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4화 검은 연기
다가닥다가닥.
마차 한 대가 달리는 중이었다.
급할 것도, 분주할 것도 없어 보이는 마차는 무던한 속도를 내며 달려갔다.
다만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마차를 모는 이가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머리칼이 희게 새어 있다는 것이었다.
이윽고 마차는 어느 조그만 다관 앞에 멈춰 섰다.
거짓말을 조금 보태 한 집 걸러 한 집이 다관이라는 사천 땅 어느 곳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다관이었다.
“내리십시오.”
마부석에서 내린 이가 마차의 문을 열며 말했다.
마차 안에서는 차고 맑은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가 어디냐.”
“내리십시오.”
답 대신 같은 소리가 이어졌다.
여인은 체념 같은 작은 숨을 내쉰 뒤 마차 밖으로 나왔다.
“안으로 드십시오.”
흰 머리칼의 그가 다관의 문을 열었다.
다관의 내부는 몹시 어두웠다. 창문이 모두 닫혀 있는 듯했다. 여인은 잠시 미간을 찡그렸지만, 그대로 안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놀랍게도 다관은 텅 비어 있었다. 인기척은커녕 얼씬대는 벌레 한 마리 없었다.
여인은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마치 경계를 친 듯, 연한 독무가 다관 안에 번져 있었던 것이다.
“오셨습니까.”
어둑한 다관의 가장 구석진 자리에서 누군가가 여인을 맞이했다.
짙은 녹색의 장포를 걸친 장년의 사내였다. 위로 치솟은 눈썹이 조금 강퍅한 인상을 남긴다는 것을 제외하면 평범한 중원인이었다.
그러나 여인은 사내의 반들대는 손톱 끝이 푸른빛을 띠고 있다는 것을 알아보았다.
독공의 흔적이었다.
독을 쓰는, 녹색 장포의 사내.
만일 이 자리에 채희유가 아닌 중원의 무림인이 있었다면 깜짝 놀랐을 것이다.
어째서 사천당문의 가주가 이 외진 곳에서 마교의 인물을 기다리고 있던 것인지, 그 이유가 궁금해서.
“이리 앉으시지요.”
“…….”
여인은 말없이 사내가 권하는 자리에 앉았다.
같은 눈높이에 있게 된 여인을 마주 보며 사내가 빙그레 웃었다.
“드디어 파루나를 뵈옵게 되는군요. 감개가 무량합니다.”
여인, 채희유의 인사를 받는 대신 사내는 김이 모락 오르는 차를 한 잔 따라 건넸다.
“자, 드시지요.”
차향이 번지는 동안 사내를 마주한 채희유의 눈에 차가운 녹색이 감돌기 시작했다.
사내는 그녀의 눈을 보며 놀라는 대신 감탄하는 표정을 지었고, 채희유는 완연히 녹색 빛이 돼 버린 눈으로 사내를 응시했다.
“아니요.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사천의 칠엽산은 그리 맛이 좋은 독이라 할 수 없지요.”
“허. 무색무미무취의 독을 단순히 보는 것만으로도 알아차리시다니. 과연 명불허전 파루나다우십니다.”
채희유는 상대의 공치사에는 반응하지 않았다.
“사천당문의 사람이 제게 무슨 볼일이 있어 이토록 험한 수를 쓰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그는 채희유를 납치해 오기 위해 이매를 사용했다. 채희유는 사천당문과 교의 연관성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애초에 납치가 성공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이매향을 복용했다 하더라도 일개 교인이 감히 파루나의 상대가 되겠습니까?”
사내의 말은 옳았다.
몸 상태가 정상이었다면, 그래서 독기를 제어하는 데 아무런 제약이 없었다면 납치를 당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독을 쓴 흔적을 남기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지강백이 너무 근처에 있었다.
지강백의 이목을 가리기 위해 어설픈 변명을 만들어내느니 차라리 그의 시야를 벗어났을 때 손을 쓰는 게 낫겠다 싶었다.
그러나 애초의 목적은 납치가 아니었다.
그녀를 납치한 이매는 “교의 주인이 바뀔 것입니다. 그분께서 파루나를 뵙기를 청하십니다.” 라는 전언을 남겼다.
채희유는 일단 독기로 이매를 제압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 일은 이매의 우두머리를 뒤쫓기 위한 좋은 기회였을 뿐이었다.
제 독기가 이매향을 몰아낼 때까지 기다렸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그사이 용천휘에게 붙여 놓았던 호당충이 사라진 기색이 보여 부득이하게 일행을 먼저 찾았다.
그게 새벽이었다.
그런데 그 희고 시린 어둠 속에서 잠들지 않고 있던 지강백과 마주치게 될 줄은 몰랐다.
자신을 걱정하는 타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교의 비기인 파루나가 아닌 여인으로 대하는 상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 모든 것과는 상관없이, 이전부터 자신이 그를 어찌할 수 없이 좋아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마음먹었다.
파루나의 운명을 벗어나기로.
그렇다고 해서 지강백의 여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최소한 다른 남자의 도구로써 살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 운명의 열쇠를 틀어쥔 용천휘에게 맞서야 했다. 용천휘에게서 등을 돌리기 위한 첫 번째 일은 이매를 깨워 교의 주인을 바꾸겠다는 자를 만나는 것이었다.
용천휘에게서 교를 빼앗으려는 자.
그런데 그자가 사천당문의 무복을 입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저를 보자 하신 분은 어떤 분이십니까?”
채희유가 묻자 사내는 반쯤 식은 찻잔을 들어 올려 그녀에게 내밀었다.
“지금은 파루나께서 보시는 대로 사천당문의 가주, 당일적입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
그가 내미는 찻잔은 요컨대 대답을 들을 자격이 있는지 보겠다는 소리였다.
채희유는 표정 없이 찻잔을 받아 마치 독을 마시듯 한입에 털어 넣었다.
당일적의 얼굴에 감탄이 스쳐 갔다.
“과연. 교내 제일의 비기라는 파루나의 명성은 헛된 것이 아니로군요.”
칠엽산은 당문에서도 가주만이 다룰 수 있는 절독이었다.
새끼손톱만큼의 적은 양으로도 단 일각 안에 내장을 모두 녹여 버리는 독으로, 해약이 있긴 하지만 해약의 의미가 크게 없을 정도로 무서운 극독이었다.
지금 채희유가 마신 양은 장정 열둘을 즉사하게 만들고도 남을 정도의 양이었다.
“입맛이 비려 기분이 좋진 않군요. 이제 답을 듣고 싶습니다.”
당일적은 깨끗이 비워진 찻잔을 바라보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다음 그는 웃음을 지우고 채희유를 똑바로 쳐다보며 입을 뗐다.
“그 다음으로는 중원무림의 천하제일인이 될 생각입니다.”
채희유의 녹색 동공이 벌어지며 입술에서 희미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렇다는 것은…… 설마 금혼진천대법이 완성되기라도 했다는 뜻입니까?”
그것은 간단히 말해 타인의 혼을 가두어 그 몸을 취하는 술법이었다.
목적은 초대 교주였던 대천혈성의 영구한 생존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대천혈성의 막대한 힘으로도 결코 완성되지 않은 최후의 술법이었고, 세대를 이어 온 온갖 고구(考究)에도 결코 완성을 이루지 못했다.
“그렇습니다.”
당일적이 답했다.
아니, 당일적이 아닐 터였다. 금혼진천대법으로 당일적의 몸을 취한 교의 사람이었다.
“그럼…… 대체 누구……십니……까.”
누군지 모를 자가 웃었다.
“그게 중요합니까? 저는 누구든 될 수 있는 자입니다. 그 말은 제가 파루나가 될 수도 있고,”
당일적이 갑자기 손을 뻗어 채희유의 손목을 홱 움켜쥐었다.
사천당문의 독문 금나수법인 삼양수였다.
“다음 대의 대천혈성이 될 수도 있다는 소리입니다.”
붙들린 손목에는 당일적의 손가락을 따라 검푸른 반점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독을 쓴 것이다.
반점은 올라오자마자 곧 사라졌다. 그 어떤 독이라도 완전한 독인인 파루나에게 위해를 끼칠 수는 없었다.
물론 그것은 당일적도 알고 있었다.
지금의 수는 자신이 당일적의 독공을 완벽히 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그의 무공을 쓰는 데 아무런 제약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금혼진천대법이 완벽하다는 뜻이었다.
채희유는 문득 두려움을 느꼈다.
그간 용천휘는 부단히도 이매들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애써 왔다.
그 노력들이 서글플 정도로 헛된 시도에 그치는 동안, 상대는 금혼진천대법을 완성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교를 야금야금 갉아먹는 것도 모자라 사천당문마저 수중에 넣었다.
그가 어디까지 손을 뻗치고 있을지, 용천휘를 비롯한 스물의 교위들은 짐작도 하지 못하고 있을 터였다. 싸움은 오래전부터 시작되었을지도 몰랐다.
어느 한쪽이, 자신들이 이미 불리한 입장에 처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그런 싸움이.
“그리고 대천혈성의 옆자리는 마땅히 파루나가 지켜야지요.”
당일적이 채희유의 손목을 놓아주었다.
“저는 이 몸으로 곧 있을 천하무도회에 참석할 예정입니다. 그곳에서 천하제일인의 몸을 얻고 중원의 정점에 설 것입니다.”
당일적의 표정에는 아무런 의혹도 보이지 않았다.
생각이 거듭되면 현실과 구분이 가지 않는다는 말처럼, 그는 자신이 내뱉은 말이 고스란히 이루어질 것이라 믿고 있는 듯했다.
“중원인들로 맹을 조직할 것입니다. 예로부터 중원은 교를 적대시했으니, 이참에 서역 정벌을 가게 될 것입니다. 중원인들로 하여금 교에 붙어 있는 소야의 세력과 양패구상하게 만드는 것이지요. 그 결과가 무엇이 될지, 짐작할 수 있으시겠습니까?”
용천휘에 반대하는 세력만 살아남게 될 것이다.
서역과 중원 양측을 통틀어.
“전국통일입니다. 완벽하고도 온전한. 그것은 생전의 대천혈성께서도 이루지 못했던 대업입니다. 그것을 제 손으로 하겠다는 말입니다.”
당일적이 손을 내밀었다.
“그 곁을, 함께 하시겠습니까?”
채희유는 그 손을 바라보기만 할 뿐 마주 잡지 않았다.
“한 가지 묻지요.”
“말씀하시지요.”
“어찌하여 제가 소야를 배신할 것이라 믿으십니까? 저는 이 자리에서 귀하의 목숨을 취해 소야께 가져갈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파루나의 본분입니다.”
당일적은 채희유가 그런 질문을 할지 이미 알고 있었다.
“정확히 하지요. 본분입니까, 아니면 강제입니까?”
그 말에 채희유가 입을 다물었다.
“파루나의 본분이란, 몸의 금제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닙니까?”
부정할 수 없었다.
그녀가 등 돌리고 싶어 한 것은 정확히 용천휘가 아니었다. 제 몸과 강제하는, 그리하여 마음까지 제 것이 아니게 만드는 금제였다.
“생각을 조금만 하면 알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금혼진천대법은 몸을 바꿀 수 있습니다. 그건 즉, 금제가 있는 몸으로부터 도망칠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
당일적은 보았다.
채희유의 동공이 투둑, 소리를 내며 벌어지는 것을.
그가 다시 손을 내밀었다.
“저와 함께하시겠습니까?”
채희유의 시선이 당일적의 손을 향했다. 그것은 제 운명을 바꿀 주춧돌로 보였다.
“……예.”
채희유는 당일적이 내민 손을 잡았다.
운명을 바꾸는 첫 번째 걸음이었다.
* * *
“이런 개 같은……!”
백사준이 온갖 욕을 뱉어 냈다.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곳에 도착한 직후였다. 그곳에는 개방의 한 제자가 길가에 쓰러져 막 숨을 거두고 있었다.
주변에 다른 제자가 없는 것으로 보면, 스스로 죽기 직전 마지막 힘을 짜내 연기를 피어 올린 것으로 보였다.
“죽지 마라…… 죽지 마! 이런 니미 개 같은 것들이 대체 어떻게……!”
하지만 아무리 울분을 토하고 성을 내도 이미 죽은 자를 되돌릴 방법은 없었다.
백사준은 제자의 시체를 쥐어짤 듯 품에 안으며 연신 욕설과 함께 미안하다, 잘못했다는 말을 반복했다.
“내가, 내가 생각이 모자랐다. 처음 장걸이 놈이 죽었을 때 발을 빼라고 할 것을…… 내가, 니미럴, 내가……”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욕설은 사실 곡소리와 다르지 않았다.
한발 늦게 도착한 지강백이 착잡한 심정을 담아 백사준을 바라보았다.
무어라 섣불리 위로를 건네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백사준이 끌어안은 시체는 처음 지강백이 발견했던 다른 제자의 시체와 같은 상처를 입고 있었다.
목을 죄인 손자국. 살갗을 아예 지져 버릴 정도로 강맹한 장법이었다.
“이전과 같은 수법이로군요. 그렇다면 흉수는 아무래도,”
“내가……!”
지강백의 말은 백사준이 갑자기 고개를 홱 치켜드는 바람에 끊어졌다.
“내가 반드시……!”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백사준의 눈은 살기를 품어 요동을 치고 있었다.
지강백이 저도 모르게 반보를 뒤로 물러났다. 백사준의 살기에 반응한 것이다.
지강백은 살기가 직접적으로 자신을 향한 이유를 깊이 헤아려 보지 않았다. 백사준이 심기가 어지러운 탓에 살기를 제어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진정하십시오, 백 소방주님. 마음을 다스려야 할 때입니다. 시신이 아직 식지 않았다면 흉수는 근처에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것부터 먼저 찾아보는 게,”
“……니미럴!”
백사준이 시체를 놓고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그가 타구봉을 움켜쥘 때처럼 주먹을 쥐었다 폈다.
어느 정도 살기가 가라앉았는지 그가 지강백을 향해 말했다.
“소협의 사제는 지금 어디에 있소?”
“사정이 있어 아직 약방을 떠나지 못했습니다만…… 그건 왜 물으십니까?”
지강백은 알지 못했다.
모두 시체가 된 개방의 제자들은 용천휘를 감시하라는 명을 받고 움직이던 중이었다는 것을.
백사준이 용천휘와 한 사문인 자신을 향해 순간적으로 살기를 드리웠던 것이 실수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사제에게 혹 암중의 호위 무인이라도 있소?”
“……예? 그런 것은 없습니다.”
“확실하오?”
“확실합니다. 그런데 그건 왜 물으십니까?”
왜냐하면 어떤 놈에게 복수를 해야 하는지 확인은 해 두어야 하니까.
백사준은 그렇게 말하고 싶은 것을 간신히 눌러 참았다.
“혹시 몰라 확인해 두려는 게요. 흉수가 근처에 있다 하면 무공을 일절 모르는 사제도 위험하지 않겠소? 더구나 소협의 사제는 마교와 이미 일면식도 있는 상태지 않소. 놈들이 이런 짓을 저지르는 이유를 모르고 있으니 일단 조심하는 게 나을 거요.”
“그렇다면,”
백사준은 무슨 생각에선지 지강백의 말을 끊었다.
“아니, 이럴 게 아니라 빨리 움직입시다. 나는 제자들에게 흉수를 쫓으라 일러두겠소. 소협은 어서 사제를 찾아서 위험성을 알리고 이곳을 벗어나시구려.”
지강백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보잘것없는 힘이나마 보태겠습니다. 흉수를 쫓는 일에 저도 동참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오, 그래 주시겠소? 나야 감사할 따름이지. 그렇다면 먼저 소협의 사제를 찾읍시다. 함께 움직인다면 소협도 사제 걱정을 덜지 않겠소?”
“물론입니다.”
지강백이 막 말을 마쳤을 때 그들의 앞으로 낯선 거지가 다가왔다.
그 역시 개방의 제자로, 검은 연기를 보고서 온 것이었다.
백사준이 말했다.
“근처의 제자들에게 고해라. 지금 당장 망태기에서 서캐 캐듯이 이곳을 전부 뒤집으라고. 수상한 게 보이면 절대 놓치지 마라. 천라지망이다.”
개방의 제자는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고 즉시 달려갔다.
백사준이 막 밝아 오는 하늘을 쳐다보며 이를 갈았다.
“어디, 거지들이 작정하고 이를 잡으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 주지. 갑시다, 소협.”
지강백과 백사준이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그들이 용천휘가 잠들어 있을 약방 근처에 도달하는 순간이었다.
펑!
약전 골목의 반대편, 크고 작은 지붕들 틈바구니에서 붉은 연기가 터져 나왔다.
그것을 보는 백사준의 표정이 달라졌다.
“벌써 찾았군! 저쪽이오!”
백사준이 먼저 몸을 돌렸고, 그 뒤를 지강백이 쫓아갔다.
펑, 퍼엉!
붉은 연기가 다른 곳에서 솟구쳤다.
“벼룩이처럼 잘도 뛰어다니는 놈인가 보군. 소협! 우리는 위로 올라갑시다! 잘 보고 따라오시오.”
휙!
백사준의 신형이 솟아올랐다. 지강백이 경신술을 펼쳐 그를 따라 했다. 몸을 가볍게 만든 두 사람은 지붕과 담벼락 사이를 뛰어넘었다.
붉은 연기는 또 한 번 피어났고, 높아진 시야에 골목 여기저기서 뛰어다니는 개방의 제자들과 저쪽 담벼락을 끼고 도는 희끗한 인형이 보였다.
“저쪽이오! 흩어집시다, 소협! 나는 왼편을 맡을 테니 소협은 오른편으로 가시오!”
“알겠습니다!”
탓, 타닷!
두 사람이 각기 좌우로 흩어졌다.
발밑으로 기왓장이 깨지는 것도 아랑곳없이 속도를 높인 지강백은 마침내 달아나는 흉수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
“저기다!”
탓!
지강백이 지붕 위에서 지면으로 단숨에 뛰어내렸다. 공력을 최대한 끌어올려 발을 가볍게 한 터라 소리가 거의 나지 않았다.
슷!
지강백은 담벼락에 바싹 몸을 붙이고 섰다.
그렇게 한 호흡을 참고 건너뛰는 사이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서!”
지강백은 퉁기듯 앞으로 나와 길을 가로막았다. 그러나,
“어이쿠, 깜짝이야!”
눈앞에 나타난 자는 마교가 아닌, 지강백이 익히 아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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