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9화 하오문주
“독공. 모시러 왔소이다.”
하오문의 등장은 몹시 자연스러웠다.
하오문주로 보이는 중년의 남자와 그를 보필하는 여섯의 무인들이었는데, 그들은 마치 까마귀 부인의 장례식에 조문객이라도 되는 듯한 태도였다.
하오문의 기척이 느껴지자마자 잽싸게 독귀의 등 뒤로 숨은 적하조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독귀가 하오문주는 쳐다보지도 않은 채 소맷자락으로 콧물을 닦았다.
“아, 모시긴 어디로? 우리 마누라가 여기 있는데. 나는 아무 데도 안 가련다.”
하오문주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쯧쯧…… 소중한 부인 아니시오. 어찌 이리 이름도 없는 야산에 묻으려 하시오. 선산까지는 아니더라도 번듯한 곳에 묻어드려야지.”
하오문주는 부드럽고 점잖은 음성으로 독귀를 달래려 들었다.
“내 이름난 풍수 선생을 찾아 아주 근사한 묏자리를 써드리겠소. 같이 가십시다.”
“…….”
그 말에 독귀가 힐금 고개를 들어 올렸다.
“여, 영감…….”
적하조가 불안한 손짓으로 독귀의 소맷자락을 붙들었다.
그가 하오문주의 말에 흥미가 생겼다고 하면 곤란해진다.
하오문도 무림맹 소속의 문파였다. 독귀야 모셔 간다 해도 주살첩이 걸린 마교의 소교주를 그대로 보내진 않을 것이다.
“냄새가 난다, 냄새가 나.”
이렇게 말한 독귀가 갑자기 몸을 쑥 일으켰다. 표정이 곱지 못했다.
“이 음험한 놈이 갑자기 혀에 꿀을 바르면 뒤에 뭔가가 있는 게지. 묏자리? 묏자리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평소에 우리 마누라한테 인사 한 번 안 하던 놈이 그건 또 무슨 수작이냐, 까악!”
“하하.”
하오문주가 뒷짐을 지고 웃었다.
“수작이라니. 너무 하시지 않소? 이리 멀리 모시러 온 사람에게.”
“그래. 그러니 수상하다는 게다! 등 뒤에 뭘 감추고 온 게냐!”
“너무하시오, 독공. 설마하니 내가 칼을 감추고 왔겠소. 우리 인연이 어떠한데.”
하오문주의 말마따나 둘의 인연은 쉬이 변질될 게 아니었다.
하오문주 문익상은 독귀 당지광에게 목숨 빚을 지고 있었다. 독귀가 하오문의 약방을 차지하게 된 것도 그 빚에 기인한 것이었다.
“바로 그게 문제지.”
독귀가 주름진 눈에 경계심을 세웠다.
“네놈이 어디 돈 안 되는 일을 할 인간이냐. 네 별호가 왜 금충(金蟲)이겠냐.”
“에이, 그건 너무 하지 않소. 이 문 모도 독공께서 모르는 인간미가 있다오. 내 어디 독공을 일개 문도로 대한 적 있더이까. 늘 이리 깍듯이 대우하지 않소.”
“보아하니 무림맹에서 한자리는 해야겠고. 그러자니 마교 놈 하나 붙들어 끌고 가는 게 제일 빠를 것 같고. 때마침 약방이 박살 났다는 소리는 들려오고. 그러니 냅다 엉덩짝 떼고 달려온 게지. 안 봐도 훤하다, 까악.”
“하하. 이것 참.”
웃음을 멈추자 표정이 싹 바뀌었다.
“그렇소. 내가 봐드릴 수 있는 것은 독공의 목숨 하나. 독공께서는 주살첩을 피하는 대신 얌전히 거기 두 마교 놈들을 내놓으시오.”
하오문주의 소맷자락이 부풀어 올랐다. 바람도 없는 밤에 머리칼이 흐느끼듯 나부꼈다. 문익상의 독문절기인 혈뇌풍이었다.
본색이 드러난 것이다.
“어, 어떡하지……?”
적하조가 아무 말 없는 용천휘에게 필사적으로 눈짓을 보냈다.
네가 하오문이 온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렇다면 대책도 있을 것 아니냐. 좀 내놓아 보지 않겠느냐.
그런 의미였다.
그러나.
“……으악! 하필 지금! 기절하면 어떡해!”
용천휘는 지금 의식이 없었다.
억지로 버티던 몸이 하오문주가 나타나기 직전 무너진 것이었다.
“지금 이놈들 팔아 내 목숨 구하라는 소리냐?”
독귀가 하오문주를 향해 앞으로 나섰다.
“쉽게 말하면 그런 게요. 독공은 목숨을 구하고 나는 문을 구하니 이 어찌 귀한 일이 아니겠소.”
독귀는 금방이라도 출수를 할 준비를 마친 하오문주와 그 뒤의 다섯 무인들을 보며 이를 드러냈다.
“그런데 어쩌냐. 우리 마누라는 무림맹 놈들이 죽였는걸.”
“그래서 설마 복수라도 하겠다는 게요? 무림맹을 상대로, 고작 까마귀 하나의 죽음을?”
설마가 맞았다.
그리고 독귀는 까마귀 부인을 고작 까마귀로 취급하는 인간들을 싫어했다. 마교보다 훨씬 더.
“그래, 내 이미 마음을 먹었다! 반드시 복수할 것이다!”
피웃!
남은 깃털이 빳빳이 치솟았다.
독귀가 팔을 휘두르자 깃털이 암기가 되어 하오문주를 향해 날아갔다.
“독공! 어리석은 짓 마시오!”
“네깟 놈이야말로 개수작 마라!”
하오문주가 몸을 솟구치고, 그 사이를 다섯의 호위 무인이 파고들었다. 일제히 병장기를 꺼내 든 그들이 독귀가 날려 보낸 깃털을 베어 냈다.
차라락!
독을 품은 깃털은 철이 다한 꽃잎처럼 허무하게 흩어졌다.
“이들이 이미 독공의 해독제를 복용했다는 것을 모르는 게요?”
휘릭!
흩날리는 꽃잎 위를 하오문주가 날아왔다.
그는 진작부터 독귀의 한쪽 다리가 성치 않음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나 역시 그렇지!”
문익상은 우수의 다섯 손가락을 모았다.
쐐액!
말 그대로 벼락을 닮은 수공(手功)이었다.
독귀는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품속에서 자그마한 호리병을 꺼내 들었다.
애초에 독이 안 통하면 독귀는 하오문주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가 데려온 다섯의 호위 무인도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독귀에게 남은 것은 단 한 수였다.
“내 마누라 앞이라 차마 이건 안 쓰려고 했지만! 사정이 사정인 만큼 써야겠다!”
독귀가 마개를 이로 물어뜯은 호리병을 문익상을 향해 던졌다.
호리병 안에 든 것이 어떤 가공할 독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감히 좌시할 수 없던 문익상은 날아오는 호리병을 혈뇌풍으로 낚아챘다.
파삭!
어처구니없게도 호리병이 깨졌다.
호리병 안에 독이 들은 것이 아니었다. 호리병 자체가 독이었다.
문익상의 손이 까맣게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독공!”
문익상이 즉시 내력을 돌려 오른손의 독기를 막으며 소리쳤다.
“도망쳐!”
독귀가 등 뒤의 적하조를 향해 말했다.
독귀는 시간을 벌고자 한 것이었다. 문익상은 분명히 해독제를 내놓으라 할 것이고 독귀는 그사이 적하조와 용천휘를 도망치게 할 셈이었다.
“살아남아! 그래서 꼭 내 마누라 원수를 갚아 줘라!”
문익상이 짜증을 토했다.
“하, 독공은 아직도 내가 사천당문의 이화침에 당해 죽어 가던 그 애송이로 보이시오? 설마 내 여기서 고작 두 놈을 놓칠까!”
문익상이 손을 치켜들었다.
“길을 막아라!”
“예!”
타다닷!
다섯의 호위 무인이 적하조와 용천휘를 뒤쫓았다.
적하조는 용천휘를 등에 메고 달려가는 중이었다. 신법만큼은 잘하는 그였다. 그저 도망치는 것뿐이라면 못 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저쪽은 다섯이었고, 양손이 자유로웠으며 무공의 사용도 훨씬 능숙했다.
“멈춰라!”
슈욱!
호위 무인 중 하나가 손을 앞으로 뿌렸다.
그러자 천잠사로 짠 투명하고 얇은, 그러나 아주 커다란 그물이 적하조와 용천휘의 등을 덮었다.
“으악! 하지 마!”
적하조가 천잠사 그물을 향해 비도를 휘둘렀다. 비도는 충분히 날카로웠지만 천잠사 그물은 비상식적으로 튼튼했다.
“잡았다!”
적하조가 몸을 움직일수록 그물은 살아 있는 것처럼 그들을 죄어 왔다.
곧이어 다섯의 호위 무인들이 그들을 에워쌌다. 그중 하나가 그물 끝을 바짝 쥐어 당기자 맨살에 천잠사가 파고들었다.
“으윽! 치사하다! 신법으로만 달아났으면 내가 절대 잡힐 리 없었는데!”
적하조가 억울함을 담아 외쳤다. 소용없는 짓이긴 했다.
그들이 잡히는 것을 보고 독귀가 꽥 고함을 질렀다.
“뭐 하자는 거냐!”
“인질이오, 보다시피.”
문익상이 손을 까닥이자 그물을 당기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으윽!”
그물 위로 당장 핏물이 배어 나왔다.
그 모습을 본 독귀가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뭐 하는 짓이냐! 관두지 못해!”
“어서 해독제를 내놓으시오.”
“안 된다, 까악! 지금 내놓으면 저놈들은 저 꼴로 무림맹까지 끌려갈 게 아니냐!”
문익상이 짧게 코웃음을 쳤다.
“독공에게는 선택권이 없소. 지금 죽느냐, 좀 더 나중에 죽느냐요.”
“이, 이걸…….”
문익상의 말은 거짓이었다.
그는 독귀가 해독제를 주는 즉시 용천휘의 머리를 잘라 낼 작정이었다.
맹에서 요구하는 것은 죽은 자의 머리통이었지 살아 있는 죄수가 아니었다. 굳이 위험부담을 얹을 필요는 없었다.
문제는 독귀가 얼마나 저항을 하느냐였는데 그도 큰 걱정거리는 아니었다.
독귀는 미친 인간이라는 것을 빼고 의외로 정이 많고 순진했다. 지금 당장이야 저한테 서운해도 어떻게든 말로 잘 달래면 될 것이었다.
그리고 냉정하게 말하자면, 독귀의 목숨 하나가 마교의 소교주보다 귀하지는 않았다.
문익상은 독귀가 너무 심하게 반발한다면 그마저도 죽일 각오였다.
“내 말이 영 믿기지 않는 모양이지. 일적(一蹟).”
“예.”
일적이라 불린 이가 나서서 칼을 눕혔다.
“목을 잘라라. 본보기로 하나만.”
“예.”
일적의 칼이 적하조를 향했다.
“읏!”
적하조가 필사적으로 몸을 버둥거렸다. 그러나 그럴수록 천잠사 그물은 죄어들었고 몸은 점점 더 꼼짝할 수가 없어졌다.
“아, 안 돼! 하지 마!”
독귀가 울컥 소리를 지르며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옛다, 가져가라! 놈들은 내버려 둬!”
문익상이 독귀의 손에서 해약을 가로챘다.
“확실한 거겠지?”
“아, 아니면 이놈 모가지를 냉큼 자를 게 아니냐!”
“그렇소, 독공. 이제야 평소의 현명함을 되찾으신 모양이오.”
당장 해약을 삼킨 문익상이 오른손에서 독기가 서서히 사라지는 것을 확인했다.
“틀림없군.”
이어서 그가 말했다.
“목을 쳐라.”
“뭐……? 약속이 틀리지 않느냐!”
문익상의 말은 독귀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주살첩이란 것이 그렇소. 보는 즉시 살(殺)이 원칙이오. 하오문의 앞날을 위해 독공이 양보하시구려. 무엇하느냐! 어서 치라니까!”
슷!
칼날이 들렸다.
일적은 정확히 용천휘의 목을 겨냥해서 칼을 내리그었다.
용천휘의 감은 눈이 꿈틀거렸으나, 그게 다였다.
용천휘 또한 코앞으로 닥쳐온 죽음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안 돼!”
온몸이 꽁꽁 묶인 적하조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저 타는 듯한 심정만 토해 놓는 그때.
“…….”
툭.
몸통에서 갓 잘린 목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어?”
멍하니 잘린 목을 보던 적하조가 고개를 번쩍 치켜들었다.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그새 몸을 돌려 두 번째 목을 가르고 있는 지강백이었다.
“마……맙소사.”
적하조가 입을 딱 벌렸다.
거짓말 같았다. 지강백의 손끝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
그것은 하오문주 문익상도 마찬가지였다.
* * *
“무림맹의 추격대가 가는 족족 몰살당하는 이유……가 여기 있었군.”
낭패였다.
지강백과 마주한 문익상이 눈썹을 비틀었다.
아마도 그가 천하무도회에서 구파일방을 놀라 자빠지게 했다는 종남의 첫째 제자일 터였다.
하오문주는 천하무도회에 참석할 만한 위치는 못 되는지라 얘기만 들어 두었다. 그래도 하오문의 정보력을 이용해 꽤 자세한 부분까지 알고 있었다.
후기지수 셋 중 하나라는 무당파 천일장을 일 수에 보내버린 것으로도 모자라 오장로인 태화진인마저 꺾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가 보인 무공은 모두 종남의 것이었고, 그렇기에 비무대를 주관하는 소림의 백연도 종남의 승리를 인정했다고 했다.
“과연. 주살첩을 목에 걸고도 달포가 넘도록 살아 있는 이유가 있었어.”
종남의 첫째 제자는 그가 생각하던 것과 전혀 달랐다.
처음에는 무당의 오장로를 상대한 얘기를 듣고 어느 정도 과장이 섞였거니 했다.
이제 고작 스물셋도 되지 않았다는 애송이가 무당파 오장로를 내력으로 정면 승부를 펼칠 수는 없었다. 아니, 그렇게 해서 무사히 살아남을 수도 없었다.
그러나 종남파 첫째 제자는 내력 대결을 했고, 살아남았으며, 심지어 승리하기까지 했다.
말이 안 되는 얘기였다.
원래 한 입만 거치면 덩치가 두 배로 커지는 것이 소문이었지만 그건 해도 해도 너무한다 싶었다.
그런데 지금.
막상 실물을 접한 그는 긴장으로 등골이 빠질 것 같았다.
저건 무당의 오장로를 상대하는 정도가 아니었다.
지금 자신이 호위로 데려온 게 하오문의 오적이 아니라 무당파 장로 다섯이라고 해도 같은 결과가 있었을 것만 같았다.
종남의 첫째 제자는, 벽이 느껴질 정도의 인물이었다.
그가 마교라는 말이 이제야 수긍이 갔다. 마교가 아니고서야 저 가공할 무위는 도무지 설명할 도리가 없었다.
하오문주 문익상은 제 목숨을 걸고 그와 맞서는 일은 피하고 싶었다.
하오문주에게는 항상 변하지 않는 신념이 있었는데, 그것은 돈이 안 되는 일은 하지 않는다는 것과 돈이 아무리 좋아도 목숨보다는 못하다는 것이다.
문익상은 애써 여유를 가장하며 주변의 기척을 살폈다.
이곳을 벗어날 방도를 찾으려는 것이었다.
“내 충고 하나 하지. 중원 땅에서는 하오문을 적으로 돌리지 않는 게 좋아.”
슷.
하오문주가 슬쩍 걸음을 옆으로 옮겼다.
그는 거리를 벌리는 척하며 교묘히 발을 놀렸다. 문익상의 발끝에서 작은 돌들이 소리 없이 차였다.
그는 지금 즉석에서 사성진을 구축하는 중이었다.
지강백을 진에 가둘 수만 있다면 그물에 갇힌 놈들이나 다리가 다친 독귀는 걱정할 게 없었다.
“그럼 아주 골치 아파지거든. 무림맹의 주살첩처럼 매섭게 휘몰아치는 맛은 덜해도 평생 번잡함에 시달리며 살게 될 걸세.”
스슷.
문익상이 빙긋 웃었다.
사성진이 완성된 것이다.
“하압!”
그가 돌연 내력을 끌어 올리며 혈뇌풍을 시전했다.
“받아랏!”
양손을 가슴께에 모아 허공을 긁듯이 교차시키며 팔꿈치를 쭉 뻗는 동작이 이어졌다.
그는 일부러 지강백이 아닌, 그 옆의 독귀를 노렸다.
“저놈이!”
독귀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지강백이 몸을 돌려 독귀의 앞을 가로막듯 오른팔을 뻗었다.
“이때다!”
문익상은 즉시 허초를 회수하고 천잠사 그물 끄트머리를 잡아당겼다.
애초에 목적은 그것이었다.
휘익!
천잠사 그물이 그 속에 묶인 적하조와 용천휘까지 끌어당겼다. 문익상은 그것을 사성진에 떨어트려 지강백을 진 안으로 유인할 생각이었다.
예상대로 지강백은 천잠사 그물을 낚아채기 위해 사성진으로 뛰어들었다.
“하하.”
문익상이 호탕하게 웃었다.
이제 진을 좀 더 보강한다면 이튿날 해가 뜨기 전까지는 지강백을 가둬 둘 수 있었다.
그사이 맹에 연락을 취해 지원을 얻어 내면 될 것이다.
그러나.
파스슥.
하오문주가 만든 사성진은 다음 순간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뭐……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지강백이 천잠사 그물을 쥐고 사성진 안에서 걸어 나왔다.
“……뭐?”
문익상은 자신이 무언가를 잘못 보았나 싶었다.
단 한 순간에 생문을 찾아 열고 아예 진을 없애 버린 지강백은, 좀 전과는 달리 왼쪽 눈에 피 같은 붉은색을 입고 있었다.
문익상은 수라안을 몰랐다.
사물의 구조를 한눈에 보는 그 눈이라면 세상의 그 어떤 진식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몰랐다.
툭.
천잠사 그물을 내려놓은 지강백이 말했다.
“목적이 있기에 무리의 하나 정도는 살려 두고 있습니다.”
“뭐라는 거냐?”
문익상은 당연히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다.
“그런데 없애는 게 낫겠습니다. 그쪽 말대로 번잡스러울 것 같으니.”
“누구…… 이 몸을? 하오문주를 없애겠다는 말인가?”
지강백이 가볍게 턱을 한 번 끄덕였다.
스스로 납득하지 못하겠다고 해도, 문익상은 시체가 되었을 것이다.
“안……돼, 사형.”
그때 깨어난 용천휘가 이렇게 말하지 않았다면.
“그자는…… 필요한 인……물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