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천동지-78화 (78/346)

제78화 살인 청부

현 강호제일의 청부 집단을 꼽으라면 살막은 단연코 세 손가락 안에는 들어가야 했다.

살막주의 무명은 말할 것도 없고, 발군의 실력으로 차근히 쌓아 온 고객 신뢰도도 탄탄했다.

살막주의 나이가 이제 고작 지천명에 불과했다. 살막은 앞으로도 이십 년은 더 건재하며 살수 업계의 새 전설을 만들어 갈 것이다.

요새 서역 정벌이다 마교다 해서 강호가 안팎으로 시끄러웠지만, 살수 업계에서는 오히려 호기라 판단하고 있었다.

본래 환란과 살심은 상성이 잘 맞아 함께 자라기 마련이었다.

사나이로 태어나 살수업에 몸을 담은 지 어언 삼십일 년.

이제 업계에서는 더 이룰 것이 없다 하는 살막주였지만 요새 들어 근심 걱정이 하나 생겼다.

그동안 힘들게 키워 이제 좀 부려먹을 만해졌다 싶은 막내아들이 돌연 반항기에 접어든 탓이었다.

원래도 썩 좋은 살수는 못 되겠다 싶었다. 그런데 본인이 기를 쓰고 가업을 잇겠다 하니 그 마음만은 어여쁘게 여겼다.

원래 일이란 능력이 반이요 의지가 반인 법이었다.

그래서 천잠투의를 몰래 꺼내 입는 것도 모르는 척 눈감아 주고 있었는데 웬걸, 이젠 안 하겠단다. 가업이고 나발이고 제 적성에 맞는 길을 찾겠다 한다.

송충이가 솔잎 안 먹고 살겠다 하는 것도 기가 찰 일인데, 그 송충이는 그냥 송충이가 아니라 살막주의 막내아들이었다.

그가 가장 아끼던 막내가 업계를 떠났다 하면 그동안 살막주에 이를 갈고 있을 인간들이 얼씨구나 하고 달려들 것이다.

여하간 그런 이유로 조만간 이 철없는 막내 녀석을 붙잡아 엉덩이라도 흠씬 두들겨 줘야겠다 마음을 먹게 되는 요즘이었다.

“아아…… 아닌 게 아니라 지금 슬슬 가 봐야겠군.”

살막주가 몸을 일으켰다.

막내아들은 은근히 섬세한 데다가 저가 아니다 싶으면 죽어도 고집을 꺾지 않는 성격이라 다루기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하나…….”

살막주가 혼잣말을 중얼대며 막내아들의 처소에 막 들어서려는 순간이었다.

쾅!

“이런.”

갑자기 문이 쾅 열리는 바람에 살막주가 가볍게 몸을 비켜섰다.

“앗! 아버지, 미안.”

그리고 뛰쳐나오는 것은 엉덩이에 뿔이 난 게 확실한 막내 녀석이었다.

곧 약관이 다 되어 가는 녀석이 아직도 말버릇은 저 모양이었다. 아직 애 같은 것이 귀여운 맛도 있었지만 조만간 단단히 혼을 한번 내야 할 일이었다.

“이 녀석. 어째 아비 얼굴에 대고 문을 그리 쾅쾅 열고 그러는 게냐?”

살막주가 짐짓 엄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

막내아들이 앳된 얼굴을 절레절레 흔들었다.

“좀 바빠서 그래. 아버지가 올 줄 알았나, 어디. 그리고 내가 문 좀 쾅 열었다고 해서 아버지가 다치고 할 것도 아니잖아.”

“흐음. 그렇다니 그건 됐고, 네가 바쁠 일이 무어냐?”

막내아들, 적하조가 눈을 번쩍 빛냈다.

“청부가 들어와서.”

“음? 무슨 청부인데 네가…… 아니, 청부라고?”

“응.”

적하조는 야행복 위로 평범한 장포를 걸쳐 위장을 마쳤다.

“나 탄구 좀 가져갈게, 아버지. 그럼 바빠서 이만.”

“아니, 잠깐. 이놈아.”

훌쩍 뛰어가려는 아들의 앞을 살막주가 막아섰다.

“얘기는 제대로 하고 가야지. 네 얼마 전까지 이제 살수는 안 하겠다 하지 않았더냐? 갑자기 무슨 청부를 받겠다는 게야?”

“내가 꼭 맡아야만 하는 청부야. 빨리 가 봐야 해.”

“어허. 어떤 일기에 네가 그리 말하는 게냐.”

적하조가 눈빛을 세웠다.

고집이라기보다는 의지에 더 가깝게 보이는 무언가가 꿈틀대는 눈이었다.

“반드시, 내가 죽일 거야.”

“……허허.”

살막주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막내아들의 저런 눈은 세 살 때 아버지의 뒤를 이어 살수들의 전설이 되겠다고 말했을 때 이후로 처음 보는 것이었다.

아들이 정말로 가업에서 멀어지면 어쩌나 했던 일들은 그저 기우일 뿐이었다.

마음이 흡족해진 살막주가 몸을 슬쩍 비켜서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냐, 알겠다. 급하다니 자세한 얘기는 돌아와서 하자꾸나. 탄구든 뭐든 마음대로 가져가거라.”

“응, 아버지. 고마워.”

적하조가 신법을 발휘해 쏜살처럼 달려갔다.

“허허…… 기특한지고.”

살막주는 막내아들의 등을 보며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그러나 대견한 것과는 별개로 할 일은 해야 했다. 막내아들은 혼자 살수행을 보내기에는 아직 불안했다.

“둘째더러 따라가 보라고 해야겠군. 그런데 무슨 청부였던 게지?”

적하조의 방에는 마침 보란 듯 청부가 들어온 죽간이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살막주가 죽간을 주워들었다.

거기에는 청부 대상과, 청부를 의뢰한 자의 이름 및 선금이 적혀 있었다.

적(的): 종남 일대제자 지강백

선금: 금 일천 냥

탁(託): 종남 일대제자 용천휘

“……허, 뭐라고? 종남파?”

종남파라면 최근 무림맹에서 주살첩을 내건 그 마교의 잔당들이었다.

안색이 변한 살막주가 서둘러 아들의 처소를 나섰다.

“그냥 둬서는 안 되겠군. 둘째가 안 되면 나라도 따라가 봐야겠어.”

아무리 봐도 수상한 냄새가 나는 청부였다.

* * *

추적술에는 자신이 있었다.

적하조는 가업을 그만두겠다 결심한 지금도 자신이 그렇게까지 형편없는 살수는 아니었다 믿고 있었다.

추적뿐 아니라 역용과 잠행, 독술에도 능했다. 사실 사람을 죽이는 것 빼고는 뭐든 잘했다.

그래서 적하조는 확신했다.

저 전각 안에, 분명히 자신이 죽여야 할 그자가 있을 것이라고.

“…….”

꿀꺽.

적하조가 침을 삼켰다.

이제 행동을 해야 할 차례였다.

그가 소리를 잔뜩 죽인 채 입술을 달싹였다.

“걱정하지 마. 내가 꼭 죽여 줄 테니까.”

섬뜩하게 갈린 비수를 품은 적하조가 전각 안으로 들어섰다.

적하조의 그림자가 오 층 전각의 팔각창마다 주렁주렁 매달린 홍등에 물들어 피처럼 붉은색을 띠었다.

정문 처마에 매달린 큼지막한 현판 위로 적화루라는 세 글자가 요염한 자태를 드러내는 전각이었다.

* * *

‘간도 큰 놈.’

적화루에 숨어든 적하조는 저도 모르게 혀를 찼다.

종남의 두 제자가 목에 무림맹의 주살첩을 건 지 벌써 한 달.

강호 전체가 혈안이 되어 놈들을 뒤쫓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인간은 없었다. 그런 인간이 있다고 하면 엊그제까지 곤륜산에서 신선놀음을 구경하다 갓 하산한 경우일 것이다.

어쨌거나 그런 상황에서, 주살첩을 대롱대롱 매단 놈이 인근에서 제일 유명한 기루에서 돈이나 펑펑 쓰고 있으면 간 큰 놈이라는 말도 모자랐다.

추적술에 자신이 없었다면 놈을 찾고서도 긴가민가했을 것이다.

‘어쨌거나 너는 오늘 여기서 죽는다.’

적하조는 이호(二胡: 줄이 두 개인 현악기)를 단단히 끌어안았다.

기루에 잠입하려면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나 기녀로 분장하는 것이었다. 본의 아니게 또다시 여장을 하게 됐지만 적하조는 제 역용술이 수준급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오늘은 분칠도 꼼꼼하게 했지. 나라는 것을 절대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흥.’

게다가 여기 있는 어지간한 기녀들보다는 저가 더 나은 듯했다.

“이쪽 방입니다요.”

허리가 굽은 기루의 일꾼이 적하조에게 놈이 있는 방을 알려 주었다.

일꾼조차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으니 제 역용이 완벽하다는 소리였다. 적하조는 기합이 잔뜩 들어간 고개를 끄덕였다.

탕탕.

일꾼이 방문을 두들겼다.

“나으리. 예기(藝妓)가 왔습니다요. 여흥이 더 필요치는 않으신지요.”

안에서 답이 들려왔다.

“오, 그것도 좋겠군. 들어와라.”

“예. 그럼 들여보내겠습니다요.”

일꾼이 문을 열자마자 적하조가 성큼 방 안으로 들어섰다.

제일 비싼 방에, 제일 비싼 술상이라고 하더니 과연 사치스러웠다. 술 마시는 놈은 하나였는데 술 따르는 기녀는 넷이나 됐다.

놈은 가관이었다.

옷은 벌써 절반쯤 풀어헤쳐진 데다가 술이 얼마나 들어갔는지 목덜미까지 벌겠다. 입가는 온통 술과 연지 자국으로 얼룩덜룩했고 양손은 여기저기 주무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으응? 누구? 처음 보는 얼굴인데?”

기녀 중 하나가 적하조의 얼굴을 뜯어보며 말했다. 적하조는 흥 코웃음을 쳤다.

“그거야 네가 알 것 없고.”

“뭬야?”

“나야 내 볼일을 보면 그만이니.”

휙!

적하조가 이호의 몸체를 집어 던지고 활을 치켜들었다. 겉으로는 평범한 활로 보이겠지만 사실은 사금을 곱게 갈아 먹여 놓은 은사였다. 단박에 목을 잘라 낼 수 있는 살상 무기인 셈이다.

“저리 비켜.”

적하조가 놈에게 들러붙어 있는 기녀를 떠밀었다.

“이 계집애가!”

엉겁결에 뒤로 벌렁 넘어진 기녀가 앙칼지게 소리쳤지만 활을 칼처럼 추켜올리는 적하조를 보고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눈치가 있다면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잘 벼린 칼처럼 새파란 살기를 드러내고 있는 살수란 무서워야 정상이었다.

술에 잔뜩 취해 제정신이 아니었던 놈이 이제야 정신이 드는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뭐…… 뭐 하자는……”

적하조가 분노를 실어 외쳤다.

“이 간 크고 간악한 놈! 네가 감히 살막에 청부를 넣어? 그것도 제 사형의 목숨을?”

말을 하니 새삼 분노가 솟구쳤다.

적하조는 청부 내역이 적힌 죽간에서 지강백의 이름을 보았을 때처럼 피가 역류하는 기분을 느꼈다.

당장 죽여야 했다. 감히, 하나뿐인 친우의 목숨을 죽여 달라 한 저놈을.

친우가 마교라는 소문이 들려왔지만 적하조는 믿지 않았다.

아니, 상관하지 않았다.

살수라도 사람을 죽이는 게 적성에 안 맞는 자신이 있듯이 마교라도 얼마든지 바르고 선량한 이가 있을 수 있는 법이다.

제 친우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친우와는 사형제 간임에도 불구하고 그와는 전혀 딴판인 간 큰 놈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절댔다.

“어……? 어? 처, 청부……?”

“그가 이 적하조의 유일한 친우임을 몰랐단 말이냐! 아니, 이미 그건 중요하지 않다. 나는 네 목숨을 취해 친우에게 선물할 것이다! 자, 받아랏!”

적하조가 활을 휘둘렀다.

“어이쿠! 사람 살려! 미친 기생년이 사람을 죽이려고 한다아!”

아니, 휘두르려고 했다.

“……응?”

그러나 손이 주춤했다.

아직 진짜 살수처럼 냉정하게 사람 목숨을 끊는 일에 익숙하지 못해 그런 것은 절대 아니었다.

간 큰 놈이 버럭 소리를 지르는 순간 보였던 누런 앞니 탓이었다.

어쩌다 그게 눈에 들어왔는지 모르겠는데, 하여간 보았다. 봐 버렸다.

그것은 적하조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종남파 둘째 제자의 모습과는 완전히 어긋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때 종남파 둘째 제자를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한 탓이었다.

뭐 저런 인간이 다 있나 할 정도로 종남파 둘째 제자에게서는 흠 잡을 데가 없었다. 물론 성격을 뺀 외양을 말하는 것이었다.

눈매면 눈매 콧대면 콧대, 턱 선이면 턱 선…….

그는 단순히 잘생긴 게 아니었다. 말 그대로 어디 한 군데 모자란 구석이 없었다.

만일 그가 지금 이놈처럼 누런 앞니를 하고 있었다면, 반드시 기억에 남았을 것이다.

“그, 그러고 보니…… 그냥 좀 닮은 건……가?”

아니, 그렇게 많이 닮지도 않았다.

머리 모양이나 세련된 비단 옷차림새가 엇비슷해 보일 뿐이었다.

“아이고, 나 죽는다! 사람 살려!”

놈은 적하조가 주춤대는 틈을 타서 네 발로 걸어 도망쳐 버렸다.

“어, 음…….”

그 꼴을 보고 있자니 확실히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방을 잘못 찾은 걸까.

“그, 그럴 리가 없는데?”

당황한 적하조가 주춤주춤 활을 내리고 뒷걸음질을 쳤다. 이럴 땐 재빨리 달아나는 게 상책이었지만 발이 굳어 버렸다.

당황하면 뱀 앞의 개구리처럼 되어 버린다는 것은 적하조의 단점이자 그가 가업을 이어받을 수 없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뭐야, 얘는. 갑자기 왜 이래?”

“그러게. 어디서 온 계집애가 이리 어리바리해? 야, 너 여기 왜 온 거야? 그 활은 뭔데 들고 설쳐?”

기녀들이 발딱 일어나 적하조를 에워쌌다. 적하조는 이 드세지만 죄 없는 여자들을 살인멸구해야 하나 고민에 빠졌다.

“가, 가까이 오지 마라. 나는 함부로 살생을 일삼지 않기로 하나뿐인 친우에게 맹세한 몸. 너희들을 해치고 싶지 않다.”

“뭐? 얘가 지금 뭐라는 거야?”

“미쳤나 봐. 생전 처음 보는 낯짝인 걸 보면 초짜 같은데 감히 어디서 두 눈 똥그랗게 뜨고 혀를 놀려?”

“다시 한 번 지껄여 봐. 뭘 어째?”

한창 잘나가던 술판에 찬물이 왈칵 끼얹어진 것도 짜증이 나는데 새파란 초입이 주제도 모르고 헛소리를 해 대니 한껏 성질이 오르는 것도 당연했다.

“이 계집애가! 간만에 정신 나간 물주 하나 물었다 했는데!”

기녀 하나가 손톱을 바짝 세우고 적하조에게 덤벼들었다.

“으앗! 이러지 마라!”

적하조가 어쩔 줄 몰라 뒤로 펄쩍 물러나는데,

똑똑.

“무슨 일이 있습니까요?”

좀 전에 방을 안내해 주었던 일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적하조가 살았다 싶은 마음으로 문을 왈칵 열어젖혔다.

“너! 네놈이 방을 잘못 안내해 줬지!”

일꾼이 구부정하던 허리를 들어 올렸다.

“그건 아닙니다만.”

“아니긴 뭐가 아냐! 어서 제대로 안내하지 못해! 내가 누굴 찾고 있는지 똑똑히 말해 줬잖아!”

“거 아니라니까…… 뭐 그럼 다른 방으로 데려갈 테니 나오십쇼.”

“나 참! 처음부터 똑바로 하지 않고!”

뒤에서 기녀들이 요 계집애가 어딜 도망가냐는 둥, 이리 와서 얌전히 머리채를 쥐어뜯기라는 둥 별소리를 다 해 댔다.

적하조는 아무것도 안 들리는 척 잽싸게 일꾼을 따라나섰다.

“어서 앞장서라. 어느 방이야?”

“이쪽으로.”

일꾼이 방에 비해 어두운 주랑을 재빠르게 걸어갔다.

적하조는 활을 한 번 고쳐 쥐려다가, 이호를 아까 그 방에 두고 나왔음을 깨달았다.

“젠장. 잠깐 기다려. 이호를 두고 왔다.”

그러나 그 방에 다시 들어갈 용기는 없었다.

“네가 가서 가져와라.”

이어지는 일꾼의 대답은 적하조를 놀라게 했다.

“싫은데.”

“……응? 뭐라고?”

“그리고 이호는 필요 없어.”

“뭐? 그게 없으면 이 활이 살상 무기라는 것을 들킬…… 젠장, 내가 뭐라는 거야.”

게다가 적하조는 뭔가 한 가지 더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그런데 너 왜 자꾸 반말이야?”

그뿐 아니었다. 잔뜩 굽어 있던 허리가 어느샌가 반듯하게 펴져 있었다.

여느 기루의 일꾼처럼 어딘가 옹색해 보이던 몸가짐도 씻은 듯 사라져 있었다. 안색은 여전히 꾀죄죄했지만 태도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어……라,”

그리고 저 눈매와 눈빛.

세상에 저 혼자 사는 듯 잘나고 잘났던 콧날과 턱 선.

적하조는 그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네놈이었구나! 제 사형을 죽이려 드는 이 패륜아 같으니!”

적하조가 활을 고쳐 쥐고 당장 종남파 둘째 제자의 멱을 따려 들었다.

그러나 둘째 제자가 입을 여는 게 더 빨랐다.

“그래야 네가 올 테니까.”

“……뭐?”

용천휘는 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하조의 살상 무기 앞으로 성큼 한 발을 다가섰다.

그가 당황한 적하조의 손을 붙들며 말했다.

“도와줘.”

“으……응? 내가 왜?”

“나 말고, 사형을.”

“응?”

“사형은 네 하나뿐인 친우잖아.”

그 말에 적하조의 표정이 싹 달라졌다. 그가 일순 드러냈던 살기를 갈무리하며 말했다.

“뭘 어떻게 도와줘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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