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회귀백서 131화
48장 도박장을 다 털어버리다(3)
‘그래. 이런 식으로 흘러간다 이거지?’
먼저 들어와 있던 도홍경과 언해원은 이미 한 탁자에 앉아 있었다.
그들 또한 이곳에 흐르는 날카로운 분위기를 느꼈는지 긴장한 모습이었다.
-후우. 형님이 들어오셨으니 돈 따는 걸로 눈치 보지는 않아도 되겠구나.
도홍경은 진백천이 들어온 것을 보고 다소 안심했다.
진백천은 직원이 건네는 가면을 쓰고 그들이 앉은 탁자로 걸어갔다.
얼굴을 반쯤 가렸지만 누가 누구인지는 충분히 알아볼 수 있었다.
탁자는 마침 한자리가 정확히 비어 있는 상태였다.
“이곳에 앉아도 되나?”
“물론입니다.”
도박사가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진백천이 자리에 앉을 때까지 순간 주변의 모든 이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이곳에서 그와 도홍경, 언해원을 제외하면 전부 도박장과 관련된 인물들이었다.
‘한마디로 작업방이란 말이지?’
도박장에서 과하게 돈을 딴 이들을 이곳에 모아놓고 역으로 더 토해내게 만들었다.
일반인들을 모르겠지만 이곳은 그렇게 하기 위한 장치들로 가득했다.
진백천은 이곳에 오고 나서 상단전을 열어 진즉에 모든 상황을 파악한 후였다.
그의 시선이 자신의 자리에 놓이는 차를 내려다봤다.
‘우선 이것부터 그렇지.’
판단을 흐리게 만드는 미량의 미혼약(迷魂藥)이 섞여 있었다.
“도박할 때는 입가에 아무것도 안 갖다 대는 성미라.”
진백천이 차를 밀어내자 팽가 무인의 눈동자에 아쉬움이 흘렀다.
-눈치가 빠른 놈이군.
그는 은근슬쩍 독객과 눈을 마주쳤다.
-이들에 대한 조사는?
-현재 하오문에 의뢰를 맡긴 상태입니다.
하오문이라는 말에 진백천의 얼굴에 살짝 미소가 맺혔다.
눈치 빠른 그들이라면 뒤를 캘 수 없는 신원으로 적당히 눈속임해 줄 터였다.
‘그나저나 이건 또 뭐지?’
탁자 위에는 손바닥 크기의 패가 여러 장 보였다.
각각의 패에는 쥐, 뱀, 늑대, 호랑이가 그려져 있었다.
평소 도박을 잘 즐기지 않는 진백천은 이것이 어떤 도박인지 감조차 잡지 못했다.
“그나저나 처음 보는 종류의 도박인데 설명 좀 부탁하지.”
“네. 알겠습니다.”
눈치를 보던 도박사는 주변에 양해를 구하고 빠르게 말했다.
“이 놀이는 저희 도박장에만 있는 금수패(禽獸牌)라고 합니다.”
패에 있는 4마리의 동물은 각자 서로 잡아먹을 수 있는 동물이 달랐다.
뱀은 쥐를, 늑대는 뱀을, 호랑이는 늑대와 뱀을 잡아먹었다.
“마지막으로 도박의 재미를 위해서 쥐는 호랑이를 잡아먹을 수 있습니다.”
“가위바위보와 같은 개념이군.”
“맞습니다.”
도박의 시작은 도박사가 패를 섞어 나누면 시작이었다.
도박사를 포함해 각각의 참가자는 기준이 되며 자신의 동물 패 중 하나를 뒤집어 놓는다.
‘결국 상대방의 패를 예측해서 이기면 되는 거군.’
하지만 특이한 것은 그 패의 개수와 배당률이었다.
“호랑이 패는 1장, 늑대와 뱀은 2장, 쥐는 3장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호랑이가 너무 불리하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각각의 패는 배당률이 다릅니다.”
호랑이로 이기게 되면 건 금액의 10배, 여우와 토끼는 각각 2배, 쥐는 5배였다.
아무리 배당률이 크다고 해도 신중하게 할 수밖에 없는 도박이었다.
‘함부로 호랑이 패를 내놓을 수 없겠군. 쥐 패가 2장이 더 많으니까.’
“놀이는 3번이 진행되면 패를 다시 섞어 분배합니다. 그럼 첫 3판은 최소 판돈으로 해보시겠습니까?”
“그러지. 하면서 배우는 게 많으니까.”
도박사는 현란한 손놀림으로 패를 섞으며 곁눈질로 주변을 살폈다.
날카로운 시선이 그의 손으로 비수처럼 꽂혔다.
* * *
25년.
도박사 조일봉이 도박장에서 일한 기간이었다.
처음 주사위 놀이부터 시작해서 금수패를 진행하는 도박사가 되기까지 수많은 일이 있었다.
‘손기술을 쓰다가 걸리기도 하고 죽기 직전까지 맞기도 했지.’
그런데도 그가 지금까지 목숨이 붙어 있는 것은 전부 그의 실력 덕분이었다.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자신의 기술을 갈고 닦았다.
희대의 도박사 선배가 언젠가 그런 말을 했던가.
‘손은 눈보다 빠르다.’
기어코 그는 바로 앞에서 지켜보고 있다고 해도 자유자재로 패를 섞을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지금이라도 당장 한 사람에게 호랑이 몰아주거나 뺄 수 있었다.
하지만 혹시나 의심을 없애기 위해 패는 동등하게 뿌려졌다.
독객과 팽가의 무인이 알게 모르게 눈짓을 보내왔다.
‘이번에는 평범하게 가자는 거군.’
사람이라는 게 단순해서 첫판은 안전지향적으로 가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도박장은 일부러 첫판을 져주곤 했다.
낚시로 비유하자면 밑밥을 뿌리는 행위였다.
그래야 물고기가 다음에 오는 미끼를 더욱 강하게 물 테니까.
“패를 나누겠습니다.”
스스슥-
호랑이, 여우, 뱀, 쥐의 패가 각각 1장, 2장, 2장, 3장씩 동등하게 나뉘어 졌다.
기준이 된 도박사는 동물 패 중에 하나를 올려놨다.
바로 호랑이 패였다.
“저는 결정했습니다. 이제 올려놓으시면 됩니다.”
참가자들은 패를 뚫어지게 내려다보며 고민에 빠졌다.
한정된 패 속에서 상대를 이기려면 계속해서 머리를 쓸 수밖에 없었다.
도박사가 호랑이 패를 낸 것은 아는 독객과 팽가의 무인은 비교적 빠르게 패를 올려놨다.
“크흠. 어쩌지. 에휴, 모르겠다.”
도홍경이 패를 올리자 나머지도 아무거나 뽑아서 올렸다.
도박사는 그들의 패를 뒤집지 않아도 대충 짐작이 가능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잃을 때보다 딸 때만을 생각하지.’
그렇기에 대부분 첫판은 2가지 패 중에 하나만 나왔다.
10배를 물어줄 것을 두려워하는 자는 쥐 패를.
많이 먹으려는 자는 호랑이 패였다.
첫판은 밑밥을 주는 동시에 상대의 성향마저도 파악하는 순간이었다.
“그럼 패를 뒤집겠습니다.”
조일봉은 자신의 패를 뒤집으며 사람들의 표정을 살폈다.
도홍경은 아쉬움이 언해원은 기쁨이 그리고 진백천에게서는 심드렁함이 전해졌다.
‘표정 관리를 잘하는 자인가?’
도홍경은 자신의 호랑이 패를 뒤집으며 표정을 구겼다.
“호랑이 패? 한 장 있는걸 초장에 태워?”
반면에 언해원은 쥐 패였다.
그녀는 자신이 건 금자 1냥에 대한 금액으로 5냥을 돌려받았다.
자연스레 두 눈이 반짝이며 욕심이 차올랐다.
팽가의 무인과 말 없는 독객도 전부 쥐 패였다.
그들은 똑같이 금자 5냥을 가져갔다.
“호랑이였네. 그럼 나만 잃은 건가?”
마지막으로 뒤집은 진백천의 패는 뱀 패였다.
‘뱀 패를 냈다고? 왜지?’
땄다고 해도 겨우 2배였고 잃으면 10배를 물어야 했다.
그런 멍청한 선택을 하는 사람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본 적이 없었다.
진백천은 자신이 걸었던 금자 1냥에 대한 10배인 금자 10냥을 도박사에게 밀어 넣었다.
“잘하네.”
“……감사합니다.”
다음 기준은 도홍경이었다.
호랑이패를 이미 써버렸기에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많지 않았다.
‘쥐 패를 낼 확률이 높지.’
엄하게 늑대와 뱀 패를 냈다가는 호랑이 패에 잡아먹힐 확률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쥐 패였다.
이것을 예측한 이들은 대부분 뱀 패를 내서 금자 2냥씩을 챙겨갔다.
“생각보다 첫 패가 굉장히 중요하군.”
“맞습니다.”
다음 차례인 독객까지 순서가 돌자 3판이 끝났다.
“그럼 이제 패를 섞겠습니다.”
사용된 패를 다시 포함해서 똑같이 8장으로 나누었다.
그렇게 5판이 지났을 때쯤에는 승자와 패자가 확실히 구분되었다.
승자는 언해원이었다.
본능적으로 이길 패를 아는 건지 정말 운인 건지 최소한으로 지며 이길 때는 확실히 챙겨갔다.
원금이 적어서기도 했지만 벌써 가진 돈의 3배 가까이로 분 상태였다.
확실한 패자는 진백천이었다.
계속해서 돈을 뿌리듯 잃기만 했다.
‘돈은 정말 많은가 보군. 저렇게 잃어도 눈 깜빡하지 않다니.’
진백천의 품속은 화수분이라도 되듯 전표가 끊임없이 나왔다.
어쩔 때는 잃을 때 피식거리며 웃기까지 했다.
‘오늘은 아무래도 금자에 파묻히는 날이겠군.’
조일봉은 웃음을 감추지 못하며 다시 패를 나누었다.
* * *
도홍경은 풀어진 분위기에 내심 조소를 지었다.
도박사인 조일봉의 웃음과는 또 다른 의미였다.
‘후후. 형님이 시선을 끌어준 덕분에 작업을 다 끝마칠 수 있었어.’
이곳에 처음 들어설 때만 해도 어려운 도박이 될 거라 생각했다.
원래부터 있던 이들과 도박사가 한편이라는 것쯤은 어렵지 않게 짐작했다.
그것뿐만 아니라 패에 미세하게 흠집이 나 있었다.
이것만으로도 도박사는 패를 분간해낼 수 있을 게 분명했다.
도홍경은 매번 패를 받을 때마다 흠집을 없애버리면서 자신만의 표식을 남겼다.
‘지금은 뒤집지 않아도 어떤 패인지 눈에 훤하지.’
그리고 그것을 이용해 조금씩 돈을 불렸다.
여우비에 온몸이 젖듯 지금은 원금의 절반 정도 분 상태였다.
조금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이곳의 물주는 진백천이란 사실이었다.
‘쯧. 도박을 못 하시면 그냥 끼지 마시지. 나가면 개평이라도 드려야겠네.’
도홍경은 도박사가 올려놓은 패를 힐끔거린 것만으로도 어떤 동물인지 알아봤다.
‘이번에도 쥐인가? 절대 많이 잃으려 하지 않아.’
그는 뱀 패를 탁자 위에 올려놨다.
* * *
독객은 쉬지 않고 눈알을 굴렸다.
다른 이들의 패를 보기보다는 그들 옆에 쌓인 돈을 살피는 것이었다.
‘팽중군과 나의 금액까지 더하면 딴 금자가 적지 않아.’
적어도 금자 1,000냥 가까이는 가져간 것으로 보였다.
그것을 계산하자 남자는 그 돈의 대부분이 나온 진백천에게 절로 시선이 갔다.
대체 정체가 뭐길래 이렇게까지 돈이 쏟아져나오는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오문에 갔던 수하가 돌아왔다.
-지역 상방(商幫)의 소가주입니다. 이번에 꽤나 돈을 벌어서 이곳저곳 놀러 다니는 중이라고 합니다.
-확실해? 별다른 문제될 건 없고?
-네. 없었습니다.
신분까지 확실하니 이제 마음껏 털어먹으면 되었다.
그동안 작은 판돈으로 질끔거리며 먹던 이들이었다.
남자는 팽중군에게 전음으로 해당 사실을 알렸다.
그리고 은근슬쩍 판돈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도박사. 갈짐 나는데 이제 슬슬 판돈을 올리는 게 어떻지?”
“다들 동의하시면 일괄적으로 올리겠습니다.”
“금자 10냥으로 올리지. 상한선은 가진 금액 전부까지.”
그 말에 제일 놀란 것은 언해원이었다.
그렇게 되면 단 한판에도 전부를 잃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런 그녀를 제외하고는 다른 이들은 전부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면 그렇게 올리겠습니다. 다음 차례는…….”
모두의 시선이 진백천에게로 향했다.
“……공자님이십니다.”
* * *
진백천은 처음부터 이들의 속내를 전부 듣는 중이었다.
하오문은 예상대로 자신을 다른 사람으로 소개했다.
덕분에 이제 대놓고 털어먹을 생각뿐이었다.
‘나야말로 고맙지.’
지금까지 어리숙한 놈으로 포장하며 괜히 잃어준 것이 아니었다.
때마침 판돈까지 알아서 올려주니 그의 입장에서는 손 놓고 코 푸는 격이었다.
‘이 도박은 작게 얼마를 잃든 중요하지 않아. 결국 마지막에 크게 먹는 자가 다 가져갈 테니까.’
그렇기에 인내를 가지고서 상황을 파악하려고만 했다.
도홍경이 발견한 패의 표식을 진즉에 알아차렸고 이중으로 덫을 쳐놨다.
전부 지금을 위해서였다.
“후우. 상한선이 없다고 하니 떨리는군.”
“그래 봤자 공자님에게는 푼돈 아닙니까?”
독객이 반쯤 비웃음 섞인 얼굴로 이죽였다.
벌써부터 자신들이 이겼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푼돈이라. 뭐 그럴지도 모르지.”
진백천은 패 중 쥐로 표식된 것을 꺼내 뒤집어놨다.
그러자 언해원을 제외한 이들이 전부 주섬거리며 뱀 패를 내려놓았다.
-첫판이니 호랑이를 노리겠다는 거겠지.
-이번에 최대한 다 털어 넣어라.
도박사를 비롯해 팽중군과 독객은 눈치를 보지 않고 금자를 수북히 꺼내놨다.
탁자 위는 곧 전표와 금자들로 가득 찼다.
도홍경은 언해원은 금자 10냥, 나머지는 전부 합쳐 금자 2만 냥에 가까웠다.
만약 그들의 예상대로 진백천이 쥐패라면 금자 4만 냥을 물어줘야 했다.
“……판돈은 이대로 하시겠습니까?”
“흐음. 만약 갚지 못하면 어떻게 되지?”
“그러면 빚 보증서를 쓰신 후 한 달 안에 갚으셔야 합니다.”
“못 갚으면?”
도박사는 눈을 낮게 내리떴다.
“갚으시게 될 겁니다.”
진백천은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들은 서둘러 승리를 확인하고 싶은지 자신들의 패를 차례대로 열었다.
전부 짜고 친 것처럼 하나같이 뱀 패였다.
녹색의 혀를 내밀고 있는 모습이 그들과 비슷했다.
‘한심한 놈들.’
진백천은 자기도 모르게 피식거리며 웃었다.
“공자님. 얼른 패 뒤집으시죠.”
도박사는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서 뒤편의 무인들에게 눈짓을 보냈다.
“재촉하지 마. 어차피 결과는 정해졌으니까.”
진백천은 여전히 심드렁한 표정으로 패를 뒤집었다.
패에는 울부짖는 호랑이가 새겨져 있었다.
“10배니까. 금자 20만 냥인가? 맞지?”
모두의 시선이 패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 이들의 확인사살 하듯 진백천이 씨익 웃었다.
“걱정 마. 다들 어떻게든 갚게 될 테니까.”
방금 도박사가 그에게 했던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