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회귀백서 141화
50장 언해원의 정혼자(5)
교영은 다른 이들의 관심을 받는 것에 익숙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관심을 끌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잘 아는 자였다.
어디서 준비했는지 모를 나무 발판을 중앙에 놓고 그 위에 당당히 올라섰다.
“모두가 눈치만 보고 있으니 제가 먼저 스스로를 언 소저에게 소개하겠습니다!”
교영은 언해원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 당당한 모습에 주변에서 환호가 쏟아졌다.
“저는 하북 형태(邢台) 태생으로 장노방(將努幇)의 교영(交英)이라 합니다! 가장 먼저 이 자리에서 진주언가에 제 스스로를 소개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지켜보는 언시경조차 그 예의 바름에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 장노방이 진주언가에 비하면 그 세가 작다고 하나 지금껏 꾸준히 세를 유지해 왔습니다. 새롭게 변해갈 판도에 알맞은 상대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의 명성 또한 하북에서만큼은 제법 유명하니 격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맞다! 풍류공자라면 절대 부족하지 않지!”
“당당하고 멋있다아아!”
그의 마무리에 사람들은 힘찬 환호를 보냈다.
교영은 다시 한번 주변에 인사하며 언해원을 쳐다봤다.
아무런 표정의 변화가 없었지만 진백천은 그녀의 속마음을 적나라하게 들을 수 있었다.
-당당하고 멋있긴! 여자란 여자 다 후리고 다니는 놈 주제에. 네놈도 우리 오빠와 다를 바 없는 놈이거든?
같은 하북 태생이기에 교영에 대한 소문을 제법 들었다.
아무리 인기가 많다고 해도 언해원이 딱 싫어하는 유형의 인간일 뿐이었다.
만약 주변의 시선만 아니었다면 당장에 후려쳐 버렸을지도 몰랐다.
그는 말만 뻔지르르하지 실제 무공실력은 턱없이 떨어졌으니까.
하지만 주변의 분위기도 있겠다, 앞으로 떨어뜨릴 이가 많으니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한번 환호가 터져 나오며 교영은 발판 아래로 내려갔다.
다음으로 올라간 것은 염소 같은 수염을 가진 남자였다.
교영 정도의 사람이 환호를 받자 자신감이 차올랐다.
“나는 당산의 이초량이외다! 7세에 스승님이신 삼궁도(三穹刀) 밑에서 수련하여 31세에 사람을 모아 이도방을 세웠지! 그런 내가 자격이 없다면 누가 있겠는가!”
당당한 모습이었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썩 좋지 않았다.
그의 이름을 들어본 자라면 꺼림칙함을 피할 수 없었다.
“이초량이라면 자신의 스승을 벤 그자 아니야?”
“스승을 베었다고?”
“이도방이라는 곳도 말이 그렇지 결국 도적집단일 뿐이잖아. 돈만 두면 뭐든 다 한다던데.”
듣기 역한 소리는 이초량의 귓가에도 들려왔다.
틀린 말은 아닌 듯 얼굴이 붉어진 그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감히 누가 이도방을 욕하느냐!”
“이도방? 요즘에는 산적굴도 그렇게 부르더냐?”
그에게 일갈을 터뜨린 것은 적의단의 변관이었다.
이자에 대한 것은 진즉에 파악한 지 오래였다.
“네놈이 저지른 짓 따위는 이미 전부 알고 있다. 상단의 물건을 도적질하고 돈만 주면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지 않았더냐?”
“그, 그게 무슨 말이냐! 증거가……!”
변관은 이초량의 목소리를 끊으며 소리쳤다.
“증거는 무슨! 우리가 개방임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손수건을 내려놓고 당장 썩 꺼져라! 안 그러면 당장 두들겨 패서 관아에 넘겨 버릴 테니!”
적의단이 다가오며 소리치자 이초량은 헬쓱해진 얼굴로 내려섰다.
그리고 모두의 비웃음 속에서 누가 잡을까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쳤다.
이초량의 순서가 끝나자 남아 있던 자 중에서도 몇몇이 손수건을 풀고 물러났다.
하나같이 뒤가 구리거나 문제가 있던 자들이었다.
‘괜히 이 자리에서 밝혀져서 욕을 먹느니 그편이 낫다 생각하는 거겠지.’
그러자 남은 자들은 채 10명이 되지 않았다.
“백천. 자네는 언제 할 텐가?”
“나? 아무 때나 상관없는데?”
“그럼 내가 먼저 하지.”
유석경은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앞으로 나갔다.
그가 나무 받침대 위로 올라가자 사방이 조용해졌다.
잘 알려지지 않았을뿐더러 그를 아는 자라면 더더욱 함부로 입을 놀리지 않았다.
그는 언해원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저는 광동성의 성주인 유석경이라고 합니다.”
성주.
그 한 단어에 사람들의 입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괜한 소리를 내뱉었다가는 어떻게 될지 불 보듯 뻔했다.
“언 소저와는 여러 번 마주친 구면이지만 이렇게 직접 내 소개를 하는 것은 처음입니다. 그동안 무심했다는 반성을 했습니다. 부디 언 소저는 그간 저의 무신경을 용서해 주시길.”
언해원은 의외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유석경의 차례는 빠르게 지나갔다.
위명으로 따지면 그에게 따지고 들 것이 없었다.
그것은 진백천도 마찬가지였다.
특이한 것은 유소어였다.
사패천의 10신위란 말을 당당히 말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낙방서생이라 소개했다.
언해원은 고민하는 듯했지만 그를 통과시켰다.
‘단순히 사파로 규정짓기에는 사패천이 주는 의미가 가볍지 않지.’
혹시라도 진주언가에서 사패천이란 이유로 배제했다가는 어떠한 문제가 야기될지 몰랐다.
마지막 차례는 스스로를 장모사라 소개한 마뇌뿐이었다.
과연 개방이 그녀에 대해 어떻게 조사했는지 의문이 들었다.
마뇌가 나무 가판대 위로 올라가자 주변이 웅성거렸다.
“미공자 차례군. 상단의 자제라고 했던가?”
“맞아. 퍽으로 언 소저와 잘 어울리는 자야.”
진백천은 애초에 저 모습을 보고 남장을 한 여자임을 못 알아보는 게 더 이상했다.
하지만 실제로 마뇌는 마교의 술법으로 자신의 외모를 가리고 있는 중이었다.
상단전이 열린 진백천이기에 그것을 꿰뚫어 보는 것뿐이었다.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조금 더 키가 크고 남자답게 생긴 외모로 보였다.
“반가습니다. 본인은 장모사라고 합니다. 크지는 않지만 차(茶)를 교역하는 상단을 운용하고 있습니다.”
그의 소개는 무척이나 담백했다.
1차 경연에서 높은 대나무 위를 단숨에 올라가는 모습을 보였으니 무공 실력에도 의심이 없었다.
개방 내에서도 딱히 마뇌에 대해 알아낸 것이 없는 듯 조용했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어쩔지 모르겠군.’
마뇌임을 알아봤다면 돌이킬 수 없는 싸움이 벌어졌을 터였다.
진백천은 잔뜩 긴장했던 것을 풀며 한숨을 내쉬었다.
마뇌가 그런 진백천을 보고 피식 웃었다.
-쫄기는.
‘…….’
두 번째 경연 이후에 남은 이들은 총 10명이었다.
단순히 자신을 소개하는 단계에서 무려 3분지 1이 떨어진 것이다.
‘세 번째 경연은 그곳을 찾아가는 거겠지.’
만약 오늘처럼이라면 내일도 어려울 것은 없었다.
* * *
두 번째 경연의 날이 저물었다.
지금까지는 오전이면 모든 진행이 끝났기에 시간이 제법 많이 남았다.
마음 같아선 태상장로나 개방의 거지들과 한잔하고 싶지만 그도 참가자다 보니 일부러 거리를 두었다.
대신 진백천은 유석경과 함께 별관의 연무장에서 같이 수련을 했다.
유석경은 진백천의 뻗어오는 주먹에도 놀라지 않고 차분하게 대응했다.
다만 평소와 다르게 급해 보였다.
“크윽!”
되지도 않는 반격을 하기 위해 주먹을 뻗는다든지, 무리하게 공격을 받아냈다.
“왜 이래? 급하게 움직이면 될 것도 안 된다니까.”
유석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진백천은 오늘 수련을 이쯤에서 그만두고 같이 자리에 앉았다.
달아오른 몸의 열기가 차가운 공기와 만나 김이 피어올랐다.
거칠게 몰아쉬는 숨이 하얗게 어질러졌다 사라졌다.
“오늘 소개하는 자들을 보니 마음이 급해졌던 모양이야.”
“급할 것 없어. 아니, 너의 작전에서 급한 건 없어야 돼. 무슨 말인지 알지?’
“명심하지.”
유석경은 희미하게 웃어 보이곤 그대로 누워 버렸다.
딱딱한 돌바닥이 시원하게만 느껴졌다.
그는 말없이 하늘을 올려다보기만 했다.
성에서 빠져나온 지 수개월.
이제 슬슬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아마도 이번 경연이 끝나면 그는 성으로 돌아가서 한 동안을 빠져나오지 못할 터였다.
그렇다 보니 마음이 급해졌다.
‘유종의 미를 거둔다고 생각하자. 내가 안 된다면 그저 연이 아닐 뿐. 그녀의 결정과 행복을 축복하자.’
진백천은 마치 그의 생각을 듣기라도 한 듯 그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고맙다. 백천. 자네가 아니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겠지. 참으로 재밌는 여정이었어.”
“여정은 무슨. 다 끝난 것처럼 이야기하지 마. 아직 새로운 시작은 하지도 않았으니까.”
“이 결과가 어떻게 되든 자네가 하는 부탁은 전부 들어주지.”
진백천은 그가 하는 부탁이라는 것이 전에 자신이 말했던 것임을 잘 알았다.
그 내용을 들어보지도 않고 들어준다는 것에 썩 기분이 좋았다.
다음 날 아침.
진주언가는 평소와 다르게 아침부터 분주했다.
그에 따라 경연의 참가자들도 일찍 연무장으로 모였다.
“후우. 하늘에 먹구름이 가득한 게 비가 한바탕 쏟아지겠군.”
“그러게. 그래서 이리 서두르나?”
진백천은 주변 사람들의 말을 들으며 황대원과 전음을 주고받았다.
-내가 말한 건 알아봤어?
-네. 회주님. 서쪽으로 약 13리(里, 약 5km)를 가면 경우산(京雨山)이라고 있는데 그곳 중턱에 있다고 합니다.
-생각보다 거리가 좀 되네?
진백천은 그곳으로 향하는 이정표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을 들었다.
그 설명이 다 끝날 때쯤 진주언가의 무사들과 적의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세 번째 경연은 개인이 가진 지략과 지식을 함께 보는 차례입니다. 제시된 문구를 보고 지정된 장소로 가서 그곳에 있는 패를 가져오시면 됩니다! 시간제한은 오늘 해가 지기 전까지입니다!”
그들은 질문을 받지도 않고 커다란 천을 전각 아래에 걸었다.
그곳에 적힌 것은 세 가지의 단어였다.
[복마(伏魔).]
[만인적(萬人敵).]
[사자무언(死者無言).]
“……이게 무슨 뜻이야? 저 세 가지 단어가 한가지 장소를 뜻한다고?”
“도저히 모르겠는데?”
지켜보던 관중들조차 고개를 갸웃거리며 어려워했다.
오죽하면 그 장소를 직접 알아본 황대원조차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뇌라면 알아볼 수 있을까?’
진백천의 시선이 마뇌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가장 위에 적힌 단어를 되뇌는 중이었다.
“복마(伏魔), 마를 굴복시키고 거느린다라?”
그녀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듣기 거북한 단어였다.
왜냐하면 흔히 마교를 비하하는 사자성어로 복마지전(伏魔之殿)이라는 말을 쓰곤 했다.
마귀가 엎드려 있는 전각이라는 말로, 나쁜 일이나 음모가 끊임없이 행해지는 악의 근거지라는 뜻이었다.
‘그렇게 뜻에 집중하다 보면 절대 찾을 수 없을 거다.’
진백천은 유석경의 어깨를 툭툭 치며 조용히 뒤로 빠져나갔다.
언해원이 꿈뻑거리는 눈으로 진백천을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응? 자네 한눈에 어딘지 알아본 건가?”
“물론이지. 거리가 꽤 되니까 서둘러야 돼.”
진백천은 황대원이 미리 준비한 말 두 마리를 올라타고 서쪽으로 향했다.
산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말을 타고 최대한 체력을 비축할 생각이었다.
“말까지 준비해 놓다니. 자네 생각보다 준비성이 대단하군!”
“생각보다라니. 나를 그동안 어떻게 본 거야?”
둘은 먼지구름을 내며 멀리 사라졌다.
“어엇. 벌써 움직이는 자들이 있다!”
“진백천 회주와 성주야!”
“벌써 이렇게 알아봤다고? 과연 회주와 성주로군!”
다른 참가자들은 진백천과 유석경이 떠나자 조급해졌다.
그리고 그들이 떠난 지 얼마 안 되어서 마뇌와 유소어도 움직였다.
그 후에는 놀랍게도 풍류공자 교영도 마찬가지였다.
태상장로는 참가자들이 꽤나 헤맬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한 시진이 지나기 전에 절반 이상이 움직이니 그들을 과소평가했음을 인정했다.
전부 그것의 위치가 있는 서쪽을 향해 똑바로 움직였다.
“생각보다 똑똑한 자들이 많구나.”
“앞선 자들을 따라가는 이도 있을 겁니다.”
“그것도 나름 하나의 방법인 거지.”
그들로서는 이제 천천히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