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천동지-35화 (35/346)

제35화 죽음의 장막(殺幕)

아침 해가 밝아올 무렵이었다.

남궁세가의 기를 매단 마차는 부지런히 말을 달려 산양에서 북동쪽으로 치우쳐 위치한 소서현으로 들어서는 길이었다.

지강백은 마부석이 아닌 마차 안에 타고 있었다. 부상을 입은 그를 배려해 필목현이 마차를 몰겠다고 나선 까닭이었다.

덕분에 푹신한 의자에 편안히 앉아 올 수 있었다.

그러나 정말로 편하냐고 하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니었다.

용천휘가 자꾸만 부채 끝으로 다친 팔을 쿡쿡 찔러대는 고약한 장난을 쳐서 그런 것도 아니었고, 마부석과 연결된 창을 통해 필목현이 간간이 “허허. 내가 이 나이에 마부 노릇을 하게 될 줄이야. 허허.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네.” 라는 식으로 불평을 늘어놓았기 때문만도 아니었다.

굳이 이유를 꼽자면 조개처럼 입을 꾹 다물고 시선을 피하는 채희유 탓이었다.

‘내가 무얼 잘못했나.’

그때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남산에 비가 내리던 그 어느 때와.

한 발을 다가섰다 생각했는데 채희유는 그사이 두 발짝을 멀어져갔다.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기에 그 한 발짝의 거리가 서운했다.

때마침 그때,

히이이잉!

말이 놀라 우는 소리가 들리더니 마차가 우측으로 훌쩍 기울었다.

“어이쿠, 이런. 길에 뭐가 있었나 봅니다. 다들 괜찮으십니까?”

필목현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지강백은 다치지 않은 왼손으로 채희유의 어깨를 감싸는 중이었다.

그녀의 가는 몸이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고 마차 벽에 세차게 부딪힐 뻔했던 것이다.

“괜찮으십니까?”

눈이 마주쳤다.

지강백은 그녀의 하얀 귓불이 순간 복숭아처럼 보기 좋은 분홍빛으로 달아오른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아주 잠시였다.

“괜찮습니다.”

간결하고, 그만큼 차가운 답변이 들려왔다.

이제는 온기 없는 음성에도 서운할 지경이었다.

고맙다는 말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아주 조금만 더 눈을 마주쳤으면 싶었다. 그러나 채희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시선을 돌려 버렸다.

“……예, 그럼.”

지강백이 제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언뜻 창밖의 풍경이 스쳐 갔다. 그러자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길이 맞나? 잘못 든 건 아냐?”

마차는 시원하게 뚫린 관도를 벗어나 어떤 마을로 향하는 중이었다.

용천휘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지강백은 당연히 그들이 숭산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느닷없이 마을이 나오자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아냐.”

용천휘의 대답에 지강백은 오히려 더 불신 어린 눈초리가 되었다.

“확실해?”

“그래. 뭐 그리 사람을 의심해.”

“…….”

말없는 시선에는 그럼 너는 잘도 너 같은 인간을 믿겠다, 라는 항의가 들어 있었지만 용천휘는 뻔뻔하게도 그것을 못 본 척했다.

“사형. 의심하는 건 나쁜 버릇이야. 자고로 옛말에도 의심하는 인간은 대성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지.”

그래서 지강백도 뻔뻔하게 용천휘의 말을 무시하기로 했다.

“내가 나가서 길을 묻고 오겠다.”

“뭐? 사형은 부상자잖아. 그냥 편하게 앉아 있어.”

지강백이 코웃음을 쳤다.

“언제부터 내 걱정을 해줬다고.”

“나야 늘 항상 사형을 걱정하지. 사형이 왼팔마저 다치면 내 몸종 노릇을 대체 어떻게 시키라는 거야.”

“…….”

그러니까 오른팔 하나 다친 것 정도로는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는 소리였다.

지강백이 인상을 썼다.

“애초에 몸종 노릇을 하랍시고 목검도 지니지 못하게 한 네 탓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겠나?”

이번에는 용천휘가 코웃음을 쳤다.

“그럼 뭐가 달랐을 것 같아?”

“그건 또 무슨 소리냐.”

“그 남궁 뭐시기라는 작자는 천하제일쾌검이라며. 설마 사형이 목검 하나로 그런 작자를 상대해 이겼을 거라는 소리야?”

“…….”

구걸개 삼 년이면 타구봉과 그냥 몽둥이를 구분할 수 있다 했던가.

강호일자무식이었던 사제는 종남파 제자 노릇 삼 개월 만에 제법 무림 상식을 지껄일 줄 알게 되었다.

“……조금 덜 다쳤을지도.”

그러나 지강백의 반박에는 자신이 없었다.

남궁진현은 그가 이제껏 겪어본 적이 없던 경지의 고수였다.

사실 지강백이 오른손을 쓰지 못하는 상태에서 무기도 없이 남궁진현을 상대로 목숨을 부지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지강백처럼 비무 경험이 극도로 적은 이에게 그런 고수와의 일전은 단순한 무공 실력의 차이 그 이상을 의미했다.

지강백의 성격에 침착함이 조금이라도 모자랐거나, 그의 몸에 반응 속도가 조금이라도 떨어졌다면 지금쯤 한 구의 시체가 되었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지강백은 강호에 첫 발을 내디딘 이래로 마주친 두 명의 무인이 모두 무연객이나 남궁진현 같은 절정의 고수들이었다.

자신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그로서는 세상 모든 고수가 모두 그렇게 자신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경지에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쯧쯧. 더 다치나 덜 다치나.”

용천휘가 한심하다는 듯, 부채를 설렁였다.

그러나 그가 부채질을 하며 입가를 슬며시 가리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용천휘는 남궁진현의 검이 왜 두 동강이 났는지는 아직 말해주지 않을 작정이었다.

무안해진 지강백은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무언가를 보았다.

“……이런.”

지강백의 표정이 변했다.

“설마 저걸 이제껏 떼지도 않은 거냐?”

지강백이 가리키는 것은 남궁세가의 깃발이었다. 그들은 남궁세가의 마차를 강탈한 것으로도 모자라 본의 아니게 남궁세가를 사칭한 게 되는 셈이다.

“당장 떼어야겠어.”

지강백이 벌떡 몸을 일으키자 용천휘가 다리를 들어 발을 걸려고 들었다.

지강백이 그것을 보지도 않고 피하면서 용천휘를 노려보았다.

“무슨 짓이냐?”

“저걸 왜 떼려고?”

그렇게 되묻는 용천휘의 얼굴에는 한 점의 생각도 없어 보였다.

지강백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방금 전 구걸개 삼 년 어쩌고 한 말은 취소였다. 그의 사제는 아직 멀고도 멀었다.

“안 떼는 게 더 이상하지 않나?”

“왜? 있으니까 좋잖아. 정말 무림인이 타는 마차 같고 말이야.”

“남궁세가의 마차라는 뜻이잖아. 하지만 우리는 남궁세가의 사람들이 아니다.”

“그게 왜 문제가 되는데?”

“왜긴.”

지강백이 답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시길, 강호의 은원은 난맥(亂脈)이라 도무지 달아날 수 없는 그물과도 같은 것이라 하셨다. 누군가 남궁세가에 은이 있는 사람이거나, 원이 있는 사람이 이 마차를 이유로 지금 우리에게 접근할지도 모른다는 거다. 둘 다 좋은 결과는 아니겠지.”

“흐음.”

“게다가 이런 사칭을 남궁세가에서 달가워할 리도 없지. 계속 이 마차를 탈 생각이라면 분명히 문제가 될 거다.”

유감스럽게도, 지강백의 말은 사실임이 증명되었다.

그것도 곧.

히이이잉!

말이 더 거칠게 울었다.

퍼억!

우측으로 틀어지던 마차는 기어코 어딘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나며 주저앉고야 말았다.

그 반동으로 앉은 자리에서 튀어 올라 고꾸라질 뻔했던 용천휘가 소리쳤다.

“뭐야! 대체 무슨 일이야!”

“그게 말입니다, 도련님…….”

필목현의 답이 들려오려는 찰나, 별안간 지강백이 창밖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누구냐!”

분명히 보았던 것이다.

마차가 주저앉는 동안, 창문을 언뜻 스쳐가는 희뿌연 아지랑이 같은 기운을.

“눈썰미가 좋군. 허나 이미 죽은 목숨.”

휙!

무언가가 창문을 통해 날아 들어왔다. 하필이면 지강백이 있는 쪽이 아닌, 채희유가 타고 있는 반대쪽 창문이었다.

더 생각할 틈이 없었다.

“밖으로 나가!”

지강백은 채희유를 끌어안는 동시에 용천휘를 발로 걷어찼다.

용천휘가 구르고, 지강백이 채희유를 안고 마차 밖으로 뛰쳐나오는 동시에,

펑!

불꽃이 일며 마차 안이 매캐한 화약 냄새로 가득 찼다.

* * *

“으…… 쿨럭!”

용천휘가 기침을 하고 채희유가 손으로 입을 가렸다.

천만다행으로 필목현 또한 무사했다.

다만 마차가 완전히 박살 나고, 고삐가 끊어진 말들이 혼비백산하여 도망가 버리는 손해를 겪었을 뿐이었다.

시야를 가리는 검은 연기를 손으로 헤치며 지강백이 전면을 응시했다.

“누구냐!”

시야가 닿는 거리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지강백은 자신이 좀 전에 보았던 것을 기억했다.

달리는 마차와 나란히 속도를 같이 하던, 아지랑이처럼 보이던 그것.

그가 머릿속에서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경지의 경신술이리라.

“나와라. 나와서 이유를 밝혀. 왜 우리를 죽이려고 하는지.”

“…….”

지강백이 미지의 적을 향해 안력을 돋웠다.

오른팔을 쓰지 못하는 지금, 병기도 갖추지 못한 그는 평소의 무위를 절반도 발휘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래도 일행을 가로막고 선 등은 흔들림이 없었다.

일행을 지키는 것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이었다.

지켜야 할 사람들이 있으니 지키고자 할 뿐이었다.

“안 나오면 내가 찾아내겠다.”

목숨을 노리는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목숨을 노리고 있다는 것은 알았다. 좀 전에 지나쳐 왔던 다리에 설치된 함정도 같은 자의 소행일 것이다.

지강백은 남은 내력을 끌어올려 왼팔에 집중시켰다.

지금 믿을 수 있는 것은 지난 십칠 년간의 세월이었다. 지강백은 단 하루도 헛되이 낭비하지 않았다. 그 하루하루가 지금 그의 왼손 주먹에 모두 고여 있었다.

상대가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 순간이었다.

“부상을…… 당했어?”

상대는 지강백의 위아래를 훑어보았다.

잠시 후 그의 눈에는 짤막한 안도가 피어올랐다.

“그렇다면 해볼 만하겠군.”

지강백 또한 상대를 응시했다.

온몸을 연한 색감의 옷으로 빈틈없이 감싼 괴한은 도무지 정체를 알아볼 틈이 없었다.

다만 그가 입고 있는 의복이 몹시 특수하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옷감 자체가 울렁이는 것 같은 기묘한 느낌이었다. 매끄러운 옷감이 거울처럼 빛을 반사해서 그런 것이었다.

저런 옷을 입고 아주 빠르게 경신술을 발휘한다면, 유령처럼 눈에 띄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지강백이 상대를 살피듯, 상대 역시 지강백을 살폈다.

또다시 그 뿌연 아지랑이가 울렁인다 싶더니 당황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궁진현이라면 마땅히 검을 들고 있을 텐데…… 뭐야, 아무도 검을 쥔 사람이 없어? 대체 너희들은 누구야? 왜 남궁세가의 마차를 타고 있는 거야?”

“뭐라고?”

지강백이 저도 모르게 인상을 썼다.

요컨대 상대는 이쪽이 남궁세가의 인물이라 생각해서 암살을 시도했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지강백의 등 뒤에서 용천휘가 부채에 묻은 검댕을 털며 중얼거렸다.

“와, 그런 일이 정말로 있구나. 그나저나 남궁세가의 마차를 타고 있다고 무조건 남궁세가인이라니. 사고가 너무 단순한 거 아냐?”

지강백은 생각했다.

오른손이 멀쩡하기만 했어도 지금 당장 등을 돌려 용천휘의 머리통을 한 대 후려쳤을 거라고.

진작 그 깃발 떼자고 했을 때 말이라도 곱게 들어처먹었으면.

“그럼 남궁 뭐시기라던 작자를 청부 암살하려고 했단 소리네?”

이어지는 용천휘의 말에 상대는 흠칫 놀란 표정으로 걸음을 물렸다.

“……그건 말해줄 수 없다.”

용천휘가 검댕을 다 털어낸 부채를 포닥였다.

“이미 다 말한 것 같은데.”

그러자 상대의 눈빛이 싸늘히 변했다.

“잘도 죽음으로 가는 길을 찾는군. 살수의 임무를 발설한 자, 살인멸구(殺人滅口)로 죄를 갚아라.”

이번에는 필목현이 옷자락에서 검댕을 털었다.

“이거 참. 발설은 대체 누가 했단 소린지. 그런 거라면 제 입에 칼을 물고 자빠져야 될 것 같은데. 안 그렇습니까, 도련님?”

부채가 퍼덕였다.

“그러게.”

복면 너머 괴한의 눈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이 자리에서 죽어라!”

스슷!

괴한의 신형이 다시 한 줌의 아지랑이가 되었다.

괴한이 비록 암살 대상을 제대로 확인도 해보지 않은 채 덤벼드는 바보 살수일지는 몰라도, 그 실력까지 바보 취급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그에게는 위력적인 무기가 있었다.

신형을 감춰주는 특이한 옷과 탄구.

위치를 눈으로 따라잡을 수 없는 상태에서 탄구를 암기처럼 활용한다면 충분히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 올 것이다.

“다들 조심해!”

지강백이 뿌연 아지랑이를 쫓았다.

그러나 속도가 너무 빠른 데다, 어떤 순간에는 빛이 강하게 반사가 되어 눈이 부실 지경이라 결코 쉽지 않았다.

“읏,”

갑자기 시야를 파고드는 반사광에 지강백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휘잇!

매끄러운 검은빛을 띈 자그마한 구체가 날아왔다.

분명 탄구였다.

“제기랄!”

지강백은 순간적으로 손을 뻗어 용천휘의 부채를 빼앗아 들었다.

용천휘가 반응하기에 앞서, 지강백은 부채를 넓게 펴 탄구를 받아냈다.

부채의 면에 탄구가 닿는 순간 지강백이 반원을 그리듯 손목을 돌렸다. 그러자 탄구는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부챗살을 타고 내려와 지강백의 손아귀에 내려앉았다.

종남파의 수법 중 하나로 태을신수라 일컫는 것이었다.

“헛……! 타, 탄구를 받아 내다니……,”

상대의 입에서 당황이 흘러나왔다.

용천휘 역시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내, 내 부채를……!”

이 상황에서 꼭 부채의 안위부터 따지고 들어야겠느냐는 항의 대신, 지강백은 부채를 등 뒤로 홱 집어던졌다.

부채는 일부러 노린 것처럼 정확히 용천휘의 발등에 떨어졌다.

“걱정 마라. 멀쩡하다.”

이어서 지강백이 탄구를 쥔 왼손을 들어올렸다. 받아내는 것이 어렵지, 다시 집어던지는 것은 조금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제 피차일반이 된 것 같은데.”

지강백이 다시 신형을 드러낸 상대를 향해 침착하게 말했다.

사실 그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자신은 모를, 남궁세가의 은원 탓에 곤란을 겪게 됐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돈을 받고 사람을 대신 죽여준다는 살수에 대한 근본적인 거부감이 앞서는 탓이었다.

무공을 이용해 돈을 벌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의 목숨을 돈으로 환산하는 방식은 그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난제였다.

“여기서 관두자. 상대를 착각해서 이쪽을 해하려 했던 일은 없던 것으로 치겠다.”

“천만에!”

그러나 상대는 그만둘 생각이 없어 보였다.

“살막은 어떤 경우에라도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반드시 이 자리에서 네놈들 전부를 죽여 살인멸구할 것이다.”

그 말에 용천휘가 고개를 끄덕였고, 필목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 살막의 살수라는 말이로군요. 살막이라는 곳이 무슨 청부집단인 모양입니다?”

“그러게. 누가 살막에 남궁진현의 암살 청부를 넣었나 보지?”

“원 참. 명색이 살막이라는 데가 이렇게나 기밀 유지가 엉성한 곳이었다니. 조만간 상단 차원에서 불매라도 해야겠습니다, 도련님.”

이제는 살막의 살수라는 정체를 모두 드러낸 괴한이 벌컥 분노를 드러냈다.

“닥쳐라! 네놈의 손에 들린 탄구는 단 하나일 뿐! 게다가 평범한 눈이라면 내 움직임을 간파할 수 없을 터. 당연히 내가 더 유리하다.”

바보긴 해도 실력만큼은 바보 취급하기 곤란한 살수의 말은 옳았다.

지강백은 눈으로 그의 움직임을 쫓을 수 없었다. 간신히 아지랑이 같은 기척을 읽어낼 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살막의 살수가 연달아 탄구를 폭발시킨다면……

“저거 그거잖아.”

……의외로 별 일이 없을지도 몰랐다.

별안간 툭 튀어나온 용천휘의 말을 필목현이 받았다.

“예. 천잠투의(天蠶透衣)로군요.”

“아, 그래. 그런 이름이었어.”

“어릴 때 도련님께서 저걸 걸치시고 숨바꼭질을 하자 하시면 퍽 귀찮았지요. 허나 제가 바봅니까? 곧 천잠투의를 상대할 방법을 찾아냈지 말입니다.”

“뭐…… 뭐라고?”

보지 않아도 알 것만 같았다.

복면 너머 살수의 얼굴이 황망하게 일그러지는 광경을.

“네…… 네놈들이 어떻게 살막의 비기인 천잠투의를 알고 있는 거지?”

같은 질문을 하고 싶은 것은 지강백도 마찬가지였다.

너는 정말 평범한 상단주의 아들이 맞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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