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천동지-72화 (72/346)

제72화 공무도하 (2)

저벅저벅.

어두운 동굴 안에 습기 찬 발걸음 소리가 울렸다. 조용하되 어쩐지 서두르는 느낌의 걸음이었다.

백사준과 참회동의 입구를 지키는 십계승이었다.

길을 안내하듯 앞서 걷고 있는 십계승의 표정은 불쾌함이 가득했다.

본디 참회동은 엄격히 출입이 금지된 공간.

방장의 신물이나 그에 준하는 직인이 없을 경우라면 계율원 소속의 제자라도 들어설 수 없는 곳이었다.

그런 곳을, 개방의 소방주가 들어섰다.

그가 현재 마교의 색출을 위해 앞장서는 입장이라고 해도 참회동 출입까지 허락하는 건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었다.

“이곳이외다.”

철컹.

십계승이 사방으로 뻗어 나간 미로 같은 석굴 안에서 어느 한 곳의 문을 열었다.

안쪽으로 들어서자 또다시 두꺼운 창살로 가로막힌 곳이 나왔고, 그 안에 살아남은 사천당문의 사람들이 있었다.

이가주 당선적과 그의 질자들이었다.

“누구…… 개방의 백 소방주?”

덜컹!

당선적이 당장 앞으로 달려와 창살을 움켜쥐었다.

“이게 어찌 된 게냐! 왜 당가가 이런 취급을 받고 있느냔 말이다!”

십계승이 한편으로 물러났다.

백사준은 날카로운 눈으로 당선적의 구석구석을 훑었다.

“……정녕 모르고 계십니까?”

“그래, 모르는 일이다! 마교라니! 그게 대체 말이 되는 일인가!”

“저도 말이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그렇다면 왜……!”

“허나 분명히 일어난 일이니까요. 설마하니 사천의 가주가 무슨 짓을 했는지 보지 못했다 말씀하실 참입니까?”

“그……”

당선적이 꺼질 듯 한숨을 쉬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찌 부정할 것인가.

제 두 눈으로 똑똑히 본 일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가주가 지월에게 독무를 터트리는 것을, 사방으로 흩어지던 그의 시체를 분명히 보았다.

가족의 죽음을 비통해하기보다는, 그 이유를 알 수 없다는 게 억울하고 원통해 미칠 노릇이었다.

그도 모자라 사천당문 전체가 마교의 흉수로 몰리고 있었다.

“그러니 사천의 이가주께서는,”

백사준이 몸을 구부려 당선적과 눈높이를 맞췄다.

“아는 것을 모두 말씀해 주셔야겠습니다. 마교와 사천당문의 접점이 대체 언제, 어디서부터 생겼는지.”

“…….”

대답에 앞서 당선적의 눈매가 고통스럽게 일그러졌다.

아무것도 모른다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발가락 새에 박힌 가시처럼 계속 거슬리는 점이 있었다.

“가주께서…… 객십에 다녀온 적이 있다.”

“객십?”

당선적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부터였다.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고…… 무언가 달라졌다 느껴졌던 것은.”

“그 외에는?”

“그뿐이다. 그 외에는 어떠한 일도 없었다. 가주가 달라졌다 느낀 것은 평소의 행동뿐으로, 그 외에 마교의 조짐이라 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다면 마교와 접점이 있던 것은 당가주 혼자라는 말씀입니까?”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은 사천당문과 마교는 조금도 연관이 없다는 것뿐이다. 대체 강호의 어떤 곳이 마교와 연을 두겠느냐!”

백사준은 바로 사천당문이 그런 곳이지 않냐는 말을 생략했다.

“그 관은? 당가에서 소림에 들여온 관은 어찌 된 것입니까? 그게 무엇이기에 당가주가 지월 대사께 보인 겁니까?”

“그건 모르는 일이다. 짐 속에 그런 물건이 있는 줄도 몰랐다.”

“짐을 확인해 보지도 않으셨습니까?”

“……만일 그런 짐이 있었다면, 아마도 가주께서 은밀히 진행을 하였을 것이다.”

“모두가 당가주의 책임이라는 것이로군요. 당가주가 이미 유명을 달리해 입을 열지 못함을 알기에 이러시는 겁니까?”

“그게 무슨 소리냐!”

쾅!

당선적이 창살을 후려쳤다.

“지금 내 한 몸 살자고 가주를 거짓으로 팔아넘긴다는 소리더냐!”

“남은 이들이라도 살아야지요. 아니 그렇습니까?”

“차라리 나를 죽여라! 죽음으로밖에 결백을 증명할 수 없다면 그리하겠다! 어서 나를 죽여!”

쾅쾅!

당선적이 제 머리를 창살에 박았다.

보다 못한 질자들이 나서서 그를 말렸다.

“숙부님! 제발 이러지 마십시오!”

“가주께서 유명을 달리하신 마당에 숙부님께서 심지를 잃으시면 당가가 어찌 되겠습니까!”

“놓아라! 내가 죽는다면 저들도 내 말을 믿을 터! 당가에는 한 점의 의혹도 없느니!”

백사준은 분을 이기지 못하고 자결하려는 당선적과, 그를 애써 말리는 질자들을 감시라도 하듯 예리한 눈으로 훑었다.

모를 일이었다.

이 모든 게 당가에서 꾸민 사기극인지. 아니면 정말로 당가주 혼자의 문제였던 것인지.

“그렇다면 삼녀(三女)는 어찌 된 것입니까?”

백사준이 묻자 당일적의 적자이자 차기 가주가 될 인물인 당호가 고개를 돌렸다.

“화아의 일은 왜 물으시는 겁니까?”

“어찌하여 시신을 관에 넣어 당가에 배속한 창고에 숨겨두었느냔 말입니다.”

“……예?”

백사준은 보았다.

당호를 비롯한 당문의 사람들이, 뭐라 말할 수 없이 기괴한 표정을 짓는 것을.

삽시간에 공기가 달라졌다.

이 어둡고 축축한 석굴 안에 한겨울 같은 한기가 몰아쳤다.

“화아는 줄곧 여기…… 있습니다만?”

“……?”

참회동으로 끌려온 사천당문의 사람들은, 일꾼들을 제외하고는 직계만 모두 네 명이었다.

당선적과 당호, 당호의 아우인 당선. 그리고……

저 구석진 자리에서 얌전히 무릎을 모은 채 앉아 있는 당주화.

그녀는 여전히 면사를 두른 채였다.

“화아야?”

당호가 그녀를 불렀다.

그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소림에 도착한 이래로, 당주화 또한 객십에 다녀온 가주처럼 말을 잃고 혼자서만 제 처소에 틀어박혀 있었던 것을.

얼굴에 핀 열꽃 탓일 거라고 생각했다.

도반열장이 칠 성에 접어들면 자연히 체내의 독기도 안정화되어 사라질 것이라고 했지만 당주화는 결코 면사를 벗지도, 방을 나서지도 않았다.

그나마 오늘은 천하무도회 예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밖으로 걸음을 한 것이었다.

이상한 일이었지만 사소한 일이었다.

그러나 사실은,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었던 것일까.

“네.”

면사 뒤에서 차분한 대답이 들려왔다.

그러나 그 대답은 사천당가의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너는 누구냐!”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당선적이 깨진 이마로 피를 철철 흘리며 몸을 돌렸다.

“설마…… 설마 내 여식까지……?”

“그렇게 됐습니다.”

감정이라고는 없이, 너무 차분하고 매끄러운 답이 더욱 기괴했다.

“화아를 어찌했느냐!”

당선적이 당주화에게 달려들었다.

“이런! 죽이면 안 돼!”

백사준이 십계승에게 소리쳤다.

“어서 문을! 문을 여시오!”

십계승이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열쇠가 없소이다!”

참회동의 규칙도 있거니와 설마하니 지금 이 자리에서 죄인을 가둔 문을 열어야 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당주화가 말했다. 당황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목소리였다.

“정체가 드러났으니 더는 살려 두지 못하겠습니다. 양해하십시오.”

“뭐라는 게냐! 화아는……!”

당선적이, 당주화에게 달려들던 그대로 멎었다.

“네…… 크윽,”

면사 위로 보이는 당주화의 두 눈이 마치 야생의 짐승처럼 짙은 녹색 안광을 뿜고 있었다.

당선적이 가슴을 부여잡더니 갑자기 입과 코에서 피를 흘리기 시작했다.

눈과 귀에서도 흘렸다.

독에 당했다는 것을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정말로 무서운 것은, 그 독이 무슨 독이며 과연 언제 어떤 방법으로 당선적을 중독시켰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숙부님!”

“너는 누구냐! 네가 마교더냐!”

당호와 당선이 당주화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러나 그들도 당선적과 마찬가지의 몰골이 되었다.

“……!”

스르륵, 쿵!

당선적의 몸이 쓰러졌다.

뒤이어 당호와 당선도 쓰러졌다. 세 사람의 몸에서 흘러내린 피가 작은 개울이 되어 차가운 돌바닥을 흘렀다.

당주화가 조용히 몸을 일으켜 창살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녀의 온몸이 녹색의 안개에 감겨 있었다.

저것이 모두 독무라 한다면 이제껏 본 적이 없을 정도로 가공한 독공일 것이다.

백사준이 타구봉 대신 양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받아라!”

그러나 옥룡팔장이 미처 발현되기도 전에, 당주화의 녹색 눈이 그를 쳐다보았다.

“윽……”

백사준의 몸이 그대로 굳었다.

“백 소방주!”

십계승이 달려와 그의 몸을 뒤로 잡아당기려 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당주화와 눈을 마주했고, 그 역시 몸이 굳고 말았다.

이어서 당주화의 하얀 손이 창살을 쥐었다.

스스…… 푸스스…….

잠금쇠가 걸린 부분에 아주 빠른 속도로 녹이 슬어 갔다. 그렇게 반 각 정도 창살을 쥐고 있자 덜컹, 하며 잠금쇠가 바닥으로 떨어져 버렸다.

“하아…….”

창살을 밀어 밖으로 걸어 나온 당주화가 백사준과 십계승을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착각 탓일까.

그녀의 녹색 안광이 조금은 빛을 잃은 듯 보였다.

자박자박.

그녀는 굳어 있는 두 사람을 내버려둔 채 참회동을 걸어 나갔다.

‘자…… 어서 잡아야……!’

백사준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당주화의 등을 향해 외쳤지만, 그의 말은 결코 입 밖으로 흘러나오지 못했다.

* * *

참회동을 나선 당주화는 면사를 떼어 바닥에 떨어트렸다.

맨 얼굴이 드러났다. 한겨울처럼 차고 시린 새하얀 얼굴은 당주화가 아닌 채희유의 것이었다.

“다섯.”

채희유가 입술을 달싹였다.

오늘 하루 그녀가 죽인 사람의 숫자였다.

당가의 세 사람을 죽이느라 독기가 모자라지 않았다면 백사준과 십계승마저도 죽였을 것이다.

채의유는 품속을 뒤져 작은 병을 꺼냈다.

당주화로 위장해 좋았던 점 한 가지는 독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는 점이었다.

병 안에 든 독을 모두 마신 채희유는 그 병마저도 면사 옆에 떨어트렸다.

지금 마신 독으로는 몇 명의 사람이나 죽일 수 있을까. 아니, 죽여야 할까.

“……하지만 괜찮아.”

채희유가 가느다란 목을 흔들었다.

“나는 더 이상 이 몸이 아닐 테니.”

살인의 업을 쓴 이 몸은 모든 일이 끝나는 그 날 벗어날 수 있을 터였다.

그게 이매를 부리는 그자가 약속한 바였다.

채희유는 새 몸이, 독기라고는 한 방울도 없는 깨끗한 몸이 되어 그에게 갈 것이다.

“…….”

채희유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방금 전 마신 쓰디쓴 독이 조금도 쓰지 않았다. 달콤하고 감미롭게 입 안을 적셨다.

언젠가 애타게 스쳐 간 적이 있던 그의 입술처럼.

“괜찮아.”

다시 녹색 눈이 반짝였다.

채희유의 신형은 곧 광풍이 몰고 있는 소림 안으로 녹아들어 갔다.

* * *

“……헉, 허억!”

지강백이 숨을 헐떡였다.

몸이 무거웠다. 유유히 흐르던 내력이 고갈되어 간다는 것을 이제 알 수 있었다.

온몸에 입은 크고 작은 부상에서 새삼스러운 듯 피가 흘렀다. 상처를 막아 둘 내력도 사라진 탓이었다.

운기조식이 절실했다.

‘단 일각이라도……’

일각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이 지친 몸을 추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잠깐의 틈도 허락되지 않았다.

“저기다!”

“죽여라!”

잠깐 발을 멈추고 숨을 몰아쉬는 사이 벌써 그를 뒤쫓는 무리가 성큼 다가서고 있었다.

피로 물든 목검이 그렇게 무거울 수가 없었다.

지강백은 지팡이 삼아 땅을 짚고 있던 목검을 들어 올려 다시 뛰기 시작했다.

“멈춰라, 이 마교야!”

휘익!

날카로운 바람 소리가 마치 활처럼 날아들었다.

누군가 병기를 집어던졌음을 알았다. 지강백은 몸을 옆으로 돌려 목검으로 날아오는 칼을 받아 냈다.

퍽, 슷!

“……큿,”

목검은 매섭게 갈린 칼날을 이겨 내지 못하고 손가락만 한 길이가 비뚜름하게 잘려 나갔다.

짤막한 죽창처럼 변해 버린 목검은 더 이상 검이라 부를 수도 없을 듯했다.

“놈! 그간 잘도 피해 다녔겠다!”

병기에서 손해를 봤다는 것은, 그만큼 병기를 쥔 무인도 완전치 못하다는 뜻이었다.

지강백은 지친 데다 너무 많은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상대 역시 그것을 알아보았다.

“여기서 죽어라!”

“헉헉!”

지강백은 남은 힘을 쥐어짜 눈앞의 탑림으로 달려갔다.

쾅!

그가 한 석탑 뒤로 몸을 숨기자마자 석탑이 부서졌다. 상대가 장을 쏘았던 것이다.

“으욱!”

석탑을 부순 장력이 지강백의 몸에도 적지 않은 충격을 가했다. 내상으로 엉망이 된 몸이 그 여파로 인해 또 한 번 울컥 피를 뿜었다.

“오냐, 그래. 최심장의 맛이 어떠냐.”

그는 청성파의 장로였다.

그는 신형을 가누지 못해 비틀거리는 지강백을 보며 번들대는 미소를 지었다.

무당의 태화 진인과 화산의 현달도 인을 연이어 패배시킨 지강백의 무위는 그도 똑똑히 보았다.

다들 종남에서 후기지수 중 제일이 나왔다며 수군대는 것도 들었다.

“내 너를 청성에서 죽였음을 반드시 알려야 하겠다.”

분했다.

어째서 다른 곳도 아닌, 종남이 그런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인지.

허나 결국 그를 없애는 것이 청성이 된다면 그만큼 주목을 얻게 될 것이라는 소리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청성의 수법이 분명한 부상을 남겨 놓아야 할 것이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게.

“자, 받아라!”

휘익!

청성의 장로가 암향표를 연달아 뿌렸다.

지강백은 수십 개의 암기를 다 피하지 못하고 몇 개인가를 살갗에 꽂았다.

“여기도 있다!”

굉폭뢰의 한 수로 남은 암향표를 모조리 뿌린 청성의 장로가 초상비를 발휘해 신형을 띄웠다.

“읏!”

지강백은 굉폭뢰의 수를 받아 내지 못하고 정신없이 뒤로 물러났다.

“걸렸구나!”

청성의 장로는 바로 그 점을 노리고 있었다.

지강백의 퇴로를 계산해 미리 몸을 움직인 그가 검날을 세워 지강백의 목덜미를 노렸다.

“……!”

지강백은 이를 악물고 상반신을 젖혔다. 속이 울렁이며 눈앞이 순간적으로 뿌옇게 흐려졌다.

그는 억지로 눈을 뜨려는 대신 차라리 눈을 감고 감에만 의지해서 몸을 움직였다.

퍽!

회심퇴였다.

지강백이 몸을 피하는 와중에도 설마 공격을 감행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청성의 장로는 대퇴부를 스치는 발에 대경하여 뒤로 물러났다.

지강백은 그때 눈을 떴다.

동시에 그가 제 몸에 꽂힌 암향표를 뽑아 들었다. 주요 혈 자리를 피했던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맨손으로 다급히 잡아 뽑은 암기에는 살점과 피가 엉겨 붙어 있었다. 암향표가 청성의 장로를 향해 날아갔다.

“감히! 아직도 힘이 남아 있더냐!”

설마하니 지강백이 그만한 출혈과 고통을 감수하고 암향표를 뽑아 들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청성의 장로는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렇다 할 암기술도 없이 그저 힘으로만 던져 낸 암기라 천만다행이었다.

암향표를 가볍게 피한 청성의 장로가 노한 얼굴로 지강백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지강백에게 꽂힌 암향표는 한 개만 있던 게 아니었다.

그사이 지강백은 두 번째, 세 번째의 암향표를 뽑아냈다.

“하앗!”

지강백은 암향표를 던져 내는 것과 동시에 빠르게 목검을 휘둘렀다.

타닷!

암향표가 갑자기 속도를 내어 날아갔다.

“이 무슨!”

청성의 장로는 갑자기 위력을 띄우는 암기를 받아내기 위해 소매를 크게 휘둘렀다. 지강백은 그 틈을 노려 마지막 암기를 뽑아냈다.

따악!

암기 하나가 활처럼 날아갔다. 그리고,

“……!”

소매를 찢고는 청성 장로의 미간에 박혔다.

“하악, 학…….”

지강백이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 같은 숨을 내뱉으며 탑림 속으로 몸을 날렸다.

탑림이 나왔다는 것은 정문이 머지않았다는 소리였다.

지강백은 소림에 오던 첫날의 기억을 필사적으로 더듬었다.

정문은 당연히 막혀 있을 테니 담을 넘어야 했다. 탑림에서 가장 가까웠던 담을 떠올리며 동선을 짜냈다.

살아야 했다.

여기서 죽는다면 자신이 마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수 없었다.

“그리고, 너도…… 큿.”

여기서 죽는다면 용천휘를 다시 볼 수도 없었다.

그는 여전히 진실이 필요했다. 제 입으로 마교와 연관이 없다던 그가 대체 어디까지 자신을 속여 왔는지, 그것을 알아야 했다.

“바, 반드시……”

탑림이 끝나 가고 있었다.

지강백은 희게 질린 입술을 물어뜯으며 더는 움직이지 않으려는 발에 속도를 더했다.

“저, 저기를 지나면……”

소림을 벗어날 수 있었다.

스슷.

그러나 마지막 탑을 하나 남겨 두고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지강백의 얼굴에 절망이 하얗게 돋아났다.

“나, 남궁 대협…….”

지강백의 앞을 가로막은 것은 남궁진현이었다.

천하제일의 쾌검이 달빛보다 더 찬 빛을 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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