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천동지-106화 (106/346)

제106화 사자불귀(死者不歸)

“으어, 피곤하다.”

자시가 넘은 시각.

하오문주 문익상은 이제야 처소를 안내받아 침상에 누울 수 있었다.

아직도 의심을 거두지 않는 구파일방의 꼬장꼬장한 늙은이들을 상대하는 것은 그로서도 진이 빠지는 일이었다.

“무슨 늙은이들이 사기당해 죽은 귀신에 씌었나. 뭘 그리 꼬치꼬치 따지고 드는지 원…….”

무림맹의 수뇌부는 구파일방의 장로 집단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그들은 제 문파에서 큰소리 떵떵 치고 살던 버릇을 쉬이 버리지 못했다. 저보다 더 잘난 인간은 없었고 제 사문보다 더 대단한 곳도 없었다.

그들을 하나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지월뿐이었다.

하지만 지월은 코빼기도 내비치지 않았다.

철저한 외부인의 시선으로 무림맹의 수뇌부를 관찰한 문익상에게는 그들의 문제가 한눈에 보였다.

마교가 아니더라도 그들은 자멸할 것이다.

무림맹은 오로지 지월의 힘을 믿고 만들어진 조직이었다. 지월이 지월이 아닌 이상 잘 굴러가기란 애초에 글렀다.

“쯧쯧.”

낮의 일을 떠올리던 문익상이 혀를 찼다.

무림맹의 가장 큰 문제는 정보의 통합이었다.

옛 습관을 버리지 못한 구파일방은 소식을 주고받는 것도 예전 방식으로 했다.

이쪽이 아는 일을 저쪽은 모르고, 저쪽이 계획한 일이 이쪽은 감감무소식인 것이다.

중원 각지에서 정보를 보내오는 역할을 맡고 있는 개방이 가장 문제였다.

개방 내부에서 뭔가 잡음이 있는지 서로 말들이 달랐다.

그 와중에 사라지거나 비밀로 봉해지는 정보들도 많을 것이다.

무림맹이라는 허울 좋은 울타리 안에서도 그들이 하는 짓이라고는 제 밥그릇을 지키는 것뿐이었다.

“쯧…… 내 그러게 진작 소속을 명확히 하길 잘했지.”

문익상은 새로 사 아직 빳빳한 장포를 벗고 문가를 향해 말했다.

“거, 가서 세숫물 좀 받아 오너라. 이제 좀 자야겠다.”

호위 둘 중 아무한테나 한 소리였다.

그러나 대답이 없었다.

“……?”

문익상의 표정이 굳었다.

어쩌다 보니 마교의 이중 첩자 노릇을 하고 있는 이상, 무림맹은 그에게 험지였다.

발에 채는 돌멩이 하나마저 조심해야 할 판국이었다.

그런데 호위가 답이 없다는 것은…….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다른 방문객이 있다는 소리였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을지 알 수 없는.

문익상이 천천히 내력을 끌어 올리며 답했다.

“어차피 이 몸은 손님이고 그쪽이 주인이니 따를 수밖에. 들어오시구려.”

“감사합니다.”

알지 못할 방문객은 둘이었다.

* * *

“은밀히 찾아오셨으니 목적도 쉽지 않을 테지. 이 몸에게 무얼 원하시는 게요?”

문익상은 눈을 가늘게 뜨고 소림의 감원과 개방의 소방주를 바라보았다.

표정은 태연함을 가장했지만 기실 그의 눈은 아주 바쁘게 저 둘을 살피는 중이었다.

당대 제일의 후기지수 둘이었다.

특히나 개방의 소방주는 다음 대의 강호를 이끌어 갈 인물이라는 평이 자자했다.

본신의 무공보다는 그의 결단력이나 판단력을 우위로 치는 이들이 많았다.

그에 반해 소림의 감원은 아직 이렇다 할 능력을 드러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천하제일인의 단 하나 있는 직전제자가 의미하는 바는 컸다. 그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소림의 감원은 강호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인물 중 하나였다.

‘뭐. 그도 끈 떨어진 연 신세겠지만. 어쨌거나 천하제일기의 주인은 죽었으니.’

문익상은 이런 낌새가 혹시나 표정 위로 드러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다.

“마교에 관해 물을 것이 있어 왔습니다.”

범광 또한 표정 없이 덤덤한 얼굴로 답했다.

문익상이 짐짓 미간을 찌푸렸다.

“감원께서는 아직도 이 몸을 의심하시는 게요?”

범광은 그 말에는 가타부타 답을 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물을 것이 있어 왔습니다. 하오문주께서 가져오신 마교에 관한 정보에 석연치 않은 점이 있어 말입니다.”

“허허…… 석연치 않다니?”

“말 그대로입니다. 하오문주께서는 마교의 세력 일만이 지금 중원을 향해 모여들고 있다 하셨습니다. 마교가 중원 곳곳에 숨겨 놓은 세력이 또 일만이라 하셨고요. 그리고 마교의 소교주가 그들이 떠받드는 천신의 능력을 받아 반신(半身)이 되었다는 말도 하셨지요.”

“그렇소만?”

“증거가 필요합니다. 일만이나 되는 세력이 대체 중원에서 무엇을 하려 함입니까?”

하오문주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 문 모가 강호에 뼈를 담금질해 온 세월이 어언 삼십 해가 다 되어 가는 처지에 이런 취급을 당할 줄이야. 지금 감원께서는 이 몸이 거짓말이라도 하고 있다는 게요?”

“이제껏 마교는 중원침공 시 그만한 병력을 대동한 적이 없습니다. 게다가 반신이 되었다는 소교주는 어디에서도 목격된 바가 없습니다. 그런 자가 중원에 있기는 한 겁니까?”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본 사실이외다.”

“그 말을 무림맹에 와서 전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니, 이유라니? 이 몸이야말로 감원의 의도가 의심스럽구려. 강호가 아무리 넓다 한들 한 하늘 아래 있는 법 아니겠소. 마교가 저리 설치는데 내 한 하늘을 이고 사는 동도로서 어찌 좌시할 수 있겠소?”

“그렇다면 백룡호에서의 일은 어찌 된 것입니까? 어째서 하오문의 일을 마교가 도운 것인지요?”

“아니, 그거야 내가 누차 말했듯이 하오문은 어디까지나 그들의 정체가 마교인 줄 모르고……”

말싸움은 끝이 나지 않았을 것이다.

“집어치웁시다. 이런 의미 없는 짓.”

백사준이 불쑥 이렇게 내뱉지 않았다면.

범광과 하오문주가 그를 돌아보았다. 범광의 눈에 만류하는 기색이 스쳐 갔지만 백사준은 그것을 무시했다.

“마교의 소교주와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시오.”

“……으음? 그것을 지금 내게 묻는 게요?”

하오문주가 터무니없는 소리 말라는 듯 손사래를 쳤다. 표정이며 어투며 모두 능란했지만 백사준은 속지 않았다.

“내 얼굴의 상처가 보이시오?”

그가 하오문주를 향해 십자 모양의 상처가 있는 뺨을 들이댔다.

“하오문주라면 이 상처가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으리라 믿소.”

“허…….”

하오문주가 난처한 듯 눈썹을 구겼다.

그는 백사준의 것과 똑같은 상처를 본 적이 있었다.

소림의 계율원주인 백연의 뺨에도 저렇게나 생생한 상처가 있었다.

그리고 그 상처가 생긴 날, 백연은 종남의 첫째 제자에게 자신의 업을 사죄했다.

같은 상처로 묶인 이들이 짊어진 공통점은 하나였다.

종남이 마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

그 말은 지월이 아닌 자의 정체도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무림맹이 환영할 일을 만들어 놓겠다더니. 그게 이 말이었나.”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혼잣말을 중얼거린 하오문주가 백사준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무얼 어쩌시려는 게요, 개방의 소방주께서는?”

백사준이 입술을 얕게 물었다.

지금 내뱉는 말의 무게가 너무 무거운 탓이었다.

그러나 이미 각오했다. 더 이상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있을 수는 없었다.

“맹주는 맹주가 아니오. 나와 여기 계신 감원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맹주를 되돌릴 방법을 찾기를 바라오. 그 방법을 아는 유일한 사람은 마교의 소교주요. 그에게 방법을 물어야 하오.”

그 어떤 대가라도 백사준은 치를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것만큼은 진심이었다.

하지만 때로는 진심이 너무 늦을 경우도 있기 마련이었다.

“저런.”

백사준의 말에 문익상이 턱 끝을 설레설레 흔들었다.

“안타깝게도 그건 불가능하오만.”

* * *

“그…… 그럴…… 그럴 수가……!”

범광이 털썩, 소리를 내며 무릎을 꿇었다.

멍하니 바닥을 바라보던 그가 돌연 주먹으로 바닥을 후려쳤다.

퍽!

멀쩡하던 바닥이 움푹 파였다.

“흐, 흐…….”

그 위로 눈물이 떨어졌다.

범광은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꼈다.

문익상과 백사준은 그런 범광을 아무 말 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백 마디 위로가 소용없음을 아는 것이다.

지월을 되돌리는 방법 같은 것은 없었다. 죽은 자는 돌아올 수 없었다.

범광이 다시 고개를 든 것은 꽤나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

“……허면, 그들은 사천으로 오고 있는 겁니까.”

그들이란 지강백 일행일 것이다.

문익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이다. 아직 무림맹에 비할 것은 아니지만 여기저기서 뜻을 같이하는 이들이 합류하고 있소. 사천에 도착할 즈음이면 숫자가 제법 될 것이오.”

범광이 젖은 눈을 한 채 천천히 중얼거렸다.

“남궁세가, 호영장…… 제갈가 정도가 되겠군요.”

“소림의 계율원주도 있소. 백룡호에서 먼저 떠난 백연 대사가 분명 사천으로 향할 것이라 하셨소. 감원께서는 백연 대사로부터 아무런 언질도 듣지 못하셨소?”

범광의 표정이 흐려졌다.

“계율원주라 하셨습니까?”

“그렇소.”

하오문주가 백룡호에서 백연과 마주쳤을 때의 상황을 들려주었다.

백연이 지월이 아닌 자에 대한 사실을 알았으며 대승범천신공으로 지강백의 대환단 복용을 도운 사실도 얘기했다.

그런 말을 들을수록 범광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분이라면…… 누구보다 소림의 계율에 철저하신 분이니 분명 가만 계시지 않으셨을 텐데…….”

그 표정이 수상한 것은 백사준도 마찬가지였다.

“감원! 그러지 말고 말씀을 해 보시오. 백연 대사께서 어찌 되셨다는 게요?”

“소식을…… 전혀 듣지 못했습니다.”

“뭐라고? 그게 무슨 뜻이오, 감원?”

범광이 천천히 숨을 내뱉었다.

“계율원이 움직인 바가 없었다는 말입니다. 제가 계율원주를 뵌 것은 백룡호를 향해 떠나시기 직전이 마지막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아직 돌아오지 않으셨다는 말이오?”

“제가 알기로는 그렇습니다. 허나 하오문주의 말씀으로는 그분께서 사천으로 출발하신 것은 외려 하오문주보다 앞섰다 하시니…….”

그러니 불길한 감이 엄습하는 것이다.

진작 도착해서 계율원을 움직였어야 할 그가 아직 소식조차 없다는 게.

“기별을 넣어 보겠습니다.”

범광이 몸을 일으켰다.

“아직…… 오고 계시는 중일 겁니다. 혹 숭산에 먼저 들르셨을 수도 있고…… 다른 볼일이 있었을지도……”

“감원.”

더듬더듬 이어지는 범광의 말을 백사준이 끊었다.

“백 소방주님.”

“확인해 봅시다.”

“무얼 말씀입니까?”

“감원께서는 지금 백연 대사의 안전을 걱정해 이러시는 거잖소. 그러니 확인해 봅시다.”

“…….”

“만일 하오문주의 말대로 백연 대사가 그때 즉시 사천으로 떠나셨다면…… 내 생각에 대사의 행방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이는 맹주실을 차지한 그자일 것 같소.”

범광이 눈을 한 번 질끈 감았다.

부정할 말이 없는 까닭이었다.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결국 범광은 백사준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얘기를 마친 세 사람이 사 층 전각의 지하에 마련된 맹주실을 향해 은밀히 걸음을 옮겼다.

* * *

“빌어먹을.”

매캐한 연기를 비집고 욕설이 새어 나왔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원래 사천당문의 제독실이었던 지하실은 물건을 보존하는 데 최적의 장소였다.

빛이 없고 서늘했지만 습하지 않았다. 이곳에 놓아둔 독은 관리만 잘하면 십 년씩 독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맹주실을 이곳으로 정한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빌어먹을!”

문제는 온갖 공을 들여도 이 썩어 가는 몸을 더 이상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좀 해 봐! 파루나가 이렇게나 무능할 수가!”

용천무가 채희유를 향해 소리쳤다.

노기를 조금도 감추지 않는 얼굴은 이를 드러낸 짐승의 것 같았다.

“애초에 그런 상처를 입지 말았어야 한다.”

채희유는 무너져 가는 용천무의 껍데기를 보면서도 무감했다.

그녀는 지월이 어떻게 되든 별 상관이 없었다.

채희유의 유일한 관심사는 금천진혼대법이었다.

용천무는 저가 원하는 것을 기어코 얻어 낼 때까지는 결코 입을 열 생각이 없었지만, 지금으로써는 그것도 시간문제였다.

지월의 껍데기가 이렇게 급속도로 망가져 간다면 용천무는 별수 없이 다른 육신을 구해야 할 것이고, 그때는 어쩔 수 없이 그녀와 금천진혼대법을 공유해야 할 것이다.

채희유가 시취를 없애기 위해 피운 향불 속에 약초를 좀 더 집어넣었다.

그럴수록 연기는 더 자욱해졌고, 용천무의 살기 어린 표정도 적당히 감춰졌다.

채희유는 연기 사이로 용천무의 오른팔을 가리켰다. 양영천의 오뢰정인에 당했던 바로 그 자리였다.

“흡(吸) 계열의 무공은 상처를 가속화시키지. 그 시점에서부터 그 몸은 회복 불가능의 단계에 들어섰을 것이다.”

“웃기는 소리!”

쾅!

용천무가 무언가를 때려 부수었다.

그는 요새 매사 이런 식이었다.

“이 몸은 중원제일인이라고! 흡 계열이 뭐 어떻다는 거야! 이걸 썼던 버러지는 나한테 머리통이 박살 나 죽었어! 약해 빠진 인간이었다고! 그런 인간이 어떻게 이 몸에게 치명상을 남길 수 있느냔 말이다!”

“하지만 치명상이 된 것은 사실이지.”

화르륵.

채희유가 약초를 한 줌 더 집어넣었다.

온갖 독에 익숙한 그녀에게도 시취가 고약한 것은 사실이었다.

문득 어떤 향기가 그리워졌다.

종남산 어귀 어떤 곳에서는 마른 풀과 산바람과 맑은 구름과 고즈넉한 노을의 냄새가 나곤 했었다.

그런 온갖 좋은 냄새를 종종 그녀에게 안겨 주던 사람이 있었다.

“……그 몸은 더 이상 버틸 수 없다. 새 몸을 구해야 할 것이다.”

“새 몸? 그딴 게 어디 있다고!”

쾅!

또다시 무언가가 부서졌다.

“중원제일인의 몸을 대신할 만한 게 어디 있단 말이냐!”

그것은 채희유가 알 바 아니었다.

그녀는 대신 연기 사이로 손가락을 뻗었다.

“그렇게 말할 것이라면 좀 더 조심하는 게 나을 것이다. 피가 흐르고 있다.”

“뭐?”

용천무가 질겁한 채 손을 들어 보였다.

채희유의 말은 사실이었다. 방금 전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거나 부수면서 피부가 긁힌 모양이었다.

“이런 망할! 또 피를 잃게 생겼잖아!”

용천무가 발을 쾅쾅 굴렀다.

피를 마셔야 했다. 새 피를 채워 놓지 않으면 그가 시체라는 사실을 어떻게도 감출 수가 없었다.

“젠장.”

한동안 성질을 부리던 용천무는 간신히 화를 진정시키고 몸을 돌렸다.

그가 향하는 곳은 제독실의 한편을 모두 차지한 벽장이었다.

덜컹거리며 문을 열자 그 안에는 한쪽 손이 쇠사슬에 묶인 채 힘없이 고개를 기울이고 있는 백연이 있었다.

“아직 안 죽었군.”

백연이 눈을 가늘게 치켜떴다.

“저주받은…… 마교야. 이제 그만…… 죽여……라.”

“잘됐군. 소림의 땡중들은 다 이렇게 명이 질긴 모양이야. 아직 한동안은 더 피를 빨 수 있겠어.”

용천무가 백연의 어깨를 붙들어 훌쩍 들어 올렸다.

도무지 백연이라 할 수 없는 야윈 몸이 저항 없이 흔들렸다.

백연의 아랫배에는 손가락만 한 굵기의 긴 침이 박혀 있었다.

침은 정확히 단전을 꿰뚫고 있었다.

산공독을 이용할 경우 백연의 피를 마셔야 하는 지월의 몸에도 영향이 가는 것을 우려한 용천무가 이런 방법을 고집한 것이었다.

“기왕이면 살갗이 야들야들한 어린애가 더 좋은데 말이야.”

용천무가 드러난 백연의 어깻죽지를 덥석 씹으며 중얼거렸다.

“늙은이 살은 너무 질기단 말이지.”

살갗을 한 점 이로 물어뜯은 그가 상처 위로 솟구치는 피를 들이켰다.

“으…… 으으.”

백연이 미약하게 어깨를 뒤틀었다.

저항이라 부를 수도 없는, 그저 경련 같은 움직임이었다.

“아아…….”

백연이 남은 힘을 그러모아 탄식했다.

어리석었다.

혼자서 증거를 찾을 게 아니라 계율원을 먼저 움직였어야 했다.

백연은 사미승의 시체를 찾으면 그것이 돌이킬 수 없는 증거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전에 지월이 아닌 자에게 족적을 들켰고, 결국 이렇게 산 채로 붙들려 피가 빨리는 신세가 되었다.

입술을 뗀 용천무가 짜증스러운 얼굴로 백연의 뺨을 툭툭 건드렸다.

“영감. 너무 그렇게 인상 쓰지 마. 이런 짓을 해야 하는 나도 기분이 더러운 건 마찬가지라고.”

“이 저주받을…… 저주받은 마교야. 네 어찌 그 몸을……”

“저주를 받았으니 남의 몸이나 갖다 쓰고 있지. 아니까 그만 주절거려.”

휙!

용천무가 백연을 아무렇게나 팽개쳤다.

“으윽!”

백연이 신음을 토했다.

그러나 신음은 다른 소리를 가리기 위한 연막이었다.

퍼억!

“……?”

용천무는 처음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잘 인지하지 못했다.

백연이 설마 제 손으로 단전에 꽂아 놓은 침을 뽑아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을 노릴 줄은 몰랐다.

“…….”

그 침이, 지금은 용천무의 발등에 꽂혀 있었다.

백연은 구멍이 뚫린 채 피가 뚝뚝 떨어지는 배를 움켜쥘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웃었다.

“어디…… 더 버텨 보려무나. 그 몸이 네게 더는……”

“이 망할 땡중이!”

용천무가 손을 뻗어 백연의 목덜미를 움켜잡았다.

“으윽! 컥!”

목뼈가 부러지기까지 촌음도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 다른 소리가 섞여 들어오지 않았다면.

똑똑.

그것은 분명히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였다.

“방장. 계십니까?”

감원이 지월을 부르고 있었다.

이 기막힌 시차에 용천무의 표정이 한껏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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