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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회귀백서-128화 (128/346)

무림회귀백서 128화

47장 철중화의 정혼자(4)

진백천은 언시경이 왔을 때부터 이미 알아차렸다.

그의 옆에는 편협해 보이는 남자와 함께였다.

‘분명 그 첫째라는 언호충이겠지.’

뭐가 그렇게 불만인지 언해원을 향한 눈빛에는 못마땅함이 가득했다.

몸이 튼실한 언시경과 다르게 군살이 많아 보였다.

무인의 몸이 그렇다는 것은 평소에 훈련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멍청한 첫째 아들과 노력하는 둘째 딸인가.’

가주인 언시경의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일어나라.”

언시경은 넘어진 언해원에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

“너의 언가권은 이렇게 약하지 않으니까 일어서서 다시 기수식을 취해라.”

언해원은 그제서야 제정신을 차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호흡을 가라앉히며 기수식을 취했다.

방금까지 주먹을 맞추려고만 하는 다급함은 보이지 않았다.

“자신보다 더 강한 자에게 강을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 힘이 약하다 생각할 때는 몸을 숙이고 때를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해.”

언시경은 언해원의 뒤편에 서서 계속해서 조언을 전했다.

대련에 있어서 맞지 않는 행동이었지만 진백천은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딱히 틀린 말도 아니고. 언해원에게만 도움이 되는 내용이 아닐 테니까.’

유석경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언시경의 말을 경청했다.

언해원은 가주의 말대로 진백천의 공격에 대항하면서 기회를 노렸다.

무작정 손을 뻗을 때와는 전혀 다른 움직임이었다.

‘공격적인 방어라. 어울리지 않으면서도 효율적이야.’

마음을 먹었다면 진즉에 끝났을 대련이었다.

진백천은 적당히 그녀가 버틸 수 있을 만큼의 공격을 하며 남은 한 수까지 파악하려 했다.

그리고 그녀의 내력이 절정에 이르렀다고 생각할 때쯤.

일부로 빈틈을 보이며 그녀를 충동질했다.

역시나 언해원은 그때를 놓치지 않고 주먹을 뻗어왔다.

“하아앗!”

탈명이격(奪命二擊).

공격은 마치 늑대의 이빨같이 날카로웠다.

위아래 동시에 뻗어오는 권격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어느 게 허수지?’

하지만 곧 진백천은 허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두 개의 권격은 전부 다 진짜였다.

‘이번에도 물러서면 재미없겠지.’

진백천은 강하게 진각을 밟으며 앞으로 나섰다.

동시에 똑같이 주먹을 뻗었다.

쿠우웅!

두 권갑이 부딪치며 강력한 충격파가 일어났다.

뒤로 튕겨 나가듯 밀려난 것은 언해원이었다.

아무리 그녀의 권각술이 더 뛰어나다고 해도 몇 배나 차이 나는 내력 차이를 메꾸지는 못했다.

언해원은 아쉬운 듯 이를 악다물면서도 포권을 취했다.

“……제가 졌어요. 과연 명불허전이시네요.”

“나야말로.”

“약속대로 정혼자를 어떻게 뽑을지 말씀드릴게요.”

이미 다 알고 있는 진백천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나서서 그녀를 질타하는 이가 있었다.

진주언가의 첫째인 언호충이었다.

“너는 어떻게 된 게 그런 일을 멋대로 저질러! 언제까지 멋대로 굴 테냐!”

“멋대로 구는 건 오빠 아냐? 도박에 계집질에 하다못해 술이라도 못 마시면 잠도 못 잔다며?”

싸늘한 눈초리에 언호충이 몸을 움츠렸다.

“……해원아. 나는 단지 다 너를 걱정해서 그런 거다. 네가 어느 망나니 같은 놈한테 시집을 가게 될지 모르는데……!”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해. 그러니까 신경 써주는 척하면서 팽중혁이랑 엮지 마.”

“그만! 손님들 있는 데서 뭣들 하는 짓이냐!”

보다 못한 언시경의 질타에 둘은 입은 꾹 다물었다.

언호충은 붉어진 얼굴로 언해원을 노려보며 분노를 참지 못했다.

-젠장. 둘째면 둘째답게 팽가에 시집이나 가서 돈이나 벌어올 것이지!

역시나 겉모습뿐만 아니라 속 또한 쓰레기 같은 놈이었다.

언시경은 이미 진백천과 유석경의 정체를 알고 있는지 공손히 둘을 맞이했다.

“처음부터 이리 못난 모습을 보여드려서 죄송합니다. 차라도 한잔하시겠습니까?”

“저야 좋죠. 마침 몸을 썼더니 목도 마르고요.”

언시경은 언제 화가 났냐는 듯이 일행을 가주전으로 안내했다.

그 뒤를 언호충과 언해원이 따라오려 했지만 언시경이 추상같은 목소리로 멈춰 세웠다.

“너희들은 각자 방으로 가서 대기하거라. 둘의 잘못은 따로 물을 것이니.”

“……네. 아버지.”

‘둘의 잘못?’

언해원의 잘못이야 자기 멋대로 정혼자를 찾는 것일 테고, 언호충의 잘못은 뭔지 궁금해졌다.

하지만 그러한 궁금증은 언시경의 가주전으로 걸어가면서 다른 의문점으로 가려졌다.

‘세가가 너무 조용하군.’

황궁이나 사천당문처럼 사람들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말 그대로 세가 내에 사람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경우는 대게 둘 중의 하나였다.

세가 전부를 건 전투를 앞에 두거나.

‘일꾼들을 부리지 못할 정도로 쫄딱 망했거나.’

진백천의 의문에 대한 답은 두 번째 가정으로 기울었다.

곳곳에 처져 있는 거미줄이나 먼지는 하루아침에 생긴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진주언가가 사람을 쓰지 못할 정도로 망했다?’

그것만으로도 호기심이 도는 상황이었다.

그러한 점을 눈치챈 것은 유석경 또한 마찬가진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여기입니다.”

소담한 가주전에는 탁상에 다기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언시경은 직접 물을 끓여 차를 우려냈다.

곧 구수한 차 향이 가주전을 가득 채웠다.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진주언가의 가주 언시경입니다.”

“정도회의 회주. 진백천입니다.”

“광동성의 성주 유석경입니다.”

모두가 재차 통성명을 했다.

언시경은 유석경까지는 몰랐는지 살짝 놀란 모습이었다.

“회주님께서 무슨 일로 방문했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마침 지나가는 길이기도 했고 석경 이 친구가 진주언가와 인연이 있다 해서 방문했습니다.”

“그러시군요.”

이대로라면 단순한 손님 그 이상의 대우는 바라기 어려웠다.

진백천은 언시경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덧붙였다.

“제가 알기로는 현재 진주언가에 골치 아픈 일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흐음. 정도회의 새로운 회주께서 심모원려(深謀遠慮)하다 하더니 정말이었군요.”

생각해 보면 말이 안 되었다.

마침 지나가는 길에 들렸다고 하기에는 현재의 진주언가는 사면초가의 상태였다.

가문의 일을 외부에 말하는 게 꺼려졌지만, 왠지 진백천이라면 괜찮을 것 같았다.

강호에 떠도는 소문만으로도 진백천은 정명하며 의협이 넘쳤다.

‘역시 뭔가가 있군.’

“불편한 이야기시라면 저희끼리만 대화해도 괜찮습니다.”

“……그러시죠.”

진백천은 황대원과 당소예 등에게 눈짓을 주었다.

그와 유석경을 제외하고는 전부 가주전에서 빠져나갔다.

언시경은 내심 유석경 또한 나가주길 바랐지만, 성주에게 감히 그렇게 말하진 못했다.

“이제 편하게 말씀하시죠. 저희가 도울 수 있는 일은 최대한 돕겠습니다.”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언시경은 무거운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그가 현재 고민하고 있는 일은 언해원의 혼사 문제 따위가 아니었다.

“……부끄럽지만 세가가 외부인에게 넘어가게 생겼습니다.”

그가 말하는 것은 단순히 진주언가가 위치한 땅이나 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초대 가주가 직접 제작한 진주언가의 현판과 가문의 모든 물건이었다.

어처구니없는 것은 그 이유였다.

진주언가의 첫째인 언호충이 도박장에서 조금씩 빚을 지다가 가문의 땅과 건물까지 전부 넘어가 버린 것이었다.

막상 본인은 그러한 기억이 없다고 하지만 언호충의 수결과 지장이 찍힌 계약서가 존재했다.

“그냥 돈으로 갚아버리면 되지 않습니까?”

“후우. 그런 방법도 생각 못 한 것은 아닙니다. 부끄럽지만 가세의 모든 것을 팔아도 갚지 못할 빚이라…….”

“대체 빚이 얼마길래 그러십니까?”

돈이라면 넘쳐나는 진백천이었다.

여차하면 갚아줄 용의로 물었지만 언시경의 입에서 나오는 금액에 눈을 꿈뻑거렸다.

“……금자 2만 냥입니다.”

은자로 따지면 무려 40만 냥이었다.

하나의 세가에서 처리할 수 있는 금액을 결코 아니었다.

물론 처음부터 이렇게 어마무시한 금액은 아니었다.

처음 갚으면 되었을 빚이 차츰 몸을 불려 까마득해졌다.

이제 단순히 재화로 갚을 수준은 뛰어넘은 것이었다.

오늘도 언호충과 함께 세가를 나선 것도 방법을 알아보려 한 것이지만 전부 실패했다.

그런 와중에 하북팽가에서 거절 못 할 제안을 해왔다.

자신의 막내인 팽중혁과 언해원을 혼인시키면 모든 빚을 대신 갚아주겠다 한 것이다.

‘그 많은 돈을 팽가에서 대준다고?’

진백천은 그것에서부터 왠지 모를 의심이 생겨났다.

팽가라고 해도 그 정도의 돈을 함부로 융통하기 힘들었다.

정도회에서 나오기 전에 무림세가를 전부 조사해 봤던 진백천이기에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그 도박장이라는 곳과 팽가 사이에 뭔가 있는 것 같은데.’

물론 언호충이라는 얼간이도 숨기는 게 있을 터였다.

‘정말 덜떨어진 놈이 아닌 이상 그만한 빚을 질 정도로 도박을 할 리 없으니까.’

“흐음. 언가주. 그 돈은 언제까지 변제하셔야 합니까?”

“이제 딱 10일 남았습니다.”

“알겠습니다. 제가 우선 알아보죠.”

“감사합니다.”

언시경은 별 기대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다만 말이라도 그렇게 말해주니 위안을 얻었다.

언해원과 다르게 속이 여린 인물인 듯싶었다.

가주전을 빠져나온 진백천은 자신을 기다리는 일행들에게 방금 대화를 털어놨다.

“……40만 냥이요? 말도 안 돼요! 그 정도면 죽었다 깨어나도 못 갚을걸요?”

“하루 이자만 해도 엄청날 겁니다. 대체 얼마나 큰 판을 벌였기에. 쯧.”

“그러게. 아무래도 그 도박장이라는 곳을 가봐야겠어.”

혹시라도 언호충이 도박장의 사기에 당한 거라면 빚을 전부 무효화 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흐음. 좋아. 그럼 나도 따르지.”

“따르긴 뭘 따라. 오늘 언해원의 실력 못 봤어? 너는 남아서 죽어라 수련만 하라고.”

진백천은 도박장으로 나서기 전에 유석경을 격체전력으로 후드려 팼다.

평소보다 몇 배는 더 힘이 들어간 주먹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쉬지 않고 수련하라고 엄포를 놓았다.

‘오늘 언해원의 실력을 보면 지금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니까.’

진백천은 그것을 마무리로 바로 진주언가에서 빠져나왔다.

신분을 감추기 위해서 당소예와 황대원마저 두고서였다.

유일하게 따라붙은 도홍경이 실실거렸다.

“왜? 도박장은 처음이야?”

“도사가 그런 곳에 가볼 기회나 있겠습니까?”

그런 것 치고는 기대감이 어린 웃음이 평범하지 않았다.

도박장은 진주언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했다.

건물 하나가 도박장일 만큼 그 규모가 엄청났다.

“허어. 형님. 이런 곳이라면 판돈도 제법 클 겁니다.”

“걱정 마. 돈은 많으니까.”

진백천은 그대로 도박장에 들어가려다 멈춰섰다.

당소예와 황대원을 떼어놨다고는 해도 옷차림이 너무 눈에 띄었다.

‘괜히 정도회의 회주가 도박이나 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조금 그렇겠지.’

가까운 포목점에서 평범한 흑의를 사서 갈아입었다.

도사 옷을 벗은 도홍경은 그 자체로 이미 악적이었다.

“……너 정말 대단하구나.”

“네? 뭐가 말입니까?”

“아니다. 가자.”

도박장 입구를 통과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문제가 없는 호패와 수북한 전표와 돈을 보여주면 그만이었다.

“좋은 시간 되십시오.”

그렇게 둘이 도박장으로 들어서려는 그때.

누군가 둘의 옆으로 달라붙었다.

“나도 같은 일행이오.”

상대를 확인한 진백천이 헛웃음을 지었다.

남장을 했지만 고운 얼굴은 한눈에도 언해원이었다.

진백천과 다르게 백의를 입고 부채까지 든 모습은 영락없는 앳된 공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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