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천동지-85화 (85/346)

제85화 각성 (1)

“저 미친 거지 놈이!”

독귀가 울분을 토했다.

넓적다리가 피로 물들어 있었다.

“설마하니 저놈이 진짜로 화살을 날릴 줄이야! 감히 하오문의 약방에 대고!”

협상은 결렬이었다.

독귀가 무슨 말을 해 보기도 전에 적하조가 “그럴 수 없어!”라고 소리치며 대뜸 탄구를 던져 버렸던 것이다.

살막의 비기 중 하나인 탄구는 위력적인 효과를 불러왔다.

담이 우르르 무너지며 궁대의 일부를 빠르게 무력화시켰다.

―하, 이렇게 나오시겠다? 몹시 유감이외다, 독공. 이로써 독공께서는 무림맹의 적이 되셨소.

그새 눈빛이 날카롭게 갈린 백사준이 치켰던 손을 내렸다.

그게 신호였다.

파파파팍!

화살이 날아들었다. 독귀와 적하조가 다급히 몸을 피하는 사이,

―제이 대, 안으로!

콰당!

대문이 부서져 나가며 한 무리의 추격대가 들어섰다.

그때부터 화살과 각종 병기와 탄구와 독이 오가는 난전이 펼쳐졌다.

독귀는 정신이 없는 그 와중에도 적하조에게 빽 고함을 지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놈이 그냥! 쥐뿔도 아닌 게 성질만 급해서는! 내가 저놈하고 말씨름을 좀 하고 있으면 다리 못 쓰는 놈부터 후딱 옮겨 놓지 않고서!

―아, 그런 거였어요? 나는 영감이 주저주저하기에……

―떽!

백사준이 타구봉을 휘두르며 달려왔다.

―고작 둘로 뭘 어쩌려고? 얌전히 투항하시오, 독공. 그럼 귀 문파와의 관계를 보아 목숨만은 살려드리지.

독귀가 왈칵 짜증을 냈다.

―저들 급할 때는 이래저래 잘도 부려 먹더니, 내가 외상 준 놈 돈 내놓을 때까지 좀 건사한다고 해서 이리 몽둥이를 휘둘러 대?

―그놈들이 마교인 걸 어쩌겠소.

―아, 퍽도 그렇겠다. 그놈 데려온 게 거지 네놈인 걸 그새 잊었냐?

독귀에게도 아직 다 드러내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그는 새장 문을 열어 까마귀를 풀어 놓았다.

―마누라! 가서 이놈들 좀 골려 주구려!

―까악!

까마귀가 푸드덕 날아올랐다.

까마귀 부인이 향한 곳은 지붕 위였다. 까마귀 부인은 기왓장 하나를 골라 부리로 톡톡 쪼더니 그것을 아래로 떨어트려 버렸다.

그리고,

그으으응!

내원의 바닥이 아래로 움푹 꺼졌다.

―으악!

―기문진식이다!

돌을 깔아 놓은 바닥이 사라지자 그 밑에는 그물이 처진 커다란 구덩이가 나왔다.

미처 대응하지 못한 추격대가 구덩이 속으로 빠졌다. 그물은 얄궂게도 유리 가루를 잔뜩 먹인 흉기였던지라 떨어지는 속도를 더해 발목이 잘리거나 목이 베이거나 했다.

―흥! 하오문을 우습게 보다니. 대가리가 열두 번도 잘리고 남을 일이지.

백사준이 이를 갈며 소리쳤다.

―더는 사정을 봐드리지 않겠소!

―아, 사정 봐주는 놈이 이딴 짓을 했냐?

적하조는 그때 마지막 탄구를 손에 쥐고 있었다.

―영감! 다른 건 뭐 없어요? 나 더는 못 버틸 것 같은데!

독귀가 소매를 크게 휘둘렀다.

소매에 촘촘히 꽂아 두었던 깃털이 우르르 빠지며 마치 비도처럼 날아갔다.

깃털은 독귀의 전생을 증명해 주는 것만이 아니었다. 하나하나가 맹독을 묻힌 암기였다.

―피해라!

―흥. 꼴좋다.

간격을 벌린 독귀가 적하조에게 눈짓을 했다.

―안으로 들어가자! 너 먼저 움직여라!

―알았어요, 영감!

적하조가 날렵한 신법으로 몸을 돌렸다. 무림맹의 추격대도 삽시간에 간격을 좁히며 달려왔다.

독귀가 양팔을 들어 올렸다. 온몸의 깃털이 바짝 솟구쳤다.

―독이다! 조심해라!

백사준이 추격대의 앞을 가로막으며 나섰다. 타구봉을 머리끝까지 치켜든 그가 독귀의 우측을 노렸다. 좀 전에 한 차례 공격으로 깃털이 사라진 곳이었다.

―내가 그럴 줄 알았지.

독귀는 제꺽 몸을 틀며 발밑을 쿵, 굴렀다.

그러자 백사준의 코앞으로 두꺼운 바위가 불쑥 솟구쳐 올랐다.

―니미럴!

백사준이 몸을 굴렸다.

땅에서 솟구치는 바위는 한 개가 아니었다.

슷, 슷, 슷!

연달아 세 개가 더 튀어나와 백사준의 동선을 가로막았다. 좌로 위로 필사적으로 몸을 굴리는 동안 독귀는 바위 뒤에서 안전하게 안채의 문을 열었다.

―고만하고 집에들 가라!

―젠장! 그렇게 안 돼!

백사준이 소리쳤다.

―까마귀를 쏴!

―뭐라고, 이놈아! 안 된다!

독귀가 홱 몸을 틀었다.

그사이 궁대가 떨어트린 활을 집어 든 백사준이 까마귀가 아닌 독귀를 향해 시위를 날렸다.

퍼억!

날카로운 화살촉이 넓적다리를 꿰뚫었다.

―으악! 영감!

적하조가 독귀를 냅다 붙들어 안채로 끌어당겼다.

쿵!

문을 닫은 적하조가 빗장을 채웠다. 그리고 뒤늦게 소란을 들고 달려나온 용천휘와 마주쳤다.

* * *

“제기……랄, 이 더러운…… 놈들 활에 약을 칠해 놓…… 으으,”

독귀가 고개를 끄덕끄덕 기울였다.

“아니, 뭐라고요? 영감, 영감은 독귀잖아. 이런 독 하나 처리 못 해요?”

적하조가 독귀의 옷깃을 잡고 흔들었다. 독귀가 눈을 가물대며 말했다.

“아, 누가 독이라고 했냐. 독이 아니라 약이다, 약. 보아하니 잠이 오게 하는 그런 거 같은데…… 이 어르신이 어지간히도 무서웠나. 이런 짓을 다 하…… 하음.”

“으아! 영감! 자지 마요! 지금 이 상황에서 잠이 와?”

“이놈, 말 짧게 하지 마라. 이 어르신이 누구신데…… 하으음.”

“아오, 영감! 네가 좀 깨워 봐, 응?”

적하조가 용천휘를 닦달했다.

용천휘는 날카로워진 눈으로 밖을 주시하는 중이었다.

“……빨리 여길 벗어나야 해.”

“일단 영감부터 깨우고!”

“곧 더 몰려들 거야. 시간을 끌수록 달아날 기회가 사라져.”

용천휘가 몸을 낮춰 독귀를 살폈다. 독귀는 가물가물 대는 눈꺼풀을 억지로 들고 용천휘에게 말했다.

“네 말이…… 맞다. 하오문의 약방을 때려…… 부쉈으면 아 말 다한…… 게지. 작정을 하고…… 어서 달아나는…… 게…… 밖에 내 마누라가 있…… 잊지 말……”

용천휘가 넓적다리에 꽂힌 화살을 가리켰다.

“이러나저러나 독귀는 움직일 수 없다. 그건 사형도 마찬가지니 태울 것을 먼저 구해야겠군.”

“태울 것? 우리가 가져온 수레?”

“그건 안 돼.”

둘씩이나 태우고 끌 수도 없을뿐더러, 속도가 너무 느렸다. 도망치려고 하기도 전에 따라잡힐 것이다.

“마차를 구해 와. 빠른 걸로.”

“음? 그동안 넌 뭘 하게?”

“버티고 있어야지.”

그 말이 끝나가는 것과 동시에,

쾅! 콰지직!

빗장을 걸어둔 문이 덜컹댔다.

“으아, 저 미친놈들. 이 문도 부수게?”

이미 집 전체에 기문진식이 설치된 것을 알면서도 부수려 한다는 것은 이쪽 상황이 몹시 좋지 않다는 뜻이었다.

백사준은 시간을 줄 생각이 조금도 없는 것이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희생도 감수할 작정인 듯했다.

“너 혼자서 가능하겠어?”

“자신은 없어.”

용천휘의 말에는 과장이 없었다.

지금 이 순간 그는 적혈대법을 쓸 상대가 없었다. 태을신공이 금제로 막혀 있는 이상 지강백의 무공을 가져온다면 그의 불안정한 상태까지 이전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반소 효응을 각오하며 독귀의 무공을 쓰는 것에도 무리가 있었다.

지금 그를 잠들게 한 약이 제 몸에 어떤 효과를 불러일으킬지 장담할 수 없었다.

그가 믿는 것은 수라안 하나였다.

수라안이라면 하오문의 약방 구석구석에 설치된 기문진식들을 어떻게든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네가 최대한 빨리 돌아오는 수밖에 없어.”

일부러 넓적다리의 상처를 건드려 억지로 의식을 깨우고 있던 독귀가 덧붙였다.

“그래, 이놈아. 다 네놈 발에 달려…… 있으니 이럴 시간……에 후딱……”

“으으…… 알았어요.”

힘주어 고개를 끄덕인 적하조가 뒷문 쪽으로 사라졌다.

콰앙, 쾅!

“어이, 독귀! 어서 이 문 여시오!”

겉으로는 평범한 듯 보여도 안쪽에는 세 겹의 철판을 정교하게 엮어 만든 문은 쉽게 부서지지 않았다.

이러다가는 시간을 너무 주겠다 싶었던지 백사준이 말을 걸어왔다.

“지금 내 손에 뭐가 들려 있는지 알고는 있소?”

독귀가 끄응, 앓는 소리를 내며 눈을 들어 올렸다.

“저 거지가…… 지금…… 뭐라는…….”

“까마귀 부인의 날개요.”

“뭐라고!”

독귀가 눈을 번쩍 떴다.

“뭘 어째!”

“이 문 안 열면 부인께서는 두 번 다시 날지 못하는 새가 될 것이오. 물론 두 번 다시 울지도 못하겠지. 날개를 꺾어도 문이 안 열린다면 모가지도 꺾을 생각이니.”

“뭐라고, 이놈아!”

독귀가 몸을 돌려 보일 리 없는 삿대질을 했다.

“이 비겁하고 더러운 놈! 애미애비도 모르는 놈! 어디서 남 마누라를 붙들고 협박질인 게냐! 내 마누라 깃털 하나라도 건드렸다간 네놈을 붙들어 죽을 때까지 솜털 한 올씩 지져 줄 테다!”

“내가 장난하는 것 같소?”

백사준이 무얼 어떻게 했던 모양이었다.

까아아아악!

까마귀가 찢어지는 울음을 토했다.

“아이고, 마누라!”

독귀가 가슴팍을 쥐어뜯었다.

“저저 사악한 놈들! 저것들이 무림맹의 탈을 쓴 귀신딱지들이 아니고 다 무어냐!”

“날개는 두 개요.”

까아아아악!

“마누라!”

좀 전보다 더 끔찍한 비명이었다.

독귀가 용천휘를 와락 붙들었다.

“내, 내가…… 내가 저 꼴은 못 보겠다. 내가……”

문을 열겠다는 소리였다.

문을 열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손바닥을 보듯 명확했다.

“아무리 오룡독이라 해도 내 마누라는 못 판다. 네놈은 알아서 도망쳐라. 나는 마누라를 구해야겠다.”

알아서 도망치라는 말은 그들을 돕는 일을 여기까지 하겠다는 뜻이었다.

용천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의 침묵에 지레 양심이 찔린 독귀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 그럼 어쩌라고! 내 마누라를 저렇게 죽도록 내버려 두라는 소리냐!”

독귀가 용천휘를 떠밀었다.

“가! 어서 가! 이 어르신은 문을 열어야겠으니!”

용천휘가 몸의 균형을 잃는 틈을 타 독귀가 문을 쾅 열었다.

“까아악!”

문이 열리자 백사준에게 쥐인 까마귀가 푸드덕푸드덕 날갯짓을 했다.

“으잉? 마누라! 괜찮소?”

날개를 꺾었다는 것은 거짓말이었다. 백사준은 깃털을 뽑았을 뿐이다.

“이제 문을 여셨군.”

“허…… 나를 속였더냐?”

독귀가 노기를 담아 백사준을 노려보았다. 백사준은 그 말을 못 들은 척 까마귀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내 손에 아직 부인이 있음을 명심하시오, 독공. 행여나 기관 따위를 움직일 생각은 마시고.”

“내 마누라나 내놔라, 이놈!”

“아직은 안 되지. 자, 이제 그럼 등 뒤에 감추신 마교를 이리 내놓으시오.”

독귀가 이를 갈았다.

“괘씸한 놈. 어디서 남의 마누라를 붙들고 이래저래 협박질인 게냐! 이 어르신을 어디 제 마음대로 부리려 들어! 이보오, 마누라!”

까아악!

독귀가 부르자 까마귀가 백사준의 손을 콱 쪼았다.

생각지도 못하던 틈을 내준 백사준이 저도 모르게 손을 움츠렸다.

“옳지, 잘했소!”

까아악!

까마귀 부인이 후드덕 날아 독귀를 향해 날아갔다. 저런 것을 보면 부부는 일심동체라는 말을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러나.

“도망친다!”

“잡아라!”

휘익! 피웃!

궁대가 까마귀 부인을 향해 일제히 화살을 날렸다.

“안 돼! 하지 마!

백사준이 한발 뒤늦게 소리를 질렀지만 이미 늦었다.

“마누라!”

“까악!”

화살 하나가 정확히 까마귀 부인의 몸통을 꿰뚫었다. 까만 새가 핏방울을 흩뿌리며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까……까악.

까마귀 부인의 작은 몸이 움찔거렸다.

마치 독귀를 향해 무슨 말이라도 하려는 듯했다. 생전에 하지 못한 그런 말들을.

“마누라아아!”

독귀가 신음을 내지르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이놈들! 다 죽어라!”

독귀의 몸에 꽂힌 깃털이 금방이라도 날갯짓을 할 것처럼 부풀어 올랐다. 휘몰아치는 독기의 흐름이 느껴졌다.

“독공! 이러지 마시오! 독공을 해하고 싶지 않소!”

“한 놈도 살려 두지 않겠다!”

독귀가 양손을 앞으로 교차시켰다. 머리에 꽂아 넣은 보라색 깃털이 마치 장창처럼 빳빳하게 일어섰다.

“니미럴! 이런 걸 바라진 않았는데…… 쏴라!”

결국 백사준이 명령을 내렸다.

휘익! 파바밧!

화살이 독귀를 향해 폭우처럼 날아들었다.

곧 고슴도치처럼 변할 독귀의 등을 바라보며 용천휘가 입술을 짓씹었다.

절망은 그렇게 예고 없이 찾아들었다.

“젠장. 여기서 끝인가.”

독귀를 꿰뚫은 살이 제 목을 뚫는 것은 순식간일 것이다.

도망치는 것은 소용없었다.

지금은 적하조가 때를 맞춰 와 지강백만이라도 구해 가길 바라는 생각도 무리였다.

용천휘가 눈을 질끈 감았다.

“……사형.”

그때, 무언가가 귓가를 스쳐 갔다.

대답처럼.

혹은 기적처럼.

* * *

휘이익!

독공을 뿜어내는 독귀의 앞으로 거대한 바람이 일어났다.

그 누구도 바람이 어디서 왔는지 똑똑히 보지 못했다.

갑자기 시작된 바람은 폭풍이 되어 화살이 만들어 내는 비를 휩쓸었다.

스스스스스슷!

후드드득!

수십 개의 화살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사이 독귀의 몸이 가볍게 들려 그 뒤편으로 옮겨졌다.

“문 닫아.”

나직하지만 뚜렷한 음성이 용천휘를 향했다.

“사……형?”

용천휘가 말을 더듬었다.

몹시 어울리지 않는 노릇이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더없이 잘 어울리기도 했다.

이 상황에서, 말을 더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사형!”

용천휘가 외쳤고 지강백은 백사준을 마주했다.

“…….”

백사준의 얼굴 근육이 균형을 잃고 멋대로 튀었다.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는 것이다.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거참.”

백사준은 가늘어진 눈으로 지강백의 위아래를 훑었다.

지강백이, 달라 보였다.

종남파의 낡은 무복을 입지 않아서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지강백의 옷 여기저기에는 아직도 생생한 피가 묻어 있었고 정리가 안 된 머리칼은 더럽고 너저분했다.

그는 신도 신고 있지 않았다. 한 달쯤 진창에서 구르고 오기라도 한 것처럼 단정하지 못한 몰골이었다.

왼쪽 얼굴에는 흉터도 생겨났다. 눈썹과 광대를 잇는 칼자국이 왼쪽 눈에까지 이어져 있었다. 까맣던 눈이 잿빛으로 죽어 있었다. 지강백은 눈을 하나 잃은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맑았다.

꼬집어 말할 수 없었지만 느낌이 그랬다.

너무 맑아서 가까이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기이하고 거북했다.

백사준은 한 호흡이 흐른 뒤에야 그것이 두려움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지금 지강백과 단둘이 마주하고 있기가 두려웠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소?”

지강백은 백사준과 무림맹의 추격대를 흉터가 앉은 시선으로 훑었다.

“백 소방주님도 아시는 일입니다.”

아무런 분노가 없는 음성이 물처럼 흘러나왔다.

“아니, 그것 말고…… 그러니까 숭산에서,”

“백 소방주님이 저를 마교로 지목하지 않으셨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입니다.”

“…….”

백사준이 입을 꾹 다물었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다.

그는 지강백에게 그리 정당하지 못한 일을 했다.

“귀 사문의 일은…… 유감이오. 꼭 그리하려던 것은 아니었소.”

“그러셨습니까.”

지강백이 허리를 굽혀 바닥에 떨어진 누군가의 창을 집어 들었다. 기문진식에 당한 추격대가 떨어트린 듯했다.

창의 무게와 길이를 가늠하듯, 한 손으로 가볍게 들어보이던 지강백이 창대를 쥐었다.

탁.

창대가 적당한 길이로 잘라졌다. 창날도 잘라 낸 지강백이 그것을 목검처럼 쥐었다.

“허나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저는 마교가 되었고, 제가 마교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미 죽거나 입을 다물었습니다. 제가 마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백사준이 고개를 털어 죄책감도 털어 냈다.

어쩔 수 없었다. 대의를 위한 것이었다.

“그러게 내 말을 믿지 그랬소. 마교인 사제를 감싸는 순간부터 소협도 마교인 게요. 그것은 종남도 마찬가지. 서역 정벌을 위해 마교의 잔당들은 이 땅에서 사라져야 하오.”

“그래서 저는 다른 방법을 찾았습니다.”

지강백이 깨끗이 부러진 창대를 들어 백사준을 겨누었다.

“저를 마교라 칭하는 자들을, 모두 입 다물게 하면 되겠다고.”

“……!”

백사준은 깨달았다.

지강백이 그저 달라 보이는 게 아니라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을.

그는 물처럼 깨끗한 무감의 벽을 가면처럼 쓸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이럴 수가!”

백사준이 타구봉을 치켜세웠다. 그는 두 번 다시 지강백을 앞에 두고 방심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모두 덤벼라!”

수십 개의 칼과 활이 지강백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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