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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회귀백서-142화 (142/346)

무림회귀백서 142화

51장 관제묘(關帝廟) 안에서의 진실대담(1)

드드드득-

진백천은 유석경과 함께 한동안 말없이 말을 몰았다.

인적이 드문 산길에 접어들자 그제야 서서히 속도를 줄였다.

낮은 산등성이 정도는 그냥 말을 타고 가도 상관없었지만 진백천은 말을 멈춰 세웠다.

“여기서부터는 걸어서 가야 돼.”

“왜 굳이?”

“말 발자국을 보고 따라올지도 모르니까.”

유석경은 진백천의 한 수 앞을 내다보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날이 습해서 그런지 평소보다 더 발자국이 깊게 남았다.

진주언가에 있는 무인들이라면 이 정도쯤은 금세 파악하고 쫓아올 터였다.

‘여기서 가능한 많이 떨어져 주는 게 좋을 텐데 굳이 도와줄 필요는 없지.’

진백천은 유석경이 말에서 내리자 두 마리의 말 궁둥이를 손바닥으로 후려쳤다.

찰싹!

이히이이잉-

말들은 깜짝 놀라며 각자 다른 길로 뛰어갔다.

이걸로 잠시지만 발자국을 보고 쫓아오는 이들을 속일 수 있었다.

“후우. 비라도 오면 좋을 텐데.”

하늘은 아침보다 더욱 우중충했다.

먹구름이 잔뜩 낀 것이 묵직한 빗줄기를 쏟아낼 듯 말 듯 했다.

“자. 올라가자.”

“그러지.”

진백천은 속도를 조절하며 산을 올랐다.

그조차도 이정표만 들었을 뿐 그것의 정확한 위치는 몰랐다.

괜히 빠르게만 이동하다 못 보고 지나치면 그만 손해였다.

산은 사람이 자주 다니는 곳이 아닌 듯 수풀로 빽빽했다.

‘찾는데 제법 시간이 걸리겠는데?’

“백천. 뭐 하나 물어봐도 되나?”

“뭔데?”

“그 세 개의 단어가 말하는 위치가 어디지? 누군가의 무덤인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상은 모르겠군.”

진백천은 씨익 웃었다.

그 정도만 해도 충분히 많이 알아낸 것이었다.

“무덤 맞아.”

‘아마도 가장 마지막의 사자무언(死者無言)을 보고 눈치챘겠지.’

죽은 자의 말이 없는 곳은 무덤밖에 없으니까.

진백천은 유석경에게 [복마(伏魔)]와 [만인적(萬人敵)] 나머지 두 단어도 풀이해 줬다.

“만인적은 무슨 뜻인지 알지? 말 그대로 만인이 달라붙어도 이길 수 없는, 지략과 용맹이 뛰어난 사람을 뜻하니까.”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복마였다.

“잘 생각해 봐. 만인적인 실력 가진 자 중에 복마라는 칭호를 가진 사람이 누구인지.”

“흐음. 복마라.”

유석경은 산을 오르는 내내 말없이 고민하기만 했다.

하지만 곧 뭔가를 떠올렸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이제 눈치챘어?”

복마란 단어는 참으로 오묘했다.

마(魔)를 거느린다- 라는 뜻이 있지만 동시에 마(魔)를 억누른다는 뜻도 있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그것만 놓고 봤을 때 악인임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 복마란 단에 대제(大帝)가 붙으면 전혀 다른 의미가 되어버렸다.

“복마대제(伏魔大帝)!”

다른 말로 관성제군(關聖帝君)이라도 불렸으며 관우가 신격화된 도교의 전쟁 신이었다.

민가에서는 재산을 모아주는 신이라 해서 절대적인 믿음을 받는 무재신(武財神)이기도 했다.

진백천의 말대로 그는 유일하게 복마라는 칭호가 들어가는 신이었다.

그리고 관우만큼이나 만인적이란 단어가 어울리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자 조금씩 조각이 맞춰져 갔다.

“그렇다면 그 무덤은?”

“관우신을 모시는 관제묘(關帝廟)일 거야. 진주언가에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 지금 가는 중이고.”

“……자네 전부터 느꼈지만 정말 대단하군. 지신(知神)이라도 강림한 건가?”

진백천은 유석경의 말에 피식 웃고 말았다.

그라도 만약 회귀 전의 기억이 없다면 한참을 헤맸을 문제였다.

그리고 때마침 수풀을 헤치자 그들이 찾던 문구가 눈에 보였다.

관왕묘(關王廟).

허름한 집 앞 비석에 적힌 것이었다.

“후우. 드디어 찾았네.”

“대단하군. 대단해.”

“들어가기나 하자고.”

둘은 조심스럽게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 * *

관제묘 안으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제단이었다.

오래전부터 관리가 되지 않은 듯 향초도 없이 먼지가 끼고 거미줄만 잔뜩 있었다.

제단 뒤에 세워진 관우의 초상화도 빛에 바래 알아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관리는 전혀 안 된 모양이군.”

“주변에 인가가 없는 거 보면 진즉에 버려진 곳일 거야.”

진백천은 제단 위에 남겨진 초에 내공을 이용해 불을 붙였다.

옅은 불길에 주변이 밝아졌다.

허름한 입구와 다르게 안쪽은 제법 넓었다.

“패부터 찾아보자.”

진백천은 보이는 족족 양초에 불을 켰다.

하지만 어디에도 진주언가가 남긴 것으로 보이는 패는 보이지 않았다.

하나같이 먼지가 쌓이고 더러운 물건들뿐이었다.

“흐음. 어떻게 된 거지?”

“혹시 가짜처럼 보이려고 먼지를 덮어놓은 게 아닐까?”

“그렇게 쪼잔하려고?”

그때 문득 진백천의 뇌리에 무엇인가 스쳐 지나갔다.

마지막의 사자무언(死者無言).

‘그것이 단순히 관제묘를 지칭하는 게 아니라면?’

진백천은 제단을 밟고 위에 올라갔다.

그리고 관우의 초상화를 들어 옆으로 내려놨다.

그러자 그 뒤편에 나무로 된 패가 걸려 있었다.

“여깄…… 었군.”

패는 총 10개였다.

그중에 두 개를 챙겨서 각각 하나씩 나눠 가졌다.

진백천은 남은 패를 전부 숨길까 하다가 내버려 뒀다.

그저 원래 있던 대로 다시 초상화를 걸어놓았다.

“이제 돌아가지.”

이 먼지만 가득한 곳에서 재빨리 나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막상 밖으로 나가자 어깨 위로 묵직한 물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비?”

그리고 빗방울은 곧 폭포처럼 변해서 쏟아져 내렸다.

한 치 앞도 안 보일 굉장한 폭우였다.

쏴아아아아아아아-

“허허. 산에서 내려가다가 쏟아졌으면 꼼짝없이 오도 가도 못 할 뻔했어.”

“그러게. 비 한번 독하게 쏟아지는군.”

“잠시 지나가는 소나기 같으니까 쉬었다 가자.”

이런 험한 산을 저런 폭우에 돌아다니는 것은 미친 짓이었다.

앞도 분간하지 못하고 돌아다니다 길을 잃을지도 몰랐다.

혹여 그게 아니더라도 비에 약해진 지반이 무너지며 재수 없게 산사태에 깔릴 수도 있었다.

진백천은 제단의 탁자를 부숴서 장작불로 썼다.

큰불이 생겨나자 습기가 사라지며 훈훈한 기운이 맴돌았다.

“흐으. 한결 살 것 같군.”

“이럴 줄 알았으면 먹을 거라도 챙겨올 걸 그랬어.”

유석경이 출출한 듯 아쉽게 말했다.

진백천은 그런 그를 비스듬히 쳐다보며 씨익 웃었다.

그리고 품에서 꺼낸 것은 당소예가 챙겨준 과자 꾸러미였다.

혹시라도 당이 떨어지면 먹으라고 준 것이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당 소저는 최고야.”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꾸러미 안에는 육포를 비롯해 과자가 잔뜩 있었다.

둘은 사이좋게 하나씩 집어먹으면서 몸을 녹였다.

단것을 먹자 지쳤던 몸에 기운이 돌았다.

“다른 이들도 오고 있을까?”

“그렇겠지. 저 폭우 속을 헤매고 있을지도 몰라.”

“그렇다면 절로 불쌍해지는군.”

유석경이 거친 빗줄기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빗줄기가 갈라지며 누군가 빠져나왔다.

“흐어억! 주, 죽을 뻔했다!”

“쯧. 엄살 부리기는.”

나타난 자는 두 명이었다.

유소어 그리고.

마뇌.

유소어는 진백천과 유석경이 안에 있을 줄 몰랐는지 흠칫 놀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불가로 다가왔다.

“으으. 역시 회주님이십니다. 불이라니. 불.”

푸르게 변한 입술을 덜덜 떨며 말했다.

반면에 마뇌는 옷 가에 묻은 물기를 털어내며 자연스럽게 불가 근처에 걸터앉았다.

특수한 재질로 만들어졌는지 옷은 뽀송뽀송했다.

긴 머리만 축축히 젖었을 뿐이었다.

‘확실히 평범하지는 않아.’

“패는 찾으셨어요?”

마뇌는 진백천이 아닌 유석경을 향해 물었다.

유석경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뇌는 굳이 대답을 바란 것이 아니었다.

찰나의 시선이 진백천과 다른 곳을 향하는 것을 눈치챘다.

그녀는 바닥에 떨어져 있던 나무토막을 들어 관우의 초상화를 향해 던졌다.

투욱-

초상화가 떨어지며 그 뒤에 있던 패가 드러났다.

“성주님. 고맙습니다.”

“……난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마뇌는 씨익 웃으며 나무패를 하나 집어 들었다.

그리고 남은 패를 전부 모닥불에 던져넣었다.

“어헉! 뭐하는 거냐!”

유소어는 다급히 패 중 하나를 끄집어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다급하게 모닥불을 향해 몸을 날린 사람이 있었다.

둘의 뒤를 따르다 이제야 겨우 이곳에 들어선 풍류공자 교영이었다.

“이 미친……!”

치지지직-

그는 재빨리 모닥불을 헤치며 겨우 멀쩡한 패를 집어냈다.

자칫 잘못하면 이곳에 도착했어도 까맣게 탄 재만 발견할 뻔했다.

교영은 붉어진 얼굴로 화내려다가 훽 하고 돌아섰다.

여기서 괜히 싸워봤자 이득 볼 게 없음을 알았다.

“생각보다 빨리 왔군.”

진백천은 심드렁하게 말했다.

자신들의 흔적을 보고 온다고 해도 적어도 한 시진 정도는 차이가 날 거라 생각했다.

“저도 머리 쓰는 것만큼은 제법 자신 있어서.”

“그거야 잘 알지. 나쁜 데만 써서 문제 아닌가?”

진백천의 말에 다른 이들이 피식 웃었다.

자신의 패를 획득하자 나머지는 아무렇지 않게 태우는 모습이 결코 선해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보일 수도 있으려나요?”

마뇌는 어깨를 으쓱이고 자리에 앉았다.

“비가 그칠 때까지는 이곳에서 조용히 있지. 괜히 싸우기라도 하다 무너지면 곤란하니까.”

“물론입니다.”

비에도 기세라는 게 있었다.

이렇게 무겁게 쏟아지는 소나기는 아무리 먹구름이 짙다 해도 오래가지 못하는 법이었다.

하지만 꼭 매도 먼저 맞아봐야 아는 사람이 있었다.

이 중에 풍류공자 교영이 꼭 그런 사람이었다.

‘이깟 폭우가 무어라고! 겁쟁이들!’

교영은 슬금슬금 눈치를 살피더니 재빨리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저 앞길이 조금 보이지 않고 땅이 질 뿐이지, 왔던 길만 그대로 오면 된다고 생각했다.

“허억!”

교영은 빗소리가 이렇게 폭음처럼 들릴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몸은 누가 짓누르듯 묵직해졌고, 단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당연히 그가 이정표로 삼던 나무 따위도 보일 리 없었다.

그는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다시 뒤로 돌아 더듬거리며 돌아왔다.

“허억허억!”

잠시 일각도 안되는 시간이었지만 그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멍청한 놈.”

“뭐, 뭐라고?”

마뇌는 교영을 비웃으며 머리를 풀러 장작불에 머리를 말렸다.

교영은 웬일인지 화를 내려다 고개를 홱하고 돌렸다.

풍류공자답게 본능적으로 여기에 있는 이들 중 자신이 함부로 대할 자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는 멀찍이 앉아서 숨을 돌렸다.

따닥-

관제묘 안은 무척이나 조용했다.

장작불이 타오르며 내는 소리만이 불규칙적으로 울려 퍼졌다.

“몸이 노곤노곤하니 피곤하네.”

“그럼 자. 아무도 안 깨워줄 테니까.”

유소어는 진백천의 대답에 눈을 부릅떴다.

혼자 깼을 때 적막한 관제묘에 남겨진 것은 죽기보다 더 싫었다.

마뇌는 그런 유소어의 반응을 비웃으며 진백천을 쳐다봤다.

“회주님. 혹시 관제묘(關帝廟) 안에 있는 관우 초상화 앞에서 거짓말을 하면 목이 베어 죽는다는 이야기 들어보셨습니까?”

물론 미신일 뿐이지만 당연히 들어봤다.

그렇기에 맹세를 하거나 계약을 하는 사람들이 일부로 관제묘 안에서 하기도 했었으니까.

“그건 갑자기 왜?”

“이렇게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리는 건 재미없잖아요. 서로 진실대담이나 하면서 쉬자는 거죠.”

“진실대담? 진실로 대답해 줄 생각은 있고?”

“물론이죠. 관우가 저렇게 두눈 치켜뜨고 쳐다보잖아요.”

두 눈 치켜뜨고 쳐다본다고 하기에는 마뇌의 나무토막에 맞고 반쯤 찢어진 상태였다.

‘진실대담이라.’

“해서 나쁠 건 없지.”

진백천 뿐만 아니라 유석경과 다른 유소어, 그리고 풍류공자마저도 전부 동의했다.

전부 가벼운 마음이었지만 진백천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을 쳐다보며 웃고 있는 마뇌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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