았던 탓이었다,
‘흐음. 천마의 부활이라.’
피로 물든 일금영의 두 눈은 환희로 차 있었다.
마치 자신이 죽더라도 만족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 시선은 정확히 진백천을 향해 있었다.
‘꺼림칙하단 말이지.’
그렇다고 하더라도 떠나간 마뇌를 붙잡고 천마에 대해 캐물을 수도 없었다.
진백천은 슬슬 자신도 본격적으로 정마대전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우. 원래대로라면 그 전에 유유적적하게 놀 생각이었는데.’
이제 와서 혼자만 쏙 빠져나가기에는 제법 중요한 역할이 되어버렸다.
적어도 정도회의 상징적인 존재로는 남아 있어야 했다.
대신 본격적인 마교와의 싸움이 시작되면 지금처럼 자신이 혼자 나서서 싸울 수는 없었다.
“손발이 필요해.”
“네? 손발이요?”
“응. 마음 걱정 않고 일을 맡길 수 있는 자들 있잖아.”
당소예뿐만 아니라 황대원마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도회의 회주인 진백천이 이렇게 말하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장로님들도 계시고 대주님들도 계시잖아요. 아. 혹시!”
당소예가 손바닥을 탁 치며 게슴츠레한 눈으로 쳐다봤다.
“……뭐가?”
“또 다 그만두고 놀고 싶다는 말씀하시려는 거죠? 일 다 맡겨 버리고요.”
“나도 그러고 싶지. 그러고 싶은데 세상이 나를 가만두지 않아.”
“그거야 회주님이 워낙 능력이 있으시니까 그렇죠.”
진백천은 한숨을 내쉬며 창밖을 쳐다봤다.
‘정도회와 맹우를 맺거나 친한 곳이 당가와 녹림, 장강, 화산, 종남, 무당, 진주언가인가.’
거기에 황실까지 생각하면 그 세력은 제법 작지 않았다.
이 정도면 정마대전에 전면에 나타나는 마교와 칠대마벌(七大魔閥)을 상대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불안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이 모든 것의 구심점은 결국 나 하나뿐이야. 내가 죽는다면 결국 다 뿔뿔이 흩어지겠지.’
진백천은 그동안 억지로 감춰두었던 칠대마벌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모든 죄악과 상처를 영광으로 삼는 정신 나간 놈들의 집약체인 구악정(九惡井).
마교의 혈화궁(血花宮)과 만상궁(灣商宮), 자전마궁(紫殿魔宮)을 뜻하는 삼행마궁(五行魔宮).
철갑만마대(鐵甲萬馬袋)를 비롯해 무력대대를 뛰어넘어 가히 군대를 이루는 다섯대의 오마군종대(八魔群種袋).
황금이 가진 마력(魔力)으로 세상을 조종하는 황금마전(黃金魔殿).
세상의 모든 밤을 지배하고자 하는 쾌락의 환야루(幻夜樓).
암살자 집단인 살막을 시작으로 희대의 살수 조직인 혈막(血幕).
나타나자마자 장강수로채를 찢어발기고 바다를 점령하는 마해련(魔海聯).
지금까지 진백천이 상대한 이들은 그들 중 극히 일부일 뿐이었다.
‘으으. 머리 아프다. 머리 아파.’
회귀 전의 기억에 따르면 가장 먼저 나타나는 것은 마인들이었다.
불현듯 나타난 그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전부 죽였다.
그들이 위험한 것은 바로 자신이 죽기 전까지 살인을 멈추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 출신도 가리지 않고 나타났지.’
어제까지 멀쩡했던 가게 주인이 미쳐서 날뛰었고, 구걸을 하던 거지가 칼을 들고 휘둘렀다.
그들의 공통점은 전부 하나였다.
누군가 줬는지 모를 마검(魔劒)을 지녔다는 것.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 누가 만들었는지조차 진백천도 자세히 알아내지 못했다.
그저 마인들을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벅찼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아무것도 얻지 못한 것은 아니야.’
일반인들이 마인이 되어 죽기 직전까지 싸우는 것은 보통의 단약(丹藥)으로 가능하지 않았다.
흑백신의가 무덤에서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쉽지 않았다.
‘한 번으로 어렵고 만드는데 엄청난 재료가 들어가야겠지.’
과거의 진백천은 그 단약과 마검의 제조에 황금마전(黃金魔殿)이 개입되어 있다는 것쯤은 알았다.
이번에는 그들이 마인들을 생산해서 사람들을 죽여대기 전에 기필코 막아낼 생각이었다.
‘아직은 시간이 있어. 우선은 소림의 일과 무림대회부터 생각하자.’
진백천은 눈을 감고 달아오른 머릿속을 진정시켰다.
태산북두(泰山北斗) 소림사가 정도회의 편에 선다면 그것만큼 큰 힘이 없었다.
수만에 달하는 소림의 무인과 속가제자들은 그 수만으로도 충분한 도움이 되었다.
‘원진 장로와도 인연을 쌓아놨으니 불가능한 일만도 아닐 거야.’
전부 진백천이 하기 나름이었다.
“회주님. 이거 드세요.”
그때 당소예가 자신의 품속에서 전병을 하나 꺼내 건넸다.
아무래도 눈을 감고 있던 진백천의 모습을 보고 오해한 모양이었다.
“저희는 항상 회주님의 옆에 있는 거 아시죠?”
“……낯간지럽게 갑자기 왜 이래.”
“그간 고생하신 거 잘 알아요. 저희도 옆에서 다 봤는걸요.”
“어떤 것이든 시키시면 목숨을 걸고 수행하겠습니다.”
황대원도 부리부리한 눈을 빛내며 말했다.
진백천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회귀 전과 다른 점이라면 이런 것이었다.
지금은 자신의 곁에 소중한 사람들이 남아 있었다.
‘이들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노력해야지.’
“그래. 대신 더 강해져야 되는 것쯤은 알고 있지?”
“물론입니다. 뼈를 깎아낼 각오로 수련 중입니다.”
황대원이 자신의 소매를 들쳐 보이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안 보이던 것이 손목에 채워져 있었다.
진백천이 유석경에게 채웠던 철고리와 똑같은 것이었다.
“개당 30근(18kg)입니다!”
자랑스럽게 말하는 황대원이었다.
옷으로 가렸음에도 말 근육으로 뒤덮인 그의 몸은 숨길 수 없었다.
‘어쩐지. 요즘 들어 더 몸이 커지는가 싶더니…….’
“흐음. 가끔은 나랑 대련이나 하자.”
“영광입니다!”
황대원은 고개를 숙이며 진심으로 기뻐했다.
진백천은 뿌듯한 얼굴로 당소예도 살폈다.
그러고 보니 당소예도 전과 다르게 제법 몸이 커진 느낌이었다.
“오오. 나 몰래 수련이라도 한 거야? 제법 몸이 커졌는데?”
“……네?”
당소예는 움찔하며 딱딱한 얼굴로 진백천을 올려다봤다
바로 옆에서 황대원이 자신은 못 들은 척 고개를 돌렸다.
“제가 그렇게 커 보여요? 아닌데. 옷은 똑같은데요? 저 뚱뚱해 보여요?”
진백천은 그 후로 수십 번은 자신이 잘못 본 거 같다고 말한 후에야 당소예의 무한 질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 * *
진백천이 탄 마차는 곧 산맥을 지나 강줄기 닿은 남악(南樂)에 도달했다.
그곳에서 배를 타고 내려가면 숭산까지는 채 일주야가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배를 타기 전에 그들은 의외의 헤어짐을 맞이했다.
“슬슬 다리도 다 나았으니 모산파로 가보겠습니다.”
“그래. 그동안 고생했어.”
“……갈 때 출출할 텐데 이거 가져가.”
당소예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간식거리를 전부 싸서 도홍경에게 건넸다.
누가 봐도 짬처리였지만 도홍경은 감동에 찬 눈으로 눈물을 글썽였다.
“매일 누님이 구박만 해서 이렇게까지 저를 생각해 주는지 몰랐습니다!”
도홍경은 잔뜩 커진 봇짐을 지고 몇 번이나 인사했다.
“나중에 무슨 일 생기면 연락하고 모든 일이 정리되면 정도회에 들려.”
“네. 알겠습니다! 그러면 다시 뵐 때까지 몸조심하십시오!”
그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뒤돌아갔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멈춰 서더니 품속에서 부적 몇 장을 꺼내 들었다.
도홍경은 머리를 긁적이더니 부적을 손가락에 끼우고 진언을 외웠다.
상대의 복을 염원하는 기복부(期福符)였다.
놀랍게도 부적은 도홍경의 진언에 따라 활활 타오르더니 허공을 흩날렸다.
“하하. 그냥 가기에는 조금 아쉬워서…… 정말 가보겠습니다.”
진언이 끝나자 그는 정말로 꾸벅 인사를 하고 떠났다.
아마 정말로 실력 있는 도사이다 보니 그 기복부는 정말로 효과가 있을 게 분명했다.
진백천은 그가 사라질 때까지 눈으로 배웅했다.
펄럭이는 도포 뒤로 발자국만이 아쉬움처럼 남았다.
‘마기자의 비동이 열리기 전까지 다시 올 테니 재회까지 그리 길지 않겠지.’
모산파의 신물을 얻을 도홍경이 어떻게 변할지 궁금했다.
“그럼 우리도 움직이자.”
“네. 회주님!”
아쉬움을 달래고 그들이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바로 강가의 나루터였다.
하남을 가로지르는 커다란 강답게 그곳에는 작은 배부터 연회용 커다란 배까지 다양했다.
그런데 배들을 둘러보던 진백천의 눈에 의외의 배가 들어왔다.
“장강수로채?”
유난히 커다란 검은색의 배에는 장강수로채의 문양인 18개의 작살이 새겨져 있었다.
그 밑에는 몇 번째인지 번호가 적혀 있었는데 마지막인 18번이었다.
“장강에 있어야 할 장강수로채가 왜 여기 있어?”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황하에서는 전혀 못 본 것 같아요.”
“강이 완전히 다르니까.”
대륙에는 크게 두 개의 강이 흘렀다.
북쪽에는 황하강(黃河江)이, 남쪽에는 장강(長江)이었다.
두 강은 단순히 이름이 다른 것뿐만 아니라 그 특성도 무척이나 달랐다.
물살이 강하고 물이 탁한 황하강과 달리 장강은 폭도 넓고 유속이 느려서 호수처럼 느껴졌다.
실제로 장강의 중류에는 웬만한 성 크기의 파양호(鄱陽湖)와 동정호(洞庭湖) 같은 거대한 호수들이 존재했다.
‘장강수로채가 근거지로 삼고 있는 곳이기도 하지.’
이런 이유로, 장강을 기준으로 북쪽에는 호북성(湖北省), 남쪽에는 호남성(湖南省)으로 불렸다.
황하는 그에 비해 강폭도 좁고 물살이 빨라서 그들 특유의 움직임을 보여주기 어려웠다.
“십팔채주면 가장 마지막인데 말이지.”
진백천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그 배로 향했다.
단지 겉모습뿐만이 아닌지 그곳에는 실제 장강 무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이런저런 물건을 챙기는 중이었다.
진백천이 다가가자 그들은 경계 어린 얼굴로 노려봤다.
수적 특유의 거친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너. 뭐야? 뭔데 슬금슬금 가까이 다가와? 확 그냥 회를 쳐서…… 커헉!”
진백천에게 으름장으로 놓으려던 수적은 뒤통수를 부여잡고 고꾸라졌다.
번개처럼 다가와 머리통을 후려갈긴 것은 멀대 같은 키에 호리호리한 외모의 남자였다.
“채, 채주님! 왜 갑자기 제 대가리를?”
“새끼야! 너 사람보고 으르렁대지 말라 그랬지! 네놈이 개새끼야! 왜 아무한테나 짖어대?”
채주라 불린 자는 진백천을 한눈에 알아봤다.
허리를 반쯤 구부린 채로 다가왔다.
“아이고! 이게 누구십니까! 진백천 회주님 아니십니까?”
“나를 본 적 있나?”
“네! 저번 장강녹림연합을 맺었을 때 저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단 한 번뿐이었지만 이 빛나는 용안을 어찌 잊겠습니까!”
가장 막내인 18번째 채주라 그런지 무척이나 아부가 익숙해 보이는 자였다.
그는 자신을 이한소라고 소개하며 진백천의 눈치를 살폈다.
총채주인 위정자가 정도회의 회주인 진백천을 보면 자신을 본 것처럼 대하라 명했기 때문이었다.
“장강수로채가 황하에서도 활동을 했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하. 저희도 특별한 사정이 있어서 잠시 들렀을 뿐입니다.”
딱히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 것을 보면 진백천에게도 말하기 어려운 듯 보였다.
“다름이 아니라 내가 숭산까지 배를 타고 이동하려는데 동행할 수 있을까 해서.”
“숭산까지 말입니까?”
이한소는 순간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뒤를 돌아봤다.
아마도 배에 누군가 타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는 자신의 선에서 결정하기 어려운지 뒤통수를 때렸던 무인을 배 안쪽으로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배에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으응? 진백천 회주님?”
그녀는 다름 아닌 임백서의 뻐꾸기 딸이자 위정자의 친딸인 임향아, 아니, 위향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