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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회귀백서-146화 (146/346)

무림회귀백서 146화

53장 무(武)의 증명(1)

진백천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당황하기보다는 놀람이 더욱 컸다.

얼굴 한 번 보지 않고 단지 짐작으로만 이 정도까지 되짚었다는 것에 과연 마뇌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나는 뭐라 대답해야 할까. 아니, 대답을 해주지 말까?’

하지만 여기서 진실대담을 끝내는 것은 진백천으로써도 아쉬움이 컸다.

아직 천마에 대한 질문은 시작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진백천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고 해도 기이한 능력을 지녔다는 것까지는 혼자 생각할 것이다.

‘이미 그렇게 생각하는 듯한 모양이지만.’

유난히 흑요석 같은 마뇌의 눈동자는 촛불의 빛을 반사하며 반짝였다.

그런 모습이 마치 검은 고양이같이 느껴졌다.

‘회귀를 했다고는 절대 생각지 못하겠지. 그렇다면 대충 고민할 만한 거리를 던져줄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지?”

마뇌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뿐만 아니라 표정까지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죽었다 깨어났지.”

“뭐? 죽었다고? 아니면 죽을 만큼 힘들었다고?”

“말 그대로 죽었다가. 그러니까 세상이 새롭게 보이더라고.”

마뇌는 더 대답을 듣고 싶은지 물끄러미 쳐다봤다.

하지만 진백천은 더 말을 잇지 않았다.

“왜? 질문에 대한 답은 충분하잖아?”

“흐음. 죽었다라. 그럴 리가 없는데.”

진백천을 향한 마뇌의 시선이 어딘가 이상했다.

거짓말은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도 보기 불편한 눈빛이었다.

그렇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진백천은 곧바로 질문을 이어나갔다.

“천마의 시체가 있는 곳은 어디지?”

“시체? 별걸 다 궁금해하네. 십만대산부터 여러 곳에 흩뿌려져 있지. 가장 큰 조각은 악인곡에 박혀 있다.”

“악인곡?”

악인곡(惡人曲)은 말 그대로 악인들이 갇혀 사는 곳이었다.

그곳에 들어선 자는 하나같이 악인에 무림공적이 된 이들뿐이었다.

전부 흉악하고 인간의 탈을 쓴 자들이었기에 그곳에 들어간 이는 악인이 아니더라도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것은 진백천이라도 마찬가지였다.

괜히 들어갔다가 그것이 무림에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그조차도 무림공적이 되어버렸다.

‘일부로 악인곡을 알려줬을 리는 없고.’

그 이후의 질문은 딱히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었다.

대답도 서서히 성의가 없어지자 둘은 진실대담을 더 이어갈 가치를 못 느꼈다.

“여기까지 하지.”

“그래. 제법 유익한 듯 아닌 듯 쓸모없는 시간이었어. 이곳이 아닌 곳에서 보게 된다면 아마 목숨을 내놓아야 할 거야.”

“그건 너도 마찬가지겠지.”

서로는 평범한 얼굴로 날 선 소리를 잘도 뱉어냈다.

진백천은 자리에서 일어나 문가로 향했다.

그곳을 지켜선 지살대의 무인들의 시선이 칼날처럼 그에게 꽂혔다

손에 실핏줄이 난 무인의 살기가 유난히 강했다.

“문 열어. 오늘은 곱게 보내드려야지.”

철컥-

진백천은 그들을 한차례 훑어보고는 방에서 빠져나왔다.

“형님. 괜찮으세요?”

허공이 일렁이며 도홍경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마뇌의 방에서 일렁이던 끔찍한 기운을 전부 느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항하던 진백천의 기운도 말이다.

“괜찮아. 돌아가자.”

“네.”

도홍경은 뒤편을 힐끔거리며 발걸음을 서둘렀다.

살짝 열린 문틈으로 찌를 것 같은 시선이 느껴졌다.

* * *

“마뇌. 저대로 저자를 보냅니까?”

“일금영(一禽影). 서두르지 마세요.”

일금영이라 불린 지살대 무인은 진백천의 검을 맞댄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실금의 상처에서 핏물이 흘러나왔다.

“구촉비전(口燭非典)을 익힌 일금영의 움직임을 간파했을 뿐만 아니라 반격까지 해온 자예요. 우습게 보면 우리가 다칩니다.”

“철갑만마대(鐵甲萬馬袋)와 함께라면 이깟 진주언가 따위 순식간입니다.”

마뇌는 짜증 섞인 눈으로 일금영을 노려봤다.

몸만 뛰어난 자들의 문제가 바로 이런 것이었다.

대체 뭐가 중요한지도 모르고 그저 상대를 무너뜨리고 피를 낸다고 하면 충분하다 생각했다.

“정파의 무인들이 외골수에 고리타분한 놈들이라고 하나 뭉치면 무서운 자들이에요. 우리는 그들이 뭉치기 전에 야금야금 갉아먹고 씹어서 흩어놔야 하고요.”

그리고 가능한 피를 많이 내야 하는 마교의 입장에서 빠른 전면전은 가능한 피해야 했다.

혼돈과 무질서.

그 안에서 공포로 점철된 전쟁이어야만 올바른 천마를 영접할 수 있었다.

마뇌의 말이 일백 번 맞다고 하지만 일금영은 날카로운 눈으로 밖을 쏘아봤다.

‘아무래도 더 옆에 두기에는 쓸모가 없겠어.’

다른 완벽한 지살대 무인들과 다르게 구촉비전의 부작용인 편집증적 증세가 나타나는 중이었다.

“일금영. 그렇다면 팽가에 가서 그들을 한번 준동해 보세요.”

“팽가는 같은 정파인데 움직이겠습니까?”

마뇌는 일그러지는 얼굴을 감추며 말을 이었다.

“도왕이 봉문을 선언했다고 하나 팽가칠도의 장로 중에는 그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 자들이 있을 겁니다. 그들과 이야기해서 진백천을 노려보세요. 뒷처리는 마교의 짓이라고 속인다고 하면 쉽게 따를 겁니다. 일이 끝난 후에는 팽가의 늙은이들이 진백천의 시체와 함께 쓰러져 있을 테고요.”

“알겠습니다.”

일금영은 기다렸다는 듯 곧바로 연기처럼 일렁이며 사라졌다.

그제서야 마뇌의 얼굴은 못 볼 것이라도 봤다는 듯이 잔뜩 일그러졌다.

“멍청한 놈.”

진백천과 같이 똑똑한 자와 대화하다 근육 덩어리와 대화를 하니 머리가 굳는 느낌이었다.

아무리 진백천이 유약해 보인다고 해도 그것은 겉모습뿐이었다.

팽가칠도와 일금영이 전부 다 달려든다고 해도 진백천을 죽일 수 있을 리 없었다.

‘그자는 아직 숨긴 게 많아.’

혈뢰음사의 혈강옥불상(血腔玉佛狀)을 취했다고 하지만 또 다른 마기가 느껴졌다.

아주 찰나였기에 그 정체를 완벽히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그가 숨길 정도면 평범한 것은 아니었다.

‘그 어마어마한 내력과 더불어 파사의 기운까지. 그는 착실히 천하제일인을 향해 걸어가는 중이다.’

진백천이 강해질수록 그를 상대해야 하는 마교의 입장에서는 싫어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마뇌는 오히려 더욱 미소를 띠었다.

그것은 결국 최후의 승자는 마교가 될 것임을 아는 자의 미소였다.

* * *

방으로 돌아온 진백천은 곧바로 방에 돌아와서 생각을 정리했다.

마뇌와의 대화를 떠올리다 보니 어느새 아침을 맞이했다.

결국 살짝 눈을 붙이는 것으로 만족하고 밖으로 나왔다.

“회주님. 일어나셨어요? 오늘이 벌써 마지막 날이네요.”

“그러게. 후우. 우리도 슬슬 떠날 준비를 해야지.”

당소예와 황대원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백천이 경연에 참여했다고는 하나 전부 유석경을 돕기 위한 것이었다.

언해원에게 관심이 있어서라는 게 아닌 것쯤은 잘 알았다.

“역시 회주님이 다른 분께 관심을 둘리 없죠.”

“맞습니다. 회주님의 짝은 역시 고유빈 공주님일 겁니다. 하하”

대답하던 황대원은 문득 당소예의 표정을 보고 웃음을 멈췄다.

당소예는 뭔가 말이 안 된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고유빈 공주님이요? 그분이 좋긴 해도 황실 분이시잖아요. 저는 당연히 당천아 아가씨가 회주님 짝이라고 생각했는걸요?”

“당가가 명문가라고 해도 회주님의 마음이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공주님과 함께 있을 때면 항상 웃으시던 모습이 생각나지 않으십니까?”

“웃긴요. 고생만 잔뜩 했죠!”

‘어쭈 이것들 봐라?’

진백천은 자신의 배필을 두고 이러쿵저러쿵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당천아와 고유빈으로 시작된 누가 더 배필에 어울리냐는 싸움은 점점 인물이 확장되어갔다.

“당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하오문의 하여교 소저도 괜찮죠. 엄청 똑똑하시고 회주님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으시니까요.”

“정보단체를 생각한다면 그편이 좋을 수도 있겠군요.”

“아니면 확 그냥 전부 아내로 맞이하는 것도……!”

둘은 열을 높여 말하다가 문득 옆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입을 다물었다.

진백천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비스듬히 쳐다봤다.

“크흠. 당 소저. 우리가 조금 지나쳤습니다. 회주님의 배필을 우리가 왈가왈부할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 그렇죠.”

“이제 알았어? 괜한 소리 말고 떠날 준비나 해.”

“알겠습니다!”

진백천은 고개를 흔들며 진주언가의 연무장으로 향했다.

그의 옆으로 도홍경이 은근슬쩍 나타나며 물었다.

“형님. 저는 공주님께 한 표…….”

“맞기 싫으면 입 다물지?”

“……넵.”

연무장에는 이른 시각부터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하지만 정작 남은 참가자는 단 4명뿐이었다.

마뇌는 해가 밝기 전에 진주언가를 떠난 모양이었다.

몇몇 사람들이 아쉬워했지만 마지막 날의 열기에 묻혀 금세 사라졌다.

“마지막 날까지 모여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4차 경연은 언해원 아가씨께서 가장 중요시 여기는 것을 시험 보는 날입니다. 바로 무(武)입니다!”

진주언가는 무가였다.

강한 자를 좋아하고 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네 번째 경연은 대결이었다.

4명의 참가자는 각자 2조로 나뉘어 대결을 하고 최종 1명을 뽑히면 우승이었다.

유석경은 4차 경연의 설명이 끝나자 굳은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감을 가져. 그간 노력했잖아.”

“맞아. 노력했지.”

조는 구슬 뽑기로 나누었다.

참가자들은 작은 상자에 손을 넣어 구슬을 뽑았다.

진백천은 검은색, 유석경은 하얀색이었다.

다행히 서로 다른 색이었다.

“검은색 구슬을 뽑은 참가자가 1조, 하얀색 구슬이 2조입니다!”

진백천은 자신과 똑같이 검은색 구슬을 든 자를 쳐다봤다.

유소어는 어딘가 어색한 표정이었다.

반면에 하얀색 구슬을 뽑은 교영은 티 나지 않게 무척이나 좋아했다.

유석경의 실력이 뛰어나지 않음을 잘 아는 듯했다.

“석경. 이길 수 있어.”

유석경은 그간의 수련의 성과를 믿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전에 먼저 진백천과 유소어의 대결이었다.

연무장 가운데로 나서자 유소어가 죽을상으로 앞에 마주 섰다.

아무리 봐도 하기 싫은 것을 사령령이 억지로 밀어 넣은 게 분명했다.

“……하아. 회주님. 잘 부탁드립니다.”

“나야말로.”

“제 말을 그러니까 살살…… 좀.”

“유소어. 쓸데없는 소리 말고 필사적으로 싸우라고!”

사령령이 뒤편에서 주먹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으휴.”

“고생이 많군.”

“제가 이러고 삽니다.”

대결이 시작되자 유소어가 자신의 무기인 섭선을 펴들었다.

촤악-

살 사이에 숨겨진 날카로운 철날이 보였다.

“가능한 빨리 끝내줄게.”

“네. 그래 주시면 감사하죠.”

유소어는 말과 다르게 진백천의 움직임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눈동자는 고정이라도 된 듯 깜빡이지조차 않았다.

‘분석하는 건가?’

그렇다고 진백천을 버텨낼 수 있을 리 없었다.

지금의 유소어는 단순히 분석하려는 것이었다.

“그럼…….”

진백천이 가볍게 주먹을 들어 올렸다.

“……막아봐.”

그리고 앞으로 쏘아져 나가며 주먹을 휘둘렀다.

단순한 주먹질이었을 뿐이었지만 그 안에 300년의 내력이 담겨 있다면 말이 달라졌다.

그것을 눈치챈 듯 유소어는 기겁하며 섭선을 방패처럼 내밀었다.

까드드득!

섭선은 순식간에 박살 나며 흩날렸다.

동시에 유소어는 바닥에 넙죽 엎드리며 항복을 외쳤다.

“져, 졌습니다아아! 항복!”

주먹이 채 닿기도 전이었다.

그야말로 진백천의 가벼운 승리였다.

‘어차피 진짜로 때릴 생각도 없었지만.’

“……진백천 회주님의 승리입니다!”

그리고 뒤이어 곧바로 유석경과 교영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교영은 치렁치렁한 옷 대신 손목과 발목을 질끈 묶은 검은 무복을 입고 나왔다.

몸을 푸는 모습이 제법 몸을 쓸 줄 아는 것처럼 보였다.

‘풍류공자라 하더니 놀기만 한 건 아니군.’

유석경은 긴장한 듯 마른침을 삼켰다.

진백천이나 금의위들을 제외하고는 대련은 처음이었다.

-석경. 최대한 버티고. 기회를 노려. 기회는 분명히 올 테니까.

들었는지 아닌지 유석경은 크게 심호흡을 하며 앞으로 나섰다.

그의 시선에 멀찍이 앉아 있는 언해원의 모습이 보였다.

‘지금 이 순간이다.’

그는 손목과 발목에 묶여 있는 철고리를 움켜쥐었다.

진백천이 만들어 주었던 철고리는 진즉에 풀 수 있도록 만들어두었다.

철컥-

쿠우웅!

총 80근(48kg)의 고리가 바닥에 떨어지며 묵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것을 지켜보던 교영이 움찔하며 놀랄 정도의 무게였다.

‘이 순간을 위해 달려왔다.’

유석경은 평소 그답지 않은 투지 넘치는 모습으로 주먹을 들어 올렸다.

‘반드시 이기고 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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