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천동지-102화 (102/346)

제102화 축록자불견산(逐鹿者不見山)

“너는 네 눈으로 네 몸을 본 적이 있나?”

살려 주겠다던 지강백의 첫마디였다.

“무슨 뜻이야?”

되묻는 용천휘를 바라보는 눈은 여전히 짙은 붉은색이었다.

“여기.”

지강백이 용천휘의 단전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여기.”

그다음은 심장.

“그리고 여기.”

그다음은 미간 정중앙이었다.

“마지막으로 여기.”

마침내 손이 멈춘 곳은 백회혈이었다.

“거기가…… 왜?”

하나같이 치명적인 부위였다.

“두 개의 단전을 하나로 만들 때 나는 사지를 쓰지 못하는 상태였다. 기의 흐름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기 때문에 네가 준 눈으로 내 몸을 살폈다.”

“그런데?”

“침을 발견했다. 아주 가는 것을.”

“침이라고?”

“그래.”

힘으로는 움직이지 않는 침이었다.

사지를 쓰지 못하는 지강백은 침을 뽑기 위해 제 오른팔을 물어뜯었다. 이로 생살을 헤집어도 침은 꿈쩍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침이 너무 가늘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힘으로는 움직일 수 없는 침이었다.

지강백은 침에 진기를 주입했다. 그 가느다란 침은 무언가에 감싸이기라도 한 듯 그를 쉬이 허락하지 않았다.

몇 번의 시도와 실패, 그리고 반복 끝에 결국 침이 녹아 버렸다. 그런 뒤에 사지가 자유로워졌다.

정확한 원리는 알 수 없었지만 단지 침만이 아니라 무언가 다른 게 더해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마교에서 쓴다는 사술 중 하나일 것이다.

“내 몸에…… 혈주침이 박혀 있다고?”

“그래.”

“대체 언제…… 아니, 왜?”

호흡이 흐트러졌다.

새파랗게 질린 입술이 경련을 일으켰다.

“누가…… 대체 왜?”

“나는 모른다. 하지만 너는 알겠지. 그 침을 쓸 수 있는 자들 중에 있을 테니.”

“…….”

용천휘는 그간의 기억을 파헤쳤다.

그는 아주 많은 것을 기억했다. 첫 번째 걸음을 내딛던 순간과 처음으로 말을 하던 순간을 기억했다. 그 이후로 벌어진 모든 일들이 머릿속에 있었다.

그 어디에도 혈주침을 몸에 박은 기억은 없었다.

“설마…… 기억 이전의 일이라는 건가.”

그렇다면 아주 어릴 때의 일일 것이다.

그가 자신이 누군지 자각하기도 이전의 일일 것이다.

“교주……겠군.”

용천휘가 무언가를 씹어뱉듯 말했다.

“교주가 그랬어.”

수라안을 잃고 더 이상 천신의 그림자일 수 없는 교주는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해 왔을까.

사생아를 만들었다.

오로지 쓸모를 위해서였다.

그로 인해 사생아는 반쯤 죽다 만 괴물이 되었다. 손발을 쓰지 못해 제 이로 아비의 목을 물어뜯는 괴물이.

친자의 몸에는 저주를 담은 침을 박았다.

“내가 내 몸을 쓰지 못하도록.”

그래서 무공을 익히지 못하도록. 저주받은 몸이 되도록.

그도 모자라 사람을 시켜 죽이려 들었다.

그가 이제껏 죽지 않은 것은 요행이었을까. 아니면 호법위의 무책임한 방관이나 다를 바 없는 천신의 뜻이었을까.

“나는…… 나는,”

용천휘가 지강백의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지강백은 용천휘의 손목을 잡아 제 몸에서 떼어 냈다.

“한 가지만 생각해.”

그는 용천휘가 지금 하려는 말을 알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 아니 지금도 그는 용천휘가 있는 곳에 있었다.

숨을 한 번 내쉴 때마다 제 숨결이 칼날이 되어 돌아오는 그곳에.

조금도 원치 않았지만 지금 이 순간 용천휘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그였다. 용천휘 또한 그럴 것이다.

그래서 유감이었다.

그들이 단 한 번도 진짜 사제지간이었던 적이 없었다는 게.

“네가 살아서 해야 할 일.”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생각이 저를 잡아먹었을 것이다.

“그만한 각오도 없이 나를 끌어들이지 마라.”

“…….”

용천휘는 손목을 붙들린 채 지강백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그가 그 손을 뿌리친 것은 그다음 일이었다.

“잔소리는.”

미세하게 바뀐 표정에서 지강백은 그가 자신이 서 있는 곳을 이해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혈주침은 그냥 침이 아니야. 시전자의 의지로 이루어지는 거야. 내 몸에 침을 박은 인간이 정말로 교주라면 사형 때처럼 쉽게 없앨 수는 없을 거야.”

“해 보지.”

“과신하지 마. 그때는 사형이 운이 좋았던 걸 수도 있어.”

“입 다물어라.”

지강백의 손이 용천휘의 단전을 덮었다.

그 손이 유달리 따듯하다 느껴지는 것도 잠시, 곧 불이 붙은 것처럼 그와 닿은 모든 부분이 뜨거웠다.

“……윽,”

용천휘가 입술을 물었다.

지강백의 손이 은은한 푸른빛으로 물들었다. 태을신공도, 현천강기공도 아닌 기운이 이어서 지강백의 전신을 감쌌다.

몸속으로 들어와 혈주침을 건드리는 진기는 아주 미세했다.

그러나 그 뒤로 짐작할 수 없는 크기의 해일이 밀려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칠 년도 걸리지 않았을 거야.”

용천휘가 불쑥 입을 열었다.

진기를 운용하고 있는 지강백은 대답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서 꺼낸 말이었다.

“사형이 무연객을 마주할 수 있게 되는 날 말이야.”

“…….”

눈썹이 미묘하게 꿈틀댔을 뿐, 지강백의 표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용천휘는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무슨 말을 하든 지강백은 듣고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무연객이 칠 년이라고 말했다는 것을 알면 사부님은 화를 내셨을 거야. 내 제자를 우습게 보지 말라고. 어디 칠 년씩이나 걸리겠냐고.”

“…….”

“나도 그렇게 생각해. 육 년이면 사형은 무연객을 따라잡고 다시 오 년이면 무연객을 넘어섰겠지. 사부님이 몹시 뿌듯해하셨을 거야.”

“…….”

“……나도 조금은 그랬을 테고. 그 육 년 동안 나는 어떻게든 사형에게 대환단이나 만년설삼 같은 영약들을 먹였을 테니까.”

이쯤 되면 지강백도 묻고 싶었을 것이다. 너는 대체 왜 이런 말을 하느냐고.

“나는 그 몸이 부러웠어. 내가 가지지 못한, 앞으로도 가질 수 없는 몸이.”

“…….”

“그런데 내 몸에 혈주침이 사라지면, 나도……”

마음이 너무 앞섰던 탓인지 동요가 일어났다. 혈주침이 흔들렸고 용천휘는 울컥 피를 뿜었다.

“바보 같은 놈. 들뜨지 마라.”

지강백이 눈을 뜨고 말했다.

용천휘가 놀란 눈을 들어 올렸다.

“말을 할 수 있어? 운기 중에?”

“그렇게 됐다.”

“……젠장. 그렇다면 사형은 지금 입공(立功: 선 채로 운기조식을 하는 것)의 경지라는 건가.”

“조금 더 있으면 수공(睡功: 잠드는 중에도 운기조식을 할 수 있음)의 단계에 이르겠지.”

“젠장. 생각했던 것보다 한참은 더 빨라. 그렇게 간단히 말해 버리면…… 윽!”

실낱같이, 나비의 날갯짓처럼 들어오던 진기가 갑자기 거대한 노도(怒濤)가 되었다.

단전이 찢어지는 듯했다.

“그, 그만…… 우욱!”

용천휘의 몸이 앞으로 기울어지며 그가 한 움큼의 피를 울컥 뱉어 냈다.

피라기보다는 검붉은 돌 같은 느낌이었다. 실제로도 단단하고 형체를 지녔다. 그리고 몸 밖으로 나온 순간에도 뭉클대며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은 아직 살아 있었다.

용천휘가 기다시피 몸을 숙여 그것을 집어 들었다.

“시술자의 원념이겠군. 그간 내 몸속에서 내 피를 마시며 자라 왔겠지.”

팍!

용천휘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검붉은 덩어리가 파편이 되어 손을 더럽혔다.

“내 몸에 이딴 게 얼마나 더 들어 있다는 거야. 정말이지 지독하게도……”

지강백이 용천휘를 붙들어 일으켰다.

“지독하든 말든 한 가지는 확실하겠군. 없앨 수 있다는 것.”

그가 용천휘의 심장에 장심을 올렸다.

“여기는 더 위험할 것이다.”

경고처럼 지강백의 왼쪽 눈이 한층 짙어졌다.

용천휘는 그 손을 붙들어 제 심장 위에 대고 세게 눌렀다.

“해.”

실체를 알게 된 이상 더는 인내할 수 없었다.

“어서.”

지강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시작이었다.

* * *

다가닥다가닥.

성도를 향해 달리는 마차 위로 달빛이 곱게 부서져 흘러내렸다.

별은 꿈처럼 아득했고 곧게 뻗은 길은 고이 잠들어 고요했다.

다각다각.

말들의 걸음도 점차 느려졌다.

밤이 너무 호젓하기도 했거니와 고삐를 쥔 마부의 손도 점차 느려졌기 때문이다.

“우웅…… 우……”

반쯤 잠에 취한 마부가 뭐라고 웅얼대는 소리를 냈다.

잠시 후 마차 문이 열리고 소리 없이 다가온 누군가가 마부의 등을 툭 쳤다.

“우…… 우?”

적하조가 화들짝 놀라 졸린 눈을 들어 올렸다.

지강백이 그를 대신해 고삐를 쥐며 말했다.

“들어가서 눈 좀 붙여.”

“우…… 안 돼. 여긴 대로잖아. 위험하다고.”

“알아서 하겠다.”

“안 돼, 안 돼. 너야말로 좀 쉬어. 며칠 내내 잠도 못 잤잖아. 걔 살려 준다고.”

“나는 괜찮다.”

“그럼 나도 괜찮아.”

적하조가 계속 고집을 피우는 바람에 둘은 결국 나란히 마부석에 앉았다.

그새 정신을 차린 적하조가 말을 붙여 왔다.

“그런데 너는 괜찮아?”

“괜찮다고 했다.”

“아니, 그거 말고.”

“그럼?”

“너는 쟤한테 복수해야 하잖아.”

“…….”

친근함이 뒤섞인 적하조의 말은 지강백을 침묵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난 안 했으면 좋겠어.”

지강백은 이번에도 침묵했다.

대답을 기대한 게 아니라 그저 제 말이 하고 싶었는지 적하조의 말은 혼자 계속 이어졌다.

“쟤가 너 살리려고 많이 애썼어. 너는 모르겠지만.”

적하조가 틀렸다.

지강백은 자신이 모르는 것 이상을 짐작했다.

용천휘는 그에게 제 눈을 주어서는 안 되었다. 그 눈 하나로 믿었던 제 편이 모두 돌아설 정도로 대단한 것이라면.

용천휘가 어떻게든 되돌리고 싶어 했다는 것을 지강백은 그때 이해했다.

“쟤를 죽여도 네 눈은 남아. 쟤를 죽여도 쟤 때문에 벌어졌던 일을 되돌릴 수 없는 것처럼.”

“…….”

연이은 지강백의 침묵이 너무 무거웠던지 적하조가 고개를 흔들었다.

“에이, 아니야. 내가 뭘 안다고 이런 얘길 해. 네 심정은 너밖에 모를 텐데. 저기, 그래도…….”

적하조가 조심스레 덧붙였다.

“……나중에 쟤를 죽일 때가 되면, 그래도 내가 이런 말 했던 건 한번 기억해 줘. 쟤 그렇게 나쁜 놈 아닌 것 같아. 아, 물론 마교이긴 해도 말이야.”

“…….”

“저기, 근데 마교라고 다 나쁜 건 아니잖아. 요새 하는 것 보면 무림맹이 더하고 그러니까…… 종남을 멸문하게 만들었던 것도 무림맹이고…… 아니, 그건 물론 지월이 아닌 그놈이 시켰다지만. 그래도 시켰다고 하는 놈들도 나쁜 거잖아. 안 그래?”

“…….”

“아, 아니야? 그, 그럼 말고. 나는 네가 하자는 대로 할 거야. 걱정하지 마. 네가 쟬 기어코 죽인다고 해도 나는 네 친구야. 그럼. 당연하지. ……이렷, 달려라!”

다각다각.

마차가 속도를 높였다.

그러나 지강백 일행의 마차가 달릴 수 있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멈춰라!”

곧게 뻗은 일직선의 길을 빽빽하게 막아선 무인들이 있었다.

지강백은 그중 가장 눈에 띄는 병기를 알아보았다.

끄트머리가 세 갈래 날카롭게 갈라진, 길고도 묵직한 창.

삼첨양인도였다.

“더는 못 지나간다.”

묵직하게 귀를 후려치는 그 음성의 주인은 호영장주, 호곽이었다.

* * *

슷.

지강백이 지면으로 내려섰다.

그가 천천히 걸어 호곽의 앞으로 다가섰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호장주님.”

호곽이 대답 대신 지강백의 위아래를 훑었다. 할 수만 있다면 꿰뚫고 싶다는 듯 날카로운 시선이었다.

언제봐도 위압적인 거구는 손에 들린 거대한 창과 더불어 보는 사람을 질리게 했다.

“내게 줄 것이 있을 텐데?”

호곽의 질문에 답하는 지강백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는 아마도 남궁진현의 영웅건을 말하는 것이리라.

“잃어버렸습니다.”

호곽이 짙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잃어버렸다고?”

“한 달간 의식을 잃었던 적이 있습니다. 제 불찰입니다.”

“그걸 잃어버렸다고!”

쾅!

호곽이 삼첨양인도의 끝으로 땅을 찍었다.

지면이 움푹 파이며 흙먼지가 솟구쳤다.

“어떻게 그럴 수 있단 말이냐! 그게 어떤 물건인데!”

그 한 달간 지강백은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장문령부와 왕대환의 팔 토시도 함께 사라졌다. 그간 틈틈이 고치려고 애를 쓰던 채희유의 머리 장식도 더는 없었다.

복수를 마치면 찾아야 할 것이다.

“죄송합니다.”

쾅!

또 한 번 창이 애꿎은 지면을 후려갈겼다.

호곽이 입술 새로 호흡을 골랐다. 들끓는 분노가 피부 밖으로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누가 봐도 호곽이 분노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길을 비켜 주십시오.”

지강백이 그를 보며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호장주님은 더 이상 제 상대가 아닙니다. 비켜 주십시오.”

담담한 음성이었지만 진심이 실려 무거웠다.

호곽이 눈을 치켜들었다.

“……진심인가?”

“그렇습니다. 저는 호장주님을 해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 자리에 호영장의 무인 전부를 데려왔다. 이들 전부가 네게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소리냐?”

지강백은 호곽의 어깨 너머로 그가 데려온 무인들을 훑었다.

총 예순여덟이었다.

수라안을 쓸 것도 없이, 그들이 어떤 상대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

그가 이 길을 지나가는 데 한 시진이 넘지 않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하, 그래서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지나가겠다는 말이냐?”

“그렇게 해 주시면 감읍할 것입니다.”

호곽이 거칠어진 숨을 내뱉었다.

“그렇다면 너는 그 물건을 잃어버리지 않았더라도 내게 돌려주지 않았겠구나.”

아마도 상황이 그렇게 흘러갔을 것이다. 지강백은 망각독에 취한 한 달 동안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죄송합니다.”

“죄송? 웃기지 마라!”

부웅!

호곽이 삼첨양인도를 휘둘렀다. 지강백의 목을 향해서였다.

지강백은 피하는 대신 두 손가락으로 창날을 막았다.

물이라도 가를 듯 위협적이던 창이 고작 손가락 두 개에 가로막혔다.

호곽이 어처구니없어하면서도 이를 갈았다.

“……놈!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지강백이 곧 창을 놓았다.

“기연이 있었습니다. 그때 상대하셨던 제가 아닙니다.”

“나는 믿지 못하겠다!”

휘익, 캉!

다시 삼첨양인도가 움직였다. 지강백은 고개조차 숙이지 않고 창을 피했다. 천강북두보가 가장 빠른 속도를 냈다.

다음 순간 지강백은 호곽과 삼첨양인도의 중간에 서서 그를 마주 보고 있었다.

“……읏!”

호곽이 창을 회수하려 했다. 하지만 삼첨양인도는 마음먹은 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지강백이 오른손으로 창대를 붙들고 있는 탓이었다.

“저는 호장주님을 해하고 싶지 않습니다. 길을 열어 주십시오.”

“아니, 그렇게는 못 한다!”

호곽은 도무지 고집을 꺾을 기세가 아니었다.

지강백이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그럼 결례를 범하겠습니다.”

창대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두 사람을 말렸다.

“그러지 말게. 그 친구의 창을 부러트려 봤자 그 고집은 부러트릴 수 없을 걸세.”

“……!”

지강백의 눈이 커졌다.

호영장의 마차 안에서 누군가가 내려서고 있었다.

긴 푸른 장포를 두른 그는 까칠하게 야윈 중년의 사내였다. 큰 병을 앓고 난 듯 안색이 창백했다.

그리고 왼쪽에 비해 헐렁한 오른쪽 소매가 힘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남궁대협!”

지강백이 소리쳤다.

그는 소림의 탑림에서 헤어진 뒤로 이제껏 죽었다고 생각했던 남궁진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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