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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회귀백서-139화 (139/346)

무림회귀백서 139화

50장 언해원의 정혼자(3)

진백천은 말 그대로 경악했다.

이곳에서, 아니, 중원의 한복판에서 천마신교의 마뇌와 마주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가 아는 마뇌는 십만대산에 처박혀 계략이나 짜는 음침한 자였다.

‘대체 왜?’

진백천은 잠시 할 말을 잃고 마뇌를 쳐다봤다.

마뇌는 단순히 놀란 그 모습에서조차 뭔가를 알아낸 듯 환하게 웃었다.

남장을 한 것치고 붉은 입술이 가늘게 호선을 그렸다.

“회주께서 저를 아시는군요? 분명 초면일 텐데요?”

뻔뻔하게도 마뇌는 진백천에게 천천히 다가오며 물었다.

진백천은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주변을 둘러보며 상단전에 내력을 불어넣었다.

사방에서 속마음이 들려왔지만 마뇌에게서는 아니었다.

오히려 진백천의 속마음을 들으려는 듯 바싹 다가왔다.

“그만.”

마뇌는 정확히 두 걸음 뒤에 멈춰섰다.

“반갑습니다. 소현상단의 장모사라고 합니다. 회주님의 소문은 익히 들었습니다.”

“그런가. 나도 제법 소문은 들었는데”

“호오. 그렇습니까?”

스스로를 장모사라고 소개한 마뇌는 부채를 살랑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백천이 그녀를 알아봤음에도 태도는 여전했다.

“아참. 제가 회주님을 보면 꼭 드리려고 준비한 선물이 있습니다.”

“받아야 하나?”

“받으시는 게 좋을 텐데요.”

어쩐지 협박처럼 들리는 말투에 진백천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녀가 준비한 선물은 뒤쪽의 무사들이 가지고 왔다.

비단에 곱게 쌓인 것은 보석의 종류인 마노(瑪瑙)였다.

‘허참. 어이가 없네.’

모두가 최고급 마노에 눈이 팔렸지만 진백천은 보석에 집중할 수 없었다.

보석을 가져다준 무사는 지극히 평범해 보였지만 실은 반박귀진(返朴歸眞)에 다다른 자였다.

‘속마음이 들리지 않는 자가 내력이 한 줌도 없을 리가 없잖아.’

그런 자가 하나도 아니고 뒤편에 세 명이나 더 있었다.

“마음에 드십니까? 저희 가주님께 특별히 부탁해 가지고 온 것입니다.”

마뇌가 말하는 가주가 마교주를 뜻하는 것쯤은 잘 알았다.

진백천은 더 참지 않고 그녀에게 전음을 건넸다.

-마뇌. 대체 무슨 속셈으로 기어 나온 거지?

-무슨 속셈이라뇨. 제 계획을 전부 잘라먹는 귀한 분 존안을 뵈러 나왔죠.

-귀한 분 존안을 보러 오는 것 치고는 칼들이 제법 날카로운데?

마뇌는 뒤를 힐끔 쳐다봤다.

세 명의 마인은 겉으로 보기에는 지극히 평범해 보였다.

-지살대(地殺袋)의 3인이에요. 아마 일다경이면 이곳의 대부분을 찢어 죽일 정도는 될걸요?

-내가 있는데 가능할 것 같아?

-아참. 하북 주변에 철갑만마대(鐵甲萬馬袋)도 함께요.

‘미친.’

철갑만마대는 말 그대로 말을 타고 다니는 마교의 무력부대였다.

긴 묵창을 쓰며 일순간 전부를 쓸어버리는 기동타격이 강점이었다.

더구나 무인이라기보다 군대 같아서 상대하기 까다로운 점이 많았다.

‘그 말이 진실이라 해도 마뇌를 죽일 수 있다면 오히려 이득일 수도 있어.’

상대는 다름 아닌 마뇌였다.

하지만 진백천이 고민하는 이유는 눈앞의 마뇌가 과연 진짜 본인일까 하는 의심 때문이었다.

‘혹시라도 대리할 자를 보낸 거라면?’

마교의 사마외도(邪魔外道), 비인외도(非人外道)의 술법 중에는 본인 스스로가 세뇌가 되었다는 사실도 모르게 만드는 것들이 존재했다.

진백천은 받은 마노를 조심스럽게 살폈다.

딱히 별다른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회주님. 설마 제가 독이라도 넣었을까 봐요?”

-얌전히 있다가 갈 테니까 그냥 모르는 척하시죠?

-그걸 어떻게 믿고?

-곧 피 터지게 싸울 텐데 벌써부터 힘 뺄 필요는 없잖아요.

흑요석 같은 눈동자가 반짝이며 진백천을 응시했다.

지독하게 순수하면서 호기심 어린 눈동자였지만 저런 순진한 얼굴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게 만들었을지 생각하면 소름이 끼쳤다.

-얌전히 있어. 저놈들도 괜히 돌아다니지 못하게 하고.

-물론이죠.

진백천은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괜스레 남은 사령령과 유서어를 보는 눈만 더 날카로워졌다.

“내가 사패천으로 간다고 했던 말이 우습게 들렸나?”

“하하. 저희도 그냥 돌아가면 사정이…….”

“내가 네놈들 사정을 생각해 줄 필요는 없지.”

진백천의 싸늘한 반응에 사령령과 유소어가 할 말을 잃었다.

“여기는 진주언가니까 더는 뭐라 하지 않겠다. 하지만 나를 더 따라다닌다면 그때는 단순한 경고로 안 끝나.”

진백천은 그 말과 함께 뒤돌아섰다.

그는 별당으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황대원에게 명령했다.

“근처에 있는 정도회 분타에 소집 명령을 내려. 혹시 모르니까 사주경계 확실히 하고 주변에 이상한 점이 없는지 확실히 하라 그래.”

“네. 회주님!”

그뿐만 아니라 하오문과 개방에 말해서 마교의 움직임을 알아봐달라고 했다.

혹시라도 철갑만마대가 움직였다면 적어도 그들의 눈에 한 번쯤은 들어왔을 터였다.

예상외 인물의 등장에 진백천의 속내가 복잡해졌다.

‘후우. 마뇌라니.’

아직은 중원의 그 존재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자였다.

진백천이 원래 벌어져야 할 참사나 마뇌의 계획을 전부 무너뜨리기는 했다.

그렇다고 이렇게 무턱대고 나타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우선은 주변부터 알아보자. 그러고서 움직여도 늦지 않아.’

마뇌라면 아무런 생각 없이 나오지는 않았을 터였다.

진백천은 최대한 마음을 차갑게 가라앉히고 냉철하게 유지하려 했다.

“형님? 괜찮으세요?”

도홍경은 평소와 다른 진백천의 모습에 의아해했다.

“너 언제 모산파로 돌아가냐?”

“이번 진주언가의 일만 마무리되면 바로 움직여야죠. 다리도 이제 거의 다 나았으니까요.”

“그러면 부탁 하나만 하자. 이곳에 머무는 동안 사람 하나, 아니, 세 명만 유의 깊게 지켜봐.”

도홍경의 좌도방술은 일반 무인들이 꿰뚫어 보지 못했다.

은신부(隱身符)를 쓰면 진백천 또한 그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네. 누군지 말씀만 해주세요. 변소간 가는 횟수조차 똑똑히 세어둘게요.”

진백천은 마뇌와 그녀와 함께 온 무인 두 명을 알려주었다.

그러면서 혹시 모르니 가까이하지는 말라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 * *

마뇌는 방금의 만남을 떠올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십만대산에서 벗어날 때만 하더라도 진백천을 만나게 되면 그에 대해 온전히 파악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더 복잡해지는 기분이야.’

세상의 진리를 꿰뚫고 모든 병서를 통달한 오롯이 지(知)로서 얻은 눈이었다.

그렇기에 그 어떤 군상의 인간도 그녀 앞에 서면 산산이 조각내듯 분해되어 파악되었다.

그녀가 가진 능력이 바로 그러한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막상 마주친 진백천은 그녀로 하여금 더 큰 혼란만 가져왔다.

진백천에게서 여러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나이든 노인 같기도 하고, 철부지 어린아이, 혹은 냉철한 군주였다.

혹 다중인격(多重人格)이 아닐까 싶었지만, 그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하기에는 첫눈에 나를 알아보고 파악했다. 그것뿐만 아니라 반박귀진에 이른 지살대 무인들조차 명확하게 알아봤지. 인지가 떨어지는 자였다면 그럴 수 없어.’

적어도 그녀와 동급(同級).

혹은 그와 비슷한 능력을 가진 자였다.

‘그러니까 내 계획을 전부 막아설 수 있었겠지.’

마뇌는 오랜만에 심장이 두근거리는 감정을 느꼈다.

그녀는 지(知)로서 세상을 뒤엎으려는 자.

지금까지 살면서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봐온 적이 없었다.

하나같이 자신이 만든 장기판 위의 병졸들뿐이었다.

‘처음으로 나와 함께 장기를 둘 이를 만나게 된 거야!’

그녀의 얼굴이 불그스레하게 기대감으로 벅차올랐다.

진백천이 어떠한 수를 쓰든, 그 수를 전부 흡수하고 집어삼킬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장기판이 끝날 때쯤에는 그녀는 진백천을 잡아먹고 새로운 지적 존재로 태어날 터였다.

‘그러려면 지금까지와 다르게 최고의 수를 준비해야겠지.’

그녀의 뇌리에 다음으로 해야 할 계획들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가장 먼저 소교주를 충동질해 무림대회에 참여시켜야 했다.

그곳에서 정도회와 마찰이 생겨 서로 세력을 줄여주면 그만큼 그녀에게 이득이었으니까.

* * *

언해원이 벽보를 붙인 지 일주일 후.

진주언가는 스스로 준비했던 정혼자 뽑기를 진행했다.

하지만 말이 언해원의 정혼자 뽑기지 실상은 진주언가가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알리는 축제 같은 느낌이었다.

관리들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온 자들이 모여서 가볍게 술잔을 나눴다.

진백천은 진주언가의 가장 최측근들의 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술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잘 몰랐다.

그의 신경은 온통 마뇌에게 쏠려 있었다.

“도홍경.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어?”

“네. 사령령과 유소어라는 자들과 어울리기만 할 뿐 진주언가 밖으로 나가지도 않던데요.”

움직여도 문제였지만 지나치게 조용한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진백천을 발견하고는 싱긋 웃으며 인사했다.

진백천은 인상을 찌푸리고 고개를 틀었다.

“으응? 회주님. 저분은 누구세요? 아시는 분이세요?”

“왜? 마음에 들어?”

“아뇨. 저렇게 잘생긴 미남이라면 분명 제가 기억할 텐데 처음 봐서요.”

“잘생기긴 개뿔.”

진백천의 뿔난 반응에 당소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뇌는 현재 남장을 하고 역용술까지 사용한 상태였다.

그런데도 고운 선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당소예나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미남자로 보이는 게 당연했다.

‘도대체 굳이 이렇게까지 하려는 이유를 모르겠단 말이지?’

진백천이 그녀에 대해 고민하는 사이 본격적인 언해원의 정혼자 뽑기가 시작되었다.

하루 만에 진행이 되는 것은 아니고 하루에 하나씩 총 나흘 동안 진행되었다.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첫 경연을 진행하기 전에 이 모든 과정을 공정하게 봐주실 분을 소개하겠습니다.”

앞으로 나서서 인사하는 것은 당연히 개방의 태상장로였다.

그는 백발을 휘날리며 손을 몇 번 휘적이다가 내려갔다.

언 가주는 본격적으로 첫 경연의 시작을 알렸다.

그런데 막상 시작된 첫 경연은 진백천조차 처음 보는 것이었다.

“저게 뭐야? 대나무?”

진주언가의 무사들이 대나무 몇 개를 지은 것을 가져와 하늘 높이 들어 올렸다.

그 위쪽부터 차례대로 손수건이 30여 개가 묶여 있었다.

“첫 번째는 바로 참가자를 추리고 걸러내기 위한 과정입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일다경이 지난 후에 손수건을 들고 있는 자가 통과자입니다.”

진주언가 무사의 설명이 끝나자마자 무인들이 개구리처럼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물론 그들이 노리는 것은 대나무에 묶인 손수건이었다.

‘태상장로 어르신이 끼어서 그런지 내가 알던 방식하고는 달라졌다. 이대로라면 석경은 탈락인데?’

유석경은 저 높은 곳까지 올라갈 정도로 경신법이 뛰어나지 않았다.

“읏차! 잡았다!”

그때 누군가 손수건을 풀고 바닥에 내려섰다.

의기양양하게 들어 올리는 손에는 분홍 손수건이 들려 있었다.

하지만 의외의 상황은 그때부터였다.

“손수건 내놔!”

“무슨 소리야! 내가 가지고 내려온 거다!”

“시끄러워! 통과자는 일다경이 지난 후에 손수건을 들고 있는 자다! 아직 일다경이 지나지 않았어!”

남자의 말대로였다.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주변에 손수건을 쥔 자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곧 주변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정말 이런 식으로 한다고?’

진주언가의 무인들은 딱히 관여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때였다.

누군가 땅을 박차며 한 마리 나비처럼 대나무 가장 위에 올라섰다.

그리고 제일 위에 있는 손수건을 풀러 자신의 손목에 묶었다.

‘마뇌?’

그녀는 진백천을 내려다보며 씨익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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