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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회귀백서-137화 (137/346)

무림회귀백서 137화

50장 언해원의 정혼자(1)

어둠이 내려앉은 진주언가는 무척이나 한산했다.

정문의 위사를 제외하면 제대로 된 무사들도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가주인 언시경을 따르는 소수를 제외하면 남은 이들도 거의 없었다.

‘하긴 일하던 자들도 전부 나간 마당에.’

하지만 당장 내일부터라도 진주언가는 조금씩 변할 것이다.

무사들도 다시 모여들고 떠났던 자들도 돌아올 것이다.

적어도 예전의 성세를 다시 찾을 때까지는 진백천이 최대한 도울 테니까.

‘후우. 더럽게 머리 아프네.’

진백천은 지끈지끈한 두통에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적의단을 비롯해 장개가 권하는 술을 사양하지 않고 다 받아마신 탓이었다.

그에게 있어 술의 사양 따윈 없었다.

회귀 전의 딱딱한 생활을 생각하면 완전히 반대된 삶이었다.

손끝으로 주정을 뽑아내자 희뿌연 김이 피어올랐다.

“이제야 조금 살 것 같네.”

이런 새벽에 밖에 나온 것은 다름이 아니었다.

도왕과의 대결을 다시 되짚어보기 위해서였다.

진백천은 눈을 감고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그의 머릿속에서 도왕이 묵호대도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힘에서 압도적으로 밀렸지만 내력도 부족하지 않고, 대응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틈을 노려 한 방 먹이기도 했고, 중독시키기도 했다.

그 수는 과거의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노련한 한 수였다.

‘하지만 딱 여기까지였어.’

진백천은 애초에 의도했던 도왕에 대한 억제력이 전혀 없었다.

만약 도왕이 미치기라도 하고 달려들었다면, 아니, 태상장로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그의 팔다리 하나쯤은 잘려나가도 할 말이 없었다.

‘무공이 떨어진다면 변명이라도 하겠지만 그것도 아니야.’

그가 익힌 태허무극진결(太墟無極進結)과 태천검(台千劍)은 도왕이 익힌 혼원벽력신공(混元霹靂神功)과 오호단문도(五虎斷門刀)에 비해 약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신묘한 도리가 살아 있고 깊이가 있었다.

‘숙련도의 차이라고 봐야 하나.’

4번째 삶은 사는 그에게 숙력도가 부족하다는 의미는 뼈 아팠다.

그만큼 스스로의 재능이 부족하다는 뜻이었으니까.

자신은 현재 태천검의 4초식 중 겨우 2초식을 얻은 상태였다.

48가지의 동작 중 아직 25번째에 머물러 있었다.

‘나름 파강식에 머무르며 만족해하고 있었는지도 몰라.’

실제로 나이대를 생각하면 진백천을 이길 자는 거의 드물었다.

하지만 그가 상대해야 하는 이들은 전부 강호의 노괴들이나 마교의 괴물들이었다.

그런 이들을 상대하려면 적어도 지금보다 몇 배는 더더욱 강해져야 했다.

‘최대한 숙련도를 올려야 해.’

진백천의 파초식과 파강식을 비롯해 모든 무공은 숙련도가 낮았다.

그렇기에 같은 내공이라고 해도 위력이 약한 이유였다.

그것을 이번 도왕과의 대결에서 뼈저리게 느꼈다.

진백천은 묵묵히 자신의 검을 들어 올렸다.

백번을 휘둘러 부족하다면 천 번을, 천 번이 부족하다면 만 번을 휘두르면 되었다.

휘이이익-

진백천이 검무를 추며 부드럽게 검을 이어나갔다.

연무장에 내리쬐는 달빛이 온전히 그만을 비췄다.

‘강해지고 싶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자신은 꾸준함의 힘을 알았다.

여러 번의 회귀를 거듭하면서 유일하게 얻은 힘이자 진리였다.

‘오늘은 단지 작은 조약돌에 불과하지만…….’

쉬이이이익-

‘내일과 그 내일, 수없이 반복되는 내일을 더하다 보면 그것은 커다란 태산이 되는 법이야.’

진백천의 수련은 해가 뜰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리고 그런 진심이 통해서일까?

그날 백천은 태천검(台千劍)의 27번째 동작까지 이어갈 수 있었다.

* * *

아영은 정도회에 가까워지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의 스승인 진백천이 회주라는 사실은 잘 알았지만 요즘에는 더더욱 뼈저리게 느꼈다.

응풍검대가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은 선망의 눈길을 보냈다.

“와아아. 정도회의 무사님들이다!”

자기 또래의 아이들이 뛰어오며 소리쳤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한 듯 응풍검대 무사들은 아무렇지 않아 했다.

“……인기 많으시다. 무사님들이 스승님보다 더 많은 것 같아요!”

그 말에 화들짝 놀란 응풍검대 무사들이 고개를 저었다.

“회주님과 비교하면 저희는 새 발의 피입니다!”

“전부 회주님께서 이렇게 바꿔놓으신 겁니다!”

“저희 스승님이요?”

무사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 마을은 원래 이렇게까지 사람이 많지 않았다.

진백천이 화전민들을 구하면서 새로 유입된 이들이었다.

안정적인 생활을 만들어줬을뿐더러 강호에 그 이름이 떵떵 울리니 자연스레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그뿐이 아닙니다.”

주요 상단들은 유독 정도회와 근처 지역에 더 자주 들렸다.

자연스레 이 주변은 더욱 북적거리고 상업이 발달했다.

“상단이요? 왜 그런 거예요?”

“그것도 전부 회주님 덕분이죠.”

“소금 밀수사건을 들어본 적 있으십니까?”

“네! 들어봤어요! 마교놈들이 한 짓이라면서요!”

씩씩한 그녀의 대답에 응풍검대의 무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때 소금값이 폭락해서 상단이 망할뻔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소금을 비싼 값에 사들여서 상단을 도운 게 바로 회주님이십니다.”

그런 것까지는 몰랐는지 아영이 눈을 꿈뻑거렸다.

그것뿐만 아니라 번 돈으로 불쌍한 사람들을 구휼하고 도우니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영은 잠시 진백천을 떠올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의 뇌리에는 진백천은 술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자린고비란 인상이 강했었다.

‘그게 다 내 오해였구나. 역시 스승님은 엄청나!’

아영은 자기도 모르게 턱이 들리고 우쭐했다.

스승님의 유일한 제자라는 사실이 내심 자랑스러웠다.

설수련은 그런 아영을 보고 미소 지었다.

“아참. 무사님. 회주님에게서 연락 온 것은 없었나요?”

“네. 설 소저. 아직까지는 없었습니다.”

호수의 괴물에게 끌려간 지 벌써 일주야가 지났다.

황대원은 걱정 말라고 했지만 신경이 안 쓰일 수 없었다.

‘은인께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겠지?’

그런 설수련의 걱정에 대답이라도 하듯 전서구가 날아왔다.

쪽지를 확인한 무사의 표정이 환해졌다.

“회주님이 무사히 돌아오셨다고 합니다. 호수를 떠돌아다니는 괴물도 사실은 젊은 남자는 납치하는 요녀가 타고 다니던 배였다고 합니다.”

“요녀요?”

“네. 그렇습니다.”

진백천은 그곳에서 요녀를 제거했을 뿐만 아니라 호수 밑에 숨겨져 있던 전대 황조의 유물도 찾아냈다.

이제는 강호뿐만 아니라 황실에서도 진백천의 이름이 퍼져나갔다.

‘과연 천운이 따르시는 분이구나.’

진백천과 잠시 다녀본 탓인지 이제는 웬만한 일에도 놀라지 않았다.

“지금은 저희와 마찬가지로 정도회로 향하시는 중입니다. 아무리 늦어도 한 달 내에는 다시 뵐 수 있을 겁니다.”

“그렇군요. 다행이네요.”

그들은 마을의 외곽에 도달했다.

이곳은 외곽이라고 해도 사람이 북적였다.

대부분은 못 쓰던 땅을 개간하거나 집을 지었다.

사람이 늘다 보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바쁘네요.”

“네. 한동안 더 늘어날 겁니다.”

무거운 석재는 마차에 실어 끌고 갔다.

하지만 경사로를 깎고 땅을 개간하는 탓에 마차는 어딘가 아슬아슬했다.

덜컹-

마차가 멈추자 사람들이 그 뒤에서 밀기 시작했다.

“끄으응. 밑이 또 걸렸나 본데.”

“힘 좀 줘봐.”

그때였다.

우직-

마차가 뒤로 밀려나는 것을 방지하던 고리가 박살 났다.

그리고 무거운 석재가 실린 마차가 가속도를 받으며 뒤로 밀려났다.

그 아래쪽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열심히 작업 중이었다.

“허억! 위험해! 다들 피해!”

그들이 고개를 들었을 때에는 이미 마차가 바로 앞까지 다가온 상태였다.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몸을 숙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을 엄습한 것은 묵직한 통증이 아닌 뜨거운 훈풍이었다.

화르르르륵-

설수련은 어느샌가 사람들 앞에 서서 마차를 막아서 상태였다.

마차를 잡은 손아귀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4성을 뛰어넘은 순수한 구양진경(九陽眞經)의 내력 탓이었다.

설수련은 실린 석재를 꺼내 바퀴 뒤를 받쳤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뒤돌아서며 물었다.

“괜찮나요?”

“감, 감사합니다!”

“조심하세요. 안전이 최우선이랍니다.”

“네, 네! 물론이죠. 건강이 최우선…….”

사람들의 시선이 설수련의 얼굴을 멍하니 올려다봤다.

그제서야 설수련은 얼굴을 가리던 면사포가 급하게 움직이며 날아갔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언니 여기요!”

아영이 떨어진 면사포를 들고 총총거리며 달려왔다.

“고마워.”

사람들은 아영과 설수련이 사라질 때까지 눈을 껌뻑거렸다.

“저렇게 이쁜 사람은 처음이야. 선녀 아니었을까?”

“……그럴지도. 한 손으로 저 마차를 세웠잖아.”

“그, 그렇지.”

설수련이 들었다면 얼굴을 붉혔을 만한 이야기였다.

* * *

정도회(正道會) 정문.

상장은 꼿꼿한 자세로 서서 보초를 서는 중이었다.

어제 밤늦게까지 수련을 하다 보니 온몸이 뻐근했지만 흐트러지지 않았다.

반면에 옆에 선 진씨 아저씨는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하아암. 오늘도 무료하구만. 아주 무료해.”

“아저씨가 무료하지 않으신 적도 있었습니까?”

“어쭈. 이제 제법 몸 좀 쓴다고 대든다 이거지?”

상장은 어색하게 웃었다.

진씨 아저씨가 알려준 청룡백상심법(靑龍白上心法)과 광풍칠성검법(狂風七星劍法)은 꾸준히 익히는 중이었다.

왠지 배우면 배울수록 몸에 꼭 맞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고 너무 자신하지 마라. 무인에게 과신만큼 커다란 독이 없으니까.”

“물론입니다. 제 동생 둘만 해도 저보다 강한걸요.”

“강해? 싸워봤어?”

“그런 건 아니지만…….”

상장이 머리를 긁적였다.

“동생들은 정도회의 무관에서도 제법 이름을 날리는 중입니다. 기재라고요.”

“바보 같은 놈. 과신은 독이지만 불신은 죽음이다. 어떤 상대도 이길 수 있다는 마음을 잊지 마라.”

“……네. 명심하겠습니다.”

이래도 문제, 저래도 문제라니 뭐라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 어감은 이해했다.

“그나저나 오늘 제법 큰 손님이 오는 모양이군.”

“큰 손님이요? 검왕님보다요?”

“검왕님이라니. 내 앞에서 검왕 올리냐? 그냥 검왕이라고 해라.”

얼마 전에 수라검대와 함께 나가던 전풍객은 검왕과 함께 돌아왔다.

그들이 마인들을 무찌르고 하오문의 문주를 구한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들어서던 시간은 때마침 상장이 위사로 근무할 때였다.

검왕은 가던 길을 멈춰 서고 상장을 힐끔 쳐다봤다.

단 한 순간 눈이 마주쳤지만 상장은 온몸이 찌릿한 느낌을 맛봤다.

그것이 강자에게서 저절로 풍기는 기세라는 것은 추후에 진씨 아저씨가 말해줬기에 알 수 있었다.

“그런 검왕님과 대등하게 싸웠다는 회주님은 과연 얼마나 강하신 걸까요?”

“크흠. 너도 그렇게 강해질 수 있다.”

상장은 그 말을 듣고 쓴웃음만 지었다.

그때 저 멀리서 익숙한 얼굴들이 걸어왔다.

“응풍검대 무사님들입니다. 지금 복귀하시는가 봐요.”

“패부터 확인하고 문 열어.”

“네. 알겠습니다.”

상장은 미리 앞으로 나가 그들을 반겼다.

응풍검대는 면사포를 쓴 여자와 상장 또래의 아이와 함께였다.

패를 확인한 상장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하자 무사가 말했다.

“회주님의 손님과 그 제자다.”

“회주님의 제자요?”

“그래. 놀랍지?”

상장은 깜짝 놀란 얼굴을 감추며 서둘러 문을 열었다.

자기도 모르게 자꾸 아영의 얼굴에 시선이 갔다.

아영은 허리춤에 진검도 찬 상태였다.

‘부럽다. 회주님께 직접 사사받는 거겠지?’

그녀는 상장이 쳐다보는 것을 느끼고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순간 혀를 쏙 내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 장난스러운 모습에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아참. 상장아. 이번에 응풍검대 대원 뽑는 거 알지? 꼭 지원해라. 우리가 잘해줄게.”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들이 멀어지자 진씨 아저씨가 특유의 껄렁거리는 걸음으로 다가왔다.

“호오. 회주의 제자라고? 엄청난 물건을 주워왔네.”

“……저 애가 강합니까?”

“강하냐고? 손아귀에 자리 잡은 굳은살, 자로 잰 듯한 일정한 보폭. 그리고 괴물 같은 내력. 이대로 자란다면 차기 강호를 책임지는 여걸이 되겠지.”

그 말을 하는 진씨 아저씨가 안 보는 척 상장의 표정을 살폈다.

역시나 두 눈을 떼지 못하는 게 아영에게 관심이 있는 모양이었다.

“걱정 마라. 너도 열심히 수련하면 그 옆에 설 수 있을 테니.”

“제가 말입니까?”

“그래. 평범한 사람은 천재를 못 이기지만 둔재는 천재를 이기는 법이다.”

“…….”

얼핏 들어도 전혀 말이 되지 않는 말이었다.

“쯧. 뭐든지 한 번에 되는 천재들은 미치지 못한다. 그런데 뭐든지 실패하는 둔재는 아주 쉽게 미치지. 무공에 미쳐라! 단순무식해져라! 그렇게 무공에 몰두하면 곧 천재의 발꿈치를 물어뜯을 수 있다!”

어딘지 모르게 미친 사람의 술주정 같은 말이었다.

하지만 자신도 할 수 있다는 격려 같아서 나쁘진 않았다.

“예에. 더 열심히 하라는 말씀으로 알고 노력하겠습니다.”

“짜식이.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구나.”

상장은 웃으며 정문 앞에 바로 섰다.

바른 자세와 정면을 향한 시선에도 뇌리에서는 끊임없이 광풍칠성검법을 생각했다.

진씨 아저씨의 말대로 그는 미친 둔재가 되어가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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