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천동지-112화 (112/346)

제112화 무중행(霧中行)

“이상합니다.”

길은 좁았다.

비좁은 소로 끝에 있는 사천당문은 천연의 요새였다.

뒤쪽으로는 까마득히 높은 절벽을 끼고, 그 밑으로는 장강이 굽이쳐 흐르는 위치라 뒷문이 전혀 없었다.

사천당문을 찾는 사람들은 목적이 어떻든 간에 이 비좁은 길을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단 하나 있는 길을 통과해 오는 외부인들을, 사천당문은 높다란 담 안쪽에 안전히 틀어박힌 상태에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감시할 수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전각이 보여야 하는데……?”

하지만 그 사천당문이 보이지 않았다.

마을 입구에 촘촘히 몰려 있는 민가를 지나면 이후로는 나무 한 그루 없는 휑한 벌판이었다. 엄폐물이 전혀 없는 것이다.

벌판을 지나면 주변은 가파른 구릉지대로 변하고, 사천당문의 정문으로 이어지는 비좁은 길이 드러난다.

일행은 분명 그 길로 접어들었다.

길이 틀릴 리 없다는 것은 제갈단우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모든 것이 이전에 와 본 그대로였다.

단지 하나, 사천당문이라 부르는 거대한 장원이 있어야 할 곳에 없다는 것뿐이었다.

“길을 잘못 들 리는 없을 테니, 저것이 함정이겠군. 뭔가 수작을 부려 놨을 것이다.”

제갈단우와 함께 선두에 서 있던 호곽의 말이었다.

“내가 앞서서 확인해 보겠네.”

그러면서 말을 출발시키려는 호곽을, 지강백이 재빨리 붙들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하, 그게 무슨 소린가. 그저 조금만 앞서서 상황을 살피고 오는 것뿐일세.”

“상대는 무림맹이 아니라 마교입니다. 그들이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사술을 쓰고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그래도 무림맹의 본진이지. 놈이 마교라는 것을 제멋대로 드러낼 수는 없을 걸세. 이렷!”

호곽과 호영장의 무인들이 말을 달려 사라졌다.

엉덩이에 찰싹찰싹 부딪치는 말꼬리의 개수를 더 이상 눈으로 셀 수 없는 거리가 되었을 때,

“……이런.”

그들의 모습이 사라졌다.

아무런 조짐도, 이유도 없이.

“헉! 저게, 저게 어떻게 된 거야? 진인가?”

적하조가 믿기지 않는 얼굴로 눈을 비볐다. 누구라도 선뜻 믿기 어려울 것이다.

긴장으로 눈가의 주름이 팽팽히 당겨진 얼굴로 독귀가 말했다.

“내 저런 진이 있다는 소리는 이 나이 되도록 들어 본 적도 없다.”

“그럼 진이 아니라는 소리예요?”

“뭔지 모르겠다는 소리다, 까악!”

“아우, 모르겠다는 말을 뭐 그리 거창하게 해요. 난 또 영감이 뭐 좀 안다는 소린 줄 알았네.”

이번에는 두 사람의 시답잖은 말씨름도 긴장을 덜어 내는 데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제갈단우가 말했다.

“저것이 뭔지 몰라도 사천당문이 사라진 것과 같은 이치겠군요.”

“눈에 보이진 않아도 저기 있다는 소리겠군.”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눈속임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서 확인해 봐야겠군.”

지강백이 앞으로 나섰다.

진이라면 수라안을 통해 구조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제가 앞서겠습니다. 뒤를 따라오십시오. 더 지체했다간 앞서간 호영장의 사람들을 잃어버릴 것 같습니다.”

제갈단우가 두말없이 지강백의 뒤에 섰다.

백룡호에서의 경험이 지금으로서는 지강백에게 길을 맡기는 게 최선임을 말해 주었다.

“걸음을 주의하십시오. 뭔가를 만지거나 건드리지 마시고 이상하게 보이시거든 걸음을 멈추십시오. 알지 못할 소리가 들려도 마찬가지입니다.”

걸음이 이어졌다.

긴장이 소리가 되어 발자국에 들러붙었다.

잠시 후 나머지 일행의 모습도 앞서간 호영장의 무인들처럼 시야에서 사라졌다.

* * *

언제부턴가 안개가 끼기 시작했다.

숨을 쉬기 거북할 만큼 짙고 뻑뻑한 안개였다. 주의해서 살피지 않으면 앞사람의 발자국을 놓치기 십상이었다.

가장 선두에 선 지강백의 걸음이 유독 조심스러웠다.

수라안은 한시도 긴장을 풀지 않고 있었지만, 진이 있다는 흔적은 없었다. 그저 안개만이 계속 짙어지고 있을 뿐이었다.

묘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이상한 점도 없기에 걸음을 멈추지는 않았다.

“……내키지 않아.”

지강백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걷고 싶지 않아. 여기는……”

지강백이 걸음을 뚝 멈추었다.

“……꼭 강을 걷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 물이 계속 발목을 휘감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걷다 보면 신이 젖고, 다리가 젖고 이어서 온몸이 젖을 것 같았다. 한껏 추워진 몸을 떨며 아차 싶을 때, 그때는 이미 마지막 머리칼 한 올마저 물에 잠기게 될 것이다.

지강백이 고개를 뒤로 돌렸다.

“지금이라도 끈으로 서로를 묶는 게 좋겠습니다. 그리고 안개가 걷힐 때까지 잠시 기다리는 게…….”

하지만 이미 늦었다.

“…….”

지강백은 완전히 몸을 돌려 자신의 뒤를 따라오던 자들과 마주했다.

그들은 더 이상 제갈단우를 비롯한 제갈가의 무인들이 아니었다.

지강백의 표정이 굳었다.

“이것이…… 함정인가?”

그들은 모두 머리칼이 새하얗게 새어 있었다.

대체 언제, 어떻게 사술에 걸려든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심장이 툭, 소리를 내며 가라앉았다.

초점이 미묘하게 엇나간 눈들이 느리게 굴러 지강백을 향했다.

“죽여…… 죽여라…….”

“죽여라…….”

“살아 있는 것들을…… 모두…… 죽여라…….”

살아 움직이되 더 이상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없는 자들이 지강백을 향해 덤벼들었다.

츠즛, 캉!

남궁진현이 쥐여 준 검이 움직였다.

지강백은 칼날을 눕혀 대천강검을 전개했다. 전면으로 날아드는 병장기들을 걷어 낸 칼등이 정확히 제갈세가 무인들의 천주혈을 스치고 지나갔다.

투두둑!

썩은 볏단 같은 소리를 내며 제갈가의 무인들이 쓰러졌다.

“죽여라……!”

지강백은 등 뒤에서 달려드는 제갈단우의 기척을 느끼고 몸을 돌렸다.

쐐액!

응혈신조를 전개해 붉게 물든 손톱이 지강백의 심장을 노렸다.

스슷!

대천강검이 제갈단우의 손톱 끝을 베어 냈다.

제갈단우는 피 흐르는 손끝은 아랑곳없이 공세를 늦추지 않았다.

“……망할.”

작게 욕설을 내뱉은 지강백이 제갈단우의 손목을 틀어쥐었다.

“죽……여……”

왼쪽 눈이 붉어졌다.

그러나 수라안으로도 제갈단우를 구속한 사술은 보이지 않았다.

“어려워지겠군.”

손목을 놓아준 지강백이 제갈단우의 어깨를 툭 내리쳤다.

거골혈이 짚인 제갈단우는 사지가 뻣뻣하게 굳으며 쓰러졌다.

“미안하다. 잠시 이러고 있어.”

지강백이 안개가 자욱한 허공으로 붉은 눈을 돌렸다.

수라안에는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미 비정상의 공간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것.

“길을 찾아야 해.”

안개 속에서 사라진 다른 일행들이 모두 사술에 묶이기 전에 찾아야 했다.

스슷.

지강백의 신형이 신속히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그래서 지강백은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

그가 사라지고 난 뒤, 제갈가의 무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마치 지강백을 따라가기라도 한 것처럼 안개가 걷혔다.

다시 맑아진 하늘 아래 드러난 제갈가의 무인들은 여전히 점혈당한 채 쓰러진 상태였지만, 머리칼은 더 이상 새하얗지 않았다.

자박.

잠시 후 작은 발걸음 소리가 다가왔다.

전신을 검은 천으로 꼼꼼히 가린 채희유였다.

“오셨습니까…….”

녹색 눈이 방금 전 지강백이 있던 곳을 애달프게 응시했다.

시선에 손이 달렸다면 분명히 빈자리를, 그 위의 발자국을 쓰다듬었을 것이다.

더없이 상냥하고 다정하게.

* * *

“빌어먹을! 이게 어떻게 된 거야!”

호곽이 버럭 성질을 냈다.

대체 어디서 길을 잃었던 것일까.

기세 좋게 앞서 달려 나가던 그는 어느 순간부터 짙은 어둠에 감싸여 혼자가 되었다.

앞으로도, 뒤로도 보이는 것은 어둠뿐이었다.

별의 위치로 방향을 가늠하려 해도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땅인지조차 구분이 가지 않았다.

호곽은 차라리 그 자리에 주저앉아 일행을 기다리는 쪽으로 마음을 먹었다.

이것이 진이라면 어차피 길을 찾으려 해 봤자 소용이 없을 터였다.

그렇게 앉아서 기다린 지 반나절.

더는 좀이 쑤셔서 못 앉아 있겠다 싶던 순간, 기척이 느껴졌다.

“누구냐!”

호곽은 삼첨양인도를 치켜들고 외쳤다.

이어서 어둠을 뚫고 나타난 것은……

“……이런 말도 안 되는……!”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가신들이었다.

호영장의 무인들이 그를 향해 창을 들이댔다. 눈에 초점을 잃고서.

기이한 것은 그들이 하나같이 붉은 옷을 입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마교의 사술이냐!”

호곽은 미칠 것 같은 심정으로 가신들의 창을 받아쳤다.

“정신들 차려라! 사술에 걸려 나를 못 알아보다니! 호영장의 이름이 부끄럽지도 않으냐!”

캉, 캉!

“우우…… 우우우…….”

“우아아…….”

사술에 씐 가신들이 괴이쩍은 소리를 냈다. 웃음소리 같기도 했고 울음처럼 들리기도 했다.

“뭐라는 거냐! 다들 벙어리라도 된 게냐!”

카앙! 챙!

예순이 넘는 창은 끝이 없을 듯했다.

한 가문의 무공을 쓰는 그들은 서로의 약점을 너무도 잘 알았다. 호곽이 부친으로부터 사사한 창법은 가신들의 것과 다르다고 해도 이미 너무 오래도록 한솥밥을 먹어 온 이들이었다.

게다가,

“제발! 내 손으로 너희들을 죽이게 만들지 마라!”

가신들을 향해 살초를 전개할 수는 없었다.

“크읏!”

계속 방어적인 자세로 있던 호곽은 결국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망설이듯 이어지던 가신들의 공격은 호곽이 제대로 대응을 하지 않자 점차 무자비한 살초로 변해 갔다.

등이 베이고 발목이 베였다. 호곽의 전신이 피로 젖어들었다.

“이 정신 나간 놈들 같으니…… 나중에 분명 후회하렷다.”

호곽은 어금니를 질근 물고는 삼첨양인도를 휘둘렀다.

카각!

삼첨양인도가 가장 앞에 있던 창끝을 잘라 냈다.

창날이 사라진 창은 뭉뚝하고 길쭉한 봉이 되었다.

“하앗!”

호곽이 신형을 솟구쳤다.

잘린 창을 도약의 축으로 삼은 호곽의 몸이 순식간에 가신들을 벗어났다.

츳!

발목이 길게 베였지만 호곽은 상관하지 않고 앞으로 달렸다.

“우우우!”

“우우……!”

가신들이 몸을 돌려 호곽의 뒤를 쫓았다.

“빌어먹을…… 어서 길을 찾아야 해.”

호곽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발목에서 떨어지는 피가 그림자를 대신해 어둠 위로 궤적을 남겼다.

* * *

“이가주님!”

남궁완은 초조한 얼굴로 남궁진현을 불렀다.

“어디 계신지요! 이가주님!”

섬격검에 대한 세가의 신뢰는 절대적이었다. 그가 팔을 잃은 지금에도 마찬가지였다.

남궁세가가 무림맹에 반기를 들기로 한 것은 천하제일쾌검의 팔을 가져간 데 대한 복수의 의미였다.

그래서 남궁완도 기꺼이 성도행에 참여했다. 그는 누구보다 더 복수심에 불타 있었다. 허나 복수도 정작 남궁진현이 무사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는 것이다.

복수를 코앞에 둔 상태에서 그는 남궁진현을 잃어버렸다.

이곳이 마교의 소굴임을 감안한다면, 단지 길을 잃은 정도로 끝날 일이 아닐 것이다.

“이가주니임!”

때마침 등 뒤에서 낯설지 않은 음성이 들려왔다.

“섬격검을 놓쳤어?”

남궁완이 홱 등을 돌렸다.

기묘한 자색의 운무를 헤치며 저벅저벅 걸어오는 것은 친우인 황보가의 소가주, 황보곽이었다.

“아…… 거기 있었군! 혹시 다른 사람들은 어디 있는지 아나?”

“나도 몰라.”

황보곽의 모습이 완전히 드러났다.

남궁완은 그에게서 기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자색 운무가 너무 짙은 탓일까. 그의 눈동자에도 자색이 비치는 듯했다.

“섬격검은 왜 놓쳤어?”

남궁완은 긴장한 손끝을 검의 손잡이에 올려놓으며 대꾸했다.

“그야 다른 사람들처럼…… 그러는 자네는? 일행은 어떻게 했나?”

“놓친 게 확실해?”

“무슨 말을 하려는 건가?”

황보곽이 입으로 한 움큼의 자색 입김을 내뿜었다. 다음 순간 입김은 비웃음이 되었다.

“섬격검이 널 버린 게 아니냐 묻는 거야. 너는 늘 기대에 못 미치는 인간이었으니까.”

챙!

남궁완이 칼을 뽑아 들었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나!”

“생각해 봐. 지금 남궁세가에 섬격검을 대신할 만한 인물이 있는지. 섬격검의 아명은 알아도 남궁가주의 이름을 모르는 자가 태반인 것을. 그런데 너는 어떻지? 네가 남궁세가의 소가주라 불릴 자격이 있나?”

“자네가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너는 죽었다 깨어나도 섬격검이 될 수 없어. 섬격검도 그런 너를 한심해하고 있을 거다. 그래서 이참에 너를 버린 것인지도 모르지. 너 같은 질자(姪子)는 진작부터 필요 없다 여겼을 테니.”

“이익! 닥쳐! 자네가 뭘 안다고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모두가 이미 알고 있는 얘기다. 너를 포함해서.”

“닥쳐! 닥치라고!”

스슷, 챙!

남궁완이 출수했다.

자색 운무를 가르는 새하얀 검은 세상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움직여 친우의 가슴팍을 갈랐다.

촤악!

핏물이 길게 튀어 남궁완의 얼굴을 적셨다.

“……윽, 왜……?”

“아……!”

탱그랑!

남궁완이 검을 떨어트렸다.

이상했다. 아무리 이성을 잃고 검을 휘둘렀다지만 살초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황보곽이 이렇게 허무하게 가슴을 내주었다는 게 말이 되지 않았다.

황보곽이 쪼개진 가슴을 부여잡고 남궁완을 바라보았다.

역류하는 피로 흠뻑 젖은 입술이 떨려 왔다.

“왜…… 왜 자네가 날…….”

“아, 으……”

“왜…… 날……”

……쿵!

황보곽이 쓰러졌다.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두 눈을 부릅뜬 채였다.

“으…… 으아아!”

남궁완이 비틀대며 친우의 시체에서 멀어지다, 결국 등을 돌려 마구 뛰어가기 시작했다.

남궁완의 등 뒤로 자색 운무가 휘몰아쳤다.

* * *

얼마나 헤맸을까.

길이 또 바뀌어 있었다.

안개는 여전했지만 그 외의 것들이 모두 달랐다. 가장 곤란한 것은 시간 감각이었다. 지강백은 지금 얼마나 흘렀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런 상태에서 남궁진현과 마주쳤다.

“남궁 대협.”

지강백은 숨이 막힐 듯 뻑뻑한 안개 밭 속에서 남궁진현을 불렀다.

그가 제 앞을 막아서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것도, 칼을 쥔 채로.

“너와 나 사이에 빚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느냐?”

남궁진현의 말에 지강백은 의아한 눈빛을 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남궁진현이 텅 빈 채 늘어진 소매를 흔들어 보였다.

“지금 그 빚을 받겠다.”

“…….”

그의 말은 지강백을 착잡하게 만들었다.

사천당문이 코앞이었다. 무림맹에 안전하게 둥지를 틀고 틀어박힌 원수를 곧 마주하게 될 참이었다.

“왜 하필…… 지금입니까?”

“이유가 필요치 않은 일이다.”

남궁진현이 싸늘한 목소리로 일갈했다.

“네놈 하나로 비롯된 일이다. 헌데 네놈은 아무것도 잃은 게 없지. 눈을 하나 잃었다 하나 그 눈도 돌려받지 않았느냐?”

“저는 사문을 잃었습니다.”

“나는 팔을 잃었다!”

남궁진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나는 두 번 다시 검을 쥘 수 없게 됐단 말이다! 그 심정을 네가 아느냐? 여전히 무공을 쓸 수 있는 네가 알 리 없다! 네가 감히 내 앞에서 무얼 잃었다 지껄이는 것이냐!”

남궁진현이 손에 쥔 칼을 팽개치듯 지강백을 향해 던졌다.

“이걸 갚을 길은 네 팔을 잘라 내는 것뿐이다! 팔은 팔로 갚아라.”

“…….”

지강백은 끓어오르는 한숨을 삼켰다.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남궁진현이 천하제일쾌검의 팔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과연 이 빚을 갚을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다.

제 팔을 떼서 줄 수 있으면 그리하리라 생각했다.

“……예. 드리겠습니다.”

그가 남궁진현이 팽개친 검을 왼손으로 쥐었다. 그리고 검날 아래 오른팔을 들이댔다.

시퍼런 칼날은 금방이라도 지강백의 오른팔을 잘라 낼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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