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회귀백서 140화
50장 언해원의 정혼자(4)
진백천은 마뇌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의문을 가졌다.
혹시나 마교에서 진주언가를 집어삼키기 위한 방법이 아닐까 싶었지만 그건 너무 눈에 띄었다.
‘단지 나를 충동질하려고?’
마뇌는 그것뿐만 아니라 위쪽에서부터 손수건을 풀어 아래쪽으로 던졌다.
사람들은 손수건을 잡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진백천은 떨어진 손수건 중 두 개를 집어 하나를 유석경에게 건넸다.
“가지고 있어.”
“고맙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자신의 손목에 묶었다.
마뇌가 갑자기 끼어든 이상 자신도 유석경과 함께 참여할 생각이었다.
사방에서 손수건을 노리는 자들이 많았지만 감히 자신의 것을 노릴 자는…….
“손수건 내놓으시지?”
……있었다.
그것도 무려 기쁜 표정으로 말이다.
“사령령?”
“이건 절대 붙어보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다. 단지 손수건을 위해서 그러는 거니까 개인적인 감정은 조금도 없다.”
그녀는 뭔가 찔리는 표정으로 먼저 선수 치듯 말했다.
“없긴 개뿔. 네 실력이면 다른 손수건도 충분히 챙길 수 있잖아?”
“내가 원하는 건 회주가 쥐고 있는 손수건이라서.”
“이걸 주고 다른 걸 챙긴다면?”
“그렇다면 원하는 손수건이 바뀌겠지.”
결국엔 진백천과 한판 붙어보겠다는 뜻이었다.
진백천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손을 까딱였다.
“상황이 상황이니 맨몸으로?”
“그것도 좋지.”
하지만 말과 다르게 그녀의 눈이 금빛으로 빛나며 채찍이 허공을 갈랐다.
금사편리(錦蛇鞭理).
채찍은 마치 파도처럼 물굽이 치며 허공을 휩쓸며 뻗어왔다.
“어허. 누가 사파 아니랄까 봐!”
진백천은 유석경을 뒤로 밀어내며 채찍의 범위에서 벗어났다.
그녀가 채찍을 사용할 것쯤은 이미 어느 정도 예측한 상태였다.
주변에 있던 애꿎은 자들만 채찍에 후드려 맞으며 튕겨 나갔다.
“커헉!”
“조, 조심해!”
사령령은 기쁜 표정으로 진백천에게 쇄도했다.
“저번과 다를 거다.”
“왜? 그때보다 더 맞으려고?”
“아니, 이번에는 내가 두들겨 패주려고!”
사령령은 무려 걸개구타권(乞丐毆打拳)에 두들겨 맞은 이들 중 유일한 여자였다.
그때를 떠올렸는지 그녀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그만큼 채찍에 실리는 경력도 더더욱 강해졌다.
파앙!
채찍이 닿지 않아도 파공성을 울리며 금방이라도 살점을 뜯어낼 것만 같았다.
추격만쇄(追擊灣碎).
허공에 치솟았던 채찍이 폭포처럼 떨어져 내리며 강기를 쏟아냈다.
연무장 바닥이 터져 나가며 사방으로 돌조각이 비산했다.
가까이 다가가려 해도 살아 있는 듯한 채찍의 끝이 자유자재로 흔들리며 진백천을 노렸다.
사령령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어디로 가든 채찍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돌진뿐이지!’
진백천은 주먹을 들어 올리고 있는 힘껏 연무장을 내리쳤다.
순간 희뿌연 먼지가 사방에 일며 그의 신형이 사라졌다.
“어림없다!”
사령령은 진백천이 먼지 속에 숨었다고 생각했는지 전 지역을 향해 강기를 뿌렸다.
콰과과과!
백면섬보(百面閃步).
하지만 진백천은 이미 사령령의 바로 앞까지 도달한 상태였다.
그녀는 유령처럼 나타난 진백천을 보고 당황했다.
뻗어 나간 채찍을 거둬들이려 했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기억하지?”
“…….”
걸개구타권(乞丐毆打拳).
진백천의 주먹이 허공을 가르며 묵직하게 사령령의 전신에 내리꽂혔다.
퍼억!
전에도 그랬지만 역시나 여자라고 봐주는 법은 없었다.
오히려 전보다 주먹에 실린 공력을 더더욱 많아졌다.
놀랍게도 사령령은 주먹에 맞는 순간에도 반격하려 했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라 익숙하다 이건가?’
하지만 그녀가 더 잘 맞는 것보다 진백천이 더 아프게 때릴 줄 알았다.
전부 유석경을 두드리면서 자연스레 체득한 것이었다.
“커헉!”
묵직한 주먹에는 자비란 없었다.
그녀는 결국 전신에 힘이 빠진 채 바닥에 널브러졌다.
“쯧. 이제 그만 까불어. 알았어?”
사령령은 억울한 듯한 얼굴로 잠시 진백천을 노려보다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역시나처럼 유소어가 그녀를 부축해서 사라졌다.
“후우. 피곤하네.”
그들이 사라진 사방은 왠지 조용했다.
어느 틈인가 이미 일다경이 훌쩍 지난 후였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멍한 얼굴로 진백천을 쳐다봤다.
‘분위기가 왜 이래?’
“백천. 역시 승부 기질이 엄청나군. 여자라고 봐주지 않는 손속에 제법 놀랐어.”
“아아. 그런 거 때문이야? 걱정 마. 사령령은 여자로 보기에는 지나치게 걸걸하니까.”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진주언가에서 첫 번째 경연의 종료를 알렸다.
손수건을 가진 자들은 총 30명이었다.
이곳에 모여든 이들만 300여 명이 넘었으니 거진 십분지 일로 줄어든 셈이었다.
* * *
첫 경연 끝나고 손수건을 얻은 30여 명 중에는 마뇌도 포함되었다.
진백천은 그녀의 의도가 의심스러웠다.
여전히 도홍경을 시켜 지켜보고 있지만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진백천은 문득 마뇌의 말을 떠올리고는 피식 웃었다.
‘단순히 나를 지켜보기 위해서 왔다는 건 도저히 말이 안 되잖아.’
결론적으로 생각하면 그녀는 인형일 확률이 높았다.
진짜는 십만대산에서 진백천의 반응을 보며 다른 계략을 짜고 있을 터였다.
그가 그렇게 생각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오늘 그녀가 보여준 움직임은 평범하지 않았으니까.’
진백천이 알기로 마뇌는 무공이 뛰어나지 않았다.
그가 익힌 무공이라면 전부 뇌를 활성화해 주는 심법이나 몸을 풀어주는 정도가 전부였다.
그렇기에 더욱 안가에 숨어 지냈었다.
“회주님 무슨 생각을 하세요?”
황대원과 함께 설병을 먹고 있던 당소예가 물었다.
그녀는 진백천과 달리 제법 평안한 생활을 영위 중이었다.
진주언가에 머물면서 차를 마시거나 유석경의 옆에서 수련을 봐주는 정도가 전부였다.
그러니 심심한 입을 달래기 위해 전에 진백천이 준 보상금으로 아낌없이 군것질거리를 사 먹었다.
와작-
지금도 차 한잔에 설병을 조각내 먹는 모습이 무척이나 여유로웠다.
“별건 아니고.”
“별건 아니긴요. 제가 회주님 한두 해 봐요? 오늘 두드려 팼던 그 여자 때문이죠?”
“뭐?”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지금 아무렇지도 않대요. 제가 확인했어요. 그리고 그 여자도 회주님을 이해할 거예요.”
“…….”
마지막의 표정을 보면 이해하기는커녕 더 때려달라고 쫓아오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와작-
당소예는 설병을 다 먹자 이번에는 기름 먹인 한지에 쌓인 탕후루를 꺼냈다.
형형색색의 과일이 투명한 설탕과 물엿에 묻혀 굳어 있었다.
“맛있어?”
“네. 회주님도 드실래요?”
“아니. 난 됐다.”
“헤에. 진짜 맛있는데.”
진백천은 왠지 토실토실해진 것 같은 그녀의 볼을 보며 적당히 먹으라고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알아서 하겠지.’
반면에 유석경은 이 찰나 같은 순간에도 수련을 하는 중이었다.
진백천이 바쁘면 자발적으로 금의위들과 대련까지 했다.
그들이 전력을 다하지 않더라도 여러 명이 한 대씩이면 제법 위협적이었다.
유석경은 그런 주먹을 받아내며 물러서지 않았다.
‘금위의들이 봐준다고 해도 처음과 비교하면 정말 많이 바뀌긴 했네.’
간혹가다 일권을 내뻗기도 했는데 그 주먹에 제법 경력이 실려 있었다.
초식이랄 것도 없이 몸 안에 쌓인 내력을 주먹에 실어 뻗는 동작이었다.
전부 진백천이 알려준 것이었다.
격체전력으로 쌓인 내력을 뿜는 것이었기에 위력이 오래가지는 못했다.
하지만 적어도 언해원과의 대결이 될 때까지는 유지될 터였다.
“노력한 만큼 빛을 볼 거야.”
“후우. 고맙다.”
“그런 의미로 나랑도 해야지?”
유석경이 땀으로 젖은 얼굴로 천천히 진백천을 올려다봤다.
수련으로 뜨거운 밤이 지나고 다음 날 해가 밝았다.
30여 명의 사람은 연무장에 똑같이 모였다.
“어제보다 사람들이 더 몰려든 것 같군.”
“아무래도 다른 사건들과 맞물리면서 소문이 더 커졌으니까.”
몇몇은 단체로 모여서 언해원의 정혼자가 되었으면 하는 사람을 응원하기도 했다.
그중에 압도적으로 들려오는 이름은 하나였다.
“교영 공자님! 다른 오징어들은 다 쓸어버리세요!”
“진주언가에 어울리는 자는 교영 공자뿐이 없다아!”
교영이라는 자의 얼굴 한번 보지 못했지만, 자연스레 궁금증이 일었다.
“교영이 누군데?”
대답은 뒤에서 지켜보던 당소예가 대신했다.
“하북에 있는 무가의 자식인가 봐요. 하북팽가와 진주언가를 제외하고는 3번째라고 하는데 워낙 지역적이라. 그래도 품성은 좋은지 인근에서는 풍류공자(風流公子)라 불리더라고요.”
“풍류공자?”
그 별호만 들어도 대략 어떤 모습일지 이해가 되었다.
저편에서 하늘하늘한 옷을 입은 남자가 가볍게 손을 흔들며 나타났다.
키도 훤칠하고 팔다리도 쭉쭉 뻗은 것이 제법 여심을 움켜잡을 만했다.
“그래도 걱정 마세요. 회주님도 저자 못지않게 인기 많으세요!”
단순히 외견으로만 따지면 30여 명 중에 진백천을 따라올 자는 드물었다.
사방에서 그를 향한 끈적한 시선이 느껴졌다.
사람들이 전부 모이자 진주언가의 무사들이 주변을 조용히 시켰다.
“이곳에 이렇게 모여주신 분들께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경합 주제에 대해 말하겠습니다.”
대부분의 이는 무가답게 오늘도 몸을 쓸 거라 생각했는지 만반의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하지만 곧 이어지는 진주언가의 무사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두 번째 경연는 바로 위명(位名)입니다.”
“위명? 그게 무슨 말이지? 이름값을 말하는 건가?”
이미 알고 있던 진백천과 달리 사람들은 생각지도 못한 주제에 당황했다.
“혼약은 가족과 가족, 가문과 가문의 만남입니다. 진주언가(晋州彦家)에서조차 모를 정도로 아무런 위명이 없는 자거나, 의와 협이 없는 자는 배제하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은 언해원 소저뿐만 아니라 사위로 맞아들일 언시경 가주님의 뜻이기도 합니다!”
무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방에서 불만에 찬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대부분 사파에 속한 인물이거나 이름값이 없는 자들이었다.
“뭐? 그딴 법이 어디 있어! 사파를 배제하겠다는 거 아니야!”
“이건 말이 안 된다! 실력으로 승부하면 내가 못난 게 뭐가 있다고!”
“이 자리에서 내 위명을 높여주지! 누구든지 나에게 덤벼라!”
분위기가 점점 험악하게 흐르자 진주언가의 무인들과 적의단이 앞으로 나섰다.
변관을 비롯한 소방방은 도가 지나친 자들을 단호하게 손을 써서 제압했다.
“소란 피우지 마라!”
“으윽! 이거 놔!”
변관이 직접 손수건을 뺏어버리자 소란을 피우는 이들이 잠잠해졌다.
“다들 진정하시오! 아직 이름이 덜 알려졌다고 해도 스스로를 당당히 설명하시면 됩니다! 모든 판단은 언 소저가 직접 하실 테니!”
진주언가 무사들 사이에서 면사포를 쓴 언해원의 모습이 보였다.
단지 드러난 눈과 보일 듯 말 듯한 얼굴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좌중이 조용해지는 것은 충분했다.
한껏 치장하고 나온 그녀의 외모는 같은 여자들로 하여금 입을 벌리게 만들었다.
언해원은 이런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가볍게 미간을 찌푸렸다.
‘다들 정신을 못 차리는군.’
진백천을 실소를 터뜨리며 넋이 나간 유석경의 어깨를 쳤다.
“정신 차려.”
“……크흠. 그러지.”
두 번째 경연에 올라선 자들은 누가 먼저 할지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그때 모든 이들의 관심을 받으며 앞으로 나서는 자가 있었다.
“제가 먼저 하겠습니다!”
다름 아닌 풍류공자(風流公子) 교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