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화 독살 계획
객청을 전부 훑었어도 함정은 없었다.
차츰 초조가 밀려왔다.
“내 생각이 틀렸나.”
지강백은 답답한 표정으로 드넓은 객청을 응시하다, 곧 거세게 고개를 털었다.
“아니, 암살 방법이 그렇게 많지는 않을 거야. 남궁 대협만 정확히 목표로 삼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을 것이다. 내가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뿐이다.”
마침 그때였다.
시비처럼 보이는 여자아이가 객청의 조방에서 나와 어디론가 바지런히 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상하다. 왜 여기도 없지? 주고에도 없으면 여기밖에 있을 데가 없는데…….”
지강백은 기척을 지우고 시비의 눈에 띄지 않게 자리를 벗어나려고 했다.
“아이, 참. 남궁세가에서 오신 손님께 내갈 상에는 꼭 그게 들어가야 하는데.”
그런데 남궁세가에서 오신 손님이라는 말에 주춤, 발이 멎었다.
“그런데 감쪽같이 사라졌으니…… 이걸 어쩐다.”
그 다음 순간 지강백은 시비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실례지만 말씀 좀 묻겠습니다.”
“에그머니!”
느닷없이 나타난 인기척에 놀란 시비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저런, 괜찮으십니까?”
지강백이 시비에게 손을 내밀었다. 시비는 잠시 망설이다 그가 내민 손을 잡고 일어섰다.
볼이 사뭇 붉어진 듯 보였다.
“놀라게 해서 죄송합니다. 그런데 남궁세가의 손님께 내갈 물건이 사라졌다 하셨습니까?”
시비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지강백을 빤히 쳐다보았다.
“예에. 남궁세가의 손님이 오시면 항상 드시는 술이 사라졌어요. 그런데 누구세요?”
“아, 저는……,”
“남궁세가에서 오신 분이세요?”
지강백이 작게 헛기침을 했다.
참 뭐라 말하기 곤란한 입장이었다.
“예, 뭐……. 남궁 대협의 일행이라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 술이 어떤 술입니까?”
“금로주라고 하는 술이에요. 남궁세가에서 손님이 오시면 항상 드시는 술인데, 그걸 모르셔요?”
“그 술이 어디에 있었습니까?”
“대개는 주고에 있죠. 그런데 오늘은 주고에 가봤더니 없어서 혹시 객청 조방에 따로 내어놨나 싶었던 거예요.”
멀쩡한 술이 갑자기 사라졌을 리는 없었다.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객청 조방에도 없는 게 확실합니까?”
“예. 아이 참, 지금 정방으로 내어오라 하셨는데 이리 없어져서는…… 큰 부인께서 아시면 당장 경을 치실 텐데. 아이, 난 몰…… 에그머니!”
그리고 호영장의 어린 시비는 또 한 번 놀랐다.
난데없이 나타났던, 예상치 못하게 준수해서 사람을 깜짝 놀라게 했던 남궁세가의 그가 또 다시 오간 데 없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무슨 사람이…….”
이번에는 손을 잡아 일으켜주는 사람이 없었다.
혼자 엉덩이를 털고 일어난 시비가 입술을 삐죽 내밀며 혼잣말을 토달거렸다.
“어찌 저렇게 귀신같이 움직인담. 에고, 지금 내가 이럴 때가 아니지. 없어진 술을 대체 어디서 찾나.”
그때였다.
“어마? 얘, 연아! 너 여기서 뭐 하고 있니?”
고개를 돌리니 조방의 다른 시비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아고, 언니. 그게요…… 주고에 갔더니 금로주가 안 보이지 뭐예요. 언니 혹시 보셨어요?”
“그거? 벌써 정방에 내갔지.”
“예에?”
연이라 불린 시비가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제가 큰 부인께 얘기 듣고 바로 갔는데 없었는데요?”
“아냐. 내갔다고 했어.”
“누가요?”
“……응? 나는 조금 전까진 네가 내간 줄 알았는데?”
“응? 난 아닌데.”
“그럼 누구……?”
호영장의 시비들은 서로를 마주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 * *
타다닷!
지강백은 정방을 향해 달렸다.
사라진 술. 술을 마시는 이는 한 명. 그 한 명은 남궁진현.
술의 행방이 곧 살수의 행방이라는 뜻이었다.
‘주고에는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술은 이미 살수의 손에 들어간 것이고, 가능한 한 빨리 남궁 대협이 음독하게 만들 속셈일 것이다.’
남궁진현은 정방에 있다 했다.
정방까지 술보다 빨리 도착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그런 생각으로 최대한 달려가던 그때,
“……?”
지강백이 문득 신형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목덜미를 언뜻 스쳐 간 스산한 기운 탓이었다.
“뭐지?”
주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간간이 느껴지는 기척은 호영장의 일꾼들이나 호위무인들뿐이었다.
마치 단 한 방울 스쳐 지나간 보슬비처럼, 모르는 척하려하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그런 감각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강백은 목덜미를 손으로 쓸며 중얼거렸다.
“잘못 안 건가.”
어쩌면 정말로 빗방울이 하나 스쳐 간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강백은 다시 정신을 집중해 정방을 향해 달려갔다.
자신이 사라진 그 자리에, 검은 안개 같은 사람의 기척이 드러난 것을 모르는 채.
검은 안개가 지강백의 등을 보며 작은 혼잣말을 내뱉었다.
“후. 자칫 들킬 뻔했군. 몸이 아주 예리한 자야.”
검은 안개가 슬쩍 고소(苦笑)를 물었다.
“머리 쪽은 둔한 것 같지만. 다행스럽게도.”
피웃!
다음 순간 그는 한 명의 사람에서 다시금 검은 안개로 화해 기척을 지웠다.
그 모습은 천잠투의를 입은 적하조가 살막의 백우환영보를 발휘할 때와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
* * *
‘지, 지금이다.’
적하조는 두근대는 마음을 애써 눌렀다.
남궁진현까지의 거리는 불과 열 걸음.
자신은 여자 시비로 역용을 했고, 양손에는 술상을 곱게 받쳐 든 채였다.
제정신이 인간이라면 살수가 침입했다는데 술부터 처마실 리가 없었다. 그러니 술상을 내려놓고 얌전히 물러났다가 기회를 봐서 사라지면 되는 것이다.
어디에서도 살수가 발견되지 않는다 하면 남궁진현과 호곽도 마음을 놓을 테고, 그러면 그때 금로주를 들이켤 것이다.
이상이 적하조가 머릿속에서 그려낸 남궁진현 독살 계획이었다.
‘완벽해.’
적하조는 한껏 얌전을 빼며 정방으로 걸어 들어갔다.
호곽과 남궁진현은 살수가 있느니 없느니 얘기를 나누느라 정작 술상이나, 술상을 이고 온 시비에게나 신경도 쓰지 않았다.
‘바보 같은 놈들. 그 살수님께서 여기 계시다.’
적하조는 자신의 첫 암살이 벌써 칠 할 정도는 성공했다 확신했다. 자꾸만 웃음이 나올 것 같아 그는 아랫입술을 꼭 깨물어야 했다.
“……이 됐군. 이제 그자를 처리해야겠어.”
적하조가 막 술상을 내려놓음과 동시에 호곽이 이렇게 말하며 앉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응? 그자를 처리해? 누구?’
적하조가 저도 모르게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호곽을 바라보았다.
“이쯤 되면 살수 얘기는 거짓이라 보는 편이 맞지 않겠나. 결국 그자가 제 목으로 이 거짓에 대가를 치러야겠지. 제 입으로 지껄인 대로.”
“…….”
남궁진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적하조는 바보가 아니었던지라 대충 어떻게 돌아가는 일인지 짐작이 갔다.
종남파의 첫째 제자인 그가 남궁진현과 호곽에게 암살에 대해 알렸을 것이다.
무연객의 첩지를 받았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을 호곽은 당연히 그 말을 믿지 않았을 것이고, 종남파 첫째 제자는 그래서 제 목을 걸었을 것이다.
어쩐지 한숨을 대신 쉬어주고 싶었다.
‘멍청하긴. 대체 그렇게까지 해서 남궁세가의 이가주를 도우려는 이유가 뭐냐. 이건 뭐 돕기는커녕 제 목이 날아가게 생겼지만.’
적하조가 소리 나지 않게 혀를 찼다.
그자를 생각하면 마음 한구석이 씁쓸해지는 것도 같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자업자득이었다.
‘헹, 꼴좋다. 그렇게 오지랖 넓게 굴더니.’
강호란 제 양껏 오지랖을 부리기에는 너무도 비정한 곳이었다. 그 멍청한 자가 이것을 모른다니 유감일 뿐이었다.
다음 순간 남궁진현이 술병을 집어 들었다.
예측에서 한 박자 어긋나는 일이라 적하조가 어깨를 움찔하고야 말았다.
“하지만 아직 무연객도 나타나지 않았지. 속단하기엔 일러. 살수란 원래 어둠을 틈타는 걸 선호하는 족속이기도 하고.”
남궁진현의 말에 호곽이 코웃음을 쳤다.
“자네는 아직도 그렇게나 그자의 말을 믿나? 대체 왜?”
“거짓을 말할 것 같은 자는 아니니까.”
“그걸 어찌 확언하나? 강호에서건 세상 어디에서건 가장 믿지 말아야 할 것이 사람인 것을. 하물며 제 사문도 말하지 않는 자를.”
“그래, 그게 문제야. 그자의 무공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다는 게.”
남궁진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술잔을 막 입으로 가져가는 순간이었다.
“안 됩니다!”
휘익!
어디선가 날아온 자그마한 나비가 남궁진현의 술잔을 때렸다.
정확히는 나비가 아니라 나비 모양의 머리장식이었다.
정방으로 달려온 지강백이 상황이 다급해지자 손에 잡히는 것을 아무거나 던져냈던 것이다.
하필이면 몸에 지니고 있던 유일한 것이 채희유의 머리장식이었다.
용천휘가 마차 밖으로 던져낸 것을, 주워서 돌려준다고 하다가 소매 속에 넣은 채 깜박 잊어버리고 있었다.
탁!
머리장식은 지강백이 의도했던 대로 술잔을 깨트리거나 떨어트리진 못했다.
오른손도 아닌 왼손으로 던져낸 암기 아닌 암기인 탓이었다.
남궁진현은 그 머리장식을 술잔을 들지 않은 반대편 손으로 받아냈다. 강호제일쾌검의 이름답게 깨끗한 한 수였다.
대신 채희유의 머리장식은 제 역할을 톡톡히 했다.
남궁진현은 결국 금로주를 마시지 않았던 것이다.
“이게 무슨 짓이냐?”
눈썹을 양껏 찌푸리며 묻는 호곽과 남궁진현의 앞으로 지강백이 단숨에 거리를 좁혀 왔다.
“드시지 마십시오. 술에 독이 들었을 겁니다.”
“무어라?”
호곽과 남궁진현의 표정이 대번에 변했다.
특히나 호곽은 얼굴을 벌겋게 달구며 화를 냈다.
“지금 내가 친우에게 독을 대접하고 있다는 소리냐?”
“살수가 손을 썼다는 말입니다.”
호곽도 지강백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순순히 고개를 끄덕일 수 없는 이유는, 호영장이 자꾸만 호락호락한 곳이 되어 가는 듯한 기분 탓이었다.
웬 놈이 제멋대로 들어온 것도 기가 막히는데, 그보다 앞서 살수도 하나 들어와 있단다.
지금 자신은 온 집 안을 발칵 뒤집었는데도 살수가 어디 있는지 몰랐다.
그런데 그 웬 놈이 이제 와 살수가 술에 독까지 풀었단다. 하필이면 친우가 오는 날에만 마시는 귀한 술이었다.
그것은 정확히 알고서 친우를 노렸다는 말이니 웬 놈의 말을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부웅, 붕!
호곽은 앉은 자리에서 삼첨양인도를 위협적으로 휘둘러 보였다.
그 커다란 병장기를 한 손으로 제어하는 품새는 분명 감탄을 금치 못할 것이었다. 호곽은 일부러 제 실력을 과시하며 지강백을 압박했다.
“그리 말하는 것을 보니 살수를 찾았다는 말이겠군.”
살수를 찾지 못하면 목숨으로 대신 사과하라던 말을 기억하라는 뜻이었다.
호곽의 노골적인 위협에도 지강백의 표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 것 같습니다.”
지강백은 확신했다.
분명히 술을 가져온 이가 살수일 것이라고.
그의 눈이 큰 키를 구부정한 자세로 감추고 있는 시비를 향했다.
처음부터 그가 살수일 것이라고 확신했던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그가 목격했던 살수와는 차림새가 완전히 달라져 있던 탓에 두 사람이 동인인물일 것이라고는 연관 짓지 못했다.
그러나 술잔을 향해 머리장식을 던졌을 때, 시비는 일반적인 시비와는 확연히 다른 반응을 보였다.
놀라 움츠러들거나 비명을 지르는 게 아니라 오히려 방해를 하려는 듯 몸을 앞으로 내밀었던 것이다.
물론 너무 늦었다는 것을 알고 곧 동작을 감추긴 했다. 그러나 그 뒤로도 어쩐지 안절부절못한 표정으로 주위를 훑었다.
마치, 어서 기회를 틈타 달아나야겠다는 듯이.
그때 알 수 있었다.
그는 역용을 한 상태이며, 놀랍게도 여장을 해도 별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매우 뛰어난 역용술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지강백은 시비의 퇴로를 막아서는 위치에서 신형을 세웠다.
아니나 다를까.
그렇게 되자 시비의 안색은 눈에 띄게 나빠졌다. 그는 졸지에 세 명의 고수들에게 둘러싸인 꼴이 된 것이다.
“그래, 좋군. 그렇다면 그 살수가 어디 있단 말인가?”
“살수는 지금,”
지강백의 시선이 손보다 먼저 살수를 묶었다.
눈이 마주친 살수는 새하얘진 얼굴로 목줄기를 떨었다. 입술에서 핏기가 빠져나가는 게 눈에 보였다.
혀를 차고 싶을 만큼 안쓰러운 모습이었다.
그가 실력은 아주 하수일 것이라는 용천휘의 말이 또 한 번 입증이 되는 셈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어수룩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보건대 이번이 처음으로 나선 살수행일 가능성도 없지 않을 것이다.
물론 중간에 이렇듯 정체가 들통이 나 임무가 실패하리라는 생각도 해보지 않았을 게 뻔했다.
그게 아니라면, 저렇게 새파래진 얼굴로 도망칠 생각도 못 하고 입만 뻥긋대고 있을 리 없으므로.
“…….”
지강백은 그가 입술로만 벙긋대는 필사적인 외침을 들었다.
아아, 안…… 안 돼.
사, 살려줘. 이, 이번 한 번만…….
크흑. 내가 잘못했다. 여기서 관두라는 네 말을 들었어야 했어.
그리고 두 눈에 그렁대는 눈물을 보았다.
“후우…….”
지강백이 한숨을 쉬었다.
대체 저렇게 실력도 없고 배짱도 없는 인간이 왜 살수 같은 험한 길을 택한 것일까.
이 얼치기 살수는 필연적으로 지금은 사제가 된 은도끼파 식구들을 생각나게 했다.
그들 또한 실력은 쥐뿔딱지만큼도 없는 주제에 종남산에서 산적 노릇을 한답시고 설치다가 자신에게 한바탕 혼이 난 사람들이었다.
다행히도 본성이 나쁘지 않아 지금은 의제에 이어 사제가 되었다.
‘이자도 악인은 아닐지 모른다. 이렇게 금방 뉘우치는 것을 보면.’
새 사람이 된 사제들을 생각하면 이자 역시 못 본 척할 수가 없었다.
지강백은 인간에게는 누구나 자신에게 맞는 길을 찾아갈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믿고 있었다.
“왜 대답 대신 한숨만 쉬는 게냐.”
쾅!
호곽은 삼첨양인도의 끝으로 바닥을 찍으며 지강백을 채근했다.
“설마 지금 내 집의 계집종이 그 살수였다 말하려는 것인가?”
남궁진현이나 호곽이나 날카로운 눈썰미를 지니고 있었다.
지강백이 시비에게 눈을 떼지 않은 것과, 그가 시비의 퇴로를 막아서고 있다는 것을 진작부터 눈치채고 있던 중이었다.
바보가 아니라면 독이 든 술을 지고 온 이 시비에게 어딘가 수상한 구석이 있다는 것을 짐작하고도 남아야 했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그렇다면 자네 말이 맞나 확인을 해봐야겠군.”
호곽이 몸을 일으켰다.
삼첨양인도도 그와 함께 일어섰다.
방금 전 삼첨양인도로 찧었던 바닥이 움푹 깨져 있었다. 호곽은 그것으로 이제 곧 지강백의 머리를 이렇게 쪼개놓겠다는 말을 대신 하려는 것으로 보였다.
“자, 살수라면 받아보아라!”
부웅!
삼첨양인도가 불식간에 허공을 갈랐다. 칼날은 곧장 시비로 역용한 적하조를 향했다.
‘끝이구나!’
적하조는 눈을 질끈 감았다.
퇴로가 앞뒤로 모두 막힌 지금, 그에게는 호영장주 호곽과 일대일로 맞설 수단이 없다 생각했다.
무엇보다 그에게는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를 쓰고 덤벼들 배짱이 없었다.
끝내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흐윽. 진작 아버님과 형님들 말씀을 들을 것을. 나는 정말로 살수의 길과는 어울리지 않는 인간이었구나.’
후회는 언제 해도 늦은 것이라 했다.
하지만.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적하조는 자신의 향하던 칼날이 우뚝 멈추는 것을 보았다.
질끈 감은 눈꺼풀 사이로 제 앞을 가로막은 든든한 등이 보였다.
종남파 첫째 제자라던 그의 등이었다.
“이 사람은 제가 보았던 살수가 아닙니다.”
“으, 으잉?”
적하조는 그만 눈을 휘둥그레 뜨고야 말았다.
그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말을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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