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8화 밀회
기이한 광경이 펼쳐졌다.
정문에서 탑림을 지나 내원에 이르는 긴 길에 하나의 선이 그어졌다.
선을 이룬 것은 여기저기 쓰러진 나한승들의 시체였다.
저벅저벅.
그 선을 밟아 가는 여인이 있었다.
여인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한 곳을 향해 걸었다. 팔대호원을 지나 가장 안쪽에 있는 사방 한 장짜리 자그마한 방이 그곳이었다.
“저쪽이다!”
“막아라!”
나한승들과 무림맹의 무인들이 여인을 뒤쫓아 왔다.
여인은 소리 따위 신경도 쓰지 않고 계속 걸어갔다. 흐트러짐 없이 꾸준한 속도였다.
“멈춰라!”
나한승 중 하나가 여인의 등을 향해 덤벼들었다. 여인은 여전히 뒤돌아보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여인의 가느다란 몸을 온통 덮고 있던 검은 옷자락이 쑥 늘어난 듯 보였다.
“멈추라 했다! 더는 가지 못한다!”
나한승과 여인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나한승이 막 여인의 몸에서 일 장 거리 안으로 들어서는 찰나였다.
“으……윽!”
쿵!
나한승이 쓰러졌다.
비명이 터져 나왔다. 사지가 비틀렸다. 입에서는 검붉은 색 거품이 새어 나왔다.
나한승의 동공이 하얗게 뒤집어졌다. 마치 이 세상에서 가장 나쁜 악몽 속으로 빠져든 것 같은 모습이었다.
연달아 비명을 지르며 경련하던 나한승이 더는 견디지 못하고는 뒤틀리는 팔을 들어 스스로 제 천령개를 내리찍었다.
퍽!
그렇게 또 하나의 시체가 만들어졌다.
이제 여인과 방장실까지의 거리는 십여 장이 남았을 뿐이었다.
“사술을 쓰는 것이다. 절대 다가가서는 안 된다!”
사대금강이 도착했다.
여인의 사방 일 장 안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은 사대금강은 신형을 멈춰 서서 주먹을 쥐었다.
하체를 낮춰 자세를 단단히 잡은 그가 한 발을 쿵 구르며 권을 앞으로 내질렀다.
“하앗! 받아라!”
백 보 밖의 바위를 부순다는 권법이었다.
“……!”
여인의 태도가 비로소 달라졌다.
탁탁탁!
여인이 방장실을 향해 달렸다. 그러나 그 걸음은 저 강맹한 권풍 앞에서 너무 작고 느렸다.
“제이 권!”
쿵!
두 번째 권풍이 바람을 찢으며 날아들었다.
“아……!”
여인의 걸음이 흐트러졌다. 여인이 쿵, 넘어지며 바닥에 무릎을 찧었다.
여인의 몸은 곧 바위처럼 부서질 터였다.
그때, 마침 우우웅 대며 팔대호원의 벽과 바닥이 진동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내 손님이다!
방장실에서 번져 나온 불광선어가 허공을 쩌렁쩌렁 울렸다.
지월이었다.
“방장!”
사대금강이 동작을 멈췄다.
아무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두문불출 좁은 방에 처박혀 나오지 않는 소림방장과, 사술을 쓰는 정체불명의 여인은 도무지 연관을 지을 수 없는 무엇이었다.
그저 검은 그림자에 닿았다는 것만으로도 저 스스로 천령개를 내리찍은 나한승의 죽음이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일인 것처럼.
―썩 물러가라!
“…….”
사대금강이 떠났다.
해소되지 않은 의혹만이 그 자리에 남아 여인의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스르륵.
언제나 굳게 닫힌 채로 있던 방장실의 문이 열렸다.
“어서 드시지요.”
여인이 고개를 들었다.
고여 있는 피와 죽음의 냄새가 여인을 향해 와락 밀려들었다.
* * *
“이 어찌 된 일입니까!”
지월, 아니 용천무가 노기를 터트렸다.
대명천교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이름을 받지 못했다. 그저 무명이라 불렸다. 교주를 제 힘으로 죽이고 난 뒤에 그는 이름에 천 자를 넣었다.
“그간 대체 어디에 계셨던 겁니까! 오로지 파루나의 힘을 믿기에 시작한 대업이라는 것을 잊고 계셨습니까!”
온통 검은 천으로 살갗을 가린 채희유는 녹색 눈만으로 용천무를 응시했다.
“의심하는 자가 하나둘 생겨날 겁니다. 이어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겠지요. 그 전에 그의 목을 잘라야 교를 중원으로 불러들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파루나께서는,”
“그 몸은 언제까지 버틸 수 있느냐.”
“……뭐라고?”
채희유가 느닷없이 용천무의 말을 잘랐다. 덕분에 그의 노기는 잠깐 길을 잃었다.
“버려야 하는 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중원제일인의 몸을 쓸 수 있는 것은 언제까지더냐. 너는 언제까지 내게 도움이 될 수 있느냐.”
“…….”
용천무의 입술이 노기를 다스리지 못하고 푸들거렸다.
“사람이 변한 것 같군, 그새. 천신을 향한 예의 따위 잊어버렸나?”
“나는 파루나요, 너는 무엇도 아니다. 내가 네게 예의를 차릴 이유는 없다.”
“하, 가지가지 하는군.”
용천무가 팔을 뻗어 채희유의 목덜미를 홱 움켜쥐었다.
“내가 언제든 널 죽일 수 있음을 모르나? 이 뱀 같은 계집년이.”
채희유는 동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동요라는 감정을 아예 모르는 사람 같았다.
“오른팔을 못 쓰는구나.”
용천무의 어둑한 동공이 흔들렸다. 채희유가 잃어버린 동요가 그곳에 있었다.
“……그게 뭐 어떻다는 게냐. 나는 손가락 하나만으로 너를 죽일 수 있어.”
채희유가 눈짓으로 용천무의 오른팔 소매를 가리켰다.
“상처가 났을 테지. 그래서 지금껏 피가 새고 있겠지.”
“……!”
사자(死者)의 몸은 회복이 불가능했다.
지월은 그 날 죽었다. 용천무는 죽은 지월의 몸을 제 혼으로 부리고 있는 것이었다.
사천당문에서 가지고 온 또 다른 관에 담긴, 시체처럼 보이지만 살아 있던 그것은 용천무의 본체였다.
본체가 죽으면 혼도 사라진다. 용천무는 지월이 아닌 그 어떤 몸을 얻어도 반은 썩어 버린 제 본체를 짊어지고 다녀야 할 것이다.
반면에 혼을 담은 사자의 몸은 각별한 주의가 필요했다.
지금처럼 원치 않게 상처라도 생기면 두 번 다시 회복할 수가 없었다. 거죽이 상하는 정도라면 어떻게든 감출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월의 오른팔이 입은 상처는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지강백을 살리기 위해 양영천이 제 모든 힘을 쏟아낸 오뢰정인의 한 수로 인한 것이었다.
사자는 감각이 둔해진다. 특히나 통각은 인지가 불가능했다.
그때 용천무는 제 팔에 상처가 생기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분명 양영천을 완벽히 제압했으니 아무 문제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뒤로 용천무는 방장실 밖으로 나설 수가 없었다.
피가 계속 새어 나갔다. 지월의 광대한 내공으로도 모자른 피를 대신할 수는 없었다.
용천무는 고목처럼 말라비틀어져 갔다. 시취로도 모자라 피가 썩는 냄새를 도무지 감출 수가 없었다.
사정을 모르는 어린 사미승은 그에게 자꾸만 씻을 것을 권했다. 한번은 아예 물그릇을 가지고 들어와 버렸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용천무는 사미승을 붙들어 단매에 목을 꺾었다.
부러진 뼈가 살갗을 찢어 피가 흘렀다.
저와는 달리 갓 죽은 자의 신선한 피는 향기로울 정도였다.
용천무는 본능이 이끄는 대로 사미승의 목덜미에 이를 박고 피를 빨아 마셨다. 신선한 피가 채워지자 바싹 말라 가루가 떨어지던 죽은 피부에도 약간의 생기가 채워졌다.
그 아슬아슬하고 위태로웠던 과정을, 파루나는 마치 제 눈으로 보기라도 한 듯 말하고 있었다.
“몸을 바꿔야 할 것이다. 날마다 사람을 잡아먹는 꼴을 들키고 싶지 않다면.”
채희유를 붙든 용천무의 왼팔이 부르르 떨렸다.
그러나 그는 끝내 채희유를 죽이지 못했다.
그리 쉽게 죽을 파루나가 아니었다. 그녀를 상대하려면 이미 망가진 사자의 몸이 또 얼마나 끔찍한 부담이 생길지 모르는 일이었다.
게다가 몸을 바꿔야 한다는 파루나의 말도 맞았다.
문제는 과연 중원제일인의 몸을 누가 대신하느냐는 것이었다.
“그럴 만한 몸을 구해라.”
용천무가 자신 없다는 투로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더 이상 무림맹을 부릴 수 없을지도.”
“중원제일인의 뒤를 이어 무림맹주가 될 만한 자를 찾아야겠지.”
“그럴 만한 자가…….”
용천무가 생각에 잠겼다.
지월에게 미칠 만한 자는 없었지만 그 후임을 찾자면 개방주인 풍덕포가 가장 나을 것이다.
하지만 풍덕포는 지금 대명천교의 움직임을 살피는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용천무는 살아남은 용천휘가 교의 위세를 등에 얹고 제 목을 치러 오는 게 가장 두려웠다.
그 전에 용천휘의 목을 잘라 그 죄를 무림맹에 뒤집어씌워야 했다.
그래서 지금 당장 풍덕포의 몸을 취할 수는 없었다. 대명천교의 움직임에 가장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용천무였다.
“급한 대로 감원의 몸을 가져오는 것도.”
채희유가 말했다.
“내가 금혼진천대법을 거들겠다.”
“그야 당연히…… 아?”
용천무가 느닷없이 입술을 비틀었다.
“이제 보니 그게 이유였군. 그간 연락 두절에 대의를 거드는 시늉만 하던 파루나께서 갑자기 몸이 달아 여기까지 찾아온 게.”
용천무가 채희유의 몸을 가린 검은 천을 홱 낚아챘다.
“……!”
얼굴에 둘둘 감겨 있던 두꺼운 천이 먼지 조각이 되었다.
그리고 드러난 채희유의 얼굴은…….
“……저런.”
용천무가 벌레를 보듯 인상을 찌푸렸다.
“어쩌다 그리 망가지셨나. 그리 곱던 파루나께서.”
“…….”
채희유는 반쯤 허물어진 입술을 물어뜯으며 남은 천을 끌어 올려 얼굴을 덮었다.
“금혼진천대법이 필요하셨나 보군. 그 망가진 몸을 바꿔치기하기 위해서. 그런데 어쩌나. 우리 계약은 이 몸이 대천혈성이 되고 난 이후에 금혼진천대법을 넘기는 것이었다고 기억하는데?”
“……기억한다.”
“그런데 이렇게 나오시면 곤란하지. 내가 그 흉측한 얼굴이 딱하다고 금혼진천대법을 넘겨주면 파루나께서는 이 몸을 헌신짝처럼 버릴 게 아닌가.”
용천무의 말에 채희유의 녹색 안광이 울렁였다.
용천무는 손가락을 뻗어 채희유의 턱을 들어 올렸다.
“아니라면 좀 더 고분고분하게 굴어 보시지. 빳빳하게 고개 치켜들지 말고 말이야. 선녀처럼 고왔던 때야 네년이 어찌 굴건 내 눈에도 귀여웠지만 지금은 너도 주제를 알아야…… 읏!”
용천무는 채희유의 턱을 받쳤던 검지가 까맣게 녹아들어 가는 것을 보고 질겁을 했다.
“이런 미친! 내 손을……!”
“…….”
채희유의 녹색 눈이 점점 어두워지는 동안 손가락이 녹아들어 가는 속도도 더욱 빨라졌다.
이러다가는 손 전체가 녹아 없어질 것이다.
“악! 그만해! 그만두라고!”
“…….”
“뭐든 하라는 대로 할 테니! 제발!”
그제야 독기가 멈추었다. 손은 벌써 한 마디가 넘게 사라져 있었다.
용천무가 이를 갈며 채희유를 노려보았다.
“원하는 게 뭔데? 정말로 지금 금혼진천대법을 내놓으라는 건가? 나는 널 어떻게 믿고?”
“아직은 필요 없다.”
“호, 그러셔?”
채희유가 눈을 번뜩였다.
빛을 반사하는 그 녹색 눈이 꼭 뱀 껍질처럼 보여 소름이 돋았다.
“죽여야 해.”
“……음?”
“그를 죽여야 해!”
“아하.”
용천무는 그제야 파루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짐작했다.
“그 얼굴이 왜 그렇게 됐나 했더니…… 금제 때문이겠군.”
파루나가 소교주를 죽이려 했다. 하지만 몸에 걸린 금제 때문에 오히려 역으로 저런 꼴이 되었다.
그렇다면 모든 것이 이해되었다.
“이런이런. 내가 사과를 드려야겠군. 파루나께서 우리의 적을 죽여 없애기 위해 그토록 애를 쓰셨는데 내가 모르고 있었다니…… 좋아, 이 몸은 이제야 파루나가 진정한 우군임을 알아보았잖소. 진작 말씀을 하시지.”
채희유는 순식간에 태도를 바꿔 친근한 척 건네 오는 말을 무시했다.
“독이 필요하다.”
“독?”
“아주 많이. 최상의 것으로.”
무너진 몸의 균형을 찾아야 했다.
어쩌면 독인이 되던 그 과정을 온전히 반복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리고 채희유는 기꺼이 그럴 준비가 되어 있었다.
대명천교의 주인이 될 자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그를 죽이기 위해서.
“독이라…… 사천당문의 창고를 열어야겠군.”
썩어 가는 시취에 독취까지 더해 더욱 괴이하고 지독한 냄새를 풍기게 된 용천무가 몸을 움직였다.
“좋아. 가 봅시다, 나의 파루나. 이 지긋지긋한 절간을 벗어나는 것도 괜찮겠지. 그대와 함께라면.”
“…….”
채희유가 몸을 일으켜 용천무의 정수리에 입김을 흘렸다.
용천무는 위험천만해 보이는 그 자색의 독기를 꽃향기라도 맡는 것처럼 한껏 웃으며 들이켰다.
그리고 잠깐의 시간이 지나자 용천무의 몸에서 나던 끔찍한 악취는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하하. 역시. 파루나답군.”
이전보다는 훨씬 사람다운 몰골이 된 용천무가 채희유에게 손을 내밀었다.
“자, 그럼 가시지요.”
얼굴을 꼼꼼히 감싼 채희유가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한 시진 뒤.
무림맹의 본진을 사천당문으로 옮기겠다는 맹주의 결정에 따라 소림은 한바탕 난리가 났다.
* * *
야산에 내린 어둠은 슬픔처럼 고요했다.
독귀는 이제야 까마귀 부인을 땅에 묻어 주었다. 며칠 내내 까마귀 시체를 안고 있던 손에서는 비린내가 풍겨 왔다.
“마누라…… 잘 가시오.”
독귀는 끝내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처음보다야 많이 진정됐다 하지만 슬픔은 좀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갔을 뿐, 사라지지 못했다.
“영감…… 고생했어요. 부인도 이제 편히 쉬겠죠.”
적하조가 독귀의 여윈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들과 두어 발짝 떨어진 채 나무 밑동에 기대앉은 용천휘는 조그마한 무덤에 봉분이 오르는 것을 지켜보았다.
달빛이 어스름 콧날을 비켜 갔다.
그렇게 드러나는 용천휘의 얼굴은 시체보다 더 창백했다.
“아이고, 마누라.”
독귀는 축축한 봉분을 쓸며 마지막 슬픔을 터트렸다.
잠시 더 달래 줄까 망설이던 적하조는 그대로 등을 돌려 용천휘의 곁으로 다가왔다.
생각해 보면 독귀는 마음껏 슬퍼할 틈도 별로 없었다. 추격대를 피해 부상을 당한 몸을 살피고 추스르는 것만 해도 쉽지 않았던 것이다.
까마귀 부인의 시체도 며칠이 지난 지금에서야 묻어 줄 수 있었다.
“좀 내버려 두는 게 낫겠지?”
적하조는 눈을 반쯤 감은 용천휘를 향해 말을 건넸다.
용천휘는 대답 없이 계속 눈을 감은 채였다.
“뭐, 우리도 좀 쉬고. 그놈의 추격대. 진절머리 난다.”
지강백은 지금도 어디선가 추격대를 상대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해? 이대로 계속 도망칠 거야? 그럼 어디로?”
“…….”
용천휘가 계속 말이 없자 적하조가 짜증을 드러냈다.
“이봐, 대답 좀 하지? 이건 좀 너무 하잖아. 나도 생사가 걸린 일이라고.”
“…….”
“이봐!”
적하조가 용천휘의 어깨를 쳤다.
그리고.
……툭.
용천휘가 힘없이 밀려 옆으로 쓰러졌다.
“응? 얘가 왜 이래? 이봐, 이봐!”
적하조가 용천휘의 팔을 붙들어 맥문을 쥐어 보았다.
그제야 용천휘의 입술이 가늘게 열렸다.
“……흔들지 마.”
“엉? 너 안 죽었어? 안 죽은 거야?”
“더…… 괴로우……니까…… 흔들……지 마…….”
“어? 어어. 어, 알았어.”
적하조가 용천휘를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용천휘는 쓰러진 자세 그대로 입술만 달싹였다.
“좀 기다리면…… 누구든 나타날 거야. 하오문이든…….”
“하오문? 거기서 왜?”
“독귀는…… 하오문에도 중요한…… 인물이니…… 그리 쉽게 포기하지는 않을…… 거다.”
“아아, 그렇구나. 그럼 하오문이 나타나면 어떻게 할 거야? 하오문도 무림맹이야. 또 싸워야 되는 거야?”
“아니길…… 바라고 있…… 얘기를 나눠 볼…… 거야.”
“그렇구나. 그럼 하오문하고 얘기를 나누면 뭐가 어떻게 되는데?”
“그건 아직…… 말할 수 없어.”
“젠장. 치사해. 그런데 하오문에서 영감을 버릴 수도 있잖아. 그럼 어떻게 할 거야?”
“그건…… 안 돼. 다른 방법을 찾으려면…… 시간이 부족해.”
“시간이 부족해? 얼마나?”
“글쎄…….”
용천휘가 간신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잘하면 두 달. 혹은 석 달. 그 정도.”
“음……? 왜 그런 시간이 나오는 거야?”
“내 몸이 그렇게밖에 못 버텨.”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적하조가 새삼스럽다는 듯 용천휘의 창백한 얼굴을 살폈다.
시체 같았다. 시체처럼 창백했다.
“너…… 설마 석 달 뒤에 죽는 거야?”
“…….”
그렇다고 하지 않아도 답은 명확했다.
용천휘는 죽어 가고 있었다.
소림을 벗어나기 위해 준비되지 않은 적혈대법을 무리하게 쓰면서부터 예정된 결과였다.
약사 역할을 겸하던 파루나를 버렸다는 것은 그 결과를 가속화하는 일이었다.
“그 전에…… 결말을 봐야 해.”
용천휘가 시간을 가늠하듯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칼날처럼 얇은 초승달이 저를 보는 인간의 목을 칠 것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그리고, 마치 용천휘의 남은 생을 위로하듯 그가 예고한 세력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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