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회귀백서 136화
49장 도왕과의 대결(3)
진백천이 베어낸 도왕의 부위는 팔꿈치였다.
하지만 그것의 부위를 떠나 중요한 것은 베어냈다는 사실이었다.
상처가 제법 깊은 듯 흐른 피가 금세 바닥을 적셨다.
“도왕이 베이다니!”
“회주가 보통이 아니라더니 그게 사실이군!”
사람들은 전부 경악했다.
지금까지 도왕이 몰아붙이기만 했기에 더더욱 그랬다.
이것은 팽가의 무인들도 마찬가지였다.
도왕의 털끝 하나 손대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아는 그들이었다.
어린 회주의 칼끝이 감히 도왕에 닿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주변의 분위기가 술렁대기 시작했다.
도왕은 당황하기보다 분노를 참지 못했다.
내력을 끌어올리며 본력을 다하려 했지만, 몸 안에서 느껴지는 이질적인 기운에 몸을 떨었다.
“……독?!”
진백천의 수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내 독이 제법 독해서 말이지.”
나즈막한 목소리를 내뱉는 진백천의 두 눈이 검녹색으로 번들거렸다.
한계까지 독정의 기운을 끌어올린 탓이었다.
이미 독고구검의 검 끝에 진한 녹색의 독이 맺혀 있었다.
도왕은 순간 시야가 잘게 흔들리는 것을 느끼며 인상을 찌푸렸다.
몸 안에 파고든 독은 지금까지 겪었던 그 어떤 것보다 지독했다.
혼원벽력신공(混元霹靂神功)의 내력으로 독기를 상처로 밀어냈다.
피와 섞인 독이 검은 연기를 내며 타들어 갔다.
츠즈즈즉-
하지만 그런 찰나의 순간 또한 진백천에게는 새로운 기회였다.
파강식(破彊式).
거침없이 도왕을 향해 검을 내리그었다.
조금이라도 승기를 잡았을 때 몰아붙일 생각이었다.
도왕은 바로 눈앞에서 쏟아지는 강기의 파도를 막아내며 뒤로 밀려났다.
그리고 곧 바닥에 꽂혀 있던 진주언가의 철문에 부딪히며 멈춰섰다.
‘어림없지!’
가뜩이나 약해져 있던 문은 곧 박살이 나며 산산조각이 났다.
파편은 쏟아지며 도왕의 전신을 덮쳤다.
자신이 그토록 부수려던 문의 파편에 자상을 입은 모습이 퍽이나 아이러니했다.
도왕은 몸에 묻은 파편은 먼지 털듯 툭툭 치며 진백천을 쳐다봤다.
“자네를 한낱 망둥이로 표현한 것을 내가 사과하지.”
“받아들이죠.”
도왕의 패기가 점점 더 날카롭게 치솟았다.
진백천을 호적수로 봐준다고 했으니 더는 봐주는 일은 없었다.
‘쯧. 이런 패기를 정마대전 때 사용하면 얼마나 좋아.’
하북팽가는 정마대전 당시에도 하북의 일을 제외하고는 관여하지 않았다.
그들은 단지 지역의 패자로써 남고 싶어 했다.
중원의 운명이니 마교 따위는 그들의 관심 외였다.
그렇기에 이번만큼은 진주언가가 힘을 쟁취하기를 바랐다.
“소란이 더 크게 일어나기 전에 좋게좋게 가시죠?”
“그러기에는 이제 팽가의 위명이 달린 문제야.”
“그깟 위명 따위 이미 박살 났잖아요?”
아무리 강호에 이름 꽤나 날리는 진백천이라고 해도 도왕이 이렇게 애를 먹으면 안 되었다.
불과 얼마 전에 그 검왕 조차 단 3수 만에 진백천의 피를 쏟게 만들었다.
이대로 끝이 나면 도왕의 이름값은 바닥에 떨어진다.
“그러니 자네의 팔이라도 잘라내야겠어.”
“지금까지는 그러지 않을 생각이었습니까?”
진백천이 어이없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도왕은 뒤편의 청호단과 팽가칠도를 쳐다봤다.
미리 준비하고 있던 그들은 눈짓을 받자마자 무기를 뽑아 들며 앞으로 나섰다.
그들의 목적은 진주언가와 이곳의 남은 사람들이었다.
“정말 끝까지 갈 생각이라 이거죠?”
“끝까지라니. 아직 반도 오지 않았어.”
지독한 패도의 길이었다.
자신의 생각과 뜻에 따르지 않으면 모조리 도륙하고 부숴 버렸다.
조금의 타협도 용납하지 않는 그것이 하북팽가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지독할 정도로 고집 센 늙은이구나!’
진백천은 무겁게 한숨을 내쉬며 뒤편을 쳐다봤다.
슬슬 자신이 준비한 마지막 패를 까려는 찰나.
팽가의 무인들을 멈춰 세우는 이들이 있었다.
다름 아닌 개방과 하오문의 무인들이었다.
“어허. 다들 동작 그만하시죠. 이곳의 일은 이미 개방과 하오문을 통해 사방으로 중계되고 있으니 말입니다.”
“더 선을 넘다가는 정파 이름을 떼고 사파 이름을 달지도 모릅니다. 하북팽가도 오대세가 내에서 쫓겨나서 좋을 건 없을 텐데요?”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주변에 있던 중소세가 전부가 몰려들었다.
지금껏 하북팽가의 패도에 먹혀 숨을 죽이고 살던 이들이었다.
그들의 앞에는 진주언가의 첫째인 언호충의 모습이 보였다.
하도 돌아다녀서 그런지 얼굴이 붉게 물든 채 헐떡였다.
“데, 데려왔습니다. 그러니 이제…… 이제 이길 수 있습니까?”
“그래. 잘했다.”
이것은 전부 진백천이 언호충에게 시킨 것들이었다.
그의 칭찬에 어색하게나마 웃었다.
하북팽가에게 당하는 멍청한 놈이지만 가문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도 슬슬 우리도 마지막 패를 까볼까?”
“네. 회주님.”
진백천의 말에 황대원이 굳세게 대답했다.
그리고 이내 등장한 것은 유석경과 그를 따르는 금의위들이었다.
“금의위(錦衣衛)?”
금의위들의 등장에 도왕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들이 관찰사를 주무르고 무시할 수 있는 것은 전부 하북 성주와의 관계 탓이었다.
금의위가 호위하는 자라면 황실과 관계된 자일 테고 그것만으로도 부담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하북성주가 돌아설지도 모르지.’
유석경은 뒷짐을 지고 주변을 고고히 둘러보았다.
그를 알아본 관리들이 다급히 고개를 숙였다.
“됐다. 오늘은 친구의 초대를 받아서 온 것이니.”
유석경은 풍기는 품위와 다르게 비틀거리며 준비된 의자에 앉았다.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그만큼 지금까지도 쉬지 않고 수련을 하다 온 탓이었다.
진백천은 말이 없어진 도왕을 돌아보며 물었다.
“혹시 금의위와 성주까지도 전부 죽일 생각입니까?”
사실 이제 와서 도왕에게 고민할 이유는 없었다.
무력만이 제일(第一)이라 생각하는 그조차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온 것이다.
하지만 늙어서 는 것이라곤 고집과 아집뿐이었다.
그는 마지막까지 남은 자존심을 붙잡고 놓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도왕의 자존심마저 날려 버릴 누군가가 진주언가로 들어섰다.
“거참. 늙어서도 그 더러운 성질머리 하고는 여전하구나!”
도왕에게 거침없이 일갈을 날리는 인물은 다름 아닌 개방의 태상장로였다.
“어르신!”
그뿐만이 아니었다.
변관을 비롯해 소방방과 같은 익숙한 얼굴의 적의단(赤衣團)과 도림곡까지 함께 갔었던 장개도 함께였다.
그들은 반가움을 띈 얼굴로 눈인사를 했다.
태상장로는 도림곡(島林曲)에 있을 때와 천지 차이였다.
비쩍 말랐던 몸은 풍채가 생겼고 헝클어졌던 백발은 신선처럼 뒤로 묶은 채였다.
한 손에 쥔 옥으로 된 타구봉은 위협적으로 땅을 내리찍었다.
“정도회와 개방은 맹우의 관계이니 그를 죽이려거든 개방도 상대해야 할 것이야.”
태상장로를 쳐다보는 도왕의 얼굴에 못마땅함이 가득했다.
적의단을 제외하더라도 태상장로 하나만으로 이미 부담스러운 적이었다.
“개방이 이렇게까지 나서다니. 앞으로 하북에서의 활동은 어려워져도 상관이 없나?”
“허허. 팽도천 자네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모양이군. 이 정도 되었으면 팽가부터 더 걱정해야 하는 게 아닌가?”
뒤편의 서 있던 팽가의 무인들조차 흔들리기 시작했다.
팽가칠도의 몇 장로들이 도왕에게 전음을 보냈다.
여기서 물러난다면 얼마나 많은 것을 내줘야 할지 몰랐지만 그렇다고 공멸할 수는 없었다.
도왕은 자신의 묵호대도를 들고 거칠게 허공을 휘저었다.
차악-
하지만 결국 도가 향한 곳은 그의 도집이었다.
“회주. 또 보지.”
“굳이 안 봐도 됩니다.”
도왕은 마지막까지도 이죽이는 태도에 코웃음을 치며 뒤돌아섰다.
그 뒤를 따라 팽가의 무인들이 줄지어 따라갔다.
그들이 물러나는 모습을 보는 진백천은 딱히 편안치 않았다.
돌아서던 팽가칠도의 눈빛에는 적의가 분명했다.
그들의 성격상 진백천이 혼자가 될 때를 노려 복수하려 들 터였다.
‘그것이 불의(不義)에 가득 찬 것이라도.’
“와아아아아! 팽가가 물러났어!”
“역시 표기장군이십니다!”
“팽가도 막상 까보니 별거 아니었군!”
진백천의 걱정과 다르게 팽가가 물러나자 진주언가는 환호가 터져 나왔다.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만 같던 하북의 패자를 물리친 것이다.
‘우선 팽중군을 대가로 합의금부터 받아내야지.’
그런 후에는 하북의 관리들도 하나둘 팽가와 연결된 끈을 끊어낼 터였다.
고립된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방향은 많지 않았다.
기껏 해봤자 주변을 향한 분풀이뿐이었다.
‘전면전이 아니라 분풀이 정도는 진주언가도 막아낼 수 있어.’
진백천은 처음의 생각대로 중소무가의 힘을 모아 진주언가에 집중시킬 셈이었다.
진주언가는 하북의 패자가 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팽가는 이빨과 발톱마저 녹슬어갈 터였다.
‘유석경이 언해원과 이어진다면 그것만으로도 금상첨화고 말이지.’
“그나저나 여기는 어쩐 일이십니까? 그것도 이렇게 전부 대동하시고요.”
“진주언가에서 제법 재밌는 일이 벌어진다기에 와봤지.”
처음이야 언해원의 정혼자 모집을 들었고 진백천이 이곳에 있다고 해서였다.
하지만 근처에 다 와서는 도왕과 진백천이 한판 붙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서둘렀다.
“자네도 어지간하군. 도왕과 싸울 생각을 하다니. 저번에도 느꼈지만 참으로 목숨을 여러 개 두고 사는 것 같아.”
“하하. 제가 공사가 다망합니다.”
진백천은 피식 웃다가 전신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몸을 움츠렸다.
멀찍이 서 있던 당소예가 재빨리 금창약을 가지고 왔다.
“회주님. 덧나기 전에 얼른 바르세요.”
“고마워.”
적의단은 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다른 점이라면 태상장로가 실종된 이후로는 한시도 떨어져 있지 않는다고 했다.
하마터면 흑백신의에게 죽을뻔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나서였다.
의외인 것은 장개였다.
“섬서성 한중지부 분타주가 여기까지는 웬일이야?”
“크흠! 언제까지 내가 분타주로 있을 줄 알았냐. 나 이래 봬도 4결이다!”
장개는 자신의 허리춤을 보이며 말했다.
그의 말대로 4개의 결(結)이 보였다.
도림곡의 일을 처리하면서 공을 인정받아 4결로 진급한 것이다.
이대로라면 언젠가 그의 목표인 6결 법개가 되는 것도 꿈만은 아니었다.
“한 마디로 어르신 비서 역할이라 이거네?”
눈치 빠른 장개였기에 태상장로도 딱히 그를 싫어하지 않았다.
진백천은 그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기 전에 진주언가부터 정리했다.
언시경은 가주답게 직접 나서서 부서진 문을 대신할 임시 문을 설치했다.
그리고 관리들도 좋은 구경을 했다며 인사를 하고 떠났다.
대부분은 언시경이 아닌 유석경과 진백천의 눈치를 살폈지만 말이다.
그렇게 모든 것이 마무리될 쯤에는 어느덧 해가 지평선 너머로 넘어갔다.
붉게 물든 노을을 지켜보는 진백천의 얼굴이 무척이나 피곤해 보였다.
태상장로는 그의 옆으로 다가왔다.
“도왕. 강했지?”
“충분히요.”
“그자. 겉보기보다 더 집요하고 꽁한 인간이다. 아마 어떻게든 복수하려 할 거야.”
“압니다. 조심해야죠.”
태상장로는 뭔가를 더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진백천이라면 어련히 잘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어르신 여기에 언제까지 머무실 거예요?”
진주언가의 입장에서는 태상장로가 가능한 오래 머무는 것이 좋았다.
그가 이곳에 있는 이상 하북팽가도 함부로 움직이지는 못했다.
“언 가주가 철중화의 정혼자를 찾는 일에 심사를 봐달라고 말했다. 제법 재밌을 것 같기도 하고 끝날 때까지는 머물 생각이다.”
“감사합니다.”
“회주가 감사할 건 아니지.”
말은 그렇게 해도 그것을 받아들인 것이 진백천 때문이라는 것쯤은 잘 알았다.
태상장로는 진백천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들어가자. 오랜만에 회포를 풀어야지. 장개가 자신이 담근 천화주(天花酒)를 개봉한다더군.”
“크으. 그럼 빠질 수 없죠. 장개가 다른 건 몰라도 술 담그는 건 최고거든요.”
그날 회포를 푸는 자리는 저녁 늦게까지 이어졌다.
반가운 얼굴을 보니 자연스레 할 말이 늘어났다.
그리고 그날 새벽.
진백천은 남들이 모두 잠든 늦은 시간에 홀로 연무장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