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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회귀백서-133화 (133/346)

무림회귀백서 133화

48장 도박장을 다 털어버리다(5)

부들부들 떠는 주목의 모습에 관군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의문을 감추지 못했다.

“저 패가 대체 뭐길래 저러지?”

“혹시 높으신 관리신가?”

“관리가 왜 도박장에서 싸움을 하지?”

진백천의 주변 사람들의 목소리를 빠짐없이 들었다.

“주목 뭐 하고 있어? 피아식별이 안 돼?”

“네? 네!”

눈치 빠른 주목은 진백천이 자신에게 만회할 기회를 주는 것쯤이라는 사실은 잘 알았다.

“당장 표기장군을 죽이려 한 이자들을 포박하라!”

“주목!”

팽가의 무인들은 숟가락 뒤집듯 바뀐 태도에 당황했다.

하지만 주목은 이미 확실하게 노선을 정한 상태였다.

날카로운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오히려 더 목소리를 키웠다.

“뭣들 하느냐! 황제 폐하를 모시는 표기장군의 말씀이시다! 그의 명을 듣지 않는 것은 반역이나 다름없음이야!”

친절한 그 말을 듣고 나서야 팽가의 무인들도 현 사태를 깨닫는 중이었다.

진백천은 주변의 시선을 느끼면서 천천히 품속에서 도박장의 장부를 꺼냈다.

“허억! 그, 그것이 왜?”

쓰러져 있던 독객은 장부의 존재를 알아보고 소스라치듯 놀랐다.

“이건 도박장에서 그간 흘러간 자금 출처가 적혀 있는 장부지. 재밌게도 눈에 익은 여러 가문도 보이고 말이야.”

진백천은 노골적으로 팽가를 쳐다봤다.

그리고 지켜보는 주변 사람들에게 친히 답을 알려주듯 말을 이었다.

“혹시 이 도박장은 팽가의 것인가?”

“……그게 무슨! 도박장은 팽가와 아무런……!”

“그렇다면 왜 이렇게 돈을 받아먹은 거지? 단순히 도박을 즐겼다고 하기에는 큰 금액인데? 최근 떠들썩한 진주언가에 대한 것도 적혀 있고 말이야.”

진백천은 책자를 펼치며 물었다.

지금 와서 그것을 가짜라고 말하기에는 상황이 좋지 않았다.

오히려 나중에 진짜로 판단이 나면 역으로 공격을 당할지도 몰랐다.

팽중군은 이를 악다물며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최대한 굴렸다.

“……진주언가의 일은 관군에서 나설 문제가 아니다. 무림의 일은 무림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정말 그렇게 생각하냐?”

어쩐지 히죽이는 진백천의 표정에 어딘가 불안했지만 이미 쏟아진 물이었다.

시간이라도 벌라면 관군보다는 나아 보였다.

어차피 하북의 관리들은 이미 배가 터지도록 팽가에서 뇌물을 먹여놓은 상태였다.

‘저까짓 놈이 아무리 연줄이 좋다 해도 잠시다. 잠시만 쏟아지는 소나기를 피하면 돼.’

“……물론이다!”

진백천은 머리를 긁적이며 뒤를 쳐다봤다.

눈치 빠른 도홍경은 어느새 돈을 싸그리 챙기고 튈 준비 중이었다.

“가서 황대원 데려와.”

“네. 형님!”

남장을 하고 있던 언해원도 그를 따라 도박장 밖으로 빠져나갔다.

진백천은 그들이 다시 돌아올 동안 의자를 끌고 팽중군 앞에 앉았다.

“주목 이리와 봐. 이 책자 내용이 사실이라면 처벌은 어떻게 되지?”

주목은 허리가 끊어질 듯 몸을 숙이며 다가와서 책자를 살폈다.

그리고 적혀 있는 자금의 규모에 몇 번이나 흠칫 놀라며 말했다.

“……사방으로 흘러간 뇌물도 많고 벌금이 어마어마할 것 같습니다.”

“겨우 벌금이야?”

주목이 팽중군의 눈치를 살피며 고개를 끄덕였다.

“쯧. 그러면 어쩔 수 없지.”

진백천은 책자를 다시 품속에 고이 넣어놨다.

이것은 단지 깔아놓은 포석 중 하나일 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진주언가에 갔던 도홍경과 언해원이 황대원을 비롯해 무인들을 끌고 왔다.

최근 둘의 사이는 좋지 않았기에 마주친 것만으로도 주변이 싸늘해졌다.

그런 분위기를 깨며 황대원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회주님! 부르셨습니까!”

“어어. 이자들이 무림의 일은 무림이 하게 하자고 해서 말이야.”

회주라는 명칭에서 사람들의 표정이 기이해졌다.

방금까지는 표기장군이었던 자가 회주가 되어버렸다.

그것은 차츰 누군가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는 기폭제가 되었다.

“……회주라면 설마 그분이신가?”

“그분이라니?”

“있잖아! 정도회의 회주 말일세!”

그리고 그것을 확인시켜주듯 언해원이 진백천을 향해 다가왔다.

“진백천 회주님! 이게 어떻게 되신 거예요? 진주언가의 억울한 일을 풀어주시겠다고 하시더니 하북팽가라니요?”

방금까지 이곳에 있었으면서 아무렇지 않게 가녀린척하는 언해원이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쳐다보는 똘망똘망한 눈동자는 서둘러 어떤 대답을 강요했다.

“……크흠. 그게 아무래도 진주언가 첫째의 도박 빚이 얼토당토않아서 말이지. 조사해 보니 역시나 도박장과 팽가가 짜고 친 거였더군.”

“회주님. 그럴 리가 없습니다. 흑도에서나 저지를 만한 짓을 하북팽가가 할 리 없잖아요?”

그 말을 한 것은 언해원이었다.

얼핏 들으면 하북팽가를 감싸주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교묘히 돌려 까는 중이었다.

진백천도 그 사실을 눈치채고 적당히 그 말에 맞장구를 쳐줬다.

이렇게 되면 지금까지 하북의 호랑이 역할을 하던 팽가의 추락은 불 보듯 뻔했다.

“모든 증거는 여기 있으니까 믿어도 돼.”

“그것을 밝혀내니까 저 파렴치한 자들이 회주님을 공격한 거였군요. 살인멸구(殺人滅口)를 하려 하다니!”

언해원은 가뜩이나 큰 눈을 부릅뜨고 경멸하는 시선으로 팽가의 무인들을 쳐다봤다.

“살인멸구라니! 나는 단지 돈 때문에……!”

“돈 때문에 정도회의 회주를 죽이려 했다고 자백하는 건가?”

팽중군이 뭐라 더 말하려 했지만 주변의 무인들이 서둘러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는 더 무슨 말을 하더라도 그들에게 불리하게 흘러갈 터였다.

팽가의 무인들을 지켜보던 주변의 시선도 서서히 싸늘해졌다.

오죽하면 그의 말이라면 개소리도 내던 주목조차 그를 흘겨봤다.

“크흠. 이렇게 되었으니 네놈들도 할 말은 더 없겠지?”

진백천은 팽중군을 비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명분도 실리도 챙겼으니 철퇴를 내리찍으면 되었다.

“주목. 당장 저 불한당들을 하옥시켜. 벌금을 낼 때까지는 절대 빼내지 마.”

“……회주! 후회할 거다.”

“후회는 무슨. 그리고 그것과 별개로 네놈들 나한테 갚아야 할 빚이 있잖아?”

방금 진백천이 딴 금자 10만 냥.

그중에 2만 냥을 제외하면 8만 냥이 남았다.

“그걸 왜 나한테 묻지? 도박장 주인에게 받아내.”

“허허. 뭔 소리 하는 거야. 아직까지 상황 파악이 안 돼?”

돈을 주지 않기 위해서 팽가의 소가주가 직접 진백천을 죽이려 들었다.

그리고 팽가와 도박장의 관계가 밀접하다는 점도 드러났으니 누가 봐도 도박장은 팽가의 것이었다.

“그러니 내 돈도 팽가가 책임져야지. 주목 안 그래?”

“타당하시고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 돈도 다 갚을 때까지 한 발자국도 못 나오게 해.”

“네! 알겠습니다!”

진백천은 끌려나가는 팽가의 무인들을 웃는 얼굴로 배웅했다.

참으로 승자의 얼굴이었다.

“후우. 이제 저 잡것들은 해결이 되었고. 남은 건 저놈인가?”

독객은 구석에서 죽은 듯이 입을 다물고 있었다.

진백천은 그자를 끌고 친히 단둘이 이야기를 나눴다.

“살고 싶지?”

“…….”

독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이미 머릿속은 뒤죽박죽이었다.

흘러가는 상황을 보면 팽가는 구멍 뚫린 배였다.

중요한 것은 그 거대한 배가 언제까지 가라앉을까란 사실이었다.

그가 고민하는 것은 진백천이 하북을 떠났을 때를 생각했다.

-잠깐 팽가가 주춤한다고 해도 결국 남아 있는 건 그들이야. 잠시만 숙이고 있으면 된다.

진백천은 그의 속마음을 들으며 피식 웃었다.

“왜? 그들이 너를 챙겨줄 것 같아?”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

“않겠다는 반말이고.”

진백천의 눈짓에 독객이 흠칫 놀랐다.

‘이놈이 팽가를 따르는 이유는 충성심 때문이 아니지. 단지 자리를 잡고 싶을 뿐인 거야.’

이미 지하에서 그들의 마찰을 봤기에 진백천은 충분히 잘 알았다.

“나랑 내기할까? 팽가는 아마 도박장의 일을 최소한으로만 인정할 거야. 뇌물이니 기루니 불법적인 일은 전부 네놈한테 떠넘기겠지.”

-……내가 불면 팽가도 귀찮아진다. 그럴 리 없어.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지? 근데 그게 사실이야. 진주언가의 일도 물 건너갔고 상황이 이런데 네놈을 챙길 이유가 없잖아?”

생각보다 깊게 아는 진백천에게 놀랐지만,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진백천의 말에 독객은 두 눈을 부릅떴다.

“내가 받아야 할 금자에서 1할을 주지. 그 정도면 어디에서든 흑도방파 하나 일으켜 세우는 건 일도 아닐 거야.”

-……금자 18만 냥의 1할이면 금자 18,000냥. 그거라면 흑도방파 뿐만 아니라 상가를 세워도 남는 돈이야!

독객은 자기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키며 진백천을 쳐다봤다.

“물론 도박장의 돈만으로도 그것을 갚을 수 없다는 거 잘 알아. 지하에 있던 금고의 돈은 전부 내가 가져갔거든.”

그 사실을 몰랐던 독객이 흠칫 놀랐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그 돈을 받아내려면 하북팽가밖에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천문학적인 돈이지만 그동안 하북에서 왕처럼 살아온 팽가라면 그 정도 돈은 가지고 있겠지.”

진백천은 받아내는 돈의 1할은 독객을 주고 나머지 5할은 하북 이곳저곳에 기부할 생각이었다.

독갠은 말이 기부고 그것이 기름칠이라는 것쯤은 잘 알았다.

-……그 돈이라면 지금까지 팽가의 편을 들던 이들도 단숨에 강도로 변하겠지.

“그러니 잘 결정해. 내 앞에서 새로운 칼을 쥘지 아니면…….”

진백천의 눈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곧 사냥당할 호랑이의 고기방패가 될지.”

독객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그는 진백천 앞에 무릎을 꿇으며 깊게 고개를 숙였다.

“……회주님. 제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전부 인정해. 그리고 팽가에 흘러 들어간 동전 한 닢이라도 더 찾아내. 그럴수록 네가 받아갈 돈도 많아질 테니까.”

독객이 재차 고개를 숙였다.

장부놀이를 하던 그였기에 자신 있었다.

지금까지 팽중군에게 당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며 독기가 차올랐다.

“호랑이가 동네 개새끼가 될 만큼 최대한 뜯어내겠습니다.”

“좋아좋아.”

진백천은 그를 일으켜 세웠다.

대신 나설 칼잡이를 구했으니 이제 자신은 뒤에서 떡이나 먹으며 구경이나 하면 되었다.

* * *

하북팽가(河北彭家) 가주전.

살아 숨 쉬는 듯한 호랑이 그림 아래 그것을 닮은 사내가 앉아 있었다.

유난히 두꺼운 눈썹과 거구의 몸이 팽가의 인물임을 증명했다.

그의 옥좌 옆에는 황금으로 만들어진 도집에 거대한 도가 꽂혀 있었다.

팽가의 가주이자 도왕(刀王), 팽도천의 무기인 묵호대도(墨虎大刀)였다.

그 앞으로 팽가칠도라 불리는 장로들이 줄지어 앉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뭔가 못마땅한 얼굴이었다.

“설명하라.”

팽가의 가주 팽도천은 무릎 꿇은 자신의 손자에게 설명을 명령했다.

어디에서도 당당하고 용맹해야 할 팽가가 비루한 개처럼 두들겨 맞고 왔다.

누군가에게 졌다는 사실만으로도 기가 찬데 상대는 팽가를 비웃기까지 했다.

“……정도회의 회주라고 그랬습니다.”

“회주?”

팽도천 또한 강호에 뜨거운 감자인 진백천에 대해 들어봤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자가 왜 너와 싸운단 말이냐?”

“……그것이…….”

팽도천은 고개를 돌려 그 자리에 있던 무인을 쳐다봤다.

그자는 묻지 않아도 당시의 상황을 나열했다.

팽중혁이 언해원에게 거절당하고 진백천에게 혼이 난 것까지 적나라했다.

가뜩이나 싸늘한 장로들의 시선이 더더욱 날카로워졌다.

“쯧쯧. 차라리 그 자리에서 죽어버리지 그랬느냐.”

“……죄, 죄송합니다.”

“정도회와의 마찰은 가능한 피해야 한다. 지금의 치욕은 10년이 걸려 갚아도 늦지 않아.”

“옳으신 말씀이오. 가주. 그자는 표기장군이라는 직책도 얻어 추후 부마가 될지도 모르는 인물이니 조심스러워야 하오.”

물론 그들이 말하는 치욕은 팽중혁이 두들겨 맞은 것 따위가 아니다.

감히 오호단문도(五虎斷門刀)를 무시하고 팽가를 아기 호랑이라 비웃은 것을 말했다.

상황은 이렇게 마무리되는가 싶더니 또 한 번 무인들이 급하게 가주전을 찾았다.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이냐?”

“그, 그것이 소가주가 감옥에 갇혔다고 합니다.”

“뭐? 중군이가 감옥에?”

무인은 도박장에서 있었던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설명했다.

말이 길어질수록 팽도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팽중혁이야 막내이다 보니 사고를 좀 칠 수도 있다.

하지만 소가주는 아니었다.

‘내 뒤를 이어야 할 놈이 도박? 살인멸구를 하려다 오히려 당해?’

팽도천은 참지 못하고 앉아 있던 의자의 손잡이를 내리쳤다.

콰아아앙!

옥으로 된 손잡이가 박살이나 나며 바닥에 꽂혔다.

“그렇다고 감히 팽가의 소가주를 감옥에 넣어? 관찰사는?”

“……죄가 명백하기에 풀어줄 수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죄는 무슨! 눈치를 보다 진백천인지 뭔지 하는 놈의 편을 드는 걸 테지!”

“……대신 진백천 회주와 합의를 하면 지금이라도 당장 구금을 풀겠다고 했습니다.”

의문이 섞인 시선에 무인은 고개를 숙였다.

차마 자신의 입으로도 말하기 껄끄러웠다.

“……소가주가 진 빚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게 얼마든 당장 줘버려라. 그깟 돈보다 중군이가 감옥에 있는 것이 더한 치욕이다!”

“……금자 18만 냥입니다.”

“…….”

순간 팽도천은 말하던 것도 잊고 무인을 쳐다봤다.

혹시나 은자를 잘못 말한 것이 아닐까 했지만 그것은 아니었다.

엄청난 돈에 팽도천뿐만 아니라 가주들 또한 기겁했다.

“진백천…… 그자는 지금 어디에 있지?”

“진주언가에 머무르는 중입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팽도천은 자신의 묵혈대도를 천천히 뽑아 들었다.

날카로운 도신은 그동안 피 맛을 보지 않았더니 굶주려 보였다.

“당장…… 청호단(靑虎團)을 소집해라. 내가 직접 그곳으로 가겠다.”

하북팽가의 육중한 문이 열리고 수십의 무인들이 빠져나왔다.

형형한 기세는 마치 전쟁이라도 나가는 듯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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