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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회귀백서-135화 (135/346)

무림회귀백서 135화

49장 도왕과의 대결(2)

“크하하하하하! 뭐라? 나를? 팽가를? 베어내?”

도왕 팽도천은 그 말을 듣고 껄껄거리며 웃어댔다.

자신의 내력을 제법 받아내길래 대화를 해줬다.

하지만 망둥이처럼 자신의 앞에서 펄떡이며 뛰는 꼴이 우스웠다.

“혹시라도 네놈이 가진 알량한 직위 하나만 믿고 나대는 거라면 큰 오산이다. 나 팽도천은! 아니 우리 팽가는 그런 것 따윈 신경 쓰지 않아!”

팽도천은 자신의 묵호대도를 크게 휘둘러 바닥에 내리꽂았다.

쿠우웅!

연무장 바닥이 깨지며 도가 깊게 파고들었다.

일부 파편이 진백천에게 튀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잠시라도 눈을 뗐다간 더 무시무시한 도가 자신을 향해 쇄도할 것만 같았다.

‘역시 속마음은 들리지 않아. 검왕 어르신에 비해 조금 부족한 정도라고 생각하면 될까?’

무표정한 얼굴과 다르게 진백천의 속내는 복잡했다.

여기서 도왕과 대결을 하는 것은 좋지 않은 수였다.

싸우게 되더라도 진백천의 성미로는 이미 이긴 싸움을 하는 게 맞았다.

‘슬슬 끝날 때가 되었는데.’

진백천은 독객을 하오문으로 보내 그동안 하북팽가의 불법적인 비리와 모든 구린 자료를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그 자료가 도착하면 팽가라고 해도 무턱대고 도를 휘두를 수 있을 리 없었다.

“아직도 과거에 사시는 것 같습니다.”

“뭐라? 과거?”

“네. 도왕이 젊었을 때는 무턱대고 힘으로만 하면 전부 해결되는 세상 아니었습니까?”

“무림은 힘으로 결정되는 세상이다! 강자가 약자를 집어삼키는 것은 자연의 이치야!”

그렇게 살아왔던 도왕이기에 진주언가를 집어삼키고 적이 되면 아무렇지 않게 죽이겠다는 말이 나오는 것일 터였다.

어쩐지 사천당가와 비슷한 아집이지만 차이점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못한다는 거다.

‘말 그대로 빡대가리란 거겠지.’

진백천은 도왕 뒤편에 서 있는 청호단과 팽가칠도를 살폈다.

그들의 얼굴에서도 도왕과 비슷한 아집이 전해졌다.

왠지 모르게 그들의 자신감 넘치는 얼굴을 전부 박살 내주고 싶었다.

“강자가 약자를 집어삼키는 게 자연의 이치라. 맞는 말입니다. 도왕과 무턱대고 싸우기에는 제 손해겠지요. 뒤편에 편도 많으시니까요.”

“이제야 상황 파악이 되느냐?”

“제 말 다 끝나지 않았습니다.”

진백천의 시선이 진주언가의 무너진 정문으로 향했다.

그곳으로 주춤거리며 들어선 것은 독객과 하오문의 무인들이었다.

객잔에서 봤던 하북 하오문 분타주도 함께였다.

그들은 두꺼운 책자를 진백천에게 건넸다.

먹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가져온 하북팽가의 자료였다.

“회주님. 그동안 하북팽가에서 저지른 불법적인 일들입니다. 그동안 돈 되는 짓이라면 전부 다 해왔던 모양입니다. 지금까지 걸리지 않은 게 용하십니다.”

“증거는?”

“관군과 함께 하북팽가와 관련된 곳에서 수집 중입니다.”

“도왕께서도 한번 읽어보시죠.”

진백천은 책을 도왕에게 던지듯 건넸다.

몇몇 내역을 확인한 도왕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자신이 봐도 도를 넘은 사업 내역이 눈에 들어왔다.

“전부 관리들의 허가를 받아 한 것들뿐이다. 저들의 배를 채우는 사료기도 했고 말이지!”

적나라한 그의 말에 관리들이 헛기침을 하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관찰사가 저기 있으니 직접 물어보지. 어떤가? 내 말이 틀린가?”

모든 이의 시선이 하북성의 관찰사에게로 쏠렸다.

그는 알 수 없는 얼굴로 술잔을 들이켰다.

하지만 속마음은 부글부글 끓는 중이었다.

-……저 미친 늙은이가 정신줄을 놨군. 돈 좀 주고 더러운 일을 맡아준다고 내버려 뒀더니 안방을 차지하려 해?

“어서 대답하게. 관찰사.”

관찰사의 시선이 진백천과 도왕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하지만 그의 입장에서 딱히 고민할 이유는 없었다.

그는 관리였고, 진백천은 정도회의 회주이기 전에 표기장군이자 장차 부마도위가 될지도 모를 인물이었다.

“……한낱 무부 주제에 내게 명령하지 마시오! 나는 황제를 모시는 관리! 그동안의 경거망동은 관과 무림의 관례를 생각해서 참았지만 이제 더는 안 되겠군! 관군들은 전부 팽가의 무인들을 포박하라!”

그의 당찬 명령에 관군들이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들이 팽가의 무인들을, 나아가 도왕을 제압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서 저들을 잡아들이라니까!”

관군들은 움찔하면서도 천천히 다가왔다.

도왕은 천천히 묵호대도를 뽑아 들었다.

“아무래도 맹랑한 회주는 이곳에서 죽어줘야겠군. 자네가 날뛰니 저 뒤의 것들도 분수에서 벗어나는 게 아닌가?”

“절 죽이면 다른 곳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요?”

“걱정 말게 이곳의 담장은 높아서 밖에선 아무도 모를 테니.”

단순한 협박은 아니었다.

‘힘에는 힘이라.’

과연 그런 법이었다.

진백천은 도왕을 상대로 말로 설득하려는 것을 포기했다.

평생을 힘으로만 살아오던 자가 이제 와서 고개를 숙이고 받아들일 리 만무했다.

머리를 쓰는 자는 계략에 당하는 것을 가장 경계하고, 독을 쓰는 자는 독을 가장 무서워했다.

‘도왕도 힘으로 꺾이지 않는 이상 물러서지 않을 거야.’

적당히 궁지에 몰아넣으면 물러날 거라 생각한 진백천이 틀렸다.

도왕에게는 이런 것쯤은 위협스러운 수준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팽가 전원과 다툴 수는 없어.’

진백천은 독고구검을 들어 팽도천을 가리켰다.

적당히 하려던 마음은 싸그리 지워 버렸다.

“그렇게까지 나오신다면 어쩔 수 없겠네요. 저하고 한판 붙죠.”

“지금 나한테 하는 말인가?”

“그럼 누구한테 하겠습니까. 이기는 자가 모든 걸 결정하는 겁니다.”

“드디어 마음에 드는 말을 하는군!”

팽도천은 곧바로 도를 뽑아 들었다.

후배라고 몇 수를 양보하겠다는 말 따위는 없었다.

같이 무기를 들고 맞선 이상 먹고 먹혀야 할 관계뿐이었다.

“받아 보거라!”

도왕은 처음부터 본격적이었다.

도는 한 줄기 빛처럼 머리 위에서 떨어져 내렸다.

진즉에 상황을 보고 있던 진백천이기에 공격을 빗겨냈다.

끄드드득-

거대한 도가 독고구검의 옆을 긁으며 거친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제법이군!”

단지 진백천이 도를 빗겨냈을 뿐인데도 도왕은 그를 칭찬했다.

그만큼 자신이 일도(一刀)가 쉽게 빗겨낼 수 있지 않음을 잘 알았다.

하지만 그 후에도 진백천은 계속해서 공격을 막아냈다.

카앙!

도와 검이 맞닿을 때마다 뜨거운 불똥이 튀었다.

소름 끼치는 파공성은 덤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도왕이 진백천을 우습게 본다는 사실이었다.

‘이것보다는 벽력마검의 검이 더 압박감이 심했어. 버틸 수 있다.’

진백천은 천천히 뒤로 물러나면서도 두 눈을 치켜뜨고 도왕을 살폈다.

기회를 엿보는 그는 문득 언시경의 말이 떠올랐다.

-자신보다 더 강한 자에게 강을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 힘이 약하다 생각할 때는 몸을 숙이고 때를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해.

‘맞아. 약자라면 힘을 비축하며 기회를 엿볼 줄 알아야 해.’

“겨우 그게 다인가?”

화아아아악-

진백천은 머리 위로 스쳐 지나가는 묵호대도를 피했다.

잘려나간 머리카락이 허공에 먼지처럼 비산했다.

시간이 갈수록 그의 몸은 점차 엉망이 되어갔다.

옷이 찢겨나가고 그 자리를 붉게 물든 자국이 대신했다.

설마 하고 지켜봤던 이들의 표정에도 점차 실망감이 어렸다.

유일하게 당당히 서서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것은 황대원뿐이었다.

“회주님은 괜찮을까요?”

언해원의 작은 물음에 황대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이라면 나도 걱정에 휩싸였을 테지.’

하지만 그럴 때마다 진백천은 어떤 상황에서도 어려움을 뚫고 헤쳐나왔다.

검왕부터 흑백신의, 벽력마검까지.

진백천은 꾸준히 강해졌고 그 누구의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리고 끝내 그들을 꺾어냈다.

그런 경험들은 황대원의 굳건한 믿음으로 바뀐 것이었다.

“상대는 도왕이에요. 황 무사님은 걱정도 안 돼요?”

“아무리 도왕이라도 회주님을 쓰러뜨리지 못합니다. 애초에 회주님은 질 싸움에 나설 성격이 아니십니다.”

믿음에 찬 황대원의 눈빛을 보고 언해원이 할 말을 잃었다.

왠지 그의 말을 듣자니 정말 그럴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의 믿음과 달리 상황은 진백천의 패배로 기울었다.

“크윽!”

도왕의 도가 아슬아슬하게 진백천의 앞섶을 스치고 지나갔다.

조금만 더 깊었으면 가슴이 베였을 공격이었다.

‘거리 조절이 능숙하다 못해 괴물이다. 전투 본능만큼은 정말 호랑이라고 생각해도 될 정도야.’

과연 도왕(刀王)이라는 별호가 붙을 만한 실력이었다.

그런 경계성 짙은 진백천의 표정을 보고 도왕이 입가를 비틀었다.

“이제 조금은 달라진 마음이 드나? 지금이라도 모든 잘못을 인정하면 넓은 아량으로 용서하지!”

“보상금도 내놓고 팽가가 하자는 대로 다 따르고요?”

“당연하지! 내 도에 먹히는 대신 내는 값으로는 싼값이다!”

진백천은 가볍게 몸을 털며 굳은 긴장한 근육을 풀었다.

온몸의 찢긴 상처에서 날카로운 통증이 전해졌다.

“그렇게 먹히기에는 아직 포기하지 않아서.”

“제법 질긴 먹이로다!”

도왕은 곧바로 오호단문도(五虎斷門刀)를 쏟아냈다.

역시나 팽중군이나 팽준혁과 같은 자의 도와는 천지 차이였다.

쇄에에에엑-

다섯 마리의 호랑이가 그를 감싸듯 도강이 사방에서 뻗어왔다.

‘빠르다.’

도가 뻗어오는 속도가 상상을 초월했기에 파초식을 사용하지도 못했다.

진백천은 재빨리 땅을 박차며 떠올랐다.

악수에 가까운 회피였지만 이마저도 팽중군과 팽준혁의 오호단문도를 미리 경험했기에 가능한 움직임이었다.

“쯧쯧!”

도왕이 상공에 떠오른 진백천을 보며 몸을 움츠렸다.

그것이 도를 휘두르기 전의 준비 자세라는 것쯤은 충분히 잘 알았다.

올려다보는 그의 눈동자가 살의(殺意)로 번뜩였다.

‘이번엔 팔이라도 하나 잘라낼 속셈이다.’

진득한 살기가 그를 휘감았다.

무형의 기운은 그를 옴짝달싹 못 하게 얽매려 했다.

하지만 동시에 진백천은 이것이 지금까지 기다리던 기회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아드득-

혀를 있는 힘껏 깨물며 굳어진 몸에 다시 긴장을 불어넣었다.

맹호강격(猛虎强擊).

벼락같은 도강이 진백천의 어깨를 노리고 쏟아졌다.

그에 맞춰 진백천도 똑같이 검을 휘둘렀다.

파강식(破彊式).

콰아아앙-

초식과 초식이 부딪히며 사방으로 그 여파가 휘몰아쳤다.

그 충격에 낙하하던 진백천의 몸이 다시 허공으로 떠올렸다.

후우우욱-

연무장의 바닥이 부서지며 희뿌연 연기가 피어올랐다.

‘한 번 쏟아부었을 때 모든 것을 털어 넣는다! 멈춰선 안 돼!’

진백천은 몸을 빙그르르 돌면서 재차 파강식을 사용했다.

하지만 공격을 이어나간 것은 도왕도 마찬가지였다.

내력의 충돌에 희뿌연 먼지가 찢기듯 사라졌다.

필사적인 진백천과 달리 도왕은 여전히 여유로웠다.

도를 휘두르고 도강을 쏟아내는 것이 숨을 쉬는 것처럼 익숙해 보였다.

‘노괴 같으니라고! 아직이다!’

진백천은 뻗쳐오는 도강을 몸으로 받아냈다.

콰아앙!

‘커헉!’

“회주님!”

“허억! 직격으로 당했어!”

다들 상상치도 못한 듯 놀란 눈치였다.

그런 경호성에 도왕도 살짝 자세가 흐트러졌다.

정말 진백천을 이 자리에서 죽이려는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도강을 몸으로 받아낸 것 또한 진백천의 노림수였다.

옷 안에 걸쳐 입은 호연보의(護燃保衣)라면 그 공격을 충분히 받아내 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정확했다.

진백천은 도왕의 자세가 흐트러진 찰나를 놓치지 않고 내력을 끌어올렸다.

백면섬보(百面閃步).

진기가 폭발하듯 경맥을 타고 올랐다.

마치 번쩍이는 듯한 움직임이 끝난 후에는 도왕의 뒤편에 내려선 후였다.

하지만 도왕도 만만치 않았다.

이미 그의 움직임을 눈치채고 반사적으로 도를 뒤로 휘두른 것이다.

‘늦었다.’

진백천은 그것 또한 짐작하고 검을 뻗었다.

초식을 끊어내는 초식.

파초식(破招式).

벼락처럼 뻗은 검은 도왕의 도를 밀어냈다.

끄드드득-

손바닥이 아플 정도로의 압박감이었지만 손잡이를 양손으로 움켜쥐며 버텨냈다.

진백천은 내력을 더 밀어 넣었다.

‘가진게 내력뿐이라!’

도왕은 자신의 도로 통해 들어오는 기운에 기겁했다.

태천검의 기운은 일부지만 그의 내력을 뚝뚝 끊어놓았다.

지금껏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기이한 검법이었다.

분명 먼저 도를 뻗은 도왕이었건만 그의 초식이 파괴되며 진백천의 검이 뻗어왔다.

스걱-

그리고 마침내 독고구검이 최초로 도왕의 몸을 베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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