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화 심마(心魔)
“살수가 잠입했다!”
호영장에는 즉시 경계령이 떨어졌다.
“아궁이 속, 우물 바닥까지 훑어서 찾아내라! 필요하다면 기왓장 한 장까지 모두 뜯어내!”
살수를 색출하라는 호곽의 명에 호영장은 느닷없는 돌팔매를 맞은 벌집처럼 분주해졌다.
수많은 일꾼들과 호위무인, 호영장의 직계 무인들이 나서서 살수의 종적을 쫓기 시작했다.
지강백도 그 틈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살수는 하나였고, 그를 뒤쫓는 이들은 수십 명이 넘었으니 불리한 쪽은 살수였다.
그러나.
“젠장. 어디 숨어 있는 거지.”
호영장은 너무 넓었다.
바닷가에서 모래알을 찾는 것 정도는 아니겠지만 이 넓은 곳에서 숨어 있는 사람 하나를 찾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아 보였다.
더군다나 상대는 살수였다. 잠행과 은신이 특기인 자들을 육안으로만 찾기란 지난할 터였다.
내원의 담을 따라 각을 맞춰 피어 있는 꽃나무 틈을 훑던 지강백은 무슨 생각에선지 고개를 털었다.
“아니, 이렇게는 못 찾아.”
생각을 해야 했다.
살수는 남궁진현의 목숨을 노리고자 호영장 내부에 침입했다. 그는 직접 손을 쓰는 대신, 함정을 파놓고 기다리는 것을 선호하는 살수였다.
“함정. 함정이라…….”
함정을 파놓는다면 어디에, 어떤 방식을 사용할 것인가. 그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을 잇던 지강백이 문득 쓴웃음을 지었다.
“그 녀석이라면 뭔가 답을 알 것 같기도 한데…….”
살수가 살막주의 막내아들이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파악했던 용천휘라면 어쩐지 지금도 답을 가지고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쓸데없는 생각이다. 무엇보다 여기서 그 녀석을 찾는 데 드는 시간이 더 걸리겠지.”
지강백이 또 한 번 머리를 털었다.
신법 구경 한번 하겠다고 소림사행을 고집한 철없는 사제도 사제라고, 어느 순간 의지할 마음이 들었다는 사실이 묘하게 기분을 언짢게 했다.
“생각을 해 보자. 호영장은 너무 넓다. 따라서 무턱대고 함정을 놓을 수는 없어. 살수라면 정확히 남궁 대협만을 노리고자 했을 것이다.”
그러려면 함정은 아무래도 남궁진현이 머물 객청을 위주로 생각해 봐야할 듯싶었다.
결론을 내린 지강백이 고개를 들었다. 먼저 객청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그가 신형을 띄워 내원의 담을 올라탔다.
* * *
“식수는 확인했더냐?”
지강백이 했던 생각을 호곽이라고 못 할 것 없었다.
살수가 숨어들었다면 반드시 기회를 엿보고 있을 것이다. 그럴 경우 가장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독이었다.
“지금 조방(灶房: 부엌)과 우물을 모두 점검하고 있습니다.”
호위무사장이 답했다.
호곽과 남궁진현은 내원의 정방(正房)에 서서 호영장의 내부가 샅샅이 뒤엎어지는 과정을 면밀히 지켜보는 중이었다.
“만전을 기해라. 살막의 이름은 결코 녹록하지 않다.”
“예, 장주님. 걱정 마십시오.”
호곽이 입술을 비틀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물론 정말로 살막의 자객이 있을 경우의 얘기지만.”
어쨌거나 확신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남궁진현은 그 정체 모를 자가 거짓을 말할 성격은 아니라 했다.
암살 위협이 있는 당사자의 말이기도 했고, 또 그 위협의 미끼로 쓰여진 게 본의 아니게 호영장이었으니 자신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 생각하는 호곽이었다.
하지만 또 하나 생각해야 할 것이 살막이라는 이름이었다.
살막은 그렇게 허술한 곳이 아니었다. 살막의 자객이 그렇게 쉽사리 족적을 들켰다고도 믿을 수 없었다.
청부가 실패하는 순간 제 정체를 발설하느니 그 자리에서 독을 넣은 이를 깨물고 죽는다는 곳이 살막이 아니었던가.
“감히 천하제일쾌검의 청부를 의뢰할 만한 자가 있는가? 혹 짐작 가는 바는 있나?”
호곽이 묻자 남궁진현은 의외로 담담히 대꾸했다.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 없네. 강호에 몸을 담근 이상 은원이 없는 자가 어디 있겠는가.”
“하긴. 그것도 그렇겠군.”
고개를 끄덕이던 호곽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그자는 은인가, 원인가? 나는 사실 아직까지 자네의 의중을 모르겠네.”
“그자……?”
“사문을 밝힐 수 없는 그자 말일세.”
“아……,”
문득 손바닥이 아파 왔다.
남궁진현은 제 손을 내려다보다 이유를 깨달았다.
지금 그는 손에 맞지 않는 칼을 꾹 움켜쥐고 있던 중이었다. 부러진 검을 대신해 급하게 호영장의 검을 빌린 것이었다.
그 낯선 감촉이 거슬릴수록, 원래 검을 부러트렸던 지강백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자네는 분명 빚이 있다고 했지만 은이라고는 하지 않았네. 나 역시 그 말은 믿을 수 없어. 내가 아는 남궁세가의 이가주는 누군가에게 함부로 빚을 질 만한 사람이 아니요, 또한 내가 아는 섬격검은 신세를 진 자를 다음에 보면 없애겠다 말하는 이도 아닐세.”
남궁진현이 시큰하게 입매를 꼬았다.
“나 역시 내가 그런 사람이라 알고 있었네.”
“그런데?”
“…….”
차마 말할 수 없었다.
그것이 호승심에서 비롯되었다고는.
지강백의 무엇이 자신을 자극하는지 남궁진현은 알지 못했다.
분명 나이에 비해 뛰어난 자질과 근골을 지니고 있기는 했지만 제 적수라 칭할 만한 자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자신은 그에게 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것이 꼭 칼 실력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닐 것 같기에 마음이 더욱 불편했다.
“지천명(知天命: 하늘의 뜻을 아는 나이. 오십 세)을 앞두고 얻은 자그마한 심마라고 해두지.”
“허.”
고심 끝에 골라낸 대답에 호곽은 더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이었다.
“뭐, 심마란 이유를 알 수 없기에 심마라 하잖은가. 자네가 그렇다면 그리 알겠네.”
하지만 호곽은 지강백에게 완전히 노기를 거둔 것은 아니었다.
자객을 색출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는 점점 더 지강백을 불신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었다.
“허나 그자가 무언가 거짓을 꾸미고 있다 한다면 나는 반드시 내 손으로 대가를 치르도록 만들 것이야. 이번에는 자네도 나를 말리지 못할 걸세.”
심마로 마음이 헝클어졌다던 남궁진현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 * *
“…….”
살막주의 막내아들, 본명 적하조는 이를 질근 물며 호흡을 아꼈다.
아차 하는 사이 호영장 안에는 빈틈없는 경계가 깔렸다.
재빨리 시비의 옷을 훔쳐 입고 내원의 일꾼 흉내를 낸 게 천만다행이었다.
그는 기관진식과 신법에 능했지만, 그보다 더 자신 있는 것은 역용술이었다.
사내치고는 매끈한 피부와 상대적으로 작은 마르고 작은 체구를 지니고 있기에 여인으로 분하는 것도 문제없었다.
‘분명히 여기 어디쯤일 텐데.’
적하조는 지금 호영장의 주고(酒庫: 술 창고)를 뒤지는 중이었다.
흔히 살수가 독을 푼다고 가정하면 우물이나 물독, 혹은 식재료를 의심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허나 그것은 초보 살수나 하는 짓.’
적하조는 제 생각에 확신을 갖고 고개를 끄덕였다.
‘호영장주는 애주가지만 주도(酒道)에는 별 관심이 없는 자지. 하지만 섬격검은 주도에 유별난 자라 했다.’
그래서 호곽에게는 주도가인 남궁진현이 올 때를 대비해 창고에 고이고이 모셔놓은 술이 따로 있다고 했다.
이것은 매우 귀한 정보였고, 적하조는 이 정보를 사기 위해 제법 큰돈을 지출했다.
‘흥. 섬격검에 대한 청부가 들어왔을 때 큰형님은 이것을 거절하자 하셨지.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는 이유로. 둘째 형님도 큰형님의 손을 들어주었어. 둘 다 비겁하다. 두 분 다 아버님의 위명에는 쥐뿔만큼도 관심이 없어!’
적하조는 새삼 분노했다.
결국 참지 못하고 그는 천잠투의를 훔쳐 입고서 살막을 홀로 나섰다. 이어 남궁진현에 대한 정보를 캐내어 오늘의 암살을 계획했다.
호영장 내부에까지 침투하는 것은 가급적 피하고 싶었지만 내내 일이 꼬이더니 결국 이렇게 되어버렸다.
하지만 이 금로주(金露酒)에 대한 정보는 확실할 테니 암살은 팔 할 이상의 확률로 성공할 터였다.
‘반드시 성공시킬 테다. 그래서 내가 철모르는 막내가 아니라는 것을 두 분 형님께 알리겠어.’
적하조는 잠시 위태로웠던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반드시 해내야 해. 내 비록 중간에 엉뚱한 방해꾼을 만나 정체가 드러날 위기에 처했지만……,’
방해꾼을 생각하자 새삼 노기가 솟구쳤다.
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인간인데 그렇게나 재주도 좋게 제 일을 방해하는 것일까.
게다가,
‘살수를 해서는 안 될 인간 같다니! 감히!’
감히 살막주의 아들에게. 비록 셋 중 가장 처진다는 막내아들이긴 했지만.
‘건방진 놈. 내가 반드시 이번 청부를 완수하고 나면 그놈을……,’
대가를 치르도록 만들 것이다.
‘대체 저가 뭐라고! 형님들하고 똑같은 소리를 하고 자빠졌단 말이냐!’
거기까지 생각하자 울컥 서러움이 몰려왔다.
어린 시절부터 그는 자질이 부족한 아들이었다. 작고하신 조부는 살아생전 내내 그에게 살수업을 만류했고, 임종의 순간에도 끝까지 막내 손주에게만큼은 살수를 시키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셨다.
막내는 눈빛부터가 글러 먹었다, 라는 게 평소 조부의 입버릇이었다.
그 탓에 적하조는 조부가 살아 계신 내내 위로 두 형님이 살수업을 받는 동안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 했다.
자신이 살인보다는 다른 잡기에 더 능한 반쪽짜리 살수가 된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방해꾼은 하필이면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될 가장 아픈 부분, 적하조의 역린을 건드린 것이다.
“……고 보자! 내가 반드시 네놈에게 강호의 비정함이란 무언지 알려줄 테니!”
……라고 그만, 적하조는 자신의 본심을 입 밖으로 내뱉는 실수를 저지르고야 말았다. 비정한 강호의 상징과도 같은 직업 살수로서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여기서 네놈이란 내 사형을 말하는 건가?”
“으헉!”
적하조는 심장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놀랐다.
분명 아무런 인기척도 없다 생각했던 주고에, 인간이 무려 세 명이나 있었던 것이다.
“어, 어떻게 날 찾아냈지? 난 분명 지금 역용을 한 상태인데?”
“역용 따위가 뭐 대수라고.”
“대수가 아니라니! 이 역용은 내가 혼신의 힘을 기울여,”
“분칠이 좀 떴는데. 거기, 왼쪽 입가에.”
“……읏, 제길.”
적하조가 손등으로 입술을 문지르며 눈을 치켜떴다.
익히 아는 얼굴들이었다.
방해꾼의 일행이자, 살막의 비보인 천잠투의를 놓고 숨바꼭질하는 데 유용하다느니 하는 말을 지껄인 놈들이었다.
이쪽도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인간들이었다.
“이, 이놈들! 죽인다!”
적하조는 잽싸게 품 안을 더듬었다. 암기를 꺼내들기 위함이었다.
“아아, 싸우러 온 거 아냐. 도와주려고 왔어.”
그런데 개중 부채질이 매우 능란해 보이는 공자가 화해를 제시했다.
“……뭐?”
적하조가 눈을 둥그렇게 떴다.
“지, 지금 뭐라는 것이냐?”
같은 남자로서 화가 날 정도로 멀끔한 외양을 한 공자가 부채를 슬쩍 휘둘렀다. 그러자 그의 가신이 손에 들고 있던 술 단지를 이쪽으로 내밀었다.
“이거 찾고 있었던 것 아닌가? 금로주.”
적하조는 또 한 번 기절할 듯 놀랐다.
“어, 어…… 어떻게! 어떻게 내가 이것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안 것이냐!”
“아아, 그게 뭐 어렵다고. 생각만 좀 해보면 될 일인데.”
“뭐? 아, 아냐! 내가 이 금로주에 대해 알아내기 위해 정보료를 얼마나 썼는데!”
“흐음. 그랬나?”
부채를 든 공자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나도 중원에서 정보상이나 할걸 그랬나. 그랬다면 돈 좀 벌었을 텐데. 나는 네가 살막주의 막내아들이라는 것도 단박에 알아봤거든.”
“뭐…… 뭐라고!”
적하조는 놀란 나머지 숨을 헐떡였다.
대체 그것을 어떻게 알았다는 소리일까.
“아아, 놀랐나? 그 정도 가지고.”
이어서 포닥이는 부채질 사이로 보이는 얼굴은 살심이 일 정도로 매끄러운 낯짝이었다.
적하조는 기어코 암기를 꺼내들고야 말았다.
“이놈들! 이번에는 기어코 살인멸구 하겠,”
그러나 적하조는 말을 마치지도, 암기를 던지지도 못했다.
“그거 던지면 이쪽이 들고 있는 술 단지가 깨질 텐데.”
“……읏,”
그 협박에는 굴할 수밖에 없었다.
금로주마저 실패하면 자신의 살수행은 갈수록 더 지난해질 것이다.
적하조는 분한 나머지 발을 쿵 구르며 소리쳤다.
“대체 내게 왜 이러는 것이냐! 내게 무얼 바라는 것이냐!”
“별건 아니고.”
“별것도 아니라면서 왜 이래!”
“시간을 좀 끌어야 해서. 누구 올 사람이 있는데 아직 안 왔지 뭐야. 기대보다 굼뜬 인간인 모양이야.”
적하조는 그 굼뜬 인간이 누구인지 몰랐다.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인데!”
“같이 좀 기다리자는 거야.”
부채 사이로 얼핏 웃음기가 내비쳤다.
“네가 시간을 끌수록, 너를 찾는 내 사형도 몸이 달 테고. 그럴수록 구경하는 내가 즐겁겠지.”
“……? 뭐, 뭐가 즐거워?”
“내 사형이 나한테 워낙 각별해서.”
적하조는 보았다.
각별이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금로주 단지를 든 가신이 소리 없이 혀를 찬 것과, 그 옆에 그림자처럼 서 있던 여인이 한숨을 깊게 삼킨 것을.
저 반응을 보면 각별한 건지 오히려 그 반대인 건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지금 당장 중요한 일은 금로주 단지를 무사히 빼앗는 것이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술 단지를 넘길 테냐.”
“뭐, 적당히 기회를 봐서.”
“적당한 기회라는 게 대체 뭔데!”
“아직 감이 안 온단 말이야.”
부채 사이로 작은 혼잣말이 새어나왔다.
“운이 좋아 천하제일쾌검의 명호를 얻은 자. 굳이 내가 손을 써 살려둘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
“여기서 죽도록 내버려두면 천하무도회가 좀 더 재미있어지려나. 아니면 그 반대려나.”
적하조는 아무 말 못 하고 입만 벙긋 벌렸다.
이유는 잘 몰랐다. 그냥 등줄기를 타고 뭔가가, 아주 작은 벌레 같은 것들이 우스스 기어간 듯한 감각이 그를 사로잡았다.
한 호흡이 지난 뒤에야 알았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태도에 소름이 돋았다는 것을.
아주 가끔, 이런 감각을 느낀 적이 있었다.
어린 시절 기억 속의 부친에게서였다. 부친을 마주할 때면 가끔 저도 모르게 몸서리가 올라오는 순간이 있었다. 그때마다 부친은 기묘한 표정을 지으며 “막내는 글렀구나.” 라고 했던 것이다.
적하조가 더듬대며 물었다.
“네…… 네놈은 대체…… 저, 정체가……,”
“나?”
인간미가 없다 못해 인간성마저 사라진 듯 보이는 완벽한 좌우대칭의 얼굴이 조금씩 비틀리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 무렵.
상대의 느릿한 대답이 들려왔다.
조금도 예상치 못했던 답이었다.
“종남파 둘째 제자.”
“뭐? 조, 종남파?”
처음에는 제 귀가 잘못된 줄 알았다.
종남파라니. 진작 망해 사라졌다 알려진 그곳이라니.
그렇다면 제 사형이라는 그 방해꾼도 종남의 제자라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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