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회귀백서 144화
51장 관제묘(關帝廟) 안에서의 진실대담(3)
진백천은 사방에서 쏟아지는 관심에 미간을 찌푸렸다.
“뭐 이렇게 궁금한 게 많아?”
다른 이들은 몰라도 유석경까지 손을 든 것이 의외였다.
진백천은 유석경을 가장 먼저 지목했다.
“백천. 전부터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네. 이런 기회를 통해서 물어볼 수밖에 없는 나를 너무 뭐라 하지는 말게.”
“전혀 그렇게 생각 안 하니까 뭐든 물어봐.”
“자네는 나를 정말 친구로 생각하는지 궁금하군.”
진백천은 눈을 꿈뻑이며 그를 쳐다봤다.
“친구?”
“맞아. 우리는 친구 사이가 맞는 건가?”
그 질문을 하는 유석경은 얼핏 긴장까지 해보였다.
그만큼 그에게는 진지한 질문이었다.
진백천은 그가 왜 이런 질문을 했는지 짐작해 봤다.
생각해 보면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 진백천은 도와주기만 했을 뿐 딱히 뭔가를 요구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유석경은 진백천을 아주 좋은 친구로 생각하면서도 반면에 걱정도 되었다.
‘내가 자신을 단지 목적을 위해서만 만나는 게 아닐까 하는 거군.’
진백천은 피식 웃으며 유석경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언 소저를 대할 때는 그렇게 대차면서 이럴 때는 왜 이렇게 꽁하나? 당연히 친구지.”
“그렇군.”
유석경은 단지 똑같이 웃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굉장히 안도해 하는 유석경과 다르게 마뇌는 무척이나 못마땅해했다.
“뭐 그런 걸 질문해서 시간을 끕니까?”
처음으로 유석경을 향해 눈을 흘기며 나무랐다.
마뇌가 뒤이어 뭔가를 물어보려 했지만 진백천은 일부로 마뇌를 지나 유소어를 지목했다.
“회주님. 이번 일이 마무리되면 사패천에 들리실 의향이 있는 건지 궁금합니다. 아! 물론. 오신다고 했으니 분명 약속을 지키실 거라는 것 잘 압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저희가 규율이 강하다 보니 늦게 오시면…… 하하.”
조금 더 진중한 질문을 기대했던 진백천은 김이 팍 새버렸다.
구중천과 관련된 것을 어떻게 알았냐는 질문 정도를 예상했던 진백천이 고개를 저었다.
“갈 거야. 적어도 무림대회가 시작되기 전에, 그러니까 정도회로 돌아가기 전에 한 번 들르지.”
“……확답 감사합니다!”
정말로 듣고 싶었던 대답이었는 듯 유소어는 만족한 얼굴이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이들은 마뇌와 교영.
당연히 진백천은 교영을 지목했다.
마뇌가 한쪽 입술만 남긴 채 입술을 내렸다.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생각보다 쪼잔하군?
-내가 뭘?
교영 또한 눈을 빛내며 질문을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회주님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처음의 마교 토벌부터 사람들을 구하시고 했던 그 수많은 공적 말입니다. 얼마 전에는 흡정마녀라는 악녀도 퇴치했다고요.”
“응. 뭐가 궁금한 건데?”
잠시 눈치를 살피던 교영은 자신이 생각해도 어처구니없는 질문인 걸 아는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혹시 흡정마녀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듣기로는 절색에 손을 한 번만 휘둘러도 남자들이 쓰러진다고…….”
“그딴 것도 질문이라고! 대답할 필요도 없군! 내 차례다!”
마뇌가 진심으로 짜증이 난 듯 교영을 노려보며 말했다.
하지만 진백천은 고개를 저었다.
“누구나 질문을 할 수는 있어. 독특하지만 이런 자리에서 뭔 질문인들 못 하겠어. 안 그래?”
다른 이들이 고개를 끄덕이자 마뇌가 입을 꾹 다물었다.
진백천은 잠시 생각하는 척하면서 유석경을 쳐다봤다.
이 중에 흡정마녀를 본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유석경은 매일같이 그녀를 안마까지 했으니 더 자세히 살폈었다.
“석경 자네가 볼 때는 어땠어?”
“흐음. 겉으로 보기에는 꽤나 빼어났지. 하지만 누군가를 홀릴 정도의 절색은 아니었어.”
“그렇지. 더구나 정기를 흡수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노인의 모습으로 돌아갔으니까.”
진백천이 남자의 정기를 흡수하던 모습을 설명하자 교영이 흠칫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에 유석경이 피식 웃었다.
“자네도 풍류공자라고 괜히 여러 여자를 만나지는 말게. 그런 악녀가 언제 정기를 노릴지 모르니.”
교영이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내 그의 질문이 끝나자 마뇌가 씨익 웃으며 진백천을 쳐다봤다.
무슨 질문을 할지 미리 생각해놨는지 안달 난 모습이었다.
‘이런 겉모습만 봐서는 마뇌라고 믿기 어려울 지경이군. 쯧.’
“이제 내 차례군. 제법 대답하기 어려운 대답일 거야.”
마뇌는 청순한 얼굴과 다르게 악독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정도회의 회주라면 단연코 정파의 수장에 가까운, 혹은 버금가는 자리라고 봐도 되겠지?”
“나름 그렇게 되게끔 열심히 노력 중이지.”
“그렇다면 회주가 익힌 무공도 정도회의 무공인가?”
진백천은 마뇌가 말하려는 바를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마뇌는 그가 익힌 무공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진즉에 알아챘다.
최근 들어서는 그 사용 빈도가 줄었다고는 하지만 만약 그것이 마공에 가까운 것이라면 손쉽게 몸에서 지울 수 없었다.
‘증거 따위는 없어도 논란거리가 되기에는 충분하지. 논란은 만들어낸 사람이 아니라 당하는 사람의 몫이니까.’
혹시라도 추후에 그 논란이 커져서 진백천의 몸을 훑어보기라도 한다면 난처한 상황이 벌어질지도 몰랐다.
그녀가 이런 공개적인 자리에서 질문을 하는 것은 당연히 그런 분란의 씨앗을 만들어두기 위함이었다.
“뭐 일부는?”
“일부라. 내가 어디서 듣기로는 말이지. 회주가 익힌 무공이…….”
쿠우웅!
그때였다.
관제묘의 뒤편에서 묵직한 충격음이 울려 퍼졌다.
화들짝 놀란 이들이 긴장하며 뒤를 살펴봤다.
하지만 딱히 별다른 흔적은 없었다.
“밖에서 난 소리 같은데?”
“나무라도 쓰러졌나 보군.”
“비만 내리는 게 아니라 이제 바람도 강하게 부는 모양이야.”
마뇌는 자신의 말이 끊기자 손을 휘저으며 다시 집중시키려 했다.
“잠깐. 아직 내 질문 끝나지 않았다고. 잘 들어봐.”
“들어볼 게 말해.”
“그러니까. 회주의 무공이 말이지.”
쿠웅!
작지만 또 다른 충격음이 벽 쪽에서 들려왔다.
전보다는 작았지만 확실히 의도적인 부딪침이었다.
“뭐야? 들짐승인가?”
쿠웅!
마치 주먹으로 때리는 듯한 소리는 벽을 따라 이어졌다.
그 소리는 점차 문 쪽으로 향했다.
그럴수록 빗속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얼핏 들리는 것은 분명 사람의 목소리였다.
“……이…… 거의…… 습니다!”
“살…… 있…… 테다!”
진백천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곧 집안으로 쓰러지듯 들어온 것은 세 명의 남자였다.
혹시 3차 경연에 참가한 사람인가 했지만 그것은 아닌 듯 보였다.
우선 본 적 없는 얼굴임은 둘째치고 복장이 누가 봐도 산적이었다.
“허억허억! 죽을 뻔했네. 뭔 놈의 비가 갑자기 저리 내리냐!”
“맞습니다! 형님! 산사태에 쓸려 내려오다 이곳을 발견하지 못했으면……!”
그들은 온몸에 묻은 흙을 털다 자신들을 쳐다보는 시선을 느끼며 화들짝 놀랐다.
그러고 보니 모닥불도 피어져 있고 안이 제법 훈훈했다.
“허억! 네, 네놈들은 뭐냐!”
산적들은 벌떡 일어나며 자신들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군데군데 이가 나간 곡도였다.
“괜히 큰소리 내지 말고 자리에 앉지? 가뜩이나 네놈들 때문에 머리 아프니까.”
얼마나 씻지 않았는지 놈들이 들어오면서 꾸릿한 냄새가 가득 찼다.
“뭐라? 이놈들이 감히 우리가 누군지 알고!”
거기에다 쓸데없이 목소리까지 크니 짜증이 더욱 치솟았다.
“네놈들이 누군데? 심심한데 들어나 보자.”
가장 가운데 있던 산적이 기세를 타고 싶은지 거칠게 곡도를 휘두르며 소리쳤다.
“내가 바로 녹림 영호채의 채주 용팔이다!”
용팔이라는 놈은 녹림의 이름 앞에서도 아무렇지 않아 하는 사람들을 보고 제법 당황했다.
그래서 그런지 더욱 목소리를 높이며 뒤에 있는 자들을 소개했다.
“크흠! 이 두 분으로 말할 것 같은 현 강호에서 모르는 이가 없으며 어떤 악인도 다 벌벌 떤다는 무림의 빛이자 소금이신……!”
“설마?”
설마가 사람 잡았다.
“……정도회의 진백천 회주님과 황대원 무사님이시다!”
모두의 고개가 홱하니 돌아서 진백천에게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뒤에 두 놈은 앞에 놈과 달리 옷차림이 조금은 남달랐다.
남루한 산적의 거적떼기와 다르게 제법 신경 쓴 듯한 비단옷에 머리도 정갈했다.
문제는 누가 황대원이고 진백천인지 모르게 둘 다 확신의 산적상이었다.
“……어떤 새끼가 진백천이냐?”
“어떤 새끼라니! 이놈! 말을 똑바로 하지 않으면 일도양단 황대원이 네놈의 목을 내리쳐주겠다!”
당당히 나서는 놈이 황대원이니 뒤에서 뒷짐을 지고 뻗대는 놈이 진백천이었다.
아무리 봐도 진백천과 조금도 닮은 구석은 하나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멋있어 보이려 비스듬히 시선을 돌리는 모습이 흠씬 두들겨 패주고 싶을 정도였다.
“백천. 너무 신경 쓰지 말게. 아무리 봐도 자네와 닮은 구석은 없으니까.”
진백천 역할을 맡은 산적놈이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돌려 진짜를 유심히 살폈다.
그러더니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그에게 다가왔다.
“야. 너 어디 출신이냐?”
“뭐?”
“하북쪽 진백천 역할은 나거든? 뭔지 모를 쭉정이 같은데 큰코다치기 싫으면 당장…… 커헉!”
산적은 얼굴이 반쯤 일그러지며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다.
어찌나 강하게 두들겨 맞았는지 그대로 눈알이 뒤집힌 채 미동도 없었다.
“……뭐냐?”
놈을 후려갈긴 것은 진백천이 아니었다.
“내가 질문할 시간에 자꾸 끼어들지 마!”
마뇌는 번쩍하더니 나머지 두 명의 산적도 처리했다.
그런데 그 움직임이 평범하지 않았다.
초식도 준비 동작도 없었지만 매 움직임이 벼락처럼 빨랐다.
“……엄청나군. 생각보다 엄청난 고수였어.”
유석경이 바로 옆에서 감탄했지만 단순히 고수라 말할 정도를 뛰어넘었다.
“호오. 어제의 움직임을 보고 평범하다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역시 제법 특이한 무공을 익혔군요!”
유소어의 말대로였다.
하지만 단순히 평범치 않다는 것만으로도 설명될 만한 움직임은 아니었다.
마뇌를 살피는 진백천의 눈이 날카롭게 변했다.
‘매 동작이 백면섬보(百面閃步)를 펼칠 때와 비슷할 정도야.’
그것뿐만 아니라 손을 뻗을 때마다 일렁이는 내력도 엄청났다.
“잠, 잠깐!”
퍼억!
마뇌의 발끝이 정확히 명치에 틀어박히며 남은 산적도 바닥에 쓰러졌다.
아무리 허접한 놈들이라고 하나 숨 한 번 토해낼 시간이 이뤄진 공격이었다.
‘아무런 준비 동작도 없이 저렇게 움직일 수 있는 무공은 강호에 많지 않지.’
진백천은 그중에 하나를 알고 있었다.
그가 아는 어떤 무공보다도 가장 기괴하고 사악한 무공 중 하나였다.
‘구촉비전(口燭非典).’
이것의 원래 이름은 이게 아니었다.
단지 무가의 평범한 부부가 각자 만들어낸 무공이 시작이었다.
둘은 서로의 무공을 파훼하는 방법만을 생각하며 무공서를 발전시켜나갔다.
하지만 둘은 곧 그것에 몰입되어 서로를 죽이는 참사가 일어났다.
그 무공은 소림으로 흘러 들어갔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한 승려에 의해 하나로 편찬되었다.
그것을 하나로 이어 만든 자는 악의선사(惡意善篩).
소림의 무공을 한차례 발전시키길 원했던 그는 이 기이한 무공에서 그 가능성을 엿본 것이다.
그는 자신이 새롭게 편찬한 무공의 이름을 구촉비전(口燭非典)이라 짓고 어린 제자들에게 이것을 익히게 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참담했지.’
단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그것을 익힌 모든 제자가 주화입마에 빠져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뇌정혈(雷霆穴)이 터지며 천치가 되었음에도 그 무공실력은 떨어지지 않았다.
악의선사는 이들의 몸에 팔팔 끓는 동을 부어 금강동인(金鋼動人)으로 만들었다.
비사에 따르면 금지를 지키는 금강십팔나한(金鋼十八羅漢)이 바로 이들이었다.
‘실제로 확인된 건 없는 전설 같은 이야기지만.’
악의선사는 그 후로 스스로 만든 무공을 가지고 속세로 사라졌다.
소림에 진 죄가 있으니 무공을 완성시킬 때까지 돌아오지 않겠다는 맹세와 함께였다.
그리고 구촉비전(口燭非典)의 무공은 정확히 20년 뒤 지방의 무가에서 발견되었다.
악의선사는 그곳에서 신분을 속이고 제자들을 모집한 것이다.
그리고 유일하게 단 한 명만이 그것을 익히는 데 성공하고 대성을 이뤘다.
‘진소가.’
그자는 자신의 실력을 토대로 무가를 아주 크게 일으켰다.
그리고 추후 자신의 무가 이름을 정도회(正道會)로 바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