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5화 천하무도회 (1)
짹짹짹.
새소리가 유독 기운찬 아침이었다.
화산의 팔장로 현달 도인은 이 아침부터 심기가 불편했다.
“이 녀석은 대체 어딜 가서 보이지 않는 게냐.”
아픈 손가락처럼 늘 마음이 더 쓰이는 막내 제자 연심환이 통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오늘은 천하무도회의 예선이 시작되는 날.
천하제일기의 주인이자, 천하무도회가 개최되는 소림의 주인인 지월이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선이 시작되었다.
지월의 반대 이유는 청간을 받은 사람들이 모두 도착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개방과 종남이었는데, 언제 도착한다는 기별도 없던 터라 계속 기다려야 하는 다른 문파의 불만이 상당했다.
본회가 계속 늦어진다는 점은 사실 핑계였다. 사람들이 불평하는 것의 태반은 종남파가 천하무도회에 끼어든다는 것이었다.
특히나 구파일방의 빈자리를 노리고 있던 오대세가의 반발이 심했다.
그러자 자연 다른 문파들도 덩달아 심기가 불편해졌고, 이래저래 분위기가 험해지는 중이었다.
겸사겸사 종남의 두 제자가 몇 번의 사고를 쳤다는 것이 알려지며 그에 더해 안 좋은 소문들도 더해졌다. 종남을 향한 반감은 하늘을 찌를 듯했다.
그 와중에 개방에서 도착했다. 그것이 어제였다.
구파일방의 수장들이 모여 이구동성으로 본회의 개최를 요구하자 지월도 더는 말릴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만으로 하루 동안 천하무도회 본회를 열 준비를 하게 되었다. 너나 가릴 것 없이 욕설이 터질 만큼 정신 사납고 바쁜 일정이었다.
그래도 어찌어찌 준비를 마치고, 이제 막 예선이 치러질 참이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칼이 손에 다 익지 않았을 터인데…… 나 참.”
예선이 시작되기 전 급하게 다친 팔이라도 살펴 줄까 했더니 제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이놈 저놈 지나다니는 놈은 다 붙들고 물어보아도 통 못 봤다는 것뿐이었다.
처음에는 저도 오죽 정신이 없으랴 싶었지만 예선장이 빼곡히 찬 지금까지도 모습을 보이지 않으니 걱정을 넘어 무언가 시커먼 위기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아무래도 환이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 같구나.”
현달 도인이 속도를 높여 달려갔다.
혼자서만 알고 있을 일이 아닐 듯싶었다.
* * *
“사형, 괜찮아?”
“음?”
지강백은 저를 부르는 소리에 놀라 고개를 돌렸다.
“왜 그렇게 넋이 빠져 있어. 여기가 어딘지 잘 모르겠어?”
“아, 그게…….”
지강백은 초점이 돌아온 눈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곳은 천하무도회의 예선장.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것을 본 적은 처음이었다.
그 사람들이 모두 머릿속으로 상상만 했던 강호의 무인들이라는 것도 놀랍기 그지없었다.
일부는 연무장에서 익히 본 자들이었지만, 확실히 연무장과 정식 예선장은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다. 칼을 쥘 때의 팽팽한 긴장감이 커다란 그물처럼 여기 모인 모든 이들을 뒤덮고 있었다.
하지만 지강백이 넋을 놓고 있던 것은 다른 이유에서였다.
“좀…… 어제 봤던 게 잊히지가 않아서.”
“어제 뭘 봤는데?”
지월의 무공을 보았다.
일전에 약속했던 대로, 지월은 그 바쁜 와중에도 틈을 내었다. 지강백을 따로 불러낸 지월은 빗물을 퉁기던 무공을 다시 한 번 보여 주었다.
그새 조금 더 다듬어진 듯했다. 지월은 잠깐의 손장난이었던 그것에 우비사(雨庇娑: 비가 사바세계를 덮음)라는 이름을 붙였다.
너무 단순한 동작은 초식이라 부를 것도 없었다. 다섯 손가락을 쓰는 다섯 개의 동작이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단순해 보이는 그것은 지강백이 따라하려고 하면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무언가가 되어 있었다.
방장실에서 돌아온 지강백은 혼자 방 안에 틀어박혀 지월의 손동작을 떠올렸다.
신기하게도 지월의 손동작은, 움직임에서는 전혀 달랐지만 태을분광검을 연상하게 했다.
언젠가 보았던 무연객의 이름 없는 장법을 떠올리게도 했으며 무당파 제자인 천일장이 보여 주었던 구궁참혼도 언뜻 생각났다.
통 이유를 알지 못해 더 세밀하게 기억을 쥐어짤수록 더욱 많은 무공이 뒤죽박죽 섞여 버렸다.
그렇게 꼴딱 밤을 새웠다.
지금도 지강백은 우비사가 만들어냈던, 아득한 구름 위 같은 세상에 한 발을 걸치고 있는 기분이었다.
“너는 말해 줘도 모르는 거다.”
지강백의 대답에 용천휘가 피식 웃었다.
“아아, 그런 거야?”
“안타까운 노릇이지만.”
“아아, 뭐 사형이 그렇다면. 그나저나 대진이 시작됐는데 저쪽에는 관심 없어?”
용천휘가 가리키는 곳은 정면, 그러니까 예선장의 중앙에 자리한 비무대였다.
비무대에는 첫 번째 상대인 화산파의 장이휘와 남궁세가의 소가주인 남궁완의 대진이 한창이었다.
매화검은 현란했고 극의쾌검은 무엇보다 빨랐으나 이미 한 차례 견식한 바 있던 것들이었다.
지강백은 심드렁한 눈으로 비무대를 쳐다보았다.
“곧 결론이 나겠군.”
“그래? 어느 쪽이 이기는데?”
“극의쾌검.”
“아, 그럼 화산파가 남궁세가보다 못하다는 소리야?”
용천휘가 놀라운 기색을 태연한 표정 뒤로 감추며 되물었다. 그는 무공을 보는 지강백의 안목이 불과 며칠 사이에 또 달라졌음을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다고 봐야겠지.”
지강백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검의 숙련 정도는 화산이 나아. 하지만 검 자체의 상성이 맞지 않아. 그런 면에서는 남궁세가의 빠른 검이 더 낫다.”
용천휘가 보기에도 그랬다.
지월과의 독대가 지강백에게 생각보다 훨씬 더 큰 영향을 끼치는 듯했다.
‘안타깝군, 사형. 애초에 양영천 같은 인간이 아니라 제대로 된 사부를 만났다면 사형은 이미 다른 경지에 있었을 텐데.’
안타깝게도 오늘날 지강백이 무명인 것에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양영천은 아직 소림에 도착하지 못했다.
“그나저나 사부님이 너무 늦으시는군. 본선이 시작되기 전에는 도착하셔야 할 텐데.”
지강백이 중얼거렸다.
양영천이 정말로 이 자리에 나타날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라는 게 용천휘의 생각이었다.
“어, 그러게 말이야. 너무 여유 부리시는 게 아닐까 싶네.”
“그게 무슨 불경한 말이냐. 사부님은 그러실 분이 아니다. 생각보다 길이 험한 것이겠지. 사부님은 너무 연로하시다.”
“연로한 게 무슨 상관이야. 사형 말로는 사부님은 이 세상 제일가는 고수라면서.”
“하지만 사부님은 평소에는 무를 거의 사용하지 않으시잖아. 여정이 험한 것과 고수인 것은 상관이 없지. 내가 미리 마중이라도 갔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지금이라도 양해를 구하고,”
“엇. 저거 봐, 사형!”
달캉!
때마침 장이휘가 검을 떨어트렸다. 지강백이 말한 대로 승부는 삼 합 안에 끝이 난 것이다.
장이휘의 팔뚝이 길게 베어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를 상대로 승리를 얻은 남궁완은 기뻐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이었다. 반대로 장이휘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했다.
자신에 비하면 아직은 어리다고 생각한 남궁완에게 패배한 것이 이해하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남궁세가의 승! 패자는 무기를 회수해 내려오시오.”
예선장의 진행을 맡은 소림의 계율원주 백연이 말했다.
장이휘가 뻣뻣한 자세로 서 있다 할 수 없이 칼을 챙겨 들고 내려왔다.
“승자는 같은 검을 한 번 더 겪으시겠소?”
백연이 남궁완에게 물었다.
같은 검을 다시 겪는다는 말은 또 한 번 화산파 인물을 상대하겠다는 뜻이었다.
이것은 승패보다는 서로의 무학을 비교하며 그 장단점을 파악하고자 했던 천하무도회의 본래 취지를 살리려는 뜻에서 정해진 규칙이었다.
남궁완이 수락하면 화산의 연심환이나 다른 제자가 나서야 했다. 반대로 거절하면 두 번째 대진이 치러지게 될 것이다.
남궁완은 대답에 앞서 힐긋 비무대 밖을 돌아보았다.
사람들 사이에서 본가의 어른들을 찾으려는 것이었다. 남궁세가의 사람들이 모여 앉은 곳에서 누군가가 고개를 끄덕이자 남궁완이 답했다.
“예. 그리하겠습니다.”
백연이 그 말을 받았다.
“허면 화산에서는 다음 상대로 누가 나오시겠소?”
그 말에는 답하는 이가 없었다.
“……?”
비무대 밖이 한차례 술렁였다.
비로소 화산의 인물들이 아무도 보이지 않음을 깨달은 것이다.
“화산에 무슨 일이 있소이까?”
그 말에 답할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하루 만에 시작된 본회를 대비하느라 다들 정신이 없었던 탓이었다.
“허…… 이런 일은 또 처음이니…….”
잠시 난감해하던 백연은 곧 정신을 수습했다.
일단 두 번째 대진을 시작해 예선전을 계속하되, 소림의 제자들을 시켜 화산파의 행적을 알아보는 방법이 가장 나을 듯했다.
혹 그동안 화산에서 제 발로 나타날 수도 있을 것이다.
듣기로는 팔 장로가 아끼는 제자 하나가 시비에 휩쓸려 팔을 다쳤다니 아직까지 준비가 덜 되었을 수도 있었다.
“그럼 두 번째 대진을 시작하겠소이다. 개방과 점창이외다. 순번을 정한 제자들은 비무대로 오르시오.”
긴 창을 든 점창파의 제자가 먼저 올랐다.
이번 비무는 창과 봉의 대결이 될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더 길고 더 날카로운 창이 훨씬 유리한 듯 보였지만 개방 측 인물은 후기지수 중 세 손가락 안에 든다는 백사준이기에 병기의 이점만을 따질 수는 없었다.
“개방의 제자도 속히 오르시오!”
문제는, 백사준 또한 이곳에 없다는 것이었다.
“개방도 없으시오?”
“…….”
백연이 재차 물어도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허, 참.”
백연이 절레절레 고개를 젓다 못해 이맛살을 찌푸렸다.
“아무리 준비 기간이 짧았다 해도 엄연히 천하무도회 본회인 것을. 이리들 시간을 지키지 못해서야…….”
두 번째 대진도 무산되었다.
“그럼 다음 대진으로 넘어가겠소이다. 이번에는 무당과 종남이오.”
비무대 밖이 또 한 차례 술렁거렸다.
적어도 마흔넷은 이번 대진을 가장 기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무당과 종남이 이미 맞붙었던 전적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설마 무당의 천일장이 종남파 제자에게 실제로 패배했다고는 믿지 않았다. 처음에는 잠시 의심하기도 했고, 대비를 해야 한다느니 하는 말을 떠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천일장은 구파일방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는 후기지수였기 때문이다.
오늘의 비무는 천일장이 그날의 일을 얼마나 시원하게 되갚아 주느냐였다.
가능하다면 이십칠 년 전 양영천과 지월의 대진처럼 톡톡히 망신을 당해야 할 것이다.
가장 먼저 첫 승을 거둔 남궁완이 엉덩이를 들썩대며 말했다.
“종남이 여기서 완전히 끝이 나야 할 텐데.”
그래야 구파일방에는 완전한 공석이 생기고, 남궁세가의 이름이 그 자리에 오를 것이다.
“천형님께서 설마 그날처럼 또다시 방심하진 않으실 테지.”
질자의 혼잣말을 듣던 남궁진현이 입을 뗐다.
“그날처럼이라니?”
“아, 이숙께서는 아직 듣지 못하셨습니까?”
남궁완이 놀란 얼굴로 남궁진현을 돌아보았다.
섬격검 남궁진현은 자신에게 엄한 만큼 타인에게도 엄한 사람이었다. 남궁완은 천하제일쾌검이라 불리는 숙부가 자랑스러웠지만, 그만큼 그를 대하기 어려워했다.
“종남의 제자라는 것들이 말입니다. 어디 산골짜기에서 구르다 왔는지는 몰라도 사람을 대하는 예의라고는 쥐뿔만큼도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정도와 예의를 따지기로는 후기지수들 중 제일인 무당의 천일장 도자(道者)께서 그 꼴을 가만두고 보시지 않으셨습니,”
“그래서?”
재촉하듯 말을 끊고 들어오는 남궁진현을 향해 남궁완이 고개를 갸웃댔다.
“그래서 어찌 됐느냐 물었다. 몇 합 만에 끝을 보았느냐?”
“아, 그건…….”
남궁완이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며 말끝을 흐렸다.
자신보다 한 수 위로 꼽는 천일장이 웬 무명의 잡인에게 방심하다 당했다는 말을 하기는 어쩐지 민망했던 것이다.
“어서 답을 해라.”
“그게…… 저어, 몇 합 만이라 할 것도 없이 천일장 도자의 일격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너무 방심했던 탓,”
“천일장의 한 수를 막아 내고, 그다음은?”
이번에도 남궁진현은 남궁완의 말을 끊었다. 남궁완은 이상하다 싶으면서도 기세에 눌려 그날의 기억을 더듬었다.
“어, 그게…… 검을 떨어트려서 딱히 다음이랄 것은 없었,”
“검을 떨어트린 것은 주먹이겠구나. 아마도 좌수였겠고?”
“아, 예……? 예, 그렇습니다만.”
“이런 고얀.”
남궁진현이 불쑥 이를 갈았다.
그는 처음 지강백이 자신의 극의쾌검을 상대할 때 썼던 수를 되짚어 보고 있었다. 그때도 남궁진현의 한 수를 막은 지강백은 권으로 검면을 후려쳐 검을 부러트렸다.
그 일을 알 도리가 없는 남궁완은 더욱 당황한 얼굴이 되었다.
“제, 제가 무어 말씀을 잘못 드렸습니까?”
“아니다.”
“그럼 왜 고약하다는 말씀을,”
고약하다는 말을 내뱉은 남궁진현은 심기가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언제나 냉철하던 얼굴에 보일 듯 말 듯 미미한 웃음기가 내비쳤다.
“한 번 익힌 것은 잊지 않는다는 말인가. 이거 정말 고약한 상대를 만난 것이로군.”
남궁완이 남궁진현의 눈치를 살피다 조심스레 물었다.
“저, 그 상대라 하심은…… 대체 누굴 말씀하시는 것인지요?”
남궁진현은 대답 대신 엉뚱한 말을 했다.
“이 대진은 성사되지 않을 것이다.”
“……예?”
남궁완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조금 전부터 그는 남궁진현이 무슨 말을 하는지 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네 말대로 무당의 천일장이 정도와 예의를 그리 따지는 자라면 그를 상대할 리 없다. 이렇듯 보는 눈들이 많은 데서라면 더더욱.”
“……?”
남궁완이 고개를 연신 기우뚱거리는 사이,
“이 대진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비무대에 오른 천일장이 목에 힘을 주어 말했다.
“뭐라고?”
“아니, 저게 무슨 소리지?”
장내가 웅성웅성하기 시작했다.
당황한 것은 지강백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여전히 정신이 딴 데 팔려 있다가 용천휘가 옆구리를 쿡 찌르는 바람에 뒤늦게서야 비무대를 향하던 중이었다.
먼저 비무대에 자리한 천일장은 저보다 낮은 곳에서 오고 있는 지강백을 싸늘한 눈으로 노려보며 다시 한 번 말했다.
“제가 이런, 명성도 근본도 없는 자를 상대해야 합니까? 이 대진은 무당을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막 비무대를 향해 오르려던 지강백에게 일제히 시선이 쏠렸다.
여기저기서 무당이라면 그럴 만도 하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애초에 종남이 발붙일 곳이 아니었다며 삿대질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무당파의 다른 이들도 천일장과 같은 생각이었던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 댔다.
“…….”
지강백이 입을 꾹 다물었다.
그는 순진할 뿐 어리석지 않았다.
자신을 대하는 다른 구대문파의 사람들을 보며 종남이 강호에서 어떤 취급을 당하는지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사부 하나, 제자 하나인 문파가 말이 안 되는 일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용천휘처럼 무공에는 일절 관심도 없는 인간을 입문금을 받기 위해 장문의 직전제자로 삼는 경우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까지는 괜찮았다. 종남의 세가 이전에 비해 기울었다는 사실도 받아들였다.
양영천은 오랜 세월 동안 두문불출하며 저 하나만을 키웠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러나 지강백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어째서 자신이 종남파라는 사실이 저들에게는 곧장 모욕이 되느냐 하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천일장은 이미 검을 섞어 본 자였다.
한 대 맞기까지 했으니 자신이 실력 면에서는 부족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천일장은 여전히 자신을 모욕이라 여기고 있었다.
지강백은 묻고 싶었다. 그렇다면 너의 그 말도 내게는 모욕이 되는 것이 아니냐고.
“그럼 무당의 제자는 어찌하겠다는 뜻이오?”
백연이 물었다.
그야말로 심기가 편치 않았다.
머리를 쥐어짜며 만들어낸 대진을 다른 문파의 새파랗게 어린 제자가 모욕이네 아니네 할 줄은 몰랐다.
무당파의 표표한 자존심을 생각하면 그 제자들도 오죽하랴 싶었지만, 지금 것은 명백히 경우에 어긋나는 짓이었다.
“대진 문파를 바꾸고 싶습니다. 무당은 종남 따위를 상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대진을 입맛대로 바꿀 수는 없소이다.”
“애초에 종남은 이곳에 있을 자격이 없는 곳이 아닙니까?”
“그것은,”
백연이 답을 고르는 중이었다.
스읏, 탓!
지강백의 신형이 불쑥 솟구쳐 비무대 위로 올라섰다.
이제껏 다들 볼 기회가 없었던, 제대로 된 은하유영비였다.
단 한 번의 도약은 표홀하고 경쾌했다. 그리고 그 정확함은 밤하늘을 수놓는 별 그림자처럼 아름다웠다.
눈썰미가 있다 싶은 자들에게는 듣도 보도 못하던 종남파의 제자가 이 한 수로 다르게 보였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 자격이란 게 어떤 겁니까?”
매서운 눈이었다.
“제가 여기서 누군가를 꺾으면 그 자격이 생기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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