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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회귀백서-127화 (127/346)

무림회귀백서 127화

47장 철중화의 정혼자(3)

진백천은 언해원의 뒤를 따라 진주언가 안으로 들어섰다.

특이하게도 세가의 정중앙에는 커다란 연무장이 자리 잡고 있었다.

단순히 보기뿐만이 아닌지 연무장을 깨끗이 닦인 상태였다.

“분위기가 특이해요. 세가라기보다는 장군가 같아요.”

당소예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연무장 곳곳에는 창을 비롯해 각종 연습용 무기가 진열대에 놓여 있었다.

보통은 주력으로 하나만을 단련하는 무인들과는 달랐다.

“맞아. 잘 봤어. 진주언가의 처음 시작은 무가였거든. 그때의 습관대로 모든 무기를 다룰 수 있게 연습할 거야.”

“맞습니다. 잘 아시는군요.”

언해원이 안내한 곳은 연무장 잘 내려다보이는 전각이었다.

그곳에 앉자 시녀들이 다과와 차를 내왔다.

“그나저나 이곳은 어떤 일이신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회주님이 제 정혼자 모집에 지원하려는 것은 아니실 테고.”

“흐음. 지나가는 길에 들린 거니 너무 신경 쓰지 마.”

신경 쓰지 말라고 하니 언해원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차를 마시는 척하며 다른 이들도 살폈다.

“이쪽 분은 아까 소개하신 대로 황 무사님이실 테고, 다른 분들은 조금 생경하군요?”

유석경은 자신을 못 알아보는 그녀의 모습에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뿐이었고 자리에서 일어나 포권을 쥐었다.

“오랜만에 다시 뵙습니다. 언 소저. 유석경입니다.”

“유…… 석경 성주님?”

그제야 생각난 듯 언해원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히 진백천의 일행이거나 호위 정도로 생각했다.

자세히 살피니 자신이 알던 유석경이 맞았다.

의외의 조합에 제법 놀란 듯 보였지만 곧 웃음을 띠며 인사했다.

“……그 짧은 사이에 꽤나 바뀌셨네요.”

“그렇습니까?”

“네. 몸도 단단해지시고. 무공 수련을 하셨나 봅니다.”

유석경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관심은 딱 거기까지였다.

언해원이 웃으며 활달하게 말한다지만 그녀는 태생적으로 무가의 여식이었다.

강한 자가 아니면 끌리지 않았다.

“혹시 회주님이 진주언가에 오신 게 성주님 때문이신가요?”

“맞아. 내가 도와주기로 했거든.”

“두 분이 어떤 사이시길래?”

“친구.”

진백천은 단 한 단어로 관계를 정리했다.

언해원은 단호한 태도에서 더는 호기심을 갖지 않았다.

‘대찬 듯하면서 눈치도 빠르고 제법이야.’

대신 밖의 벽보에 대해 물어봤다.

팽중혁 때문에 반응을 살피지 못했던 것이 내심 걸렸다.

“관심을 끄는 게 목적이었으면 적절했어.”

“잘됐네요. 관심. 그게 제 목적이거든요.”

“마음에 없는 시까지 지어낼 정도로?”

“제가 쓴 거라 생각하세요?”

능글맞은 그녀의 태도에 진백천이 헛웃음을 지었다.

당천아도 그렇고 지금까지 만나본 두 명의 무림오봉(武林五鳳)은 전부 성격이 독특했다.

언해원은 당천아와의 서신 때문인지 진백천에게 호의적이었다.

묻지 않아도 자신의 생각을 전부 털어놓았다.

“여자라고 가문을 잇지 못하고 시집을 가야 하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제 스스로 가치를 증명해 보일 거예요.”

회귀 전에는 언해원의 계획대로 되었다.

아무도 그녀의 짝이 되지 못했고 오히려 그녀가 얼마나 강하고 현명한지 알려지는 계기가 될 뿐이었다.

‘이번에는 다를 테지만.’

언해원은 문득 여유로운 진백천의 태도에 의문을 가졌다.

정혼자를 뽑는다고 했으면 유석경을 위해서라도 어떤 식으로 정혼자를 뽑을지 정도는 물어볼 줄 알았다.

-물어보면 알려주는 대가로 대결이나 해보려 했는데 말이야.

진백천이 얼마나 강한지는 소문이 증명했다.

단지 귀로 듣는 것과 주먹을 맞대고 아는 것은 천지 차이였다.

이미 얼굴을 맞대고 있을 때부터 몸이 들썩일 정도로 진백천의 실력이 궁금했다.

연무장이 보이는 이곳으로 데려온 것도 전부 대결을 위해서였다.

-아버지가 계시면 절대 못 하게 할 테니까.

진백천은 그녀의 속마음을 들으며 피식 웃었다.

가볍게 행동하는 것 같으면서도 철저하게 계획적으로 움직이는 여자였다.

지금의 가볍고 들뜬 모습은 결코 그녀의 본모습이 아니었다.

차갑고 날카롭고 찌를 듯한 기세가 그녀의 본바탕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무공을 펼칠 때 적나라하게 터져 나왔다.

이러한 태도가 그녀가 철중화란 별명을 얻게 된 이유였다.

당천아나 하여교와 같이 속이 안 보이는 것도 무섭지만, 언해원처럼 전혀 다른 마음을 품는 여자도 보통은 아니었다.

‘그래 봤자 나한테는 안 되겠지만.’

“흐음. 저랑 내기 하나 하실래요?”

“내기?”

진백천은 이미 다 알고 있으면서 흥미 있는 척했다.

“이왕 진주언가에 오셨으니 연무장쯤은 써보셔야 하지 않겠어요? 저와 3번을 겨뤄서 저를 이기시면 어떤 식으로 정혼자를 뽑을지 알려드릴게요.”

“굳이 알지 않아도 되는데?”

언해원이 입을 삐죽였지만 정작 날카로운 기세는 다른 곳에서 터져 나왔다.

따끔한 시선에 고개를 돌아보니 유석경이 불똥이 튈 것 같은 눈으로 쳐다봤다.

“그러지 말고 한판 붙으시죠. 천하의 회주님이 무서워서 그런 건 아닐 테고?”

제법 도발적인 말투였다

‘생각해 보면 나쁜 건 아니지. 언가권에 대해 알수록 유석경에게 알려줄 수 있는 공략법이 많아질 테니까.’

또한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유석경에게 도움이 될 터였다.

진백천은 이리저리 재는 듯하다 내기를 수락했다.

“내기 방법은 그냥 3번의 대련으로?”

“그러면 재미가 없죠.”

언해원은 미리 생각한 것을 설명했다.

그 대련 방법이 제법 독특했다.

한 번씩의 대련마다 같은 무기의 종류를 바꾸는 방식이었다.

“재밌겠네.”

둘은 연무장 위로 올라섰다.

언해원은 진열대에서 두 자루의 가검을 뽑아 들었다.

한 자루는 진백천에게 건넸다.

“손에 익으신 건 검이시죠?”

“그건 너무 어렵지 않겠어?”

“저는 가장 싫어하는 것부터 먹는 편이라서요.”

언해원은 검을 다루는 것이 무척이나 익숙했다.

“준비되셨으면 시작할까요? 형부?”

마지막 형부라는 말이 도발하려는 것이 다분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땅을 박차고 날카롭게 검을 내질렀다.

군더더기 없이 날카로운 공격이었다.

진백천은 뒤로 물러나며 가볍게 검을 밀어냈다.

“역시 기습은 통하지 않는다 이건가?”

그녀는 더는 웃지 않았다.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싸늘한 표정으로 온전히 진백천에게만 집중했다.

서로의 검이 부딪칠수록 내력이 점점 더 끓어올랐다.

진주언가 특유의 강성한 내력 탓이었다.

‘내력으로 가검을 보호하지 않았다면 진즉에 부러졌겠어.’

휘이이이익-

바로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검날에는 미세하게 검기가 실린 상태였다.

‘정도를 모르는 여자군.’

지켜보던 황대원이 나서려고 했지만 진백천이 눈짓을 주며 물러나게 만들었다.

“나쁘지 않은데? 하지만 딱 그 정도야.”

“……나쁘지 않을 정도라고요?”

마주치는 후기지수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전부 붙어본 그녀였다.

오죽하면 철중화(鐵重花)라는 별호까지 붙었겠는가.

대부분은 그녀가 이겼고 지더라도 아슬아슬한 수준이었다.

만약 손속을 두지 않은 실전이라면 자신이 이겼을 거라 확신했다.

스스로에게 자부심이 있던 언해원에게 진백천의 말은 제법 듣기 싫은 말이었다.

자연스레 되받아치는 목소리는 날이 서 있었다.

“잘나신 회주님께서는 저보다 강한 이들을 많이 만나셨나 봐요?”

“물론이지.”

얼굴로 뻗어오는 검을 고개를 까닥이는 것만으로 피해냈다.

그리고 묻지 않아도 하나하나 친절히 열거했다.

“당가의 당천기와 그 사형제들도 제법 뛰어났지. 그리고 개방의 적의단(赤衣團). 무당의 무당팔검(武當八劍), 화산의 검군 유일환을 비롯해 매화검수들. 셀 수도 없이 많은데?”

“……칫. 전부 제 또래는 아니네요?”

“그래 봤자 몇 살 차이 난다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자존심 강한 언해원의 검이 서서히 흔들렸다.

허공을 가르는 검의 횟수가 많아졌다.

진백천은 이제 대놓고 뒷짐을 진 채 몸을 움직여서 피하기만 했다.

유령신법으로 한층 날렵해진 몸놀림 덕분에 가능한 움직임이었다.

“강하시네요. 확실히!”

언해원은 이를 악다물었다.

자신은 진백천의 상대가 되지 않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까지 차이가 날줄은 생각지도 못했어.

‘조금 더 강하게 자극해 볼까?’

“또래가 아니라니 안일한 말이군. 굳이 네 또래가 아니더라도 자질이 넘치는 아이들은 많았지. 종남의 광소산부터. 내 제자인 아영까지. 내가 볼 땐 그들을 상대해도 부족할 것 같은데?”

진백천이 뒤로 훌쩍 물러나며 씨익 웃었다.

“이 정도라면 말이야.”

콰직-

언해원이 쥐고 있던 가검 손잡이가 기어코 박살 나버렸다.

“……가검 상태가 왜 이래. 관리가 잘 안 되었나.”

그녀는 분풀이하듯 가검을 땅바닥에 내리쳤다.

그럴 때마다 가검에 실린 내력으로 인해 땅이 움푹 패였다.

가검이 완전히 박살이 나자 그제야 성미가 풀린 듯 보였다.

“하아. 죄송해요. 검은 이대로 넘어가시죠. 아무래도 전혀 상대가 안 되네요.”

언해원은 대답을 듣지도 않고 바로 다음 무기를 집어 들었다.

촤르르륵-

“철련(鐵鏈)?”

철련은 말 그대로 철로 만든 쇠사슬을 말했다.

그 끝을 날카롭게 만들어서 상대의 무기를 제압하거나 포박하는 용도였다.

‘잘 알지 못하면 쉽게 쓰기 힘든 무기지.’

채찍처럼 쓰기에는 과하게 무겁고 둔기처럼 쓰기에는 제대로 휘둘러지지 않았다.

언해원은 익숙하게 철련을 다루며 진백천을 쳐다봤다.

“이것도 괜찮으시죠?”

“물론이지.”

진백천은 고개를 끄덕이며 쇠사슬을 집어 들었다.

보는 것처럼 꽤나 묵직했다.

“그럼 갑니다.”

언해원은 진백천이 무기에 익숙하기 전에 바로 공격을 뻗어왔다.

무거운 쇠사슬이 마치 뱀처럼 쉭쉭- 소리를 내며 진백천을 허벅지를 노렸다.

‘이건 조금 위험하겠는데?’

단순히 연습용 무기라고 해도 금속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닿기만 해도 살점이 떨어져 나갈 위력은 그것만으로도 위협적이었다.

그녀의 동작에서 진주언가 특유의 거칠고 과감한 동작이 많이 비췄다.

‘무모할 정도로 공격적이야. 천부적인 전투 감각도 있어.’

진백천은 쇠사슬에 내력을 집어넣으며 땅을 내리쳤다.

콰앙!

연무장에 깔린 돌이 깨져나가며 순간 시야가 가려졌다.

진백천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허공을 뛰어올랐다.

백면섬보(百面閃步).

진기가 폭발하듯 경맥을 타고 올랐다.

마치 번쩍이는 듯한 움직임이 끝난 후에는 언해원의 뒤편에 서 있었다.

진백천은 파편을 피해 물러서는 그녀의 목덜미에 쇠사슬을 올려놓았다.

“다음 무기는 권갑?”

“…….”

“마지막은 가장 자신 있는 걸로 가야지.”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없이 권갑을 착용했다.

이렇게 끝나면 억울해서 잠도 오지 않을 것 같았다.

-회주고 뭐고 우선 박살부터 내버리겠어.

속마음에서부터 그녀의 각오가 전해졌다.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언해원은 포권을 취하고 바로 기수식을 취했다.

지금까지와 다른 기백이 전해졌다.

‘자신이 자신 있어 하는 분야에서는 쉽게 지지 않겠다 이건가?’

진백천은 마찬가지로 자세를 잡으며 유석경에게 전음을 보냈다.

-그녀의 권각술을 잘 지켜봐.

언해원은 처음부터 본격적이었다.

날다람쥐처럼 빠르게 파고들며 주먹을 휘둘렀다.

묵직한 파공성과 함께 강기의 주먹이 진백천의 어깨를 노렸다.

‘말이 대련이지 실전과 다른 없는데?’

검과 달리 권갑은 쉽게 피하기 어려웠다.

계속해서 달라붙을 뿐만 아니라 주먹의 특성상 닿는 면적이 넓었다.

진백천은 주먹을 옆으로 밀쳐내며 반대로 돌아섰다.

팔이 맞닿은 곳으로 파고드는 내력이 제법 찌릿했다.

‘이게 언가권이군.’

언해원에게는 뒤로 물러섬이 없었다.

강하게 진각(震脚)을 밟으며 한 수, 한 수에 전력을 다했다.

언가권이 왜 강시권이라는 별명이 붙었는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진백천에게는 여유가 있었다.

‘기본적인 내력과 경험의 차이가 너무 커.’

주먹이 어디로 뻗어올지 짐작이 되었고, 파고드는 내력조차 그에게 그다지 치명적이지 않았다.

그것을 알았는지 언해원은 무리를 했고 동작이 서서히 거칠어졌다.

‘이, 이렇게까지 차이가 난다고?’

아무리 강해도 자신의 언가권이라면 놀랠 정도는 되리라 생각했다.

살면서 아버지인 가주를 제외하고 이렇게까지 밀린 적이 없기에 더더욱 그랬다.

공격하는 것은 그녀였지만 벽에 갇힌 듯 발악하는 것도 그녀였다.

‘하아하아.’

두 주먹이 물 젖은 솜처럼 무거워졌다.

결국 급해지는 동작 속에서 발이 꼬이며 넘어졌디.

어릴 적 이후로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실수였다.

“일어나라.”

묵직한 목소리는 진백천에게서 흘러나온 것이 아니었다.

어느샌가 다가와 지켜보는 중년의 남자에게서였다.

“……아버지?”

다름 아닌 진주언가의 가주 언시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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