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8화 균열
―가만히 있어. 움직이지 마.
용천휘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말이었다. 그 뒤로는 뇌해혈을 통해 뜨거운 기운이 밀려들었고,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
용천휘가 마른 눈꺼풀을 깜박였다.
나른하게 잠겨 있던 동공 속으로 어둠과 별빛이 동시에 흘러들어 왔다.
“아직……”
적하조가 희미한 혼잣말에 반응했다.
“응? 뭐라고? 이제 정신이 들어?”
용천휘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내가 살아 있나.”
“나 참. 아주 잘 살아 있다. 독귀 영감이 그러는데 맥이 좀 더 당겨졌대. 혈색도 많이 좋아졌어.”
용천휘가 물었다.
“왜?”
“응? 왜긴 왜야. 백이가 뭘 했으니까 그렇지.”
지강백은 백연이 했던 것처럼 용천휘의 몸에 추궁과혈을 했다.
독귀가 억지로 먹였던 반쪽의 대환단이 추궁과혈을 통해 몸에 모두 흡수가 되었다.
스스로도 더 이상 나올 구석이 없다 생각했던 활기가 돌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대뜸 뒷목을 움켜쥐던 손길을 생각해 낸 용천휘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 바보가 이제는 거짓말도 배웠군.”
그 순간 용천휘는 지강백이 자신을 죽일 것이라 여겼다.
너무 급작스러운 일이라 이상하긴 했지만 지강백의 표정이나 동작은 가슴이 섬뜩했다.
그런데 추궁과혈이라니.
지강백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럼 지금은 사천당문으로 가는 길인가?”
“음? 맞아.”
창을 통해 새어 오는 별빛이 좀 전부터 흔들리고 있었다.
어디로 이동 중이라는 얘기였다.
마차 안에는 적하조와 용천휘 단둘이었다.
“마차는 사형과 독귀가 몰고 있나?”
“응. 내가 좀 전까지 몰다가 교대했어. 일단 얼굴은 가렸으니 괜찮을 거야.”
“그렇군.”
용천휘가 의자에 어정쩡하게 기대어 있던 자세를 바로잡았다.
제힘으로 앉아 있을 수 있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석 달이라 어림잡았던 남은 생이 조금이나마 늘어났을지도 몰랐다.
시간을 가늠하던 용천휘는 잠시 잊고 있던 초조함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하오문은? 아직 연락이 없나?”
“아직. 하지만 곧 올 거야. 하오문주가 함양이라면 문제 될 게 없다고 했어.”
그럴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용천휘는 아무리 빨라도 느린 기분이었다.
“사천에 가기 전까지…… 결론이 나야 할 텐데.”
석 달.
그 안에는 모든 것이 끝나야 했다.
어차피 죽어야 한다면 교의 주인으로서 죽어야 한다 생각했다.
“그다음은 없어.”
사천.
그곳이 마지막 장소가 될 터였다.
* * *
냐아아아옹.
살집이 투실투실 오른 고양이가 졸음에 겨워 앓는 소리를 냈다.
온몸이 꼬질꼬질한 애꾸눈 고양이는 반쯤 허물어진 낡은 담과 어울려 썩 그럴싸한 그림이 되었다.
정취라 하기엔 무리가 있었지만 하여간 어울리긴 했다.
금이 간 현판에 이제는 이끼마저 내려앉고 있는, 잔평객잔의 모습과.
“막내야.”
잔평객잔의 주인이 점소이를 불렀다.
사실 숙수까지 더해 이들은 모두 삼형제였다. 가업인 셈이다.
“왜 그러시는지요, 작은 형님.”
“내 요새 생각을 좀 해 보았는데 말이다.”
“말씀하시지요.”
“오늘로써 손님이 들지 않은 지 석 달째다.”
“아아, 벌써 그리됐습니까? 시간이라는 게 바퀴라도 달린 모양입니다. 한 번 구르기 시작하면 날이 갈수록 속도가 더 빨라지는 것이,”
객잔주가 점소이의 말을 끊었다.
점소이 노릇이 몸에 밴 탓인지 막냇동생은 한번 말을 시작하면 도통 멈출 줄을 몰랐다.
“그래 하는 말인데 이제 고만 장사 접을 때가 된 것 같지 않으냐?”
그 정직한 말에는 점소이의 유창한 언변도 멎게 하는 힘이 있었다.
“어…… 음. 뭐…….”
잔평객잔을 처음 시작할 때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동안 모은 재산으로 제법 목 좋은 곳에 큰 건물을 샀고, 섬서 땅 제일가는 숙수가 되는 것이 꿈인 큰형님의 뜻을 따라 삼형제가 의기충천하여 달려들었다.
그러나 큰형님의 뜻이 아무리 훌륭해도, 하늘이 재능을 내리지 않았음은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다.
오는 손님마다 맛없는 음식에 불평을 일삼으니 큰형님은 좌절하다 못해 아예 삐뚤어져 버렸다.
아우로 태어난 것이 죄인지라, 손님들보다 큰형님 비위 맞추는 게 우선일 수밖에 없었다. 자연 점소이며 주인이며 모두 태도가 거칠어졌다.
입소문은 날개도 없는 것이 뭐 그리 빠른지 인근에는 맛없고 불친절한 곳으로 이름이 알려졌다. 자연 손님은 발을 뚝 끊었고, 어쩌다 잘못 발을 들인 뜨내기들도 차 한 모금 마셔 보고는 기겁한 채 달아나기 일쑤였다.
그간 남은 재산으로 어떻게든 먹고 지냈다지만 이제는 그것도 한계였다.
“큰형님께서 저래 고집을 부리시지만…… 그래도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게 아니겠냐.”
“하이고, 정말이지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는 일입니다만 작은 형님께서 진심으로 그래 말씀하시면…… 이 아우는 따를 수밖에 없지요.”
슷, 탕!
점소이는 매우 익숙한 태도로 탁자 위에 슬쩍 내려앉은 파리를 손바닥으로 때려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대로는 우리가 큰형님이 하신 요리를 먹게 생겼다.”
그 말에 방금 전 일말의 자비도 없이 살생을 저지른 손이 부르르 떨려 왔다.
“그건 참…… 아니 될 말씀이지요.”
“그러니 큰형님께 이제 슬슬 말씀을 올려야지 않겠냐? 장사 운은 따로 있는 듯하다고 말이다.”
“그렇지요. 암요. 말씀 올려야지요.”
위잉. 탕!
두 번째 파리가 잡혔다.
둘째 형님이자 객잔주가 막내를 채근했다.
“파리 고만 잡고, 내친김에 말씀 올리는 게 어떠냐?”
“아이고, 그래야지요.”
그러나 고개만 열심히 끄덕끄덕할 뿐, 막내 점소이는 엉덩이를 뗄 생각이 전혀 없는 듯했다.
객잔주가 한숨을 툭 뱉어 내더니 본심을 꺼내 놓았다.
“막내야. 네가 가야지.”
“……예? 아니, 작은 형님. 어찌 그리 심한 말씀을 하시는지요?”
“그럼 설마 막내인 너를 놔두고 둘째인 내가 가야겠느냐. 지금은……”
숙수인 큰형님께서 재료 손질을 할 시간이었다.
그 말은 뼈도 단박에 두 동강 낼 수 있는 커다란 식칼을 신들린 듯 휘두르고 계신다는 말이었다.
점소이가 정색을 했다.
“작은 형님. 장사를 접겠다는 말씀은 거두시지요. 아직은 때가 아닙니다. 잔평객잔이 버텨 온 세월이 얼마인데 이대로 쉬이 문을 닫을 수 있겠습니까.”
“큰형님이 무서워 굶어 죽자는 말이냐?”
“그간 저희는 항상 모든 객들을 가족처럼, 진심 어린 친절로 대해 오지 않았습니까. 비록 음식은 참 맛이…… 부족했다 하나 그래도 한 밤이라도 묵어 본 적이 있는 객이라면 그 가족 같은 정성을 잊지 못하실 겁니다.”
“잊지 못하면?”
“언젠간 다시 찾아 주시겠지요. 그 날이 당장 오늘이 될지도 모르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럼 어쩌자는 말이냐?”
“딱 하룻밤만 더 기다려 보는 겁니다. 오늘에도 정말 손님이 오지 않으면 내일 다시 생각해 보는 겁니다.”
객잔주가 세 번째 한숨을 내쉬었다.
“막내가 참…… 큰형님이 어지간히도 무서운 모양이로구나.”
“혹 멀리서 오실 객이 있을까 마음이 불편해 그럽니다. 점소이라면 마땅히 그래야지요.”
점소이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니 저는 대문 앞이라도 쓸고 있겠습니다. 고 옆에서 거적때기 깔고 앉아 졸고 있는 거지도 쫓아내고, 겸사겸사 흉가라 낙서를 하고 가는 동네 애새끼들도 혼쭐을 내줘야겠습니다.”
그는 행여라도 작은 형님이 쓸데없는 짓 관두고 냉큼 큰형님께 다녀오라는 말을 할까 봐 빗자루를 챙겨 들었다.
“그럼 이만 저는 본분을 다하러 가 보겠습니다, 작은 형님.”
끼이익!
잔평객잔의 점소이가 석 달째 한 번 열려 본 일이 없던 대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의 바람은 헛되지 않았다.
일전에 한 번 묵은 적이 있던 손님이 가족 같은 친절과 배려를 잊지 못해서는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다시 잔평객잔을 찾았던 것이다.
“이곳이라면 방이 비어 있을 것 같아서…… 인원이 좀 많은데 괜찮겠습니까?”
점소이는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는 빗자루를 팽개치고 잔평객잔을 다시 찾은 손님의 손을 덥석 붙들었다.
“아이고, 그러고말고요! 어서 오십시오! 몇 분이라도 환영합니다! 이곳은 한 번 간 손님은 언제 어디서라도 다시 찾는 내 집 같은 숙소, 잔평객잔이올시다!”
그렇게 한 무리의 손님이 잔평객잔으로 들이닥쳤다.
폐업을 면했다고 기뻐하던 점소이에게 후회할 틈도 주지 않고서.
* * *
“그게 말이 되는 소리요!”
쾅!
주먹질 한 방에 탁자가 바스러졌다.
조방(灶房: 부엌)에 숨어 있던 점소이는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찔했다.
오늘 잔평객잔을 통째로 빌린 손님들은 사천으로 이동 중인 무림맹원들이었다.
그 먼 길을 계속 이동할 수는 없는 법.
당연히 중간에 적당한 잠자리와 식사가 이어져야 했다. 그게 오늘은 잔평객잔이었다.
하지만 잔평객잔으로서는 퍽 운이 없다 할 수 있었는데, 연이은 추격 실패와 내부적인 갈등으로 인해 무림맹은 지금 불붙은 탄구와 같은 상황이었던 것이다.
“추격대가 실패한 책임을 어찌 무당에 묻는가!”
탁자를 가루로 만들어 버린 자는 무당의 일장로, 태전진인이었다.
그는 무(武)보다는 오히려 도(道)에 더 뜻이 있는, 진짜 도사 같은 인물이라는 얘기를 내내 들어왔다.
그러나 오늘은 아니었다.
그는 무당의 일장로로서 기꺼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백룡호로 향했던 삼 차 추격대가 대패한 일을 놓고 무당의 책임론이 불거진 탓이었다.
제갈가의 사남, 제갈선기가 입을 열었다.
그는 아직 마흔도 되지 않은 애송이었다. 그러나 가주를 비롯, 위로 손위 형제들이 해를 입은 지금 가문을 대신해 나설 유일한 사람이 되었다.
“애초에 맹에 불복해 멋대로 전력을 운용한 것은 무당이 아니었습니까? 이번 실패의 원인은 마땅히 무당에 있습니다.”
“추격대를 무당이 죽였는가?”
제갈선기는 서슬 퍼런 무당의 일장로를 마주하며 표정을 바꾸지 않기 위해 애를 썼다.
그 역시 필사적이었다.
무당이 아니면 제갈가에서 책임을 져야 할 일이었다.
“성급한 움직임으로 맹의 행보를 노출시키지 않았습니까?”
“이백칠십의 인간이 고작 한 명에게 죽었는데 그 책임이 무당에 있다고? 이백칠십을 지휘한 인물이 누구였던가? 제갈가의 가주 아니었나?”
“그렇습니다. 그리고 태수진인이 이끄는 무당의 정예들이 앞서 전멸했지요.”
태전진인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지금 무당에 시비를 거는 겐가?”
“단 일인이 이백칠십을 상대할 수는 없습니다. 이번 패전의 원인은 사성진이었습니다. 본 가의 가주께서 진형을 짤 때 무엇보다 염두에 둔 것도 사성진이었습니다. 그런 것을 무당파가 멋대로 앞서 움직이는 바람에 대비가 흐트러진 것입니다.”
“헛소리!”
쾅!
이번에도 무언가가 또다시 가루가 되었다.
제갈선기는 눈에 힘을 주고 태전진인에 맞섰다.
“책임을 인정하시지요, 진인.”
태전진인의 입장에서는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그렇다면 그토록 사성진의 대비에 만전을 기했다던 제갈가의 가주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 말은 제갈선기의 입을 다물게 했다.
“…….”
“내 분명 얘기를 들었네. 백룡호에 도착한 뒤 제갈가주가 사라져 내내 보이지 않았다는 얘기를. 제갈가는 그 책임을 어찌 질 것인가?”
제갈선기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그것은…… 책임의 문제가 아닙니다. 가주께서는 누구보다 열심히 마교를 멸하는 일에 앞장서 계셨습니다. 마교를 상대하는 도중 행적이 끊긴 것은 마땅히 마교의 소행이라 여겨야 합니다.”
“사성진에 들어서기도 전부터 모습을 감췄다 하던데? 그것도 마교의 짓이란 말인가?”
“어쩌면 마교와 손을 잡은 하오문의 소행일지도 모르지요.”
태전진인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진짜 도인이라는 주위의 평과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표정이었다.
“하오문이라? 제갈가의 가주는 하오문에 당할 정도의 인물이었단 소린가?”
제갈선기의 표정이 변했다.
“하오문주 문익상은 우습게 볼 자가 아닙니다. 물론 이장로를 비롯한 정예들을 단신으로 맞서 모두 시체로 만든 마교의 인물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말입니다.”
태전진인이 노호를 터트렸다.
“감히 무어라 하는가!”
쾅!
그가 분을 이기지 못하고 발을 쾅 굴렀다.
바닥이 움푹 파였다. 일 층이라 망정이지 이 층이었다면 가뜩이나 낡아 삐걱대는 바닥에 아예 구멍이 나 버렸을 것이다.
“아이고, 저거…… 이러다 수리비가 더 나오겠구나. 이를 어쩐단 말이냐.”
그 광경을 훔쳐보던 점소이와 객잔주가 소맷자락을 물어뜯었다.
어찌나 걱정이 되던지 안색이 누렇게 뜨다 못해 허연 쌀뜨물처럼 되었다.
그사이 누군가가 태전진인을 말리려 들었다.
“그만하시오, 진인! 무림맹의 수뇌부가 모인 자리요. 화풀이를 하기 위함이 아니외다.”
“태수진인이 따로 움직인 것도 맹의 기강이 해이하기 때문이지. 지금 마교가 문제인 게 아니라 내부 단속부터 해야겠소만.”
말리려 들이부은 것이 물이 아니라 기름이었다.
“하, 무어라? 무당의 이장로가 마교의 목을 가져왔어도 어디 그런 소리를 했으려고! 무당이야말로 마교를 멸하는 데 가장 앞장섰다!”
쾅, 쾅!
또 무언가 여기저기서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탁자와 바닥에 이어 의자와 벽, 기둥도 무사하지 못할 모양이었다.
“으아아, 못 참겠다! 웬 놈들이 남의 집을 다 부숴 대고 지랄인 게냐!”
이제껏 조방에서 매상을 올릴 준비를 하고 있던 큰형님이 식칼을 들고 뛰쳐나왔다.
“아이고, 형님!”
“큰형님! 고정하시지요!”
객잔주와 점소이가 숙수를 말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장님이 아니라면 지금 무림맹의 수뇌부가 모여 서로를 물어뜯는 저곳이 용담호혈임을 모를 수가 없었다.
저 자리에 칼을 쥐고 뛰어들었다간 이 한목숨 고이 바치겠다는 뜻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객잔주가 점소이에게 말했다.
“막내야. 아무래도 안 되겠다. 이러다간 큰형님께서 먼저 일내시겠다. 네가 어찌 좀 해 봐라.”
“거 작은 형님은 이런 일은 항상 저를 시키십니다?”
“그럼 이깟 일에 명색이 주인인 내가 움직이겠냐. 점소이가 나서야지.”
“허, 허허…….”
기가 차서 헛웃음만 나왔다.
그러나 위로 두 형을 막내가 이겨 먹을 수도 없는 노릇.
점소이는 잔뜩 울상을 쓴 채 이 층으로 올라갔다.
이 층 객실에는 잔평객잔을 잊지 않고 다시 찾아 준 고마운 손님, 그러니까 말이 좀 통할 것 같은 손님이 있을 터였다.
* * *
“저어기, 손님. 혹시 안에 계십니까?”
점소이가 찾는 이는 범광이었다.
사실 그는 범광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다. 범광이 이곳에 들렀을 때는 무연객의 심복으로 꾸미고 죽립을 눌러쓴 차림새였으니 모르는 것도 당연했다.
단지 잔평객잔에는 항상 방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는 듯 말을 던졌기에 언젠가 왔었다고 미루어 짐작해 본 것이었다.
“거, 아래층에서 조금 소란이 났는데 말입니다요. 이거 어째 좀 나서서 말리지 않으면 단단히 큰일이 될 것 같아 말씀 올립니다요.”
“…….”
안에서는 답이 없었다.
“저, 손님? 좀 나와 보시지요?”
“…….”
점소이가 짜증을 냈다.
“이런, 니미. 사람이 좀 잘해 줬더니 만만하게 보나. 이 훤한 대낮부터 자빠져 자는 것도 아니고 왜 대꾸가 없어.”
그새 말조심하는 것을 잊어버린 점소이가 문짝을 발로 쾅쾅 두들겼다.
“여보쇼! 거 안에 없는 거 맞소? 아, 이런 니미. 이거 일행들 잔뜩 데려와 놓고는 돈 내기 싫어서 내뺀 거 아냐? 여보쇼! 계속 없는 척하면 내 이 문 열 거요!”
점소이가 문고리를 잡고 흔들었다.
“아, 진짜! 없으면 없다고 말을 하든지! 사람 짜증 나게…… 음?”
그때였다.
안에서 빗장을 건 듯 잠겨 있던 문이 스르륵 열렸다.
“아이고, 손님. 계셨습니까요? 저는 하도 답이 없으시기에 혹 무슨 일이라도 있나 걱정했지 뭡니까요.”
뻐금 입을 벌린 문틈으로 표정을 싹 바꾼 점소이가 고개를 들이밀었다.
“여기 이리 계실 게 아니라 어서 나와 보셔야 할 것 같습…… 킁킁. 그런데 여기 냄새가 왜 이래?”
그런데 코를 찌르는 괴이한 악취가 먼저 다가왔다.
점소이가 저도 모르게 한 발을 물러서며 중얼댔다.
“우리 객잔이 청소를 참 드물게 하긴 해도 이 정도는 아닌데…….”
그 순간 눈이 마주쳤다.
방 안에 있던 자와.
“아닌데…… 으악!”
그리고 그가 정신없이 비명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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