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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회귀백서-148화 (148/346)

무림회귀백서 148화

53장 무(武)의 증명(3)

진백천과 유석경이 진주언가에 온 날.

그날부터 유석경은 두문분출했다.

그가 매일같이 수련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안 것은 우연이었다.

진백천을 만나러 별채에 가다가 금의위들 사이에 있는 유석경을 발견했다.

그는 구타 아닌 구타를 당하며 버틸 뿐이었다.

“조금 더!”

그리고 그 구타의 이유는 바로 오롯이 언해원을 상대하기 위해서였다.

금의위들의 움직임은 어디지 모르게 언가권(言家拳)을 닮아 있었다.

묵직한 타격은 유석경의 몸을 끊임없이 두드렸다.

그는 그저 온몸으로 감내해갔다.

‘저런다고 나를 이길 수 있을 리 없잖아.’

그가 왜 이렇게 고생을 하는지는 언해원도 잘 알았다.

자신만 보면 바보 같은 표정을 짓던 유석경이었다.

분명 되도 않는 실력으로 경연에서 우승하려는 마음일 것이다.

‘그렇다고 바뀌는 건 없어.’

언해원은 고개를 흔들며 자리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왜일까.

언제가부터 자꾸 유석경이 이를 악물고 버티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혹시나 해서 가보면 그는 언제나 수련 중이었다.

금의위들 아니면 진백천 회주.

그들이 없다면 혼자서라도 말이다.

언해원은 시간이 날 때면 지붕에 앉아서 그를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뭔가 가슴이 뭉클거리는 게 이해하기 힘든 감정이 치솟았다.

투욱-

그때였다.

“호오. 언 소저. 여기까지 무슨 일이야?”

그녀의 뒤편에서 도박장에 함께 갔었던 도홍경이 나타났다.

그때 한번 함께 움직였다고 제법 친근한 말투였다.

귀신같은 몸놀림을 가진 자칭 도사라는데 외모만 봐서는 도둑에 가까웠다.

“또 성주를 내려다보고 있었군? 하하하.”

도홍경은 허락도 안 했는데 그녀의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왜 마음대로 내 옆에 앉고 그래?”

싸늘한 눈빛에 도홍경이 슬금슬금 옆으로 물러났다.

“허험. 까칠하시기는. 회주님과 대화할 때와 딴판이군.”

“당연하지. 회주님은 형부니까.”

그 말을 들으면 진백천이 한소리하겠지만 도홍경은 딱히 뭐라 하지 않았다.

둘은 마치 경기라도 관람하듯 유석경을 멍하니 내려다봤다.

“참 독해.”

“그러게. 형부 닮아서 그런가?”

도홍경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언해원을 쳐다봤다.

진백천에 비하면 유석경은 순둥이 그 자체였다.

진면목을 드러낸 진백천을 봤던 도홍경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몸을 툭툭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튼 참 잘됐네.”

“뭐가?”

“둘이 마음이 통하니 좋은 거지. 성주의 짝사랑으로 끝날까 싶었는데 말이야.”

언해원은 미간을 찌푸리며 옆에 있던 기왓장을 도홍경에게 집어던졌다.

도홍경은 겨우 받아내고 몸을 휘청였다.

“허억! 미, 미쳤어?! 갑자기 왜 이래!”

“너야말로 미친 소리 하지 마. 저따위 실력을 가진 사람한테 내가 끌릴 것 같아?”

도홍경은 순간 고개를 끄덕일뻔하다가 멈췄다.

이번에는 정말 밑으로 던져 버리려고 할지도 몰랐다.

은근슬쩍 기왓장을 내려놓고 뒤로 훌쩍 물러났다.

“……그래도 기회는 줘봐. 혹시 알아? 성주가 경연에서 우승할지?”

도홍경은 그 말을 뒤로 연기처럼 사라졌다.

왜인지 도사 따위가 은신술 하나만큼은 최고였다.

“우승은 개뿔. 마지막은 나를 이겨야 되거든?”

언해원은 손을 탁탁 털며 자리에서 벗어났다.

유석경은 백번 죽었다 깨어나도 자신을 이길 수 없었다.

그리고 오늘.

언해원은 바둥거리는 유석경의 모습을 보며 가슴이 울렁였다.

왠지 자꾸 속이 답답하고 먹먹했다.

‘바보같이 뭐하는 거야. 일어나야지.’

차마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유석경이 일어서길 바랐다.

왜인지는 몰랐다.

언해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갔다.

웅성거리는 주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해원아.”

“비켜.”

언호충이 다가왔지만 가볍게 밀쳐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진백천조차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저렇게까지 하는 거지?’

언해원의 심정은 복잡했다.

그리고 마침내 쓰러진 유석경과 눈이 마주쳤을 때 그 이유를 어렴풋이 깨달았다.

그녀는 유석경을 걱정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잘 알지만 경연에서 이기고 자신의 앞에 서기를 바랬다.

‘대체 왜? 그는 약하잖아.’

아니, 약하지 않아.

자신의 물음에 내면에서 곧바로 대답이 들려왔다.

그동안 지켜봤던 필사적인 수련과 각오.

그것은 무공의 강함과 별개로 강인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태도였다.

‘그러니까.’

“……일어나.”

그녀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작았다.

하지만 유석경은 분명히 들었다.

그녀가 자신에게 직접 일어나라고 하는 목소리를 말이다.

그는 천천히 숨을 몰아쉬며 몸을 일으켰다.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이미 한계였다.

‘그래도 일어날 수 있다.’

유석경은 단전에서부터 찌르르- 한 기운이 치솟는 것을 느꼈다.

전신에 자리 잡은 진백천의 것이 아닌 자신의 내력이었다.

그동안의 수련의 성과가 가장 마지막인 지금에서야 발휘되기 시작했다.

“으으윽!”

유석경은 이를 악다물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마침내 자리에 서서 언해원을 내려다봤다.

“…….”

언해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서로를 바라볼 뿐이었다.

유석경은 처음으로 그녀가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 순간은 오래 유지되지 못했다.

몸의 과부하를 버티지 못한 유석경이 정신을 잃으며 무너지듯 쓰러져 버린 것이다.

털썩-

그런 그를 부축한 것은 언해원이었다.

안타깝게도 정신을 잃은 유석경은 그것을 알지 못했다.

지켜보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모두가 말은 하지 않아도 언해원의 정혼자로 누가 정해졌는지 정도는 눈치껏 알아차렸다.

“잘됐네.”

진백천도 그 박수에 양손을 더했다.

* * *

쓰러졌던 유석경이 다시 정신을 차릴 때쯤에는 진주언가의 모든 상황이 정리되었다.

경연의 결과 유석경이 우승자로 뽑혔지만 언해원은 여지를 남겨두었다.

“그렇게 죽도록 고생했더니 자신을 이겨야 한다니 언 소저도 참으로 야속해요.”

“그래도 또다시 1년의 유예를 줬잖아.”

“성주님이 언 소저를 이길 수 있을 리 없잖아요.”

당소예는 언해원의 성격을 몰라서 하는 소리였다.

만약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대련을 진행했을 터였다.

그렇지 않고 1년이란 시간을 준 것은 반쯤은 허락한 것이다.

유석경이 변하지 않는 이상 둘은 결혼에 성공할 터였다.

‘노력한 만큼 결과가 있어서 다행이야. 후우.’

진백천은 그 날 이후로 꼼짝도 않고 쉬었다.

격체전력을 쉬지 않고 이어왔고 알게 모르게 지친 상태였다.

그리고 그들이 이곳에 머무는 동안 정도회의 무인들이 진주언가에 도착했다.

진주언가가 하북의 일인자로 자리 잡는 것을 도울 이들이었다.

‘그럼 나는 걱정 없이 떠나면 되겠지.’

고생만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진백천이야말로 가장 큰 수혜자였다.

하북의 가장 큰 맹우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 어마어마한 돈을 획득했다.

그중에 많은 양을 하오문을 부리는 일에 뿌렸지만 그런데도 품속은 여전히 두둑했다.

진백천은 정신을 차린 유석경과 둘만의 자리를 마련했다.

서로 이제 슬슬 헤어질 때가 된 것을 알아차렸다.

탁자 위에는 고리타분한 차 대신 독한 죽엽청(竹葉靑)이 놓여 있었다.

“이야기는 잘했어?”

유석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피딱지가 진 얼굴이었지만 무척이나 밝아 보였다.

언해원이 매일같이 그를 찾아와 간병했다는 것쯤은 잘 알았다.

“좋아 죽으려고 하네. 그래도 절대 수련은 빼먹지 마.”

“물론이지. 이거 봐.”

유석경은 자신의 손목에 채워진 고리환을 들어 보였다.

더는 착용할 필요가 없지만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이유로 매달고 있었다.

진백천은 피식 웃으며 술을 들이켰다.

“크으.”

목구멍이 찌릿하면서 기분 좋은 술 넘김이었다.

“이제 광동성으로 돌아가야지?”

“맞아. 꽤나 자리를 비워두었더니 말이 많은가 보더군.”

“이번에 가면 제대로 자리 잡아. 괜한 것들이 나대지 못하게. 철중화나 진주언가도 초대해서 거하게 대접하고.”

마치 형이 동생에게 하는 잔소리 같았다.

하지만 유석경은 그 잔소리가 좋은지 은은한 미소를 띠고 묵묵히 들었다.

한 잔씩 주고받던 술병은 어느새 비었다.

이제 슬슬 자리를 마무리할 때가 된 것이다.

“백천. 다시 한번 말하지만…… 고맙다.”

“고맙긴, 나중에 찾아갔을 때 박하게 대하지나 마.”

둘은 뜨거운 악수를 마지막으로 인사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유석경은 마차를 타고 금의위들과 진주언가를 떠났다.

“친구가 떠나니 시원섭섭한가?”

태상장로는 진백천 옆으로 다가오며 물었다.

“어차피 갈 길이 다르니까요.”

“그렇지. 결국 인연이 닿으면 또 보게 되는 법이니 너무 아쉬워하지 말게.”

“태상장로님과 저처럼 말이죠?”

“그렇지. 껄껄.”

태상장로와 적의단은 원래 목적지가 있었던 만큼 바로 떠날 채비를 끝마쳤다.

그들의 목적지는 다름 아닌 북해빙궁(北海氷宮)이었다.

“그런 외진 곳은 뭣 하러 찾아가시려고요?”

“오랜 친구가 도움을 요청해서 말이지.”

현재의 북해빙궁의 궁주와 태상장로는 오랜 인연이 있었다.

진백천과 유석경처럼 말이다.

“얼굴도 볼 겸 여행도 할 겸 겸사겸사 떠나는 거니 너무 걱정 말게. 내 나중에 다녀오면 북해의 특산물을 사 가지고 오지. 술이면 되겠나?”

“어이쿠. 저를 너무 잘 아시는 것 아닙니까?”

진백천은 태상장로뿐만 아니라 장개나 다른 적의단들과도 인사를 했다.

전부 짧지만 함께 여정을 했던 이들이었다.

장개는 마지막으로 떠나기 전 그에게 슬쩍 귀띔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회주. 독개라는 자를 조심해. 아무래도 그자가 팽가칠도와 붙어먹은 모양이야.”

개방의 인물들이 진주언가를 빠져나가자 기다렸다는 듯이 독객의 서신이 그에게 도달했다.

모든 일이 마무리되었으니 약속된 금액을 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만나자는 장소가 하북에서 하남으로 넘어가는 길목이었다.

‘뭔가 꿍꿍이가 느껴지는데?’

진백천은 서신을 불태워 버렸다.

뭔 수를 준비했는지 몰라도 순순히 당해줄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평소와 다르게 나도 아군이 넘쳐나니까.’

진백천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입술을 말아 올렸다.

* * *

진주언가를 벗어난 진백천은 하북의 가장 남쪽인 감단(邯鄲)으로 향했다.

그곳에 작은 산맥이 있었는데 그곳을 가로질러가면 바로 하남의 남악(南樂)으로 이어졌다.

그곳에서 배를 타고 내려가면 소림사가 있는 숭산(嵩山)까지는 금방이었다.

독객이 만나자고 한 위치가 바로 이 산맥의 입구였다.

“회주는 아직인가?”

“조금 있으면 도착할 겁니다.”

그 산맥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에 여러 무인이 대기 중이었다.

팽가칠도 중 4명을 비롯해 마뇌와 함께 있었던 지살대 무인 일금영(一禽影)이었다.

그들뿐만 아니라 팽가의 무인들도 꽤나 보였다.

전부 봉문에 불만을 가진 자들이었다.

“이곳에서 회주만 죽여 버리면 팽가는 다시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다.”

진백천을 이곳에서 죽이면 그 모든 것은 마교가 덤터기 쓰기로 되어 있었다.

팽가칠도의 입장에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다른 이들이 없는 것은 확실하지?”

팽가칠도 중 한 명의 물음에 일금영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개방의 태상장로는 어제 떠났고, 기껏 해봤자 그의 호위무사와 시녀가 전부다.”

“그렇다면 문제없이 끝낼 수 있겠군.”

팽가의 무인들은 벌써 진백천을 죽이기라도 한 것처럼 시시덕거렸다.

더구나 그가 가진 돈이 적지 않으니 그것은 부차적인 노획물이었다.

‘멍청한 놈들.’

일금영은 그들을 비웃으며 멀리 진백천의 마차가 다가오는 것을 지켜봤다.

독객과 마주치자 마차가 멈추며 진백천이 내렸다.

그런데 일금영은 순간 몸을 흠칫하며 놀랐다.

‘눈이 마주쳤어?’

아주 찰나였지만 진백천의 시선이 분명 자신을 꿰뚫어 보듯 쳐다봤었다.

하지만 순간 착각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진백천의 시선은 독객에게 향했다.

‘눈치챘을 리가 없다.’

속마음과 달리 일금영의 마음에 불안이 싹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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