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5화 침투 (2)
“젠장.”
호곽이 이를 갈았다.
흙먼지를 일으킨 것은 절벽 위에서 떨어진 커다란 바위였다.
얄궂을 정도로 크기가 딱 맞아떨어진 바위는 비좁은 협곡을 빈틈없이 막아섰다.
“여기까지. 더는 못 지나간다.”
절벽 위에서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강백이 말했던 백여 명의 기척도 한꺼번에 드러났다.
절벽 위에서 몸을 숨기고 있던 합천관의 무인들과 관주 곽원호였다.
그리고 곽원호의 옆에는 무언지 알 수 없는 물건이 하나 있었다.
크기가 사람 키만큼 되는 그 물건은 아름드리나무처럼 두꺼운 원형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전신이 철이었다.
기형적으로 큰 화포처럼 보이기도 했다.
호곽이 삼첨양인도를 한 바퀴 휘저으며 앞으로 나섰다.
“이 몸은 호영장주, 호곽이외다. 그쪽은 합천관주인 것을 알겠소. 길게 얘기는 안 하지. 우리는 반드시 이 길을 지날 것이오. 이를 막느냐 얌전히 비켜 주느냐, 그것은 합천관주께서 정하시오.”
끼릭.
호곽의 말에 답하듯 바퀴 소리가 들려왔다.
합천관주 곽원호는 커다란 바퀴가 달린 의자에 앉아 있었다. 방금 전 소리는 그가 바퀴를 움직여 자리를 옮겼다는 뜻이었다.
“내 장담하지.”
카랑카랑한 쇳소리 같은 음성이었다.
“이 길을 지나가는 것은 너희들 중 일 할도 되지 않을 것이다.”
곽원호는 다리를 쓰지 못했다.
듣기로는 무당의 속가제자 생활을 마치고 하산하던 날, 우연히 녹림도 무리와 시비가 붙어 양 발목을 잃었다 했다. 상대가 너무 많았던 것이다.
용케도 목숨을 건진 곽원호는 복수를 맹세했다.
그의 복수에는 딱 일 년이 걸렸다.
그 많은 녹림도를, 발목을 잃은 곽원호 혼자서 상대하기란 불가능했다. 그러나 그는 해냈다.
그 이유가 만혈락이라 불리는 저 원통이었다.
더는 무인이라 불릴 수 없는 몸을 하게 된 곽원호는 그 날 이후로 한 가지를 깨닫게 되었다.
사람을 죽이는 데 무공보다 더 효과적인 건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을.
십 년 죽어라 칼을 휘둘러 봤자 한 번의 칼질로 죽일 수 있는 사람의 숫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무기는 달랐다. 단 일격으로 수백 명이 비명조차 없이 불귀의 객이 되었다.
가만히 앉아서 그저 손을 한 번 움직이는 것으로 복수가 이루어졌다. 그때의 희열을, 전율을 잊지 못해 곽원호는 살상 무기의 길로 빠져들었다.
“이쪽이 정중히 청해도 꼭 피를 보겠다는 말이오?”
“마교의 주구들과 무슨 말을 더 나누겠느냐.”
마교라는 말에 호곽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말을 조심하시오, 합천관주. 인원은 이쪽이 더 많소이다. 그리고 곧 합류할 세력도 있소.”
만혈락의 차가운 몸체를 쓰다듬으며 곽원호가 이를 드러냈다.
세월을 거듭하며 만혈락은 점점 더 정교해지고 무서워졌다.
“처음 이 녀석이 죽인 인간이 모두 삼백예순둘이었지. 지금 이 녀석은 그때보다 다섯 배 더 강해졌다.”
곽원호의 눈이 번들거렸다.
그는 자신의 살상 무기가 한 번에,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는지 알고 싶어 온몸이 근질대고 있었다.
“그러니 걱정할 것 없다. 모두 죽여줄 테니!”
곽원호가 만혈락의 뒤편에 연결돼 있는 고리를 힘껏 눌렀다.
키이잉!
두꺼운 원통이 기괴한 소리를 내며 위로 솟구쳤다. 자세히 보면 받침대는 가만히 있고 몸체만 움직이는 것이었다.
“물러서십시오.”
어느샌가 지강백이 호곽의 앞에서 등을 보이며 있었다.
호곽은 그 말도 안 되는 움직임에 혀를 차면서도 고집을 피웠다.
“합천관이라면 호영장이 뒤질 까닭이 없네.”
“저자의 말은 거짓이 아닙니다.”
그렇게 말하는 지강백의 왼쪽 눈이 붉었다.
매끄럽게 다듬어진 쇠붙이 원통 속에 과연 무엇이 들었는지, 지강백은 그것을 보고 있는 것이다.
곽원호가 입을 벌렸다.
그것은 곧 닥칠 죽음을 눈앞에 두고 희열을 주체하지 못하는 미소로 보였다.
“죽어라!”
휘익,
무언가가 당겨지는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타다다닷!
맑은 하늘에 갑자기 새카만 빗줄기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만혈락에서 발사된 강궁의 비였다.
“이런! 다들 조심해라!”
호곽이 크게 소리치며 삼첨양인도를 치켜들었다.
머리 위로 쏟아지는 강궁의 숫자는 얼핏 봐도 기십이었다.
슷!
그보다 앞서 지강백이 움직였다.
“제게 맡기고 물러나십시오.”
“뭐라고? 그럴 필요 없,”
“죄송합니다. 잠시 빌리겠습니다.”
다음 순간 손이 허전해졌다. 호곽은 어느샌가 제 손에서 지강백의 손으로 넘어간 삼첨양인도를 보며 믿기지 않는 얼굴을 했다.
스르륵!
지강백이 그 긴 창대를 마치 검처럼 쥐었다. 그 언젠가 백연의 앞에서 선보였던 검막이 펼쳐졌다.
그때보다 훨씬 넓고 유연해진 검막이 너울대며 하늘을 덮었다.
“이……런,”
호곽이 삼첨양인도를 빼앗긴 그 자세 그대로 멈춰 섰다.
사실 움직일 이유도, 움직일 수도 없었다.
눈앞에 있는 사람이 저런 검을 휘두르고 있다면 그것을 보는 눈이 너무 바빠 다른 것을 할 여유가 없을 것이다.
한 번도 발을 내디뎌 본 적이 없는 경지.
머릿속에서만 생각하던 세계의 한 자락이 지금 펼쳐지고 있었다.
“이런 걸……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건가.”
호곽은 옆에서 들려오는 나직한 한숨 소리를 들었다.
남궁진현이었다.
남궁진현은 그와 비슷한 표정으로 지강백이 펼치는 검막을 바라보며 비어 버린 소매를 쓸고 있었다.
“아마도…… 내 팔은 저걸 보기 위했던 걸지도.”
남궁진현이 중얼거렸다.
호곽은 그 어처구니없는 말을 내뱉는 심정이 어떤 것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후드드득!
검막에 조각이 난 강궁의 잔해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하……! 마교는 마교인 모양이로구나!”
곽원호가 새파래진 눈으로 지강백을 쳐다보았다.
반면에 그를 마주하는 지강백은 무덤덤했다.
이제는 마교라는 말에 심장이 들끓거나 하지 않았다. 등 뒤에 저를 믿어 주는 사람들이 있어서일 것이다.
“물러나십시오. 그러면 위해를 가하진 않겠습니다.”
곽원호가 싸늘한 조소를 토했다.
“웃기는 소리! 만혈락이 고작 이 정도인 줄 아느냐!”
곽원호가 손을 치켜들었다. 그것이 신호인 듯했다.
쿠르릉!
묵직한 굉음을 뿌리며 좀 전과 마찬가지로 커다란 바위가 굴렀다.
이번의 바위는 뒤를 막았다. 지강백 일행은 협곡 한가운데 갇힌 셈이 되었다.
동시에 합천관의 무인들이 절벽 끝으로 뛰쳐나왔다. 그들은 전부 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
만혈락의 몸체를 작게 축소해 놓은 생김새였다.
“……망할!”
그리고 그 짐작은 틀리지 않았다.
파파팟, 팟!
백 명의 손에 들린 백 개의 무기에서 일제히 강궁이 발사되었다.
백 발, 곧이어 천 발이 된 화살들이 더욱 빠른 속도로 일행의 머리를 향해 소낙비처럼 쏟아졌다.
“이건 자네에게 맡겨 놓을 수만은 없겠네!”
호곽이 소리쳤다.
하지만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강백이 움직이고 있었다.
또 한 번 검막이 펼쳐지고, 또다시 강궁들이 조각이 되어 비산했다.
지강백 일행은 자연스럽게 검막 아래 모여들었다.
강기로 짜인 촘촘한 검의 궤적은 마치 든든한 지붕처럼 일행을 지켜 주었다.
“이때다!”
허나 곽원호 또한 그 점을 알고 있었다.
수백 발의 강궁을 헛되이 날려 보낸 것은 노림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천무망을 펼쳐라!”
촤르륵!
검막이 사라진 하늘을 안개처럼 뿌연 그림자가 덮었다.
눈을 한 번 깜박이자 그림자의 실체가 드러났다.
투명할 정도로 얇은 그물이었다.
“아앗, 저거! 저건 아교를 섞은 천잠사 그물인데……!”
적하조가 천무망을 알아보았다.
안개처럼 가볍고 얇은 그물이었다.
그러나 몸에 한 번 닿는 순간부터 살아 있는 생물처럼 차근차근, 질기게도 감겨드는 물건이었다.
일단 천무망에 묶이면 꼼짝없이 서서 남이 이 그물을 끊어 주길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질기기는 더럽게도 질겨서 어지간한 도검으로도 잘라 낼 수 없는 것이 천무망이었다.
“으…… 으하하!”
정확히 지강백 일행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천무망을 보며 곽원호가 기괴한 웃음소리를 터트렸다.
그가 만혈락의 손잡이를 당겼다.
머릿속에서 그림이 한 장 그려졌다.
천무망에 갇혀 마치 고치처럼 움쭉달싹 못 하는 인간들에게 수백 발의 강궁이 날아가 꽂히는 순간의 그림이.
곽원호가 저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침으로 젖은 입술이 번들거렸다.
“다들 지옥으로 보내 주…….”
그러나 곽원호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
이마가 갈라진 탓이었다.
그의 미간에는 너무 빨라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던 삼첨양인도의 끝이 살짝 박혀 있었다.
……스르륵.
겨우 반 치쯤 박혀 있는 삼첨양인도는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아래로 흘러내렸다.
슷.
그리고 다음 순간.
지강백의 신형이 날아와 삼첨양인도를 받아 들었다. 창대가 바닥에 닿기 전이었다.
지강백은 아직도 눈을 부릅뜬 채 제 죽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곽원호의 시체를 지나쳤다.
“으…… 으아아!”
너무 거짓말 같은 죽음이라 비명은 한 박자 늦게야 터져 나왔다.
“주, 죽어라!”
“마교를 죽여라!”
겁에 질린 합천관의 무인들이 지강백을 향해 닥치는 대로 강궁을 쏘아 댔다.
탓.
아주 가벼운 발걸음 소리와 함께 지강백의 신형이 강궁의 소낙비 속으로 섞여 들었다.
* * *
끼이익.
문이 열렸다.
“들어오십시오.”
“허…… 허허.”
문익상은 마침내 무림맹 본진의 출입을 허락받았다.
무려 이틀을 그 앞에서 기다린 이후의 일이었다.
구파일방의 늙은이들이 일 처리가 굼뜬 것이야 익히 알려진 일이었다만 이틀은 너무 심했다.
문익상은 헛웃음으로 불만을 돌려 말하며 사천당가의 땅으로 한 발을 들여놓았다.
안내를 맡은 나한승이 물었다.
“정문을 지나면 곧장 해검(解劍) 절차가 있습니다. 인원은 호위 둘을 포함, 총 셋이 맞으십니까?”
“그렇소만.”
정문을 반쯤 넘어서던 문익상이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그런데 말이오만.”
나한승의 걸음도 멎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해검 절차가 꼭 필요한 게요? 이들은 명색이 호위라 몸에 이것저것 챙기고 다니는 것들이 많은데…… 이를테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암기라든지, 금창약을 가장한 독이라든지. 그런 것도 모두 해검 시 내놓아야 하는 게요?”
나한승의 얼굴에 황망함이 스쳐 갔다.
그 당연한 것을 새삼 따져 묻는 이유가 설마 시비를 걸기 위함인지 궁금한 것이다.
“그러합니다.”
대답은 자연 단호해졌다.
“에이, 그러지 마시고. 기실 그것들은 하오문의 비기란 말이오. 이리 쉽게 비기가 들통 나면 그것은 더 이상 비기가 아니지.”
하오문주가 친근한 척 나한승의 소매를 붙들었다.
그러면서 소매 안에 무언가가 은근슬쩍 들어왔다. 살갗에 닿는 매끈한 감촉으로 미뤄 보건대 분명 은덩이였다.
“어떻게 안 되겠소?”
요컨대 강호의 돈벌레라는 하오문주가 나한승에게 뇌물을 주려 하는 것이었다.
“이 무슨 짓입니까!”
나한승이 하오문주의 팔을 뿌리쳤다.
툭!
은덩이가 떨어지고 그것을 본 하오문주가 눈을 크게 떴다.
“어이쿠야! 저 귀한 것에 흙이 묻네! 아니, 싫으면 말지 대체 왜 이 애먼 것에 화를 내시오?”
하오문주가 허리를 굽혀 은덩이를 집어 들었다.
문제는 그사이 걸음을 멈추지 않은 호위들이 저만치 앞서 갔다는 것이었다.
“대체 무슨……! 멈추시오! 저들을 붙들어라!”
휘익!
마음이 급해진 나한승이 호위들을 뒤쫓아갔다.
아주 잠깐의 틈이었다.
그 틈새로 일렁이는 뿌연 아지랑이 같은 것이 문익상을 스치고 정문을 통과했다.
난리를 피우던 것과는 달리 느긋하게 은덩이를 주워 든 문익상이 눈을 끔벅였다.
“거참. 보이지도 않는구먼. 과연 명불허전일세.”
명불허전이라는 말이 누구를 향하는 것인지는 하오문주만의 비밀이었다.
하오문주가 은덩이를 손에 꼭 쥐고 입맛을 다셨다.
“쩝쩝…… 이제 강호에 남은 것은 두어 벌이 전부라고 했던가. 저런 건 대체 얼마나 하련지.”
한 가지는 확실했다.
열두 벌 중 고작 두어 벌이 남아 그중 하나가 살막에 있다는 천잠투의는 이 은덩이가 백배로 불어난다 하더라도 살 수 없으리라는 것은.
앞서 갔던 호위 무인들은 곧 나한승들에게 붙들려 해검 절차를 거쳤다.
약간의 복수심이 포함된 듯, 평소보다 훨씬 더 꼼꼼하고 세심한 절차가 되었다고도 했다.
그렇게 하오문주 일행은 무림맹 본진으로 들어섰다.
* * *
방금 전 천잠투의를 입고 무림맹 안에 침투한 것은 살막주 적길연이었다.
그가 여기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청부를 하지. 대금은 삼남의 목숨.
하지만 간단하되 단순하진 않았다.
가장 모자란 손가락인 막내아들이 종남파 제자로 분한 마교를 죽이겠다며 집을 나섰다.
막내가 걱정된 적길연은 보다 못해 직접 아들의 뒤를 쫓았다.
마교와 무림맹이 얽혀 들어간 일이었다.
아들이 무언가 뒤가 좋지 않은 음모에 휘말린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을 도무지 누를 수가 없었다.
그렇게 멀리서 지켜본 아들의 행보는 뜻밖이었다.
아들은 음모에 휘말린 게 아니라 친우를 돕고 있었다.
처음에는 마교를 친우라 여기는 네놈이, 게다가 그 친우 쪽은 아들을 별로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것도 같았고, 하여간 네놈이 제정신이냐며 당장 붙들어 집으로 끌고 들어올 생각이었다.
그러나 하루 또 하루 지켜보는 동안 일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살막주 적길연은 당금 무림 전체를 휩쓸고 있는 거대한 사건의 본질을 그렇게 목도했다.
지월의 몸을 차지한 마교. 그것도 모르는 채 마교의 수족 노릇을 하고 있는 무림맹의 한심한 자태.
하나둘씩 무림맹을 이탈하는 자들.
이어질 싸움. 그런 것들을.
하나씩 진상에 접근해 갈 때마다 아들을 끌고 돌아오는 일은 쉽지 않아졌다.
무엇보다 살막주 적길연 스스로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살수업의 특성상 강호의 대소사와는 한 발짝 떨어진 채 지내고 있다지만 무림맹이 마교의 주구가 됐다는 것은 그로서도 뒷짐 지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의뢰가 들어왔다.
살막주는 자신이 숨어 있는 곳을 정확히 찾아온 용천휘를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그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었음을 적길연 또한 알고 있었다.
―청부 대상은?
―무림맹 내부에 아직 죽지 않은 시체가 하나 있을 것이다.
―시체?
적길연의 표정이 굳었다.
―그것은 혹, 이미 죽었다던 지월의 시체를 말하는 것이오?
아무리 시체가 되었다 해도 십 년 전에 이미 화경의 경지를 밟았다는 지월을 그가 상대할 수는 없었다.
이런 청부는 거절을 하는 게 마땅했다.
―누구도 볼 수 없는 곳에 감춰 둔 시체. 그 존재는 지월이 아닌 자만이 알 것이다. 그것을 없애면 된다.
용천무의 본체는 죽지 않았다.
그것은 처음 사천당문의 짐 속에 섞여 소림에 왔을 때처럼 관에 담긴 채 어딘가에서 미약한 숨을 쉬고 있을 것이다.
죽은 지월을 움직이는 것은 용천무의 혼이었다.
혼은 본체가 살아 있을 경우에만 지상에 머물 수 있었다. 반대로 본체가 죽게 된다면, 혼 또한 지상을 떠나 저승으로 가야 했다.
용천무가 보는 것만으로도 저주스러운 제 본신을 악착같이 곁에 놓고 보살펴야 하는 이유였다.
―……시체를 죽이라니. 이런 청부는 또 처음이오만.
죽이는 게 문제가 아니라 찾는 게 일이라는 소리였다.
무림맹 내부에서, 더군다나 지월의 코앞에서 무언가를 찾는다면 살수가 가장 적합할 것이다.
살수란 누구보다 은밀한 자들이므로.
―좋소.
그는 청부를 수락했다.
이제 와 발을 뺄 수도 없었다. 지금 강호란 그런 곳이 되어 버렸다.
―좋군. 무림맹까지 가는 길은 하오문주가 안내할 것이다.
용천휘는 가볍게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 어떤 동작에도 흔들리는 그림자가 없었다. 새삼스럽게 그가 이질적인 존재라는 것이 실감 났다.
―한 가지 물읍시다.
두려움과 경탄이 반반씩 뒤섞인 기분으로 살막주가 물었다.
―허락한다.
―왜 직접 나서지 않는 게요? 이 적 모의 눈에는 귀하께 그만한 힘이 없다고는 생각이 되지 않소.
들려오는 답은 이러했다.
―그림자에는 피에 얽힌 제약이 있지. 천신의 피는 귀하다. 그것이 그 어떤 그릇에 섞여 있다 한들.
짐작이 어려운 얘기였다.
외부의 사람이 천 년을 이어져 온 대명천교의 내부를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내 사형에게 마교라는 굴레를 묶어 두고 싶지 않다.
그 말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전면에 나설수록 종남과 마교의 연관성도 부정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는 나와의 거래를 완수할 것이다. 나는 그를 믿고 지켜보기 위해 아직 중원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적길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했소.
―삼남의 목숨은 내 이름으로 보증하겠다. 그는 내가 이 땅에 있는 한 아무런 해도 입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용천휘는 나타날 때와 마찬가지로 흔적 없이 사라졌다.
‘아무도 볼 수 없는 곳에 숨겨진 시체라.’
무림맹 내부로 숨어든 적길연이 머리를 쥐어짰다.
이 어딘가에 아직 죽지 않은 시체, 용천무의 본신이 숨겨져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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