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회귀백서 134화
49장 도왕과의 대결(1)
-회주님 말씀대로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도왕과 청호단, 팽가칠도 전부입니다!
진주언가로 돌아온 진백천은 생각 없이 기다리지만은 않았다.
가장 먼저 하오문에 연락해서 하북팽가의 움직임부터 살폈다.
아기 호랑이 2마리를 잡고 집을 뒤흔들었으니 이제는 어미 호랑이가 튀어나올 차례였다.
‘도왕이 미쳐서 날뛰면 나라고 해도 답이 없으니 다음 수를 준비해야지.’
도왕이 가진 힘은 검왕이나 다른 왕(王)이라 불리는 이들에 비해 부족했다.
다만 하북팽가는 도왕 한 명뿐만 아니라 팽가칠도가 존재했다.
개개인은 도왕에 비해 위력이 떨어지지만 그들이 하나가 되어 펼치는 연환패왕진(連環覇王陣)은 그 누구도 무시 못 했다.
‘흐음. 그들이 전부 움직이다니. 단단히 화가 났나 본데?’
하지만 진백천은 비교적 여유로웠다.
무인으로써의 그는 밀릴지언정 관인으로써는 그렇지 않았다.
진백천은 바로 황제의 금패를 이용해 관군을 모집하고 하북성의 관찰사를 비롯해 관리들을 초청했다.
다분히 의도적이었지만 그들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진백천은 공주인 고유빈과 매우 절친한 사이였고, 곧 부마가 될 거라는 소문도 파다했다.
초청이 끝나기 무섭게 그들은 하나둘씩 진주언가에 몰려들었다.
기존에는 얼굴 코빼기 한번 비추지 않던 자들이었다.
덕분에 바빠진 것은 진주언가의 가주 언시경와 언해원이었다.
“표기장군. 반갑습니다.”
하북성의 관찰사까지 친히 찾아와서 진백천과 악수를 나누었다.
“하하. 반갑습니다. 듣던 대로 헌양하십니다!”
진백천은 평소와 다르게 하나하나 직접 손을 잡고 인사를 나누었다.
들어본 적조차 없는 인문들이었지만 그의 호의적인 반응에 모두 기뻐했다.
‘도왕의 방패가 되어줄 이들이니 환영해야지.’
“……회주님. 이게 다 어떻게 된 거예요? 이 사람들은 다 뭐고요?”
“뭐긴. 방패들이지. 곧 하북팽가에서 몰려들 거야. 진주언가도 준비해.”
진백천의 말을 들은 언해원은 화들짝 놀란 얼굴로 언시경에게 달려갔다.
그들은 그나마 남은 이들을 모아 정문을 단단히 지켰다.
-회주님. 도왕이 정문에 도달했습니다!
하오문 문도의 전음이 들려오기도 전에 진백천은 이미 알아차린 상태였다.
굳게 닫힌 문 너머에서부터 패도적인 기운이 폭발할 듯 넘실거렸다.
하북성의 관찰사와 몇 관리는 눈치챘는지 멀찍이 떨어졌다.
술잔을 홀짝거리는 것이 제법 재밌는 구경이라 생각하는 듯했다.
이윽고 문이 크게 흔들리며 내력이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쿵쿵쿵-
“진주언가는 문을 열어라.”
언시경은 문을 지키고 있던 수위에게 눈짓을 보냈다.
“지금은 귀하신 손님이 와 있으니 나중에 방문하시오!”
“두 번 말하지 않겠다. 지금 당장 열거라. 그렇지 않는다면…….”
문밖에서 재차 패도적인 내력이 넘실거렸다.
“……부숴 버리겠다!”
수위가 흠칫 놀라며 언시경을 쳐다봤다.
그는 당황한 그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이건 복잡한 이해관계가 들어 있는 신경전이었다.
진주언가가 이대로 하북팽가에게 한 수 접히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앞으로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내 권갑을 가져와라.”
언시경은 양손에 묵철의 권갑을 착용하고 정문 앞에 섰다.
서서히 내력을 끌어올리며 도왕의 기운에 맞섰다.
“언 가주도 참으로 미련하군. 벌주를 선택하다니.”
“진주언가의 문은 쉽게 부서지지 않지.”
그건 단순히 은유적인 표현만이 아니었다.
장군가였던 진주언가는 정문을 만들 때 묵철을 덧대 만들었다.
보통의 무기로는 흠집조차 내기 힘들었다.
언시경은 문 앞에 서서 언가권(言家拳)의 기수식을 취했다.
‘문 하나를 두고 초절정 고수들의 싸움이라.’
보기 드문 구경에 관리들이 흥분했다.
더구나 상차림까지 차려져 있으니 술 한잔하면서 구경하기 제격이었다.
“표기장군! 누가 이길 것으로 보십니까?”
하북성의 관찰사가 은근히 물었다.
내심 도왕이 이길 거라는 것을 짐작하는 목소리였다.
“글쎄요. 어떤 게 기준이 되느냐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도왕이 진주언가에 들어서는 거라면 몰라도 저 문은 절대 부서지지 않을 겁니다.”
“호오. 도왕은 들어올 테지만 문은 부수지 못한다라.”
쉽게 예측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관리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치더니 실실 웃었다.
-부수지 못하기는! 헛소리! 도왕의 공격 한 번이면 저깟 문쯤 산산조각이 나버릴 거다!
-표기장군이 도왕에 대해 아직 잘 모르는군!
진백천을 무시하는 관리들과 달리 관찰사는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흐음. 그렇다면 내기라도 하시겠습니까? 지는 사람이 벌주를 마시는 겁니다.”
“저는 저 문이 부서지지 않는다에 걸죠.”
“좋습니다.”
내기가 성사되자 사람들의 시선이 정문으로 향했다.
이제 그들은 싸움이나 구경하고 즐기면 되었다.
* * *
“뒤로 물러나라.”
팽도천은 자신의 묵호대도(墨虎大刀)를 뽑아 들었다.
그리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도를 내리그었다.
다섯 줄기의 도강이 진주언가의 문에 부딪히며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들썩였다.
“어림없다!”
그때였다.
반대편에 있던 언시경은 반대로 주먹을 뻗어 정문을 받쳤다.
콰아앙!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히 밀려나는 문을 받친 것처럼 보였지만 그것만이 아니었다.
‘도왕의 기운을 이화접목(移花接木)의 수로 사방에 흩뜨렸어.’
그렇기에 철문은 거칠게 흔들리기만 할 뿐 부서지지 않았다.
강함을 추구하는 언가권에서 이토록 부드러운 수가 나온 것이 제법 특이했다.
‘언시경 가주 본연의 성격 탓인가?’
“제법이군! 그렇다면 이것도 받아봐라!”
도왕은 자신의 첫수가 막히자 도를 멈추지 않고 휘둘렀다.
둘은 철문 하나를 두고 계속해서 손을 뻗었다.
한 명은 부수려 하고 한 명은 흩으려 하니 충돌하는 내력으로 바람이 휘몰아쳤다.
“엄청나군!”
“도왕은 그렇다 치는데, 언 가주도 제법이야!”
언해원은 두 주먹이 희어질 정도로 꽉 쥐며 그 광경을 쳐다봤다.
관리들에게는 그저 흥미 있는 모습일 뿐이었지만 그녀에게는 아니었다.
진주언가의 가주이자 자신의 아버지인 그는 모든 것을 걸고 막아내는 중이었다.
언뜻 보이는 뒷모습에서 입가를 살짝 타고 흐르는 핏물이 보였다.
‘아버지!’
필사적으로 기운을 흘러낸다고 하지만 엄연한 격차가 존재했다.
이미 언시경의 속은 꼬일 대로 꼬이고 한계에 다다랐다.
그런데도 물러나지 못하는 것은 세가의 가주였기 때문이었다.
언해원은 참지 못하고 당장에라도 달려가 언시경의 옆에서 함께 힘을 보태고 싶었다.
도왕을 이길 수 없을 테지만 적어도 지금의 치욕감을 잊을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뒤에서 들려오는 진백천의 목소리에 멈춰섰다.
“결과는 어차피 똑같을 거야.”
“……그게 무슨?”
“언 가주를 믿어. 그리고 지켜봐. 적어도 그가 가주로서 당당히 서 있는 모습을 말이야.”
결과는 이미 정해졌다.
그것은 도왕과 언시경 둘 다 잘 알았다.
“제법이군!”
도왕은 이제 슬슬 마무리를 지을 생각이었다.
이대로 계속해서 언시경이 버티는 모습을 보여주면 사람들이 오해할지도 몰랐다.
언시경이 강하다- 라기보다는 도왕인 팽도천이 약할지도 모른다- 라는 오해 말이다.
자신의 평판과 감함에 극도로 예민한 도왕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다.
“이번에도 막는다면 문과 함께 자네는 죽을 거야.”
언시경은 그 목소리를 들었음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팽도천은 그런 사실을 알고 안타까운 듯 혀를 찼다.
하지만 표정만큼은 곧 뭉개질 언시경을 상상하며 입술을 말아 올렸다.
“그럼…….”
묵호대도가 빛 마저 가르며 문을 내리쳤다.
“……끝이다!”
다섯 마리의 도강이 마치 호랑이처럼 질주하며 문을 부딪쳤다.
지금까지와 차원이 다른 내력이 철문을 두드렸다.
반대쪽에 있던 언시경은 감히 내력을 흩어내지 못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문이 부서지지 않게 버티는 것뿐이었다.
드드드드득-
카앙!
결국 육중한 문이 뒤로 밀려나며 언시경을 덮쳤다.
“아버지!”
금방이라도 문이 언시경을 깔고 뭉갤 것 같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철문은 1장 가까이 뒤로 밀려난 채로 우뚝 서 있었다.
깔리기 일보 직전의 문을 막아선 것은 다름 아닌 진백천이었다.
“……회주.”
“이 정도면 충분히 하셨습니다. 이제 제가 막죠.”
진백천은 부서지지 않은 문을 쓰다듬으며 관리들을 쳐다봤다.
그의 말대로 문을 밀려나되 절대 부서지지 않았다.
언시경처럼 말이다.
“네놈이 그 건방진 진백천이라는 아이구나!”
진주언가로 걸어들어온 도왕은 진백천을 보며 크게 일갈했다.
내력이 담긴 중후한 목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하지만 진백천도 절대 지지는 않았다.
‘내력이라면 나도 지지 않지.’
오히려 앞으로 걸어나가며 그를 맞이했다.
육중한 내력이 서로 부딪치며 그 경계가 명백히 생겨났다.
밀리지 않는 진백천의 모습에 팽가의 무인들과 관리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소문이 가짜가 아니었군! 그 도왕을 상대로 막아서다니!
-어쩌면 팽가가 망신당하는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어!
진백천은 사방에서 들려오는 속마음을 무시하며 도왕에게 집중했다.
백발의 노인 주제에 황대원보다도 더 육중한 몸이었다.
얼핏 황충의 느낌까지 났지만 훨씬 패도적이었다.
“건방진 건 맞지만 아이라뇨. 나름 정도회라는 단체의 수장인데 듣기 거북합니다?”
“당돌하군! 내가 팽가의 가주가 되었을 때 너는 태어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하고 계신 거예요? 너무 장기집권하시는 거 아닙니까? 은퇴 좀 하시죠?”
진백천은 뒤편의 사람들을 살피다가 입을 삐죽였다.
“아. 혹시 이어받을 사람이 없어서 그런 거예요? 하긴. 그 소가주인가부터 글러 먹었더라고요.”
순간 도왕의 기세가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진백천은 마찬가지로 내력을 끌어올리며 저항했다.
속을 긁기 위해서 환하게 웃어주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그 나이에 이만한 내력이라니. 정도회의 전 회주가 철저히 준비했군.”
“그렇다기보다 저는 제 스스로 크는 성격이라.”
드드드득-
내력의 충돌은 이제 강한 태풍이 되어 주변을 휘몰아쳤다.
연무장 근처에 있던 무기진열대가 뒤로 밀려나며 관리들이 허겁지겁 도망쳤다.
“그나저나 이곳엔 왜 오신 겁니까? 감옥에 있는 소가주를 보려면 잘못 찾아오셨어요.”
“나는 너를 보러 왔다. 네놈의 대답 여부에 따라 자네와 그 일행을 죽여 버릴지도 모르지.”
“협박입니까?”
진백천의 미소가 조금 더 진해졌다.
지금까지는 장난이었다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협박이 아니라 권고다. 지금이라도 팽가에 사과하고 배상금을 물어라. 정도회를 봐서라도 네놈이 요구하는 그 터무니없는 금액을 달라 하지는 않겠다.”
도왕의 요구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이후의 요구는 진백천이 아닌 진주언가에 대한 것이었다.
“진주언가는 현판을 떼고 봉문(封門)하는 것이 보기 좋겠지. 어차피 그 유지는 언해원이라는 아이와 중혁이를 통해 이어질 것이야.”
진백천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도 진주언가도 싫습니다. 나는 도왕의 권고와 달리 협박이라서 말입니다.”
“협박이라. 겨우 네놈 따위가 나를? 아니면 팽가를 말이냐?”
진백천은 느긋하게 자신의 독고구검을 뽑아 들었다.
“그까짓게 뭐가 중요합니까. 도왕이 문제라면 도왕을. 팽가가 문제면 팽가를 베어내면 그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