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천동지-70화 (70/346)

제70화 돌아올 수 없는 강

‘당했다!’

불길한 예감은 백사준이 등장할 때부터 시작되었다.

백사준은 진작 그를 의심하고 있었을 것이다. 지강백이 느닷없이 마교와의 연관성을 물었던 것은 백사준과 마주치고 난 이후부터였다.

‘개방의 소방주가 섬서로 움직인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는 말인가…….’

용천휘는 길게 생각하지 않고 몸을 움직였다. 백사준의언행에 정신이 팔린 사람들 틈으로 조용히 섞여들었다.

이곳을 벗어나야 했다.

그에게는 지월과 했던 밀약이 남아 있었다.

지강백에게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 지금이 오히려 기회일지 몰랐다. 지금, 지월의 힘을 빌려 와 이매를 없애야 했다.

‘조금만 버티고 있어. 내가 이매를 찾도록.’

이매를 찾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다. 연심환은 이매가 아닌 자신이 죽였지만 그런 사소한 일은 이매의 정체에 소리 없이 파묻힐 것이었다.

용천휘가 그렇게 비무대에서 멀어지는 중이었다.

“잡아라!”

백사준의 목소리가 등에 꽂혔다.

동시에 비무대 밖을 에워싸고 있던 개방의 제자들이 일제히 용천휘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빌어먹을!”

달아날 곳이 없었다. 여기 있는 모두는 구파일방의 내로라하는 고수들이었고, 모두가 용천휘의 적이었다.

다급해진 용천휘의 눈이 붉게 변했다. 그는 가장 먼저 달려드는 개방의 제자를 아슬아슬하게 피해 냈다.

치잇!

독특하게 생긴 낫이 기어코 피부를 스쳐 핏물을 길게 뿜어냈다.

공격 방향도, 방법도 훤히 보였지만 몸이 눈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간신히 공격을 피해 낸 용천휘는 그대로 몸을 숙이듯 낮췄다. 이를 악물고 땅을 구르자 좌편에 있던 누군가의 발이 몸에 부딪혔다.

“죽어라! 이 마교의 개!”

쐐애액!

칼이 날아왔다. 수라안으로 사각지대를 발견한 용천휘는 그쪽으로 몸을 굴렸다.

“개처럼 잘도 기는구나! 허나 끝이다!”

휘익!

용천휘는 혼자였지만, 유감스럽게도 칼은 하나가 아니었다.

“……흡!”

사각지대 밖에서 날아온 칼이 용천휘를 찔러 갔다. 수라안이 번뜩였지만 그의 몸은 늘 생각보다 느렸다.

촤악!

미처 다 피하지 못한 칼이 허벅지를 길게 베었다. 동시에 사방에서 병기들이 날아들었다.

‘이……이대로……’

이대로 죽는 걸까.

용천휘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여기서, 이토록 허무하게.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지월이 코앞에 있었다. 이매의 정체가 이곳 어딘가에 있었다.

그런데 그는 아무것도 잡지 못했다. 그는 여전히 소교주가 되지 못했다.

앞으로도 되지 못할 것이다.

여기서, 이대로 죽는다면.

두 눈에 일렁이던 붉은색이 꺼져 가는 불꽃처럼 사그라졌다. 용천휘의 눈은 이 순간 그저 새카만 재처럼 보였다.

“……!”

그러나 꺼져가던 잿더미 속에서, 완전히 꺼지지 않은 불씨가 하나 살아났다.

“고개 숙여! 머리를 감싸!”

지강백이 신형을 날려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놈을 막아라!”

“마교를 죽여라!”

구파일방의 고수들이 지강백에게 달려들었다.

지강백은 제 몸을 살피지 않고 날아오는 도검들을 뛰어넘었다. 오로지 속도만을 염두에 둔 수였다.

지강백의 몸 여기저기에 상처가 생겨났다. 그는 용천휘만큼 베이고 찔리면서도 기어코 길을 만들어냈다.

“저…… 바보가,”

용천휘가 입술을 달싹였다.

지강백이 피투성이가 된 팔을 뻗어 용천휘를 낚아챘다.

왼팔로 그를 감싸 제 등 뒤에 서게끔 만든 지강백이 소리쳤다.

“죽지 마라!”

“사형,”

“살아서 네가 마교가 아님을 증명해! 빌어먹을, 나한테는 마교와 연관이 없다고 했잖아! 그걸 증명해!”

“……사형. 내가,”

“증명해! 아니라면 내가 널 죽일 테니까!”

“…….”

이곳은 천하무도회.

지월을 포함한 구파일방 제일의 고수들이 모두 모여 있는 자리였다.

모두가 그들의 적이었다.

그들이 종남파의 제자라는 것을 말해 줄 이는 아무도 없었다.

백사준은 사실을 왜곡했고 남궁진현은 섣불리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구파일방의 칼은 사방에서 그들을 에워싸고 있었다. 봇물처럼 터져 나온 살기는 단 하나의 목검으로는 도무지 막을 길이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용천휘에게는 자신이 마교가 아님을 입증할 방법이 없었다.

그는 마교의 소교주였다. 마교의 소교주이기에 이 자리에 있는 것이었다.

“……유감이야, 사형.”

용천휘가 붉은 눈을 들어 올렸다.

“사형의 바람을 들어줄 수 없다는 것. 비록 지금 나한테 그 바람을 들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도 말이야.”

진심이었다.

용천휘는 비로소 지강백과 가짜 사형제가 아닌, 다른 관계였으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진심으로 믿을 수 있는, 언제 어느 때라도 의심할 필요가 없는 그런 관계가.

“나는, 대명천교의 주인이 될 몸이거든.”

“……뭐?”

지강백이 홱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용천휘의 오른손이 정확히 그의 천극혈을 누르고 있었다.

“유감이야. 진심으로.”

“…….”

제 의지와 상관없이 지강백의 눈이 감겼다. 동시에 용천휘의 전신에서 붉은 운무가 피어올랐다.

“저…… 저것은?”

“그게 마교의 수법이더냐?”

적혈대법이 시작되었다.

천하무도회의 한가운데서.

* * *

“잡아라!”

“저쪽이다!”

추적은 계속되었다.

그를 뒤쫓는 움직임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휘익!

용천휘의 신형이 허공을 스쳤다. 그는 의식을 잃은 지강백을 안고 있는 상태였다.

일렁이는 붉은 운무는 이제 전신의 상처와 뒤섞여 피보라가 되었다.

놀랍게도 치명상은 없었다. 지강백을 상대로 시전된 적혈대법은 이전과는 또 다른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용천휘는 치명상을 피해 천하무도회의 예선이 치러지는 자리를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소림이었다.

용천휘는 치명상을 입지 않은 이상, 그리고 파루나가 곁에 있는 이상 아직 기회가 남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매를 찾아야 해.’

이매만 찾으면 이곳을 벗어날 수 있었다.

지월과의 밀약이 지켜지지 않은 것은 아쉬운 일이었지만 목적은 어디까지나 이매를 만드는 자를 찾는 데 있었다.

이매의 증거를 찾고 나면 즉시 교로 복귀할 계획이었다. 증거가 있다면 호법위를 움직일 수 있었다. 호법위와 파루나를 수족으로 다룰 수 있는 한, 교의 주인은 그였다. 이매는 깨끗이 정리가 될 것이다.

‘어디 숨어 있나.’

용천휘는 방향을 더듬어 장경각 쪽으로 움직였다.

소림의 서고 역할을 하는 장경각은 무엇을 보관하거나 숨기는 데 최적의 장소였다. 그 말은 숨어 있기에도 최적의 장소라는 뜻이었다.

이매를 만드는 자가 장경각에 숨어 있을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었다.

‘아직 시간은 있다.’

장경각은 구조상 소림의 가장 안쪽에 자리해 있었다. 그를 뒤쫓는 구파일방의 인물들은 장경각으로 퇴로가 이어졌다 쉬이 믿지는 않을 것이다.

시간을 벌면 파루나가 합류할 것이다. 파루나는 그가 어디에 있는지 금방 찾아낼 수 있었다. 파루나가 합류하면 이매를 뒤쫓는 것도, 소림을 벗어나는 길도 한결 수월해질 터였다.

스스슷.

수라안으로 최적의 길을 선택한 용천휘의 신형이 장경각의 고요함 속으로 스며들었다.

무언가를 뒤쫓는 데 수라안만큼 무서운 것도 없을 것이다.

한 쌍의 붉은 눈은 소리 없이 고요를 찢으며 남들은 볼 수 없는 흔적을 찾았다.

그리고 마침내,

“……!”

용천휘는 그가 아니라면 볼 수 없는 흔적을 찾았다.

흔적이라기보다는 궤적에 가까울 것이다. 공간이 뒤틀렸던 미묘한 감각. 단절된 시간의 잔상.

필목현이 지닌 축지와 축시의 권능이 발휘된 흔적이었다.

‘이곳에 있다!’

붉은 눈이 번뜩였다.

용천휘가 속도를 높여 필목현이 남겨 놓은 궤적을 밟아 갔다.

* * *

“장경각에 있을 것이다.”

지월의 말이었다.

백사준은 칼처럼 단호하게 떨어지는 확신에 의아함을 느꼈다.

“장경각이라고 하셨습니까?”

“등잔 밑이 가장 어둡다 하였지. 내가 그라면 그곳에 숨어들었을 것이다.”

백사준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긴 하나 이곳은 소림이었다. 소림에서는 허용되지 않는 말일 것이다.

장경각 뒤로는 참선동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참선동은 죄인을 가두는 곳이었고, 따라서 이후로는 퇴로가 전혀 없다는 소리였다.

소림에서 오래도록 숨어 있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면 장경각으로 갈 이유가 없었다.

정체를 감추고 있던 그 의문의 사제가 보여 준 무위는 경악할 정도였지만, 그래 봤자 시간을 버는 게 고작이었다.

이미 소림 주위로는 빈틈없는 천라지망을 깔아 두었다.

이제 소림 내부에서 촘촘히 포위망을 좁히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백사준은 거기에 한 발 더 나아가 생각하고 있었다.

천라지망에 일부러 구멍을 내어 둘 참이었다.

마교의 소교주는 이곳에서 도망쳐야 했다. 그를 뒤쫓는 일은 곧 서역 정벌이 될 것이다.

종남파의 둘째 제자가 마교의 소교주였다는 사실은 뜻하지 않던 행운이었다. 앞으로도 몇 년은 더 걸릴 줄 알았던 서역 정벌을 단숨에 앞당길 수 있게 된 것이다.

백사준은 지금이 그 적기라고 확신했다.

세 명이 죽었다. 그것도 걸쭉한 인물들로.

화산과 무당의 분노는 이미 살기가 되었다. 적을 찌르기 가장 좋은 최상의 무기가.

“장경각에 화산과 무당, 아미를 보내라. 나머지는 천라지망에 합류시켜. 반드시 잡아들여라.”

“예……?”

지월의 말을 듣던 사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미간이 찌푸려졌다.

백사준은 딱 부러지는 어조로 명령을 내리는 지월에 어딘가 위화감을 느꼈다.

‘원래 이런 분이었나. 너무 단정적으로 결론을 내리시는데.’

허나 그럴 수도 있었다.

백사준은 지월을 단편적으로 봐 왔을 뿐이었다. 사석에서는 마음 푸근한 노승이라 할지라도, 이 많은 군웅들을 진두지휘하는 입장에 서면 단호하게 명령을 내리는 태도가 더 필요한 법이었다.

잠시 생각하던 백사준이 말했다.

“누구도 장경각에 마교가 숨어들었다 생각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인원을 그리 배분한다 하면 반발이 생겨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장경각은 개방의 제자들을 보내겠습니다. 무당과 화산, 아미는……”

“갈!”

“……읏,”

갑자기 지월이 노호를 터트렸다. 백사준은 귀를 막으며 한쪽 다리를 굽혔다. 고막에 이어 머릿속까지 먹먹했다.

귀를 막은 손가락 새로 가늘게 피가 흘렀다.

“그곳에 있다 하지 않았느냐! 마교의 소교주나 되는 놈을 이 많은 눈들 앞에서 놓아 보낼 생각이더냐!”

“……그……”

“어서 명을 따르라!”

“대사…….”

“어서!”

“…….”

백사준이 입 속에서 제 혀를 한 번 꾹 씹었다.

“예, 대사.”

휙!

지체할 이유가 없던 그는 신법을 전개해 지월에게서 멀어졌다.

그는 서역 정벌을 위해 맹을 조직하는 것에도, 지월이 그 수장이 되는 것에도 불만이 없었다.

사실 구파일방은 그간 하나가 되었던 적이 없었다. 다들 자기가 제일 잘났다 생각하는 인간들이니 그들을 움직이려면 지월처럼 강력한 구심점이 필요했다.

거기에 지월이 알아서 평소의 유하던 태도를 싹 바꾸고 있으니 오히려 잘된 일이라 해야 했다.

‘생각한 대로 되고 있잖느냐. 대체 뭐가 문제라는 거야.’

백사준은 자꾸만 치미는 반발감, 아니 거부감을 억지로 눌렀다.

‘장경각이라 한 건 뭔가 짚이시는 게 있다는 소리일 테고…….’

지월은 그가 모르는 사이 마교의 소교주라는 작자와 밀담을 나눴다. 자신이 모르는 뭔가를 더 알고 있다는 소리였다.

그의 처분을 놓고 지월과 자신은 의견이 갈리는 입장이었지만, 상황이 이렇게 흘러갔으니 그 의견 차이라는 것도 더는 의미가 없게 되었다.

“으음…….”

하지만 뭔가가 석연치 않았다.

백사준의 넓적한 미간이 또다시 좁아 들었다.

“뭐가 하나 빠진 것 같단 말이야…….”

뭔가가 빠졌다. 그래서 일이 더 빠르게 굴러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나 지금은 신속히 움직여야 할 때니까.”

백사준이 고개를 저어 의혹을 털어 냈다.

“서역까지 가는 길은 아직도 멀었다. 서둘러야 해.”

마교의 소교주를 잡아들이는 건 그 첫걸음이 될 것이다.

* * *

“이런…… 소야!”

필목현의 당황이 피부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는 자신 앞에 나타난 용천휘를 보고 어쩔 줄 몰라 했다.

“어, 어째서 이런 곳에……? 아니, 그나저나 옆구리에 갓 잡은 돼지처럼 소중히 들고 계신 것은 사형분이 맞습니까? 어쩌다 그리 계신 겁니까?”

장경각의 이 층 구석 방에서 정말로 필목현을 발견한 용천휘는 제 심장을 잡아 뜯고 싶었다.

“네가 왜 여기 있지?”

필목현이 눈을 한 바퀴 굴렸다.

변명을 만들고 있다는 게 너무 뚜렷이 보여 미칠 지경이었다.

“그게 저…… 어쩌다 보니 좀 더 일찍 도착했습니다. 소림의 장경각이라 하면 전부터 구경할 거리가 많다 알려지지 않았습니까. 온 김에 혼자 구경 좀 하고 있었습니다. 그게 그리 큰 죄도 아니고…… 왜 그리 정색을 하십니까.”

그의 너스레는 평소와 다를 것이 없었다.

아마도 그래서 그를 가까이 했을 것이다. 반쪽짜리 소교주라며 멸시하는 이들과, 수라안을 지닌 소교주라며 경외하는 자들 사이에서 그만은 달랐으므로.

그에게 자신은 수라안의 권능을 지녔으되 몸이 온전치 않은 소교주였다. 그 모든 게 용천휘 본인이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제 성격이나 병신 몸을 두고 하는 농지거리도 무례가 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고, 그래서 정확히 무엇을 하려는지도 알았다.

경외하거나 멸시하거나.

둘 중의 하나밖에 관심이 없는 이들과는 바닥부터 다른 인간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좋아했을 것이다.

그래서 믿었을 것이다.

“너 혼자만?”

“예……? 에이,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당연히 재미난 구경거리가 있으면 소야도 모시고 올 생각이었습니다. 괜한 사람 잡을 생각 마십시오.”

“파루나를 부르러 간 것은 어떻게 되었나. 왜 그간 기별이 없었어?”

“아, 그게…… 파루나가 행적을 감추었습니다. 그 정도라면 스스로 족적을 감춘 것이 아닌가 싶었으나 계속 기다릴 수가 없어 저는 소야께 돌아온 것이지요.”

“내게 돌아왔다더니 왜 여기 몸을 숨기고 있었나?”

“으음……?”

필목현이 느리게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는 이제야 용천휘가 던지는 말이 평소 주고받던, 시덥잖은 농을 가장한 안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듯했다.

“그게…… 거, 눈치도 빠른 분이 대체 왜 그러십니까. 그 정도면 대충 좀 넘어가 주시지 않고요. 이미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장경각을 구경한다고 내게는 기별도 없었다는 말?”

“제가 마지막으로 뵀을 때까지 분명 소야의 청력에는 아무 문제가 없지 않았습니까. 왜 한 번 들은 말을 또 물으시고……”

“내 등 뒤에서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었던 거야!”

쾅!

용천휘가 참지 못하고 주먹을 휘둘렀다. 장경각의 어딘가가 움푹 부서져 나갔다.

“삼좌위라는 네가! 다른 누구도 아닌 네가! 어째서 지금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고 있어! 대체 왜!”

“소야!”

스슷!

필목현이 용천휘의 곁으로 이동해 재빨리 손목을 붙들었다.

“이곳은 소림입니다. 아무리 입구 외에는 사람이 없는 곳이라 해도,”

“감히! 내 몸에 손대지 마라!”

펑!

용천휘가 손목을 꺾었다. 필목현의 손을 벗어난다 싶은 순간 곧장 출수가 이어졌다.

“으욱!”

벽운천강권에 정통으로 가슴을 얻어맞은 필목현이 한 장도 넘게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용천휘는 지강백을 아무렇게나 내려놓고 필목현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는 입가로 피를 흘리는 필목현을 붙들어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소, 소……”

용천휘의 붉은 눈이 이글대며 타올랐다.

“너는 나를 배신하지 못해. 너만은…… 너만은 절대…… 그럴 수 없어.”

“소…… 소야……”

목이 짓눌린 필목현의 눈에서 핏줄이 터져 나갔다. 보라색이 된 입술을 비집고 혀가 무언가를 말하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그런 필목현을 지켜보는 용천휘의 눈가가 일그러졌다. 눈이 뜨거웠다. 용천휘는 제 입술을 물어뜯었다.

“그 전에 내가 널 없애겠다. 너는 삼좌위로 죽어야 해. 이매가 아니라.”

“소……”

“잘 가라.”

눈을 대신해 입술이 피를 흘려 주었다. 용천휘는 목을 짓누르는 손에 내력을 더했다.

“크, 으……”

금방이라도 빠질 듯 부풀어 오르는 필목현의 안구를 보며 용천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자 애썼다.

필목현은 제 손에 이렇게 쉽게 죽을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곧 제가 받은 권능을 발휘해 몸을 빼낼 것이다.

그 점을 알면서도 용천휘가 시간을 주고 있는 것은 마음 한구석에 남은 미련 때문이었다.

자신은 아직도 필목현이 이매이길 원치 않는 것이다. 그가 무언가 다른 말을 해 주길 이렇게 빌고 있는 것이다.

“크읍!”

마침내 필목현이 몸에 힘을 주었다. 그를 쥐고 있던 손의 감각이 마비된 것처럼 사라졌다. 공간이 단절된 것이다.

이제야 본색이 드러났다. 필목현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다.

용천휘가 제 몸 어딘가를 끊어내는 심정으로 홱 몸을 돌렸다.

그러나.

“소야!”

“……!”

퍼엉!

시야에 들어온 것은 저를 감싸 안는 필목현의 양팔이었다.

“욱,”

목덜미로 필목현이 울컥 뿜어낸 피가 흘렀다. 타인의 피가 그토록 뜨겁다는 사실은 용천휘를 놀라게 했다.

“도망……치십,”

필목현은 말을 다 잇지 못했다.

“과연!”

“여기다! 장경각에 있었다!”

맞은편 벽이 와르르 무너지고, 그 너머에서 구파일방의 군웅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가장 앞에는 방금 전 벽을 관통해 필목현에게 일 장을 안긴 지월이 있었다.

용천휘를 발견한 지월이 천천히 웃었다. 얼굴을 마주한 용천휘만 알아볼 수 있는 웃음이었다.

그리고 그가 알아먹기 힘든 말을 인사처럼 던졌다.

“여기서 이렇게 보게 되는군.”

“……?”

“드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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