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5화 해후
“빌어먹을! 이게 뭐야!”
적하조가 참다 참다 앓는 소리를 토했다.
“대체 이 사람들 어떻게 이럴 수 있는 거야! 몰라…… 무섭다고!”
그는 방금 몇 개 남지 않은 탄구 중 하나를 이매에게 명중시켰다.
이매는 탄구가 뭔지 모르는 듯 그것을 손으로 받아 냈다.
펑!
탄구가 손에 쥐인 채로 터졌다.
이매는 온몸이 걸레짝이 됐다. 팔이 바스러져 날아간 것은 물론, 배와 가슴까지 너덜너덜해졌다. 허연 갈비뼈 안쪽으로 장기들이 꾸물대는 게 보일 정도였다.
그러나 이매는 그런 몸으로도 칼을 휘둘렀다.
고통도 부상도 전혀 알지 못하겠다는 얼굴이었다.
팔다리를 잘라 내도, 머리가 반이나 갈려도 이매들은 계속 움직였다.
살기가 없는 살육의 현장이 오히려 더 잔인하고 기괴했다. 고통스러운 것을 넘어 넌더리가 날 만큼 슬펐다.
“이제 그만 좀 하자…… 진짜 그만하자! 몸이 그렇게 됐으면 이제 그만 죽으란 말이야!”
적하조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암기를 날렸다.
다른 사람들의 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알던 얼굴을 그저 죽이는 것이 아니라 더는 움직일 수 없을 때까지 산산조각 내야 하는 일이었다. 보는 사람이 없었다면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이 상황이 끔찍해서.
이 끔찍한 상황에 마주 서야 하는 그들 모두가 가여워서.
남궁진현이 여기저기 다친 몸을 비틀거리며 한숨을 쉬었다.
심적인 고통과 함께 수적인 열세가 일행을 구석으로 내몰았다.
일행은 서로의 등을 대신 봐주며 버티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게 마교의 수법인가…… 정말이지 지독하군.”
채희유가 만든 이매는 기존의 이매들과 달랐다.
이매는 교의 명을 수행하는 자들에게 목적성을 강화시키기 위해 명을 제외한 다른 모든 것을 잊도록 만드는 약이었다.
본래의 이매향은 기억을 감춰 둘 뿐 이지를 상실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기억을 감추는 것도 일시적이었다.
그러나 채희유는 이매향에 독기를 섞어 아예 다른 것을 만들었다.
그녀는 이 싸움이 지긋지긋했다.
누가 죽든, 죽이든 한시라도 빨리 끝나기를 바랐다. 지강백과 떨어져 있어야 하는 시간이 촌음이라도 더 빨리 줄어들길 바랄 뿐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조금 다른 이매를 만들었다.
누구도 짐작 못 할 방법으로.
“이가주님! 위험합니다!”
남궁진현의 측면을 노리고 달려드는 이매를 발견한 남궁완이 재빨리 몸을 돌려 공격 방향을 바꾸었다.
서걱!
남궁진현을 공격하려던 이매의 어깨가 갈라졌다. 남궁진현은 몸을 낮추며 이매의 안쪽으로 파고들어 심장에 직접 검을 꽂아 넣었다.
숙부를 위하는 남궁완의 걱정과 섬격검의 노련함이 잘 어우러져 위기를 무사히 넘겼다.
“후, 다행입니다.”
남궁완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나.
“완아! 방심하지 말고 뒤를 보거라!”
“……!”
남궁완이 즉시 몸을 돌렸다. 그가 이매에게 검을 찔러 넣는 사이, 방금 전 남궁진현의 일검을 맞고 쓰러진 이매가 몸을 기어 남궁완의 발목을 붙들었다.
“윽!”
남궁완이 신음을 내뱉었다.
이매가 그의 발꿈치를 물었다.
“당장 놓지 못하겠느냐!”
남궁진현이 이매의 팔을 잘라 냈다. 그러고도 이매는 남궁완을 놓지 않았다. 남궁진현은 다급한 마음에 검을 놓고 이매의 목덜미를 움켜잡아 억지로 떼어 냈다.
츳!
살점이 한입 크기로 잘려 피가 튀었다.
제 상처를 들여다보자니 속이 메스꺼워졌다. 남궁완의 안색이 누렇게 질렸다.
“이럴 수가…… 이가주님…….”
남궁진현이 오른팔 소매를 찢어 남궁완의 상처에 감아 주었다.
“당황하지 마라. 살점이 떨어진 것뿐이다. 뼈가 드러나지 않는 것을 보면 근육이 상하지 않았다. 괜찮아.”
대수롭지 않다는 말과는 달리 남궁진현은 꼼꼼히 상처를 감아 주었다.
남궁완은 아직 어렸고, 실전 경험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천하무도회의 비무에서 작은 승리를 얻어 낸 것이 전부였다.
이매들을 상대하며 질자가 받았을 충격은 생각보다 심할 것이다.
“괜찮아.”
남궁진현은 상처를 다 묶고 남궁완의 어깨를 한 번 두드려 주었다.
“……?”
주려고 했다.
그러다 그는,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광경을 목격했다.
남궁완의 머리카락이 하얗게 세고 있었다.
“……무, 무슨!”
“이, 이가……주……니임……”
남궁완의 눈이 서서히 초점을 잃어 갔다.
눈에 총기가 완전히 사라진 시점에서,
“……!”
남궁완이 입을 쩍 벌렸다.
남궁진현의 목덜미를 향해.
* * *
“거기까지.”
채희유는 결계의 한복판까지 들어온 지강백을 마주했다.
그녀가 호흡을 더하고 줄이는 것에 따라 독기가 움직였다.
채희유는 독기가 지강백에게서 세 걸음 떨어지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독기는 사라지지 않고 계속 그의 주변을 에워쌌다.
“더는 움직이지 마십시오.”
채희유는 독기로 목소리를 바꾸었다.
이전처럼 온몸을 검은 천으로 가렸다. 그녀는 지강백이 자신을 몰라보기만을 바랐다.
모를 것이다.
그는 이 녹색 눈을 몰랐다.
그는 자신이 독인이라는 것을 몰랐다.
그에게 그녀는 몸이 약한 약사일 뿐이었다.
그녀가 소매 안에 감춘 손을 흔들었다.
세 걸음 밖으로 물린 독기가 마치 위협하듯 지강백을 에워싸고 흔들렸다.
“만독불침도 소용없는 맹독입니다. 움직인다면 손을 쓰겠습니다. 이대로 길을 돌려 돌아가십시오.”
자신이 지강백에게 손을 대지 않는다면 용천무도 별수 없이 지금 마련된 제물을 취해야 할 것이다.
그게 최선이었다.
그 와중에서 용천무가 무엇을 눈치챈다 하더라도, 설령 왜 지강백을 제물로 삼으려 들지 않는지 그 이유를 알아 버린다 하더라도 대법을 넘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길을 열어 주십시오.”
지강백이 입을 열었다.
그의 시선이 곧장 이쪽을 향했다. 채희유는 그 시선이 파도 같다고 생각했다. 순식간에 밀려와 전부를 적셨다.
“저는 저 안에 있는 자를 반드시 없애야 합니다.”
채희유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저는 저자를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돌아가십시오.”
어쩔 수 없이 피해야 하는 시선이 안타까웠다.
한 조각의 눈빛도 아까웠다. 채희유는 저를 보는 지강백의 시선을 붙들어 제 몸 어딘가에 숨겨 두고 싶었다.
지강백이 입술을 열었다.
소리보다 숨이 먼저 새어 나갔다.
“저자를…… 마음에 담고 계셨습니까?”
“……?”
지강백의 말은 채희유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 무슨,”
“저는 그가 누구인지 압니다. 그가 사제의…… 아직도 사제라 불러도 좋을지 알 수 없습니다만, 그의 아우라는 것을 압니다. 그가 중원 땅에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도 압니다. 그래서 그의 곁에 서신 겁니까?”
“아, 아니…… 아니……”
채희유의 녹색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차마 말을 나오지 않는 탓에 그녀는 미친 듯이 고개를 흔들어 댔다.
“그를 좋아하십니까?”
아니었다.
결코 그럴 일은 없었다.
그녀가 독으로 엉망이 된 마음에 들인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고, 그는 지금 세상 무엇보다 아까운 시선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채 소저.”
“아아……!”
채희유가 털썩 자리에 쓰러졌다.
양손으로 얼굴을 가린 그녀의 어깨가 사시나무처럼 흔들렸다.
“결국…… 결국 들켰…… 내가…… 아니……,”
“채 소저.”
지강백이 그녀를 향해 한 발을 내밀었다.
“가까이 오지 마세요!”
채희유가 소리를 질렀다. 그녀의 명을 따르는 것처럼, 맹렬한 독기가 지강백의 앞을 가로막았다.
“어찌…… 어찌 아셨습니까? 제가…… 제가…… 저는 모르실 거라고…… 왜 아셨습니까, 왜!”
흐느끼며 소리치는 그녀를 지강백이 아픈 눈으로 바라보았다.
“제가 채 소저를 알아보지 못할 수는 없을 겁니다. 아무리 몸을 가려도, 목소리를 바꿔도 그럴 수는 없습니다.”
“왜…… 왜!”
“이유를 모르십니까. 항상 제 속에 있는 분이라는 것을요.”
지강백의 대답은 채희유를 허물어트렸다.
“아…… 아아…….”
눈물은 숫제 강물 같았다. 투르륵 굴러떨어지는 눈물이 땅 위에 웅덩이를 만들었다.
웅덩이 주변의 흙이 곧 독기로 인해 검게 물이 들었다.
말로만 듣던 저승화가 피어나는 모습 같았다.
“사제의 여자라고 하셨지요. 그래서 놓아 드렸습니다. 하지만 마음은 보이지 않는 것이니 놓아 드릴 일이 없었습니다. 저는 항상 그때와 같은 마음으로…… 종남산에서 처음 뵈었을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마음으로 있었습니다.”
채희유가 눈물로 얼룩진 고개를 들었다.
지강백은 그녀처럼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저는 그를 반드시 없애야 합니다. 채 소저의 마음과는 별개로, 저는 그래야 합니다. 그러니 길을…… 비켜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저는 채 소저를 해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럴 수도 없습니다.”
지강백의 음성은 기억 속의 그대로였다.
그의 시선도, 그에게서 나는 좋은 냄새도 똑같았다. 담담하고 진중한 음성은 들을 때마다 귓가를 덥히고, 이어서 마음을 덥혔다.
하나도 다르지 않은 음성이 지금은 세상에서 제일 슬픈 소리가 되었다.
“그는 더 이상 제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 채 소저께서 아무리 그자를 도우려 해도 결과는 같습니다. 그자는 반드시 오늘 이 자리에서 제가 없앨 겁니다. 같은 결과를 놓고 제게 채 소저마저 잃도록 만들지 말아 주십시오.”
저벅.
지강백이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채희유가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안, 안 돼…… 오지 마세요. 독입니다…… 오지 마세요. 오시면 죽습니다.”
“저는 채 소저도 잃고 싶지 않습니다. 비켜 주십시오.”
“아, 안 돼……!”
독기가 지강백을 엄습했다.
지강백이 내력을 모아 독기에 저항했다. 그러나 채희유는 무엇도 그 독을 막을 수 없음을 알았다.
지강백은 호흡을 막으며 계속 걸어왔다. 기어코 그녀를 말리려는 듯했다.
독기에 감싸인 피부가 벌써 창백해졌다. 곧 푸르스름한 반점이 돋아나 이어 피부가 녹아내리기 시작할 것이다.
“안 돼!”
결국 채희유가 졌다.
독기가 모두 사라졌다. 그녀는 지강백이 상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
“채 소저.”
지강백이 다가와 채희유를 일으켰다.
채희유는 무너지듯 그에게 안겼다. 저를 두른 든든한 팔 안에서 채희유가 몸부림치며 울었다.
“안 된다고 했잖습니까! 안 된다고…… 안 된다고요!”
“채 소저.”
“아직 아닌데…… 아직 알아내지 못했는데……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제가 상공을 찾아갔을 텐데……! 아주 조금만 기다리면 되는 거였는데!”
지강백은 채희유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다.
하지만 저에게로 올 것이었다는 말은 알아들었다. 무슨 이유에선지 몰라도 채희유에게는 시간이 필요했던 모양이었다.
다행이었다. 그녀가 아주 멀리에 있던 것은 아니었다.
이유를 모르지만 그자를 좋아했던 것도 아니었다.
지강백은 채희유를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채희유는 늘 그를 거부하던 예전과는 달리 저도 있는 힘껏 그에게 매달렸다.
“조금만 늦으셨으면…… 그럼 좋았을 텐데……”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를 거절하고 돌아서던 그때는 꼭 그랬어야 하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이제는 상관이 없어 다행이었다.
지강백은 얼굴을 가리고 있던 검은 천을 헝클이고 드러나는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저를 좋아하십니까?”
“아…….”
대답 대신 목덜미가 달아올랐다. 따듯해진 그녀에게서는 아주 짙은 꿀 냄새가 났다.
“저는 좋아합니다.”
“아…… 저, 저는…… 저는……”
채희유가 대답을 하려고 애를 썼다. 지강백은 그녀가 수줍은 여자로도 보인다는 사실이 놀랍고 흐뭇했다.
채희유는 너무 빨리 왔다고 했지만 그는 오히려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다.
진작 이럴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아주 많이, 좋아합니다.”
그러나 지강백의 생각은 틀렸다.
빠르거나 늦었거나, 그는 확실히 잘못된 시간에 채희유를 찾아왔다.
“과연…… 이런 이유가 있었군.”
용천무였다.
채희유가 지강백 때문에 독기를 거두는 틈을 타 그도 결계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모두 놈을 위해서였나? 대법으로 새 몸이 되겠다 한 게?”
지강백이 채희유를 안은 팔을 풀었다.
“물러나 계십시오. 위험합니다.”
채희유가 지강백의 소매를 붙들었다.
“죽이면…… 죽이면 안 됩니다. 다른 방법을……!”
“그럴 수는 없습니다. 되도록 멀리 물러나 계세요.”
지강백은 저를 붙든 채희유의 손을 떼어 냈다. 채희유가 고개를 흔들며 계속 그에게 매달렸다.
그사이 용천무가 달려왔다. 그는 분노로 이성을 잃었다.
“대법을 얻기 위해 나를 이용했어? 너도 그놈들하고 다를 게 없잖아!”
콰앙!
용천무가 채희유의 등을 향해 온 힘을 다한 대력금강장을 밀어냈다.
“채 소저!”
피하기엔 늦었다.
지강백이 채희유를 감싸며 호신강기를 일으켰다. 동시에 백색 검강이 솟구쳤다. 그는 대력금강장에 정면으로 맞서서 검을 세웠다.
콰가각, 퍼엉!
검과 장이 맞부딪혔다.
기와 기의 격돌이었다.
“……읏,”
지강백이 터질 것 같은 몸을 억지로 다스렸다.
그가 뒤로 밀려나면 채희유까지 다칠 수 있었다.
몸에 무리가 가는 것은 용천무도 마찬가지였다.
오른팔이 잘려 나간 자리에 검은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혈맥이 가닥가닥 끊어진 것이다.
급속도로 피가 빠져나간 용천무는 잘못 말린 꽈리처럼 쭈글쭈글 구겨졌다.
“내가…… 반드시……!”
채희유를 죽여야 했다.
자신을 이용하려는 사람은 결코 참을 수 없었다.
그의 인생 자체가 이용당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교주는 그를 만들어서 수라안을 되찾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했다.
금천진혼대법을 완성한 것은 그가 아니라 교주였다. 수라안을 되찾기 위해 교주는 모든 비술과 대법을 시도했다. 금단이자 미완이었던 금천진혼대법은 그 과정에서 우연히 완성되었다.
한 가지 다행이었던 점은 대법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시술자의 혼이 옮겨 가는 동안 아주 잠깐 육신이 공백이 된다는 것이었다.
교주의 혼이 옮겨 가는 동안 용천무는 그 몸이 공백 상태가 된 것을 보았다.
그는 순전히 의지만으로 반이나 허물어진 육신을 움직였다. 팔다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몸통으로 기어 교주의 육신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가 가진 유일한 무기인 이로 교주의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교주는 죽었고, 용천무는 금천진혼대법으로 교주의 몸을 얻었다.
처음에는 정말로 이대로 교주가 될 것이라 믿었다. 그는 용천휘를 죽이기 위해 이매들을 움직였다. 그를 교주라 믿고 있는 팔우위는 아무 의심 없이 이매향을 내주었다.
그는 결국 용천휘를 교에서 쫓아냈다. 불신과 편집(偏執)에 사로잡힌 용천휘가 자구책을 찾기 위해 중원으로 향했을 때는 이제 교가 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했다.
시체를 오래 유지할 수 없었던 것이다.
목덜미의 상처는 아무리 해도 아물지 않았고, 점점 썩어 들어가 더는 감출 수 없게 되었다.
그 또한 자구책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사천당문의 가주가 되었고 지월이 되었다. 파루나를 유혹해 손을 잡고 용천휘의 죽음을 계획했다. 교는 곧 분열될 것이었으며 그는 그 오랜 바람대로 교의 주인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바람에 그쳤다.
그 모든 게 파루나가 저를 배신했기 때문이었다.
자신처럼 믿고 모든 것을 의지했던 파루나가, 결국 교주와 다를 바 없이 저를 이용하려고만 한 탓이었다.
“용서할 수 없다!”
용천무는 제 몸이 망가지는 것은 아랑곳없이 계속 내력을 끌어 올렸다.
온몸의 혈맥이 끊어지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상관없었다. 누렇게 죽은 흰자가 부풀어 오르다 못해 찢어지기 시작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죽어라!”
용천무가 지강백과 마주한 상태에서 갑자기 왼손을 내뻗어 일지선을 쏘아 보냈다.
퍼엉!
용천무의 몸이 피에 젖은 가죽 부대처럼 되었다.
사아악!
새하얀 검강이 용천무의 배를 갈랐다. 거죽이 쩌억 벌어지며 내장이 흘러나왔다.
그래도 일지선은 앞으로 나아갔다.
형태는 일지선이었으되, 오래전 초식의 한계를 벗어난 지월의 일지선은 기존의 것과 달랐다.
날카로운 지풍이 지강백을 지나쳐 그 뒤에 감춰 둔 채희유를 노렸다.
“채 소저!”
저를 스쳐 가는 지풍의 존재를 감지한 지강백이 다급히 한 손을 풀었다.
“윽!”
검강이 순간 세 치나 줄어들었다. 그래도 지강백은 채희유를 감싸기 위해 왼손을 뻗을 수 있었다.
퍼억!
지풍은 지강백의 손바닥을 뚫고 이어 채희유의 가슴을 때렸다.
“우욱!”
채희유가 피를 뿜었다.
만일 지강백의 손을 뚫느라 위력이 팔 할 이하로 감소한 게 아니었다면 그 지풍은 채희유의 몸통에 구멍을 냈을 것이다.
“채 소저!”
채희유가 토한 피가 지강백에게 튀었다.
그녀가 피와 함께 내뱉은 독연을, 지강백이 들이켰다. 독연인 줄 몰랐을 터였다.
눈을 감고 쓰러지는 채희유를 지강백이 안아 들었다.
“채 소저!”
치이익.
피가 묻은 옷자락이 타들어 갔다. 독연을 마신 지강백이 잠시 신형을 비틀거렸다.
용천무가 광소(狂笑)를 터트렸다.
“으하하! 결국 네년의 독이 놈을 죽게 하는구나! 그것이 파루나의 운명이겠지! 으하하하하!”
지강백이 울컥 피를 토했다.
검게 죽은 피였다. 맹독을 품은 핏덩이는 몸 밖으로 나와 흙을 태웠다.
내공을 이용해 독을 모아 피와 함께 뱉어 낸 지강백은 안색을 되찾았다.
그가 채희유를 조심스레 내려놓은 뒤 몸을 돌려 용천무를 마주했다.
“너는 이제 죽는다.”
용천무는 흘러내리는 내장을 주워 담을 생각도 하지 않고 웃었다.
“과연 그럴까?”
“안 그럴 이유라도 있나?”
“여기는 무림맹. 내가 주인인 곳이다.”
용천무가 지강백의 등 뒤를 손가락질했다.
“그리고 여기 있는 것들은 모두 나를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지강백이 홱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는 차마 믿고 싶지 않은 광경을 마주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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