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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회귀백서-145화 (145/346)

무림회귀백서 145화

52장 한밤중의 밀회

진소가.

그는 다름 아닌 진백천의 할아버지였다.

구촉비전(口燭非典) 탓인지 젊은 나이에 죽었고 진백천의 아버지부터는 그 무공을 익히지 않았다.

그것의 부작용이 너무나 치명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남성성이 사라지며 서서히 여자가 되어가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편집증적인 성격으로 바뀌는 것도 그 대표적인 부작용이었다.

‘정말 구촉비전일까?’

진백천의 가문에서도 사라진 가전무공이었다.

그런 무공이 마뇌에게서 펼쳐지니 진백천은 속이 복잡해졌다.

‘구촉비전이 맞다면 그것을 왜 마뇌가 익히고 있는 거지?’

혹시 그것 또한 마교에서 뿌려둔 조각 중 하나일까 의심이 들었지만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마뇌는 진백천의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를 쳐다봤다

“이제 내 질문해도 되지?”

두 눈동자에는 막는 자가 있다면 당장 패 죽이겠다는 의지가 강렬했다.

하지만 진백천은 고개를 저으며 문밖을 가리켰다.

“안타깝지만 비가 그쳐서 말이지.”

어느새 폭우는 사라지고 해가 모습을 드러냈다.

애초에 진실대담은 비가 그치기 전까지만이라는 조건이었다.

마뇌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손을 툭툭 털었다.

-운이 좋네. 한번 봐주지.

-봐주긴 개뿔. 너야말로 진짜로 사냥당하기 전에 마교로 썩 꺼지는 게 좋을 거야.

마뇌는 쓰러진 산적들을 지르밟으며 밖으로 나갔다.

그런 와중에도 산적들은 미동 한 번 없었다.

“후우. 겉보기와 다르게 지독한 면이 있군.”

교영은 다시 비가 오기 전에 서둘러 밖으로 향했다.

비 온 뒤의 하늘은 무척이나 청명했다.

하늘은 쨍쨍하고 산에는 생기가 넘쳤다.

진백천은 올라올 때와 다르게 산책이라도 하듯 천천히 걸어 내려갔다.

“백천. 저자들을 저리 두고 가도 되겠나?”

“알아서 하겠지. 운 좋으면 들짐승한테 죽겠고.”

‘대부분은 구촉비전의 내력에 온몸이 뒤틀려 죽겠지만.’

뒷말은 물론 속으로 삼켰다.

“응? 백천 저기!”

그때 유석경이 뭔가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그들이 산을 오르기 전에 반대쪽으로 달렸던 말 두 마리였다.

녀석들은 갑자기 내리는 비에 놀랐는지 큰 나무 아래 몸을 숨긴 채 쉬는 중이었다.

“나올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첫 번째로 들어가겠는데?”

“운이 좋군.”

진백천과 유석경은 놈들을 달래고 다시 진주언가로 향했다.

예상대로 그들은 가장 첫 번째로 들어왔다.

그날 3차 경연의 통과자는 단 5명이었다.

뒤늦게 문제를 풀고 관제묘에 도착한 이들도 있었지만 이미 패는 마뇌가 태워 버린 후였다.

‘이제 남은 건 마지막 경연인가?’

유석경은 긴장이 되는지 쉽게 잠에 들지 못했다.

한참이나 뒤척이며 산책을 하다 방에 들어갔다.

진백천은 그런 그를 물끄러미 지켜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이 오지 않는다는 쓸데없는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진백천은 도홍경과 몰래 마뇌가 머무는 곳으로 움직였다.

아무래도 조용히 대화를 나눠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경연을 치르는 동안 별 움직임은 없었지?”

“네. 형님. 그런데 제가 지켜보는 걸 두 명이 눈치챈 것 같은데요. 가끔 새 쫓듯이 기운을 뻗쳐오더라고요.”

“절대 가까이 붙지는 마.”

“물론이죠. 그놈들 뭔가 꺼림칙하거든요.”

아주 늦은 시간이었지만 마뇌는 아직까지 불도 끄지 않은 상태였다.

물론 유석경처럼 긴장이 된다거나 하는 이유 따위는 아니었다.

왠지 진잭천이 올 것이라도 예상한 듯한 모습이었다.

‘누가 마뇌 아니랄까 봐 쓸데없이 눈치가 빨라.’

진백천은 당당하게 그녀의 방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문이 자연스럽게 열리며 지살대 무인 세 명과 마뇌가 그를 반겼다.

탁자 위에는 갓 끓인 차에서 모락모락 김을 피어났다.

“빨리 앉지. 아까 못한 질문을 해야 되니까.”

“이미 끝난 일에 왜 이렇게 집착을 해?”

진백천은 도홍경을 남겨둔 채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지 않아도 도홍경은 이미 모습을 감춘 지 오래였다.

철컥-

그가 방에 들어서자 지살대 무인이 방 앞에 나란히 섰다.

딱히 기세를 내뿜지 않아도 그 압박감은 대단했다.

“대충 내일이 마지막이겠지?”

마뇌는 진백천을 힐끔 올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경연 따윈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

그녀가 십만대산을 나오며 계산한 여유 시간은 6일.

이곳에서 3일을 사용했으니 남은 3일은 소교주를 위해 사용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자존심만 센 소교주 따위가 눈앞의 진백천에게 어이없게 잡아먹힐지도 몰랐다.

‘적어도 분탕 정도는 칠 정도는 만들어놔야 나도 일이 편해지니까.’

마뇌는 속마음을 숨기며 차를 홀짝였다.

너무 오래 우려냈더니 제법 맛이 썼다.

“두 번째 진실대담인가?”

“그런 것 치고는 나는 아까 질문도 못 했잖아?”

“천하의 마뇌가 그런 걸로 속 좁게 굴면 안 되지.”

진백천은 마뇌에게 물어보고 확인할 것들이 많았다.

단순히 정마대전 이외에 다른 계획의 단초라도 좋았다.

그런 것들이 그의 회귀 전 기억과 합쳐진다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이번에는 이렇게 하는 거 어때? 서로 번갈아 가면서 질문은 하는 거야. 만약 한 사람이라도 더 궁금한 것이 없어지면 바로 진실대담을 끝내는 거지.”

“좋아! 상대방에게 듣고 싶은 게 있으면 끝까지 질문을 받아야 한다는 거잖아? 후회하지 않겠어?”

“후회는 무슨.”

“대신 거짓말을 하면 어쩌고?”

진백천이 이죽이며 마뇌를 쳐다봤다.

“그거야 본인의 능력으로 알아들어야지.”

즉, 진실을 말하든 거짓을 말하든 대답만 하면 되었다.

마뇌는 그러한 조건에 더욱 재미를 느끼는지 웃음이 짙어졌다.

“그럼 질문은 나부터 할까?”

“마음대로.”

“익힌 마공이 혹시 혈강옥불상(血腔玉佛狀)인가?”

“맞아.”

진백천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수긍했다.

“익히게 된 건 의도적인 게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익힌 건 맞으니까.”

“마화린 소교주가 성을 낼 만하군. 꽤나 오랫동안 공들여 왔던 건데. 그나저나 아직까지는 정신이 멀쩡한가 봐? 미친 승려들의 무공은 익힌 자로 하여금 강한 힘을 주지만 서서히 미쳐가거든.”

마뇌가 그것을 확인하듯 서서히 마기를 끌어올렸다.

그를 자극하기 위해서였지만 겨우 그 정도로 진백천을 뒤흔들 수 없었다.

오히려 진백천의 눈동자에서 푸른빛으로 빛나며 꿰일 것 같은 기운 뿜어져 나왔다.

“으음!”

마뇌는 진백천에게서 쏟아져 나오는 파사(破邪)의 기운에 화들짝 놀라며 눈을 내리깔았다.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마기가 타들어 가며 눈이 멀어버릴 뻔했다.

그만큼 강력한 파사(破邪)의 기운이었다.

“……이건 대체 무슨 기운이지?”

“첫 번째 질문은 끝났어.”

마뇌가 뽀루퉁한 표정을 지었다.

진실대담은 이렇듯 상대가 궁금해할 만한 것을 계속해서 만들어내야 했다.

그래야 다음 질문에서 어떻게든 대답을 할 테니까.

태허무극진결(太墟無極進結)의 파사의 기운을 보인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이제 내가 질문하지.”

진백천은 성급하게 묻지 않았다.

구촉비전(口燭非典)에 대해 세세히 알고 싶었지만 단 한 번에 질문에 많은 것을 알아내기 힘들었다.

‘가장 가능성 있는 것은 정도회에서 간자를 심어서 훔쳐 간 걸까?’

진백천은 곧 물어볼 말을 정리하고 입을 열었다.

“구촉비전(口燭非典)의 부작용은 누가 없앴지?”

마뇌는 잠시 대답이 없었다.

마뇌라면 분명히 그 답을 알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단순히 대답해서는 다음 질문에서 진백천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버릴 것만 같았다.

“제법 가문에 대해 알고 있나 봐. 수박 겉핥기라지만 말이야.”

구촉비전에 대해 말만 들었을 진백천이 무공을 알아본 것은 칭찬할 만했다.

하지만 별 반응이 없자 마뇌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대답해 주지. 구축비전의 부작용을 없앤 건 진소가다.”

진백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의 할아버지의 이름이었다.

순간 그의 머릿속에서 수없이 많은 질문이 파생되었지만 입을 꾹 다물었다.

마뇌는 그런 진백천의 복잡한 마음을 느꼈는지 이죽이듯 말을 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마교의 많은 이들이 구축비전을 익혔지. 물론 그들 중 태반이 죽었지만 살아남기만 한다면 정말 멋진 강하고 멋진 무공이야. 삼류 무인도 제대로만 익히면 초절정 고수를 기습할 정도로 말이지.”

마뇌는 손에 쥐고 있던 찻잔을 자신의 뒤로 있는 힘껏 던졌다.

하지만 찻잔이 떨어지는 소리 따위는 들리지 않았다.

문가에 있던 지살대 무인이 어느샌가 차를 받아든 것이다.

카앙!

그와 동시에 묵직한 금속음이 방안에 울려 퍼졌다.

“제법인데?”

마뇌가 하는 칭찬의 대상은 지살대 무인이 아니었다.

지살대 무인은 위협인지 진심인지 모를 공격으로 그의 목을 노린 것이다.

진백천은 어느샌가 뒤로 다가온 기척을 느끼며 독고구검을 내질렀다.

검과 맨손이 닿았지만 지살대 무인의 손에는 작은 실금이 전부였다.

‘……빠르다.’

“함부로 한눈팔지 마. 순식간에 죽을지도 몰라. 회주.”

“명심하지.”

지살대 무인은 공격할 때와 마찬가지로 은밀히 뒤로 물러났다.

‘……엄청난 움직임이었다. 미리 상단전을 깨워놓지 않으면 간파하지 못했어.’

-형님! 괜찮으십니까?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도홍경의 전음이 들려왔다.

방금 금속음으로 깜짝 놀란 듯 보였다.

-아직까지는 괜찮으니까 대기하고 있어.

-네. 무슨 일 있으시면 바로 사방에 알리겠습니다!

티는 내지 않았지만, 등 뒤로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진백천은 문득 주변이 너무 어둡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뇌는 그가 눈치채지 못하게 조금씩 방안에 마기를 풀고 있던 중이었다.

‘이것으로 내 오감을 무뎌지게 만든 건가?’

진백천은 최대한 숨을 가다듬으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단전에 잠들어 있던 태허무극진경의 내력을 끌어올렸다.

곧 기경팔맥에 노도와 같은 기운이 타고 돌며 몸이 들썩였다.

강력한 파사의 기운은 전신을 휘감을 뿐만 아니라 주변의 마기를 전부 태워 버렸다.

파사 즉 현정이라!(破邪卽顯正).

[그릇됨을 쫓고 올바름을 행하라!]

질끈 감았던 눈을 뜨자 푸른 빛이 솟구치며 가슴이 진정되었다.

마뇌는 아쉬운 듯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흐음. 이제 다시 내 차례야. 이번 질문은 꽤나 길 것 같으니까 잘 들어.”

마뇌의 눈동자가 회색의 안개같이 일렁였다.

상대의 심지를 약하게 만들고 현혹하는 마안(魔眼)의 종류였지만 진백천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마뇌는 이미 예상했는지 한치의 아쉬움도 없이 말을 이었다.

“진백천. 회주가 되더니 갑자기 다른 사람이라도 된 듯 행실이 바뀌었어. 사람들을 익숙하게 다뤘고 마교의 분타를 모조리 없애버렸지. 어떠한 정보단체도 없던 자가 하오문과 개방조차 모르던 만상궁(灣商宮)의 정보를 알아낸 게 기이하지만 우연이라 치고! 얼마 뒤에는 쓸데없는 이유를 만들어 강호를 돌아다니다 혈화궁(血花宮)의 적조녀와 강시조차 죽여 없앴지.”

마뇌의 목소리는 점점 힘이 실렸다.

그동안 내색하지는 않지만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진백천에 대한 호기심이 슬슬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물론 그것도 우연이다 쳐. 하지만 단지 그뿐이라면 신경 쓰지 않았을 거야. 그런데 갑자기 녹림에 숨어든 간자를 잡아 죽여 분열을 막았을 뿐만 아니라 화산으로 향해서 화산신검을 도왔어. 하오문과 개방의 인문들과 친해지고 그들의 정보망을 이용한 것은 부차적이라고 하더라도 말이지!”

질문이라기보다는 확인에 가까웠다.

마뇌는 이미 진백천에 대해 조사를 마친 후였다.

그런데도 그녀의 머릿속에서 진백천은 아직 이해 불가의 존재였다.

이것은 왜 그런지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한 과정이었다.

“세상에 세 번이나 반복되는 우연은 없어. 그리고 이유 없는 변화 따위도 없지! 더구나 나의 계획을 무너뜨린 자라면 더더욱 말이야. 내 질문은 이거야.”

마뇌는 천천히 진백천에게 몸을 기울였다.

그리고 속삭이듯 물었다.

“회주가 변하던 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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