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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회귀백서-150화 (150/346)

무림회귀백서 150화

54장 여기가 네놈 무덤이야(2)

초토화된 현장을 바라보는 도홍경은 눈을 꿈뻑거렸다.

그리고 이내 큰소리를 듣고 사방에서 몰려드는 정도회의 무인들과 황대원의 표정도 마찬가지였다.

“이자들을 전부 회주님 혼자서 상대하시다니. 역시 대단하십니다!”

그나마 살아남은 것은 마지막 순간에 도강으로 버텨낸 팽가칠도의 장로들이었다.

장로들은 피를 토하면서도 끝까지 진백천을 노려보며 저주했다.

“……네, 네놈이……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결국엔 팽가가……!”

“어휴. 저 늙은이들은 저렇게 돼서도 입만 살았네. 다들 끌고 가.”

“네. 회주님!”

황대원은 무인들을 통솔해서 살아남은 자들을 끌어냈다.

이들은 하북팽가와 또 다른 협상에 쓰일 판돈이었다.

‘흐음. 끝끝내 지살대의 무인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건가?’

분명 근처에 있는 것은 분명한데 지켜보는 것을 제외하면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그것은 도홍경이 느끼기에도 마찬가지였다.

‘아쉽군. 한판 붙어보고 싶었는데.’

진백천은 서서히 정리되는 상황을 지켜보며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그때였다.

검이 검집에 채 들어가기 전에 싸늘한 예기가 그의 신경을 곤두세웠다.

순간 찌릿하고 전격에 감전이라도 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뭐지?’

활짝 열린 상단전은 계속해서 그에게 불안한 경종을 울려댔다.

진백천으로써도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검을 다시 뽑을 새도 없이 재빠르게 바닥으로 몸을 뉘었다.

그러자 보인 것은 강기가 휩싸인 손날이었다.

방금까지 자신의 목이 있던 자리에 스치듯 지나갔다.

‘드디어 나타났구나!’

만약 그대로 있었다면 죽는 줄도 모르고 목이 베였을 터였다.

진백천이 공격을 피했지만 일금영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저 뒤로 눕는 진백천을 향해 재차 손날을 뻗었다.

놀라운 것은 그때까지도 다른 무인들은 일금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엄청난 움직임이다.’

진백천은 독고구검을 빼 들며 곧바로 손날을 쳐냈다.

카앙!

피륙과 부딪쳤지만 묵직한 금속음이 울려 퍼졌다.

이번에는 전처럼 실핏줄조차 생기지 않았다.

일금영은 전신을 무기처럼 사용해서 진백천을 공격했다.

“짓이겨주지!”

한쪽을 들어 올리더니 그대로 진각을 밟듯 진백천의 머리를 노렸다.

문제는 역시나 그 엄청난 속도였다.

‘흐음!’

파초식(破招式).

혹시나 하고 강기에 휩싸인 발을 향해 검을 휘둘렀지만 통하지 않았다.

일금영의 움직임은 구촉비전으로 빠르기만 할 뿐 초식 따위 존재하지 않았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공격은 비교적 준비 동작이 큰 태천검(台千劍)과는 상성이었다.

‘크윽!’

진백천은 귓볼을 스치고 지나가는 발을 피하며 몸을 일으켰다.

순간 뜨끈한 감각과 함께 찢긴 상처에서 피가 흘렀다.

“회주님!”

한 차례 경합이 이뤄지고 난 뒤에서야 황대원과 정도회 무인들이 주변으로 달려들었다.

하지만 진백천은 손을 휘저으며 그들을 뒤로 물렸다.

“내가 상대할 테니까 물러나 있어.”

무작정 달려들었다가는 괜한 희생만 늘릴 터였다.

진백천은 한차례 강하게 일금영을 밀어내며 수풀 쪽으로 뛰어갔다.

일금영은 다른 이들을 신경도 쓰지 않고 그를 따라왔다.

놈의 시선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진백천에게만 고정되었다.

붉어진 눈동자는 얼핏 광기마저 흘렀다.

-황대원. 혹시 다른 마인들이 나타날지 모르니까 그쪽에서 대기하고 있어.

-네. 회주님!

“천하의 정도회 회주라 해도 개처럼 도망가는 건 똑같이 비루하군! 마지막까지 가지고 놀다 죽여주지!”

“마뇌가 지시한 거냐?”

“알 거 없다!”

진백천은 눈알을 찔러오는 손가락을 피하며 조금 더 깊은 숲속으로 들어갔다.

‘이놈의 반응을 보면 마뇌가 나서서 지시한 건 아닌 것 같은데.’

만약 마뇌가 직접 계획을 짰다면 지살대 무인 세 명이 동시에 나섰을 터였다.

어중간하게 그를 죽이려 들었다가는 오히려 상황이 마교에 더 안 좋게 흘러갈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도 일금영이 혼자 왔다는 것은 아무래도 견제 혹은.

‘……버리는 건가?’

일금영의 눈은 서서히 달아오르는 쇠처럼 붉어졌다.

구촉비전의 특징이라고 보기에는 그 모습이 기이했다.

마치 피가 끓어오르는 사람처럼 이를 악다물고 달려들었다.

그럴수록 진백천의 몸에 생겨나는 상처도 많아졌다.

‘부작용이군. 그래서 버리는 거야.’

“크으윽!”

일금영은 진백천의 속마음에 대답이라도 하듯 신음을 내뱉으며 손을 내뻗었다.

주변에 걸리는 나무 따위 전부 박살 나며 파편으로 튀었다.

콰드득!

진백천은 그런 일금영의 공격을 받아주며 점차 더 안쪽으로 들어갔다.

인적이 닿지 않는 숲으로 들어가자 우거진 나무로 인해 조금씩 어두워졌다.

다른 이들의 시선이 닿지 않자 진백천은 서서히 숨겨두었던 기운을 내뿜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천마신공의 마기는 그동안의 봉인 아닌 봉인이 싫었는지 거칠게 뻗어 나갔다.

검은 연기는 숲속의 그림자와 섞여 곧 주변을 가득 채웠다.

“끈질기군! 끈질겨!”

일금영은 주변이 점차 어두워지는 것도 모르고 오로지 진백천만을 노려봤다.

이내 붉게 변한 눈동자를 비롯해 전신에서 진득한 마기가 피어올랐다.

“정말 멍청한 놈이군.”

“뭐?”

“네놈 혼자서 정말 나를 죽일 수 있다고 생각했냐?”

“물론이다!”

일금영은 땅을 박차며 거칠게 손을 뻗었다.

마기에 휩싸인 손날을 그대로 진백천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크크큭!”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착각이었다.

진백천은 여전히 서 있었고 자신의 마기와 손만이 모래가루처럼 산산이 부서졌다.

“……이게 뭐지?”

“뭐긴 뭐야. 네놈이 그렇게 좋아하는 마기잖아.”

진백천이 웃자 곧 어둠이 넘실거리며 그를 휘감았다.

웃음소리에 따라 주변의 어둠이 일렁였다.

아니, 그것은 단순한 어둠이 아니었다.

“이게 전부 마기라고?”

구촉비전의 부작용에 의해 심신이 무너져가던 일금영일지라도 천마신공의 마기에 화들짝 놀랐다.

순간적이나마 정신을 차리며 주변을 살폈다.

어느샌가 숲속은 마기로 가득 메워진 상태였다.

하늘을 올려다봐도 햇빛조차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마기였다.

“……이건 대체 무슨 마공…… 이지?”

진백천은 아무런 대답 없이 가만히 웃기만 했다.

애초에 물었던 일금영조차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물은 것이 아니었다.

답은 지살대 무인인 자신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자신의 근원이 되는 마공이 자연스레 흩어지고 경애감으로 차올랐다.

“……천마신공.”

“조용히 하라니까.”

일금영은 붉어진 눈으로 진백천을 쳐다봤다.

정파의 수장이라는 정도회의 회주였다.

그런 진백천이 천마신공을 익히고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일금영의 놀람과 다르게 진백천도 속으로 꽤나 진땀을 빼는 중이었다.

‘후우. 오랜만에 끄집어내니까 제법 다루기 어렵네.’

진백천은 덜덜 떨리는 손을 감추며 이를 악물었다.

자신의 내력이 강해지면서 천마신공의 마기도 덩달아 강해졌다.

평소에는 쥐죽은 듯 가만히 있지만 이렇듯 한번 모습을 드러낼 때면 그 흉포함을 감추지 않았다.

‘조용히 저놈만 집어삼켜!’

어둠보다 더 어두운 마기가 진백천의 의지에 반응하며 서서히 일금영을 집어삼켰다.

일금영은 자신을 덮는 마기에 몸을 흠칫 떨었지만 도망치지 못했다.

그의 마기와 투기는 이미 모래성처럼 산산이 부서진 후였다.

으드드드드득-

“크윽!”

천마신공의 마기는 거칠었다.

일금영의 살점을 뜯고 뼈를 우그러뜨렸다.

거친 분쇄에 어둠 속에서 피의 꽃이 피어올랐다.

천마신공의 마기는 역시나 패도적이고 잘 통제가 되지 않았다.

‘마공을 상대할 때면 최강이지만 자칫 잘못하면 나조차도 잡아먹힐지 모르는 양날의 검이야.’

상대를 처리하자 천마신공의 마기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진백천의 몸으로 얌전히 스며들었다.

마기가 사라지자 엉망진창이 된 일금영의 모습이 드러났다.

놈은 붉게 물든 얼굴로 자신의 처지에 어울리지 않게 환한 미소를 지었다.

“……마뇌님의…… 말씀이 맞았군.”

“뭐? 마뇌가 뭐라 했는데?”

“……천마님의 부활…… 모든 것은…… 그분의…… 뜻대로…….”

일금영은 이해 못 할 말만 내뱉고 그대로 절명했다.

놈이 자리에는 사체의 잔해와 함께 일금영을 뜻하는 작은 패 하나만이 떨어져 있었다.

패에는 일금영(一禽影)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천마의 부활은 개뿔!”

진백천은 몸을 툭툭 털며 놈의 패를 집어 들었다.

분명 어딘가에서 쓸 일이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나중에 마뇌를 만나면 네놈 안부는 꼭 전해주마.”

진백천은 바로 숲을 벗어났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자리에는 피 냄새에 이끌린 늑대들이 와 사체를 뜯어먹었다.

남은 것은 핏자국뿐이었다.

* * *

진주언가를 빠져나온 마뇌는 마인들과 함께 기루로 향했다.

물론 그 기루는 평범한 곳이 아니었다.

오래전 마교의 오행마궁(五行魔宮) 중 하나였다가 이제는 독립적인 집단이 된 환야루(幻夜樓)였다.

물론 이렇게 분리가 된 것 또한 강호에 스며들기 위한 것이었으니 여전히 마교의 집단이었다.

“마뇌님!”

마뇌가 비밀 공간에 들어서자 얇은 비단 한 장만 입은 여인이 바닥에 바싹 엎드렸다.

환야루를 이끄는 수장이자 마뇌의 제자 중 하나였다.

마뇌는 자연스레 가장 위쪽의 권좌에 앉아서 그녀를 내려다봤다.

“소교주는?”

“일거수일투족 지켜보는 와중에 지원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그녀가 건네는 책자에는 소교주의 사혈방에서 하는 모든 것들이 적혀 있었다.

심지어 하루에 화장실을 몇 번 가는지도 전부 적혀 있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이들이 바로 환야루의 기생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사혈방에 있는 자들이라고 해도 기루를 찾지 않는 것은 아니었고 여인의 품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이것저것을 털어놨다.

그것과 간자들의 정보가 합쳐지니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것 같은 정보가 만들어졌다.

“흐음. 소교주가 제법 일을 크게 벌이는군. 너무 어수룩해!”

책자에는 마뇌의 눈살이 찌푸려질 만한 것들이 잔뜩 적혀 있었다.

마화린은 자신의 세력을 늘리기 위해 집착 중이었다.

인근의 고아들을 모아 마인으로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수가 부족하면 납치까지 감행했다.

“자신들의 뜻에 따르지 않는 자들은 무참히 죽여버렸군. 눈치 따위 전혀 보지 않아.”

만약 환야루나 다른 마교의 단체가 뒤를 감춰주지 않았다면 진즉에 모습이 드러났을 터였다.

“쯧쯧. 이리 철없이 움직여서야 진백천 회주의 발끝도 쫓아가기 힘들어. 어찌 같은 종자이거늘 이리 다를까?”

진백천과 직접 대담을 나눴기 때문일까.

소교주인 마화린은 그에 비해 한참이나 부족해 보였다.

마뇌는 잠시 책자를 내려다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곧 있으면 광동성의 성주가 돌아온다. 그러면 그동안 감춰놨던 것들이 일부 드러나게 될 거야.”

그렇다면 자연스레 진백천이 움직일 터였다.

진백천과 마화린이 맞부딪치면 당연히 누가 망가질 것인지는 불 보듯 뻔했다.

“어쩔 수 없지. 최대한 돈을 풀면서 시간을 끌어. 관리들을 매수하고 사혈방에 돈을 쑤셔 넣어.”

“네. 마뇌님.”

“그리고 이것을 교주님의 이름으로 마화린에게 전달해라.”

마뇌가 품속에서 꺼낸 것은 다름 아닌 구촉비전(口燭非典) 개정판이었다.

기존의 구촉비전을 마공으로 재탄생시켜 위력을 한층 더 끌어올렸다.

그 과정에서 부작용이 발생할 확률도 높아졌지만 마뇌는 그 정도의 위험성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환야루의 기녀는 책자를 조심스럽게 챙겼다.

‘무림대회에서 마주치더라도 허무하게 당하지 않으려면 구촉비전이라도 익혀야겠지.’

마화린이 익힌 혈수인(血髓印) 따위의 무공은 진백천의 태허무극진결(太墟無極進結)과 비교하면 태양 앞의 반딧불이었다.

분명 몇 수 버티지 못하고 망신을 당하게 될 것이다.

마교에 강한 적의를 가진 진백천은 그 기회를 노려 마화린을 죽일지도 몰랐다.

‘쯧 그따위 놈도 이렇게 챙겨줘야 한다니.’

지금의 무림은 정마대전(正魔大戰)이 시작되기 전인 폭풍전야(暴風前夜)였다.

그것은 마뇌인 그녀가 오랜 시간을 준비하며 만들어낸 단계였다.

이기적인 강호 무린은 사방에서 마인들이 준동하고 피가 흐르며 세상은 각박해져야 했다.

진백천으로 인해 일부 틀어지기는 했어도 그것이 마뇌가 바라는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세상이 너무 평화로워졌어. 다시 한번 이 세상이 마도천하임을 알려야겠다.”

환야루의 주인이 마뇌의 말에 고개를 숙였다.

“황금마전(黃金魔殿)과 혈막(血幕)을 움직여라. 준비한 마인들을 풀고 혼돈을 일으켜. 이제 곧 시작될 정마혈사의 전야제(前夜祭)를 준비한다. 그 시기는…….”

마뇌의 시선이 멀리 어딘가를 향했다.

그곳은 다름 아닌 정도회가 위치한 호북이었다.

“무림대회가 끝나고 나서가 괜찮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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