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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회귀백서-147화 (147/346)

무림회귀백서 147화

53장 무(武)의 증명(2)

한눈에 봐도 유약해 보이는 유석경.

그의 손목과 발목에서 떨어져 내린 철고리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는 충분했다.

더구나 그것의 무게는 평범하게 차고 다닐 만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그리고 그러한 관심이 생긴 것은 언해원도 마찬가지였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광동성의 성주.

자신에게 조심스럽게 반했다고 말하던 남자.

그녀의 기억 속의 유석경은 그 정도가 전부였다.

적당한 핑계로 털어내고 다시 나타났을 때에는 진백천의 친구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여전히 약자일 뿐이야.’

그녀의 이목을 끌기에는 유석경은 너무 조용했고 단단해 보이지 않았다.

그가 경연은 차례로 통과할 때도 당연히 진백천의 도움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당당히 사람들 앞에 나섰을 때 어딘가 달라 보였다.

‘금의위들이 없어서 그런가?’

그건 아니었다.

그는 어딘가 거칠어진 얼굴과 눈빛으로 교영을 쳐다봤다.

‘단지 저 고리 때문에?’

하지만 철고리를 유심히 살펴보던 언해원은 뭔가를 깨닫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고리의 안쪽은 전부 검붉었다.

‘……핏자국.’

유석경은 철고리를 차고 쉬지 않고 움직였다.

진백천과 대련할 때는 물론 혼자 쉴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성미만큼 여리고 하얬던 살갗은 찢어지고 벗겨지고를 수십 번, 이제 단단한 굳은살로 바뀌었다.

그것은 단순히 그의 살갗뿐만이 아니었다.

“반드시 이긴다!”

거칠게 소리치는 유석경에게는 얼핏 야성미마저 보였다.

교영과 유석경은 대련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와 함께 서로를 향해 달려나갔다.

하지만 그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교영이 반사적이었다면, 유석경은 정말로 그를 집어삼키기 위한 것이었다.

‘…….’

언해원의 가슴속에 유석경이란 남자에 대한 인상이 자리 잡았다.

그것이 아주 작은 불씨만큼이지만 그것치고는 제법 강렬했다.

* * *

교영은 튀어나오는 유석경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주먹은 생각보다 더 쉽게 그의 몸에 닿았다.

거친 기세와 달리 유석경은 몸을 제대로 쓸 줄 몰랐다.

단지 거칠게 뻗고 달려드는 것이 전부였다.

‘……이 정도라면 어렵지 않아. 쫄 것 없어.’

교영은 본능적으로 스스로에게 쫄지 말라고 중얼거렸다.

다른 말로 하자면 이미 심적으로는 어느 정도 위축되었다는 뜻이었다.

그만큼 유석경은 교영에게 두들겨 맞으면서도 쉬지 않고 달려들었다.

퍼억!

‘들어갔다!’

쾌속한 교영의 주먹이 그의 급소인 턱을 노렸다.

턱이 흔들리며 유석경의 동공에 순간적이지만 힘이 풀렸다.

하지만 유석경은 절대 쓰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두 다리에 더욱 힘을 주며 거북이처럼 앞으로 다가왔다.

‘괴물이로군!’

그간 진백천에게 두들겨 맞으며 하체를 단련한 결과였다.

아마도 잠시 기절한다고 해도 유석경은 끊임없이 움직일 터였다.

그것이 그동안 그의 무의식 속에 강제로 새겨넣은 것이었다.

‘기회를 노려야 한다. 기회를!’

이것은 유석경과 교영 둘 다의 공통적인 마음이었다.

한 사람은 강한 한 방을, 다른 이는 주먹을 맞출 기회였다.

교영은 점차 조급해졌다.

끊임없이 주먹을 내뻗고 때리는 것도 자신이었지만 뒤로 물러나는 것도 자신이었다.

‘……끈질겨! 쓰러지라고!’

교영을 응원하는 사람들은 그것도 모르고 점점 더 환호했다.

“와아아아! 풍류공자 멋있다아아! 쓰러뜨려 버려!”

“조금만 더 하면 쓰러뜨릴 수 있다고! 힘내라아아!”

교영은 점점 양팔이 더 무거워져만 갔다.

짧은 시간에 격하게 움직였더니 금방 체력이 떨어져 나갔다.

“하아하아.”

반대로 유석경도 고통스러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쏟아지는 주먹을 막아내며 힘겹게 버텼다.

멍으로 시퍼렇게 물든 양팔은 상처가 터지며 피까지 흘러내렸다.

그런데도 두 눈을 빛내며 두 발을 멈추지 않았다.

‘이대로 멈추면 그대로 끝이야. 앞으로 움직여야 된다.’

피를 흘리며 앞으로 나아가는 그 모습에 교영을 응원하는 사람들의 환호도 점점 사그라들었다.

이것은 축제가 아니었다.

적어도 유석경에게는 쟁취를 위한 투쟁이었다

퍼억!

숨을 몰아쉬기 위해 잠깐 들린 턱에 주먹이 꽂히며 머리가 흔들렸다.

그의 뇌리로 환청처럼 진백천의 목소리가 쏘아져 들어왔다.

-몸을 웅크려. 두 팔을 단단히 말아쥐고! 멈추지 말고!

진백천은 유석경을 몰아붙이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그에게 고양감을 불어 넣어주기 위한 말들을 계속했다.

듣던 당시에는 전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왠지 지금은 알 것 같았다.

‘오늘의 나는 어제까지의 결과물이다, 그러니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 나는 그만큼 노력했으니까. 지금 쓰러질 만큼 나는 게을리하지 않았다. 열 번, 아니, 백번이라도 더 버틸 수 있다.’

몸에서 통증이 전해질수록 두 다리에 오히려 힘이 더욱 들어갔다.

으드득-

꽉 움켜쥔 주먹에서 묵직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내 그의 전신에서도 내력이 피어올랐다.

그동안 수백, 수천 번의 고통을 이겨내고 진백천이 강제로 넣어줬던 것이었다.

마치 포탄을 움켜쥔 것처럼 유석경은 교영에게 슬금슬금 다가갔다.

“후우후우. 참으로…… 끈질기십니다!”

교영은 숨을 몰아쉬며 물러섰다.

하지만 그는 유석경에게 틈을 주어서는 안 되었다.

지금 이 순간이 그가 그토록 바라던 기회임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것이다.

‘지금이다!’

유석경은 강하게 진각을 밟으며 주먹을 내뻗었다.

군더더기 없는 주먹을 내지르는 일권이었다.

교영은 마침내 터져 나온 그의 주먹을 보며 이를 꽉 다물었다.

‘나도 버틸 수 있다! 겨우 한 방, 한 방이면……!’

교영은 유석경이 그랬던 것처럼 양팔을 교체하며 가로막았다.

하지만 곧 번쩍하는 기시감과 함께 그의 몸이 뒤로 주르륵 밀려 나갔다.

단순한 동작과 달리 주먹에 실린 내력은 어마어마했다.

“크윽!”

묵직한 충격과 함께 축 처진 한쪽 팔은 덤이었다.

‘대, 대체 어떻게?’

다급하게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반대쪽 손을 내뻗는 유석경이 보였다.

‘안돼!’

주먹은 그대로 나머지 한팔을 튕겨내며 그대로 교영의 턱에 틀어박혔다.

안타깝게도 교영은 유석경처럼 하체 힘이 강하거나 버텨내지 못했다.

곧 정신을 잃으며 인형처럼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하아하아.”

유석경의 승리였다.

* * *

‘자식. 제법 대견하네.’

제자는 아니었지만 그동안 진백천이 열심히 가르쳤던 학생이었다.

그런 학생이 상대를 이기고 기뻐하니 진백천의 기분도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유석경의 진심이 통했는지 지켜보던 사람들도 하나둘씩 박수를 쳐주었다.

“……성주님께서 대단하시네. 교영을 맨주먹으로 쓰러뜨리다니.”

“그러게. 보기와는 다르게 투지가 엄청나셔.”

이러한 생각은 태상장로나 진주언가의 무사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유석경의 이겼지만 몸 상태만 보면 엉망진창이었다.

두 팔은 시푸르르딩딩했고 한쪽 얼굴도 찐빵처럼 부풀었다.

도저히 다음 대결을 할 수 있는 상태로는 보이지 않았다.

“잠시 휴식한 후에 두 번째 대결을 이어가겠습니다.”

보다 못한 진주언가는 숨을 몰아쉴 정도의 시간을 주었다.

진백천은 상처를 치료하고 있는 유석경에게 다가갔다.

그는 엉망이 된 얼굴로 환하게 웃었다.

“어땠어?”

“최고였다. 이래서 무인들이 그토록 열심히 수련을 하는 거군.”

“아직 너무 마음 놓지 마. 다음 상대는 나니까.”

유석경은 진백천의 마음이 어떤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 필사적으로 나설 것이다.

“철중화는 네가 이긴다고 해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을지도 몰라.”

아마 자신을 이겨야 한다면 또 다른 대련을 요구할지도 몰랐다.

그리고 언해원은 결코 교영 따위와는 달랐다.

“상관없어. 그래도 최선을 다했으니까. 지레짐작으로 풀이 죽어 있고 싶지는 않아.”

“그래. 그 각오를 내가 마지막으로 확인해 보마.”

진백천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 더 쉴 시간을 줄줄 알았던 사람들은 진백천의 행동에 의아해했다.

둘의 사이가 친한 것은 이미 모두가 잘 아는 사실이었다.

진주언가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태상장로 또한 진백천이 유석경에게 져줄 것이라고 예상했다.

“자. 한번 붙어보자고!”

진백천은 목을 뚜둑거리며 손을 까딱였다.

유석경은 일어나는 것만으로도 힘겨워하며 앞으로 나섰다.

첫 공격은 평상시와 같이 진백천의 주먹이었다.

“커헉!”

교영의 주먹과는 차원이 달랐다.

방어할 새도 없이 가슴팍을 후려갈기며 유석경이 뒤로 밀려났다.

지켜보던 이의 눈살이 절로 찌푸려질 정도였다.

“각오가 그 정도뿐이야?”

“……버틸 수 있다.”

유석경은 속에서 올라온 핏물을 머금고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 태도와 달리 진백천의 일방적인 구타가 시작되었다.

전과 같은 점이라면 쓰러지지 않고 계속해서 버틴다는 것뿐이었다.

퍼억!

퍼억!

“……진백천 회주가 작정했군. 이러다 완전히 사람 잡겠어!”

“저러다 정말 죽는 거 아니야?”

“말려야 되는 거 아닐까?”

사람들의 심각함과 달리 유석경을 모시는 금의위들을 비롯해 황대원과 당소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회주님이 또 무리하시네요.”

“아마도 그만큼 유 성주님을 각별히 생각하시는 거겠죠.”

그들은 유석경이 처음부터 진백천에게 수련을 받는 것을 지켜봤다.

그렇기에 지금의 주먹이 단순한 공격이 아님을 잘 알았다.

한방한방에는 진백천의 내력이 담겨서 유석경의 혈도로 스며 들어갔다.

살이 터지며 뭉쳐 있던 어혈이 격체전력(隔體傳力)으로 스며든 내력으로 풀어져 갔다.

시간이 지나자 태상장로나 다른 무인들도 그것을 눈치채고 혀를 내둘렀다.

“과연 어마어마한 내력이구나. 흑백신의의 백년단약을 모조리 집어삼켰다고는 하지만 벌써 저렇게 자유자재로 사용하다니!”

진백천이 한참을 때리고 나자 유석경은 오히려 더더욱 기운을 차렸다.

피투성이인 얼굴과 다르게 두 눈에 광명이 솟구쳤다.

‘어휴. 삭신이야. 이렇게까지 퍼줬는데 어설프게 끝나기만 해봐라.’

진백천은 슬슬 주변을 살폈다.

멋대로 기권을 해버리거나 져버리기라도 하면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한심한 모습이었다.

진백천 이전의 정도회 회주로서 정당한 모습을 보여야 했다.

“제법이군. 이렇게 된 거 나도 진심으로 상대해 줘야겠는데?”

그의 말에 관중들이 오히려 더 웅성거렸다.

“전력? 그렇다면 지금까지는 진심이 아니었단 말이야?”

“당연하지. 진백천 회주가 누군데! 마음만 먹으면 단 한 방에 쓰러뜨리는 건 문제도 아니라고!”

진백천은 일부로 사람들이 집중할 시간을 갖다가 입을 열었다.

“한 수. 정확히 한 수를 버틴다고 하면 내가 진 것으로 하지.”

사람들은 그가 왜 굳이 이러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때 사람들 사이에서 누군가 큰 목소리로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역시……! 진백천 회주님은 진주언가를 생각해서 경연에 참가하신 거야! 혹시라도 이상한 자가 언해원 소저의 정혼자가 되면 안 될 테니까!”

“호오. 그렇다면 유석경 성주는 인정을 받은 건가?”

“그런 셈이지. 그렇지 않다면 저렇게 두들겨 팰 리가 있나?!”

사람들은 모두 눈을 빛내며 진백천과 유석경을 번갈아 봤다.

누가 들어도 제법 그럴듯했기에 그 말을 하는 늙은 남자에게까지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진백천은 그자가 한눈에 변장한 장개임을 알아봤다.

“두 남자의 의리와 인정. 그리고 저 투지라니. 멋지군!”

“과연 청춘이다! 청춘이야!”

장개는 보일듯 말듯 눈을 찡긋하고 사람들 사이로 사라졌다.

진백천은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참으며 유석경에게 집중했다.

“딱 한 수야.”

“버텨보지.”

유석경은 가장 익숙한 기마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진백천은 인정사정보지 않고 주먹을 휘둘렀다.

여기서까지 수를 감춘다면 모두가 이상하다 생각할 터였다.

‘기절만 하지 마라.’

대신 주먹을 유석경의 단단한 가슴을 후려쳤다.

콰아아앙!

유석경이 끌어올린 내력과 진백천의 내력이 부딪치며 강한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방금 자신이 준 내력을 자신이 부숴 버린다는 게 꽤나 웃겼다.

“커헉!”

유석경은 그대로 한쪽 다리가 꺾이며 한참이나 뒤로 굴러갔다.

오른쪽 어깨가 탈구가 되며 덜렁거렸다.

그뿐만 아니라 숨을 쉴 때마다 피가 새어 나왔다.

하지만 남은 손을 버둥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애썼다.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유석경이 꼿꼿이 일어서기를 응원했다.

하지만 한쪽 다리에 힘이 풀리며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아아!”

안타까운 탄식이 새어 나왔지만 그 누구도 그를 도울 수 없었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사람들을 뚫고 유석경 앞으로 다가왔다.

하얀 경장에 면포로 얼굴을 가린 것은 다름 아닌 언해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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