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회귀백서 149화
54장 여기가 네놈 무덤이야(1)
진주언가를 떠나기 전.
진백천은 도홍경을 시켜 독객이 만나자고 한 장소를 훑어보라고 지시했다.
그의 은신부라면 일금영에게도 들키지 않고 살펴볼 수 있을 것이기에.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홍경은 곧바로 돌아왔다.
그의 표정이 어딘지 모르게 상기된 채였다.
“형님. 거기가 바로 호랑이 주둥이 속입니다!”
“뭘 봤길래 이래?”
이미 예상했던 팽가칠도의 노친네들 뿐만 아니라 팽가의 무인들이 꽤나 많았다.
하지만 도홍경이 놀란 것은 그들 때문이 아니었다.
“장모사라는 자 옆에 있던 그 무인도 함께 있었어요!”
“몇 명이나?”
“한 명이요.”
다행히 남은 지살대 무인은 한 명뿐이었다.
그렇다면 그다지 어려울 것은 없었다.
오히려 그를 상대로 구촉비전을 살펴볼 기회였다.
진백천은 황대원을 불러 방금 도홍경이 알아온 사실을 말해 주었다.
“팽가 그놈들이 감히! 제가 당장 나서서 전부 쓸어버리겠습니다!”
“아니야. 괜히 발뺌할 수 있으니까 확실한 기회를 노리자고.”
“확실한 기회 말입니까?”
현장을 잡는 것만큼 좋은 증거도 없었다.
진백천은 도홍경에게 마차를 끌라고 시키고 둘이서만 약속장소로 향했다.
황대원은 그사이 정도회와 진주언가의 무인들을 모아 그 근처를 포위했다.
진백천의 신호가 떨어지면 그 즉시 뛰어들 준비를 끝마쳤다.
“형님. 그 독객이라는 놈이 보입니다.”
“혼자야?”
“네.”
진백천은 마차가 멈추자 곧바로 문을 열고 내렸다.
‘어쭈? 저것들 봐라?’
안력에 집중하자 멀찍이 떨어져 있는 일금영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혹시나 그럴 리 없지만 눈치채고 도망갈 수도 있으니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그들뿐만 아니라 이 사방은 이미 무인들로 포위된 채였다.
“오셨습니까?”
독객은 긴장한 얼굴로 주변을 힐끔거리며 말했다.
그는 서둘러 돈을 받고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받아내는 금액의 1할이라고 했지?”
“네. 맞습니다.”
진백천은 품속에서 전표 꾸러미를 한 움큼 꺼냈다.
전표를 향한 독객의 시선에 욕심이 깃들었다.
“근데 왜 너 혼자냐?”
“……그게 무슨?”
독객은 순간 누가 봐도 이상할 정도로 흠칫 놀라며 진백천을 쳐다봤다.
“그 쫄따구들 다 어디 갔냐고.”
“아. 급한 일이 있어서 전부 다른 곳에 보냈습니다.”
“그래?”
진백천은 전표 다발을 집고 손을 까딱였다.
독객은 조심스럽게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전표를 받아들려고 할 때 진백천을 뒤편을 가리키며 다급히 소리쳤다.
“저놈들은 뭐야?! 팽가놈들이 왜?!”
독객은 진백천의 목소리를 듣고는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젠장! 내가 돈을 받기 전까지는 나오지 말라고……!”
하지만 곧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곤 안색이 새하얗게 변했다
마치 얼굴에 있는 피가 전부 빠져나간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와 반대로 진백천은 환하게 웃었다.
“어휴. 이 새끼를 어떻게 패야 속이 시원할까?”
“형님 전매특허 있잖아요.”
도홍경이 두 주먹을 허공에 내지르며 말했다.
“이런 새끼들한테는 걸개구타권(乞丐毆打拳)도 아까운데.”
말과 다르게 진백천은 손목을 풀며 앞으로 나섰다.
“잠, 잠깐! 나도 다 사정이……!”
“사정은 새끼야. 죽어서 염라대왕한테나 가서 떠들어.”
진백천은 인정사정없이 독객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묵직한 소리와 함께 놈의 머리가 돌아가며 땅바닥에 처박혔다.
그것만으로도 모자랐는지 한참이나 옆으로 구르다 겨우 멈췄다.
간헐적으로 떠는 것을 빼면 방금 한방에 정신을 잃은 듯했다.
“겨우 그거 하나로 끝내는 건 아쉽지.”
진백천은 그대로 진각(震脚)을 밟으며 독객의 몸을 살짝 띄웠다.
그리고 있는 힘껏 배를 올려 찼다.
“커헉!”
놈은 깊은 숨소리와 함께 배를 움켜쥐었다.
“사, 살려주십시오! 제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죽을죄를 지었으면 죽어야지. 안 그래?”
독객는 그런 말을 하는 사이에도 뒤쪽을 힐끔거리며 눈치를 살폈다.
어떻게든 팽가의 무인이 올 때까지 버티려는 속셈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전부 진백천의 생각 안에 있는 것이었다.
“네놈이 기다리는 원군이 저들이냐?”
팽가칠도의 장로들이 싸늘한 기세로 달려왔다.
그들은 순식간에 진백천과 도홍경의 주변을 포위했다.
지금까지 비루하게 굴던 독객은 그들을 보고 순식간에 의기양양해졌다.
“너는 이제 끝이다! 저번에는 네놈이 어떻게 운이 좋아서 넘어갔지만 이번은……!”
“닥쳐!”
진백천은 그대로 독객을 집어 들어다 바닥에 내리꽂았다.
마치 원산폭격을 한 모습으로 놈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팽가칠도의 장로들이 도를 뽑아 들며 천천히 그에게 다가왔다.
“흐음. 도왕과는 잘 이야기가 끝났는데 이건 무슨 상황입니까?”
“도왕은 도왕이고 우리는 우리다! 팽가는 네놈 따위에게 흔들리지 않아!”
“독단적 행동이라 이거죠?”
“걱정 마라. 네놈은 우리가 아닌 마교의 인물에 의해 죽는 것일 테니 말이다!”
팽가칠도의 장로들은 서로 눈짓을 주고받으며 슬금슬금 다가왔다.
그들의 장기가 바로 연환패왕진(連環覇王陣)이었지만 수가 네 명뿐이다 보니 나머지 세 자리는 일반 팽가의 무인이 차지했다.
‘본격적으로 몸을 풀기에 나쁘지 않겠어.’
다만 조금 걸리는 점은 지살대의 무인인 일금영(一禽影)이 여전히 모습을 감춘 상태라는 것이었다.
구촉비전(口燭非典)을 익힌 놈의 움직임은 그 하나하나가 기습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쾌속하고 날카로웠다.
‘눈에 안 보이는 비수가 보이는 것보다 무서운 법이지.’
-도홍경. 주변에 숨어 있는 나머지 한 놈 나타나면 바로 나한테 말해.
-네. 형님! 근데 아직 신호를 보내지 않아도 될까요? 놈들의 수가 제법 많은데요?
-잠깐만 버텨봐.
진백천은 도홍경을 뒤에 두고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
어느새 그의 오른손에는 독고구검이 들려 있었다.
“나를 죽여 마교에게 누명을 씌운다? 그러면 오히려 마교가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정도회도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만큼 바보도 아니고.”
“걱정 마라. 현 무림에는 네놈 따위의 애송이보다 우리 같은 숙련된 자들이 더 필요한 법이다! 정도회의 사람들도 결국 죽은 자보다 우리를 택할 수밖에 없겠지!”
“꼰대 아니랄까 봐. 쯧.”
천천히 다가오던 팽가의 무인들이 칼을 휘두르면 닿을 거리까지 가까워졌다.
그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곧바로 공격을 시작했다.
무자사한(蕪蔗四罕).
7명의 무인 중에서 4명의 도가 동시에 전신의 요혈을 노렸다.
마친 자로 잰듯한 정확한 동작이었다.
카앙!
진백천은 가장 먼저 뻗어오는 두 개의 도를 튕겨내며 뒤로 미끌어지듯 물러났다.
일곱 명의 무인은 진백천을 중심으로 빙글 돌아가며 그를 가운데에 두었다.
곧바로 다른 네 명의 도가 똑같이 뻗어왔다.
‘이게 팽가의 연환진이군. 과연이라 할 만하다!’
공격은 매 한 수, 한 수가 정확히 사혈(死穴)을 노렸다.
단순히 사람이 많은 것이 아니라 돌아가는 기계의 톱니바퀴처럼 매 동작이 이어졌다.
잠시 한순간이라도 동작이 흔들리면 공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도 4개의 도가 동시에 진백천의 요혈을 노리며 뻗어왔다.
재빨리 내력을 실은 검을 휘두르며 밀어내려 했지만 팽가의 무인들은 오히려 도를 밀고 들어왔다.
‘흐음!’
진백천의 검에 실린 내력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네 명이 나눠서 받으면 그닥 힘들지 않았다.
그들은 철저하게 진백천을 둘러싸고 빈틈을 노렸다.
그 모습이 마치 한 마리의 호랑이를 두고 공격하는 늑대들 같았다.
‘그것도 제법 날카로운 이빨을 가졌어.’
팽가연환진에는 효능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 사냥감이 된 자는 팽가칠도의 건곤미허신공(乾坤彌虛神功)의 내력으로 인해 심신이 위축되었다.
만약 진백천의 내력이 태허무극진결이 아니었다면 꽤나 곤혹스러운 상황이 벌어졌을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해도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야.’
부드럽게 이어져 나가는 연환진은 어느 순간마다 뚝뚝 끊어지는 느낌이 전해졌다.
원래의 팽가칠도가 아닌 무인들 때문이었다.
평생을 함께해 온 장로들과 달리 그들은 부족함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아주 미세한 차이라지만 진백천 같은 고수에게는 숨을 돌린 순간이었다.
덕분에 치명적인 상처 하나 없이 모든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다.
만약 일곱 명 전원이 팽가칠도의 장로들이었다면 이렇게 관찰할 시간도 없었을 터였다.
‘톱니바퀴의 한 축이 연약하다면 그것만 박살 내면 그뿐이야.’
진백천은 또다시 뻗어오는 도를 빠르게 튕겨내며 뒤쪽으로 손을 뻗었다.
가장 불안전한 자를 향해서였다.
천지만독수(天支萬毒手).
독정의 기운이 실린 검녹색의 장기(掌氣)가 팽가의 무인을 향했다.
“독! 비겁한!”
“목숨을 걸고 싸우는데 비겁한 게 어딨어?”
타계횡도(打系橫刀).
그들은 재빨리 도를 들어 장기를 찢어발기듯 흩뜨렸다.
하지만 독기는 이미 사방으로 퍼져 나간 후였다.
“피독주를 입에 물어라!”
“결코 쉽게 죽이지는 않겠다!”
“쪽수로 몰아붙이는 주제에 혓바닥은 드럽게 길구나.”
진백천의 말에 장로들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처음 생각했던 바와 달리 진백천의 무공 실력이 평범치 않았다.
도왕에게 겨우 버티기만 했기에 자신의 연합진이면 금세 쓰러뜨릴 수 있을 거라 예상했었다.
“독을 맞고 펄쩍 뛰는 걸 보니까 나도 기분이 좋군! 그런 의미로 더 쏟아 부어주마!”
진백천은 독정의 기운을 있는 대로 끌어올리며 사방에 쏘아댔다.
팽가의 무인들이 입에 넣은 피독주로는 감히 해독할 수 없는 독이었다.
내력이 가장 약한 자부터 안색이 검게 물들며 비틀거렸다.
“크윽! 다들 쇠뇌를 쏴라!”
장로는 어쩔 수 없이 뒤로 물러나며 대기 중이던 무인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뒤쪽에서 대기 중이던 자들은 재빨리 진백천을 향해 쇠뇌를 발사했다.
“아주 작정했군.”
쇠뇌에는 쇠줄이 연결되어서 한발이라도 맞으면 몸에 제약이 생겼다.
팽가의 무인들은 의외로 이런 일에 익숙한 듯 능숙하게 움직였다.
피익!
하지만 그런 쇠뇌에 맞기에는 진백천의 경공 실력은 절대 가볍지 않았다.
“놈! 그만 반항해라!”
장로 중 하나가 도기를 쏟아내며 소리쳤다.
아까부터 계속해서 진백천에게 놈놈거리던 팽가칠도의 장로였다.
“그렇게 반항하는 게 싫으면 늙은이도 한번 맞아봐!”
백면질주(百面疾走).
진백천은 자신을 향해 쏘아지던 쇠뇌를 움켜쥐고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땅에 붙은 듯 움직이는 동작에 팽가의 무인들은 어쩔 줄 몰라 했다.
“노옴!”
진백천은 장로의 도를 피해내며 그의 어깨에 쇠뇌를 박아넣었다.
푸욱!
하지만 그것은 단지 시작뿐이었다.
쏘아져 오는 족족 쇠뇌를 움켜쥐고 사방을 종횡무진했다.
네 명째 어깨에 쇠뇌를 쑤셔 넣었을 때야 발사하는 것을 중지시켰다.
어느 틈인가 연환진도 이어지지 못하고 흩어진 상태였다.
“이거라면 너무 쉬운데? 팽가의 위명은 전부 거품이었나?”
이런 대우를 받아본 적 없던 장로들은 이를 악다물며 분노했다.
“네놈이 태어나기 전부터 우리는 강호를 종횡무진했다! 팽가의 이름으로 악인들을 처단하고 일생을 팽가를 위해 바쳤어! 팽가는 그런 희생 끝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 팽가를 네놈 따위가 무시해?!”
진백천은 계속해서 고개를 저었다.
“노망난 늙은이들이 병상에서 자신들의 과거를 미화하는 건 상관없는데 밖에서는 말을 똑바로 하자고. 강호를 종횡무진했다면 당신들이 살아 있으면 안 되지. 용감하고 잘나신 영웅분들은 이미 고인이 되거나 몸이 망가진 지 오래야, 그런데 당신들은?”
날 선 혓바닥만큼이나 날카로운 독고구검의 끝이 장로들을 향했다.
독고구검의 검신에 내력이 흘러 들어가며 부르르 떨렸다.
“결국 팽가라는 이름 아래에 배불리 살아왔을 뿐이라고. 지금이라도 강호를 위해서 뒷방 늙은이로 빠지라고. 지금은 당신들처럼 비겁한 꼰대들이 사는 시대가 아니야.”
“누, 누구 마음대로……!”
진백천은 그 말을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그대로 앞으로 나아가며 검을 강하게 휘둘렀다.
파강식(破彊式).
지금까지 묵묵히 모은 내력이 폭발하듯 검 끝으로 빠져나갔다.
검에서 시작된 강기의 파도는 공간을 가득 메우며 그대로 팽가의 무인들을 휩쓸었다.
살려두려는 마음은 버렸기에 강기에는 조금의 자비도 존재하지 않았다.
“크허억!”
“막, 막아내라!”
팽가칠도가 앞으로 나서며 강기를 베어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이미 몇 겹의 강기는 계속해서 그들을 덮쳐갔다.
콰아아앙!
그들은 하나같이 강기에 의해 전신이 으깨지며 바닥에 처박혔다.
진백천의 검이 멈추었을 때 서 있는 팽가의 무인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